짤막한 야숨 왕눈 원신 플레이후기

최근 원신을 플레이하고 있다. 원신은 정말 아주 잘 만든 오픈월드 게임이다. 맵의 밀도도 기획의도도 설계도 부족한, 어딘가 야숨의 향이 진하게 나는 초반 지역 몬드를 지나서부터 그 진가가 드러난다. 몬드-리월-(드래곤스파인)-이나즈마-수메르-폰타인이라는 맵의 업뎃 순서를 생각해봤을 때, 비교적 후반에 설계된 수메르와 폰타인에서의 플레이 경험은 젤다에서 가능했던 플레이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스위치라는 기기에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원신의 광활한 맵은 z축으로도 끝없이 확장된다. 이를테면 리월에서는 침옥협곡을 비롯한 협곡지형으로, 수메르에서는 수풀과 동굴로, 폰타인에서는 지상만큼이나 밀도있고 개성있는 해저지역으로, z축이 +- 모든 방향으로 확장된다. 그 다양한 기믹과 넓고 아름다운 맵은, '원신이 정말 젤다를 뛰어넘었..나?'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지도 모른다. 실제로 젤다시리즈플레이타임 700시간, 세상에서가장멋진게임은 젤다야숨, 가장완벽한게임디자인은야숨, 젤다때문에게임개발시작, 젤다가정말좋고 나중에꼭젤다같은게임을만들거야, 라고 생각하는 나도 저런 생각을 잠깐 했었다.

번개 신이 관할하는 원신의 이나즈마 지역. 번개 원소를 사용한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하다.

물의 신이 관할하는 원신의 폰타인 지역. 저 바다 아래에도 지상과 같은 밀도의 해저 지역이 펼쳐져 있다. 해저에서는 지상과 다른 스킬을 사용하며 적을 공격하고 이동할 수 있다.

숲의 신이 관할하는 원신의 수메르 지역. 수풀로 가득찬 거대한 숲과 건조한 사막이 공존한다.

플레이어를 공중에 띄우는 탄력버섯, '쿠사바'의 힘을 사용하는 기믹, 풀 씨앗을 사용한 오염된 땅 파괴,

그리고 무엇보다도 z축으로 확장된 맵의 이동편의성을 높여주는 와이어 기믹까지, 다양한 플레이요소가 있어 맵 이동이 무척 재미있다.

하지만 원신을 플레이하고서 결국 내가 느낀 건 이거였다.

'이정도로 아름답고, 광활하고, 다채로운 플레이가 가능한데,

하루에 12시간씩 때려박을 정도로 재미있는데,

그럼에도 야숨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다니 야숨은 정말 정말 멋진 게임이구나'...

그러니까. 왕눈에서 암만 z축으로 맵을 확장해서, 하늘-지상-지저를 잇는 스카이 다이빙의 재미, 다양해진 맵 풍경, 그런 걸 보여주더라도. 원신에서 위에 적은 것처럼 아주 다양한 플레이 경험을 보여주더라도. 내가 생각했을 때, 그래도 가장 완벽한 오픈월드는 야숨에 있다. 가장 완벽한 어드벤처의 경험은 야숨에 있다. 세 게임 중 가장 먼저 플레이한 게임이 야숨이어서, 그 첫 게임의 충격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이 글에서 왕눈과 원신, 그리고 야숨을 플레이하며 내가 느낀 점에 대해 설명하고, 왕눈과 원신이 멋있는 뭐 어쩌구 2804가지 이유와 나의 플레이타임 n00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왜 최고의 오픈월드 레벨디자인은 야숨이었다고 말하고 싶은지, 나는 왜 그렇게 야숨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길게는 말고..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유비식 오픈월드', 그리고 위쳐를 표방한다는 게임 개발에서 주로 따오는 요소는 아마도 퀘스트식 오픈월드일 것이다. 지도에 ? 마커가 나오면 플레이어는 그 ? 마커에 핑을 직고 미니맵을 보며 그 물음표를 쫓는다. 돌아다니다가 몬스터가 있는 전장이 있고, 그 전장에서 적들을 무찌르면 그에 맞는 보상을 얻는다. 그것이 기본 플레이 흐름이다. 그리고 나는 위쳐3, 포켓몬 바이올렛, 원신, 명조, 스카이림과 같은 오픈월드 게임을 그렇게 플레이해오고 있다.

