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리니지라이크의 끝? 엔씨 vs. 카겜, '아키에이지 워' 소송의 목적은

이상(異常)한 게임나라의 이상(理想)을 향해

게임이상(理想)을 통해 게임업계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해 보겠습니다.

최근 국내 게임업계에서 역대급 표절 시비가 벌어졌습니다.

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 엑스엘게임즈를 상대로 '아키에이지 워'가 자사 '리니지2M'을 표절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죠.

이전에도 웹젠 'R2M'이 '리니지M'을 표절했다고 소송한 바 있기에 엔씨 입장에서는 자사가 '리니지라이크'의 원조임을 두 번째로 주장한 셈입니다.

창작의 영역에 속한 게임업계에서 '표절'을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엔씨소프트는 왜 표절시비를 가리고자 했을까요?

가장 완벽한 게임 '리니지라이크'

벤치마킹과 표절 그 사이 줄타기

모바일 3D MMORPG의 표준을 세운 '리니지2M'

이번 이슈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니지라이크'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업계에서는 어떤 특정 게임의 흥행 이후 해당 게임의 기획의도나 재미 요소 등을 계승한 게임을 '-라이크(Like)'라 부르고 있죠. 다시말해 '리니지라이크'는 '리니지같은 게임'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과거 '리니지M'을 통해 탑뷰 시점의 모바일 MMORPG의 기준을 정립한 바 있습니다. 이후 '리니지2M'을 통해서는 3D 모바일 MMORPG의 새로운 표준을 세웠죠.

엔씨소프트가 선보인 '리니지' IP 기반 모바일 게임들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적절하게 경쟁 동기를 느끼고, 과금 욕구를 자극하게끔 설계되어 있습니다. 좋게 표현하자면 '돈 버는 방법'을 아는 셈이죠.

이에 많은 게임사들이 너도나도 이 '리니지' 벤치마킹에 나서며 '리니지라이크'라는 표현이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최근 출시된 여러 모바일 MMORPG는 제목을 떼 놓고 보면 무슨 게임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리니지라이크'는 업계 표준인 동시에 안일한 게임 개발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해도 너무했던 '복붙'

업계 관계자들 "올게 왔다"

(왼쪽) 리니지2M / (오른쪽) 아키에이지 워 (출처 : 디지털데일리 https://n.news.koreamobilegame.com/mnews/article/138/0002145944?sid=105)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벤치마킹을 위시한 '복사 붙여넣기'가 이어지던 중, 엔씨소프트가 '아키에이지 워'를 상대로 표절 소송을 제기한 것이죠.

게이머들은 물론이고 전문 미디어 및 인플루언서 등 업계 관계자들은 "올게 왔다"는 반응입니다. '아키에이지 워' 출시 초반 가장 많이 나왔던 이야기가 "이건 그냥 리니지2M이다"였을 정도였죠.

단순히 게임이 비슷해보이거나, 구조가 비슷하다 말하기엔 두 게임은 정말 판에 박은 듯이 똑같았습니다. 모 인플루언서가 방송에서 '리니지2M'의 캐릭터 세팅, 공략법을 그대로 '아키에이지 워'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거든요.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였던 만큼 엔씨소프트 측 역시 미디어 등을 대상으로 '아키에이지 워'와 '리니지2M'의 클래스, 무기 시스템, 게임 내 편의시스템 및 UI나 스킬, 아이템 이름과 각종 옵션 간의 유사성을 콕콕 집어 안내했습니다.

여기에 카카오게임즈 및 엑스엘게임즈 측은 "어떤 게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기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으로 맞대응에 나선 상황이죠.

게임업계와 함께한 '표절시비'의 역사

인정받기 쉽지 않은 게임의 '표절'

국산 게임 '애니팡2'도 킹사의 '캔디크러시사가'와 표절 시비가 붙었던 바 있습니다

게임과 '표절시비'는 그 역사를 함께합니다.

게임의 기본 규칙, 그리고 플레이어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대동소이합니다. 기본적인 게임성 자체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역으로 추적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죠.

특히 하나의 게임이 유행하면 해당 게임을 참고, 혹은 모방하면서 게임업계는 점차 발전해왔습니다. '퀘이크'가 있었기에 지금의 '오버워치'나 '발로란트'가 있었고, '도타'가 있기에 '리그 오브 레전드'도 탄생했죠.

단순히 장르가 같고, 비주얼이 비슷하거나 규칙이 같다고 해서 전부 표절이라고 인정한다면 업계에는 일대 혼란이 찾아올 것입니다. 특히 사람의 창의력의 산물인 게임이기에 "어쩌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반론을 깨기 어렵죠.