하지만 야숨에서, 일단 물음표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건 뒷전이다. ?를 찾으러 이동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계속 온갖 것에 한눈이 팔린다. 한눈이 팔린다고 표현했지만, 그건 결국 플레이어에게 흥미를 부여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는 것이다. 야숨은 그렇게 맵에 수많은 흥미지점이 놓여있고, 소위 말하는 삼각형의 법칙을 사용해 그걸 플레이어에게 제시한다. 번쩍이는 빛나는 높은 탑이 있으면, 플레이어는 그곳으로 가고 싶다. 플레이어는 튜토리얼에서 번쩍이는 탑과 사당에 가면 지도를 밝히고 극복의 증표를 얻을 수 있다는 피드백을 이미 받았고, 그곳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곳으로 이동하다 보면 대놓고 수상하게 놓인 바위, 떠다니는 풍선, 어딘가 한군데 비어서 채워주고 싶은 조약돌의 원, 그런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다보면 저기에는 npc가 보이고, 말을 걸면 퀘스트를 준다. 그러다보면 마구간이 보이고, 새로운 몬스터가 보이고, ... 어? 나는 분명히 저 퀘스트를 깨러 길을 걷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반대편에 있는 사당에서 퍼즐을 풀고 있다. 그리고 그 플레이 방식은 전혀 이상하거나, 기획자의 의도에서 벗어난 게 아니다. 야숨은 그냥 원래 그런 게임이다. 게임 디자이너가 열심히 짠 그 정말너무아름다운 맵 위에, 어중간한 랜덤 인카운터나 노가다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코로그 정도?) 그리고 그게 내가 경험한 야숨에서의 탐험이다. 삼각형의 법칙에 의해 플레이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흥미지점이 적절한 빈도로 배치되어 있다. 다른 어떤 게임도, 심지어 같은 방식을 차용했을 왕눈조차도 따라갈 수 없는 레벨디자인이다.

그리고, 야숨은 플레이어가 맵에 기대하는 바를 정확하게 돌려주는 게임이다. 혹은 플레이어가 기대한 것 이상을 돌려주는 게임이기도 하다. 1. 퀘스트 동선과 설계라는 플레이어의 이동 경로 면에서, 그리고 2. 플레이어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 면에서도 그러하다. 먼저 이동 경로 면에서. 야숨에서는 퀘스트를 받은 뒤 주위를 둘러보고, 어떤 기믹을 풀거나, 어떤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이 플레이어에게 적합한 난이도로 부여된다. 내가 이 주변의 맵을 샅샅이 뒤지면 내가 원하던 것이 기가막힌 위치에, 내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빈도 (1분 이내일까?)로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다. 하지만 일단 원신에서는 그정도로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큼 디테일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고, 종종 등장하는 랜덤 인카운터는 그냥 반복되는 퀘스트일 뿐이며, 그 과정이 재미있더라도 게임의 볼륨이 급격히 커진 원신에선 언젠가 결국 노가다 플레이가 되기 마련이다. 캐릭터의 육성 소재, 이를테면 푸리나의 ‘호숫빛 은방울꽃’을 얻으려 폰타인의 호수 인근을 도는 과정은 재미있다. 물론 처음에는. 레벨을 올릴수록 요구하는 은방울꽃의 수는 많아지고, 플레이어는 결국 원신 맵스를 켜고 은방울꽃의 위치를 찾아가게 된다. 캐릭터의 레벨을 올릴수록, 그리고 레벨을 올리고 싶은 캐릭터가 많아질 수록 탐험에 대한 플레이어의 피로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게 어느정도 필요한 일이라는 것, 플레이어에게 적절히 주어지는 노가다라는 것, 그런 것도 없이 레벨을 올릴 수 있다면 오히려 재미없지 않겠냐는 것, 캐릭터 수가 많고 그런 방식으로 BM을 짠 게임이라는 것, 다 알지만. 플레이어가 퀘스트를 받고 어떤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공략을 보지 않고 그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 내게 보람이 느껴지는지, '아 공략보고했으면..'이라는 짜증이 더 큰지. 난도조절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그리고 플레이어의 경험을 얼마나 고려하고 배려해서 게임을 설계했는지, 그런 문제에 더 가깝다.

또한 야숨에서는 플레이어의 환경적 상호작용에 대한 기대감이 대부분 충족된다. 불을 붙이면 상승기류가 발생해 바람을 타고 올라갈 수 있고, 비 오는 날 철제무기를 사용하면 번개가 내리친다. 바람 부는 들판에 불을 지르면 바람이 흐르는 대로 불이 번진다. 원신에선 그런 거 없다. 불나면 플레이어의 hp가 조금씩 깎일 뿐이지, 상승기류 이딴 건 없다. 비가 와도 플레이어가 미끄러지거나 하진 않고, 그냥 꿋꿋이 절벽을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이동 편의성 면에서는 안 미끄러지는 게 당연히 좋다. 하지만 그럼 결국 오픈월드 플레이에서의 재미는 야숨보다 덜할 수밖에 없다. 이동편의성만을 고려하면 스테미너는 왜 있고, 포켓몬처럼 B버튼 한 번 누르면 계속 대시할 수 있게 하지, 왜 굳이 그런 불편한 감각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했는가? 그야 그게 더 재밌으니까, 실제와 비슷한 감각을 제공해 플레이어에게 몰입감을 높인다던가, 제한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다른 다양한 플레이 방식을 유도한다던가, 그런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물론 초반 플레이에서의 콘텐츠 소비 속도를 줄이기 위한 것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그런 납득가능한 불편함이 플레이에서의 재미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원신은 내가 기대한 만큼 맵이 디테일하지 않았고, 오픈월드 플레이에서의 재미와 맵의 밀도는 야숨보다 현저히 부족했다. 여러모료 야숨을 카피했는데 정작 디테일은 없으니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들었다. 이외에도 사실... 할 말이 아주 많다. 짧게 얘기할 만한 것을 얘기해보자면, 게임의 첫 시작을 장식하는 오프닝씬에서의 동선 설계부터 그냥 야숨이 원신을 압도한다. 그냥 단순히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하고, 좁은 공간에서 나와 광활한 세계를 마주하는 첫 장면인데도 그런 식으로 차이가 날 수 있구나.. 라는 걸 원신이 알려줬다. 동굴이라는 좁은 통로에서 플레이어에게 기본적인 조작과 등반, 아이템 획득법, 스테미나 시스템, 시커스톤의 존재 등을 각인시키는 야숨. 그리고 뭔 넓은 공간을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플레이가 뚝 끊기면서 갑자기 컷신 재생되고 플레이어는 원래 이동하는 곳과 다른 곳에서 와~ 풍경 이쁘다~를 해야하는 원신. 그냥 젤다처럼 아예 오프닝 시점에 플레이어가 이동가능한 동선을 극도로 제한해두지 대체 왜 그런 오프닝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자잘한 플레이 동선부터 차이가 나는데, 오픈월드의 디테일에서는 얼마나 많은 차이가 나겠는가..........