시장에 널린 3매치 퍼즐(같은 블록 3개를 매치하면 점수를 획득하는 게임)이 서로 표절 관계라는 심증은 있지만 표절로 인정받은 사례가 없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편, 이번 '아키에이지 워'와 '리니지2M'의 표절 소송을 넥슨과 아이언메이스의 '다크 앤 다커' 소송과도 연결짓는 분들도 종종 보이나, 설계도를 훔쳐 게임을 만든 '다크 앤 다커' 사례와 이번 표절 소송은 결이 조금 다르겠습니다.

서비스 중단보다는 권리 찾기? 엔씨의 속내는

앞서 엔씨소프트가 웹젠을 상대로 제기했던 'R2M'의 표절 시비조차 아직 제대로 된 진행 상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씨가 두 번째로 '원조'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더 이상 지켜보기에는 어렵다는 판단이 있겠죠.

먼저 시장 관점에서는 '리니지라이크'가 나와도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게임의 구조 자체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충분히 분석이 가능하기에, 많은 게임사들이 앞다투어 '리니지라이크' 게임을 출시했죠.

엔씨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자꾸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리니지M'과 '리니지2M' 등은 대형 모바일 MMORPG 출시 시기에 맞춰 대형 업데이트로 유저 방어에 나서지만 게이머들도 '기왕이면 새거'를 선호하기에 이탈을 막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파이를 나눠먹을 경쟁자는 자꾸만 늘어나는데 파이가 작아지고 있는 점도 엔씨의 입장에서는 경고 신호입니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 매출 규모가 축소세를 보이는데, 특히 RPG에서 유저 및 매출 감소세가 뚜렷하죠.

'리니지라이크'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오딘'이 엔씨 입장에서는 참으로 뼈아픈 패배일 것입니다. 수 많은 리니지라이크 게임이 그간 매출 TOP3까지는 넘실댔어도 1위를 장기간 탈환한 것은 '오딘'이 유일했죠.

또한 업계 관점에서는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 시리즈 개발에 참여한 인력이 외부로 나가 '리니지라이크' 게임 개발을 주도하는 상황도 썩 달갑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 출신 인력들이 주도해 '리니지라이크'를 개발 중인 사례들이 많거든요.

엔씨소프트가 게임 UI 디자인에 대한 저작권 수십 개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14일 특허청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지난 2021년부터 '게임 화면용 화상'과 '화상디자인이 표시된 디스플레이 패널' 등 수십 개의 게임 UI 디자인에 대한 저작권 출원 및 등록을 완료했다.엔씨소프트가 확보한 디자인 저작권은 캐릭터 정보창, 아이템 정보창, 뽑기 시스템 정보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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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가 본 소송을 통해 얻어내려는 것도 '아키에이지 워'의 서비스 종료가 아닌 저작권이라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함으로 풀이됩니다.

언론 기사 등에 따르면, 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 및 엑스엘게임즈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저작권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게임을 표절한 나쁜 게임의 서비스를 중단해주세요"보다는 "우리의 저작권을 인정해주세요"에 가까운 셈이죠. 관련 UI 등에 대한 디자인 저작권을 다수 확보한 엔씨소프트의 행보도 이런 추측에 힘을 더해줍니다.

다만 이 같은 결정을 마냥 '대기업의 온정'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게임업계에서 '표절'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표절' 자체를 인정받는 데에만 한세월이 걸리는데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경우에는 이어지는 저작권 보호 등도 그 명분이 흐려질 수 있거든요.

대신 외부 부정 동향을 촉발시켜 경쟁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어느정도 타격은 입힐 수 있겠습니다. 시장 흐름이 빠른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출시 후 한달여간이 매출이 집중되는 시기인데, 이때 표절 소송을 통해 '아키에이지 워'의 항해를 조금이나마 저지하겠다는 복잡한 수싸움이 포함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은 지켜보자" 역대급 표절 시비의 행방은

적어도 리니지라이크의 종말은 아닐 것

역대급 표절 시비 소식에 업계도 우선은 사태를 지켜보자는 분위기입니다. 리니지라이크를 개발 중인 회사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표절 소송의 향방에 따라 게임의 방향성을 대폭 전환해야할 수도 있겠죠.

현재 분위기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가 될 가능성도 높겠습니다. '아키에이지 워'는 양대 마켓 매출 순위 5위권 내에 안착하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카카오게임즈의 내부 기대치가 어느정도였는지는 모르나, 이정도면 소송의 영향이 크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표절 소송을 통해 '리니지라이크'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일종의 '정의구현'을 바라는 게이머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리니지라이크'는 업계인들도 입을 모아 말할 정도로 "가장 완벽한 BM"이기에 당장의 이슈가 리니지라이크의 종말로 이어지기는 어렵겠죠.

결국 모든 것은 시장이 말해줄 것 같습니다. 표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리니지라이크는 잘 나가는 게임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이번 논란을 지켜본 게임사들이 이후 어떤 전략으로 리니지라이크를 대할 것인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