왕눈의 경우에도 사실 마찬가지이다. 일단 하늘에서 지상으로 다이빙이 가능해진 시점부터 야숨에서 완벽하게 기능했던 레벨디자인이 약간 힘을 잃었다. 물론 난 모든 사당 다 깨고 200시간 넘게 아주재미있게 플레이하긴 했지만.. 하늘에서 다이빙해서 지상을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져 야숨에서 사용했던 삼각형의 법칙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비교적 퀘스트 지향적인 게임이 되어 걍 위치찍고 근처 하늘에서다이빙하기.. 로 맵을 이동하게 되었다. 맵은 넓어졌지만, 짧게 줄여서 말하자면 맵의 밀도는 낮아지고 노가다는 많아졌다. 코로그 친구찾기퀘나 간판세우기 퀘에는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똑같은 지형이 반복되는 지저, 쉬워진 사당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맵의 밀도야 아쉽다 쳐도, 쉬워진 사당 디자인은 그 쉬운 난이도가 게임 디자이너가 의도한 부분일 것이다. 나같이 '젤다너무좋아 퍼즐너무재미있어 이 퍼즐 푸는데 3시간걸려도 절대공략안보고열심히풀거야 젤다구작까지 열심히퍼먹을거야 젤다좋아엉엉' 하는 플레이어야 '야숨의 사당이 좋았지....' 하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퍼즐 너무 어렵다 사당 귀찮다..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퍼즐이 들어간 겜은 대부분 그런 고민을 겪는 것 같다. 방금도 갓오브워 퍼즐 검색하니까 연관검색어에 바로 갓오브워 퍼즐 극혐이 나오더라. 특히 닌텐도의 경우에는 플레이 대상을 하드게이머만이 아니라 폭넓게 타겟층을 잡을 테고, 대중성 등을 위해 그런 방향성이 어느정도 맞았다고도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크래프팅을 게임의 중점적인 요소로 둔 왕눈 특성상 그런 식으로 조나우기어를 사용해 쉽게 사당을 클리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왕눈 게임 자체의 방향성에도 어울렸던 것 같다. 야숨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제공하면 결국 '이거 할 바에 야숨하지 이거 왜함?'하는 야숨의 아류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쉽긴 하다..

구글에 '야숨 퍼즐' 검색했을 때 1페이지에 나오는 글들

하지만 결론적으로, 원신은 정말 잘 만든 오픈월드 게임이다. 탐험의 재미? 아 쫌 노가다고 맵이 성의없네..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반대로 글 처음에 소개한 다양한 플레이방식과 z축으로 확장된 맵은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내 생각엔 그 부분에선 원신의 대체재가 딱히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부분이 정말 재미있어서, 그게 야숨과는 차별화되는, 게임이 업데이트될 수록 더 발전하는 원신만의 장점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결국 명조와 같은 원신 라이크가 등장하고, dw의 공고에서 야숨 플레이 경험자가 아니라 왕눈과 원신 플레이 경험자를 찾는다는 점에서, 라이브서비스와 지속적인 게임의 확장 및 인게임 BM을 고려하는 오픈월드 ARPG게임에서는 원신이 가장 좋은 교보재라 본다. 원신에서 본 수많은 아름다운 맵과 지형들은 야숨에서 얻을 수 없었던 경험이다. 다만 그 오픈월드의 디테일, 맵의 밀도를 좀 더 올릴 수 있다면, 퀘스트지향적 플레이 좋지만 그래도 좀 더 자연스러운 동선을 고려한다면, 그러면 더 멋진 게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정도이다. 그리고 명조의 맵은 원신보다도 더 재미없는데, 전반적인 그래픽의 향상, 특히 매출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 모델링의 그래픽 향상, 그리고 전투에서의 화려함, 패링 등 전투적 재미 추가 등의 부분에서 원신과 차별화를 두는 게임인 것 같다. 이건 명조를 좀더 제대로 플레이해봐야 비교를 할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이렇게 아쉬운 부분의 소회를 남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래서 그 부분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그래서 어떤 식으로 맵의 밀도를 높여야 하는지? 그게 원신이라는 게임에서 유의미할지? 까지 고려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실 별로 유의미하진 않을 것 같다. 게임은 갓겜이 되겠지만 들어가는 시간 대비 벌어들이는 매출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ㅋㅋ.. 그래도 결국 야숨이 정말 멋진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명조 이전에 원신이, 원신 이전에 야숨이, 왕눈 이전에 야숨이 있었는데, 야숨은 야숨이다. 그 이전에도 유비식 오픈월드, 스카이림, 위쳐3, 이런 건 많았지만, 그런 게임들을 이제와서야 플레이해보며 더욱 느끼는 건 야숨은 정말 이전의 오픈월드 게임과는 아예 다른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이다. 야숨이 게임 체인저가 아니라면 대체 어떤 게임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지? 야숨은 정말 정말 정말이지 멋진 게임이다. 다른 멋진 게임들을 플레이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다 그거다.

야숨은 정말 멋진 게임이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