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3)손오공은 보리조사의 묘리를 깨닫고 원신에 이르다-1-
손오공은 보리조사의 묘리를 깨닫고 원신에 이르다-1-
이름을 받은 손오공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조사는 제자들에게 오공을 중문 밖으로 데리고 가서, 청소 등의 일을 시키면서 예의범절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오공이 이곳에서 생활한 지도 6~7년이 지난 어느 날. 보리조사는 제자들을 불러 모아 대 법회를 베풀었지요.
하늘에서 내리는 듯 꽃보라가 푸슬푸슬
땅 밑에서 치솟는 듯 금빛 연꽃 우줄우줄.
신기하다 삼승묘법 듣는 귀에 놀랍고
기묘하다 불법대전 보는 눈에 시원한데
총채자루 흔들흔들 주옥 빛발 눈부시고
울림소리 쩌렁쩌렁 구천에 천둥치네.
설법 참선 간곡함이 마디마디 진담이요
삼심동체 가르침이 구절구절 현묘하네.
사형들 틈에서 한 마디 말이라도 놓칠세라 귀를 곤두세우고 있던 오공은 갑자기 귀뿌리를 매만지고 볼을 싹싹 긁더니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어요.
보리조사: “오공아! 어째서 법문은 안 듣고 미치광이처럼 춤을 추는 거냐?”
손오공: “저는 사부님 설법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말씀이 너무도 신묘하여 저도 모르게 이렇게 춤을 추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보리조사: “네가 내 말을 새겨들었다면 어디 한 가지 물어보자 네가 여기에 온 지가 몇 해나 되었느냐?”
손오공: “저는 워낙 어리석은 놈이어서 세월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궁이에 불이 없을 때면 뒷산에 올라 땔나무를 해 왔는데, 온 산 가득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려 거기서 복숭아를 실컷 따 먹은 기억이 일곱 번 있습니다.”
보리조사: “그 산은 난도산이다. 네가 복숭아를 일곱번 따먹었다면 일곱 해가 지났겠구나. 그런데 넌 무슨 도를 배우고 싶은 거냐?”
손오공: “저는 도를 닦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다 배우고 싶습니다.”
보리조사: “도에는 3백 60개의 방문이 있다. 그 방문마다 모두 진수가 있지. 내 너에게 술문(術門)의 도를 가르쳐 주고 싶은데 어떠냐?”
손오공: “술문의 도란 어떤 것인가요?”
보리조사: “신선을 청해 부란 점을 치거나 시초로 엽시 점을 쳐서 길한 일은 취하고 흉한 일은 피할 수 있는 법이지.”
손오공: “그렇게 되면 장생불로할 수 있나요.”
보리조사: “그건 안 된다.”
손오공: “그럼 전 안 배우겠습니다.”
보리조사 : “허면 유문(流門)의 도는 어떻겠느냐?”
손오공: “유문은 어떤 이치가 있나요?”
보리조사: “유문은 유가, 석가, 도가, 음양가, 묵가, 의가가 되는 길로서 경을 읽고 염불을 외워 진인이나 성인을 만날 수 있는 법이지.”
손오공: “그렇게 하면 장생불로 할 수 있나요?”
보리조사: “안 되지 그것은 바람벽 속에 기둥을 세우는 것과 같은 거니까.”
손오공; “역시 영원히 갈 수는 없다는 이야기네요. 전 그것도 싫습니다.”
보리조사: “그럼 정문(靜門)의 도는 어떻겠느냐?”
손오공: “정문엔 어떤 정과가 있습니까?”
보리조사: “곡기를 끊고 고요하게 참선하고, 말을 삼가며 재를 올리는 도이다. 누워서 수행하는 수공(睡功)과 서서하는 입공(立功), 입정(入定), 좌관(坐觀)같은 것들이니 입정이라 함은 정신을 한군데 집중하고 신. 구. 의(身口意)의 세 가지를 단념하는 것이요, 좌관이란 자기 몸을 좁은 방에 가두고 외부와의 관계를 오래도록 끊는 것이다.”
손오공: “그렇게 하면 장생불로 할 수 있나요?”
보리조사: “그 또한 채 굽지 않은 기왓장 같다고나 할까?”
손오공: “전 정문도 안 배우겠습니다.”
보리조사: “그럼 동문(動門)을 배우 거라.”
손오공 : “동문은 어떤 겁니까?”
보리조사: “‘정문’과는 정반대로 음을 모아 양을 보충하고 활과 소뇌를 다루고 배꼽을 문질러 기를 키우고 처방에 따라 여자의 생리혈을 넣거나 남자의 오줌을 달여 약을 만들고, 사람의 젖을 먹는 등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지.”
손오공: “그럼 장생불로할 수 있나요?”
보리조사: “그것으로 장생불로하려는 건 마치 물속에서 달을 건지려는 것과 같지.”
손오공: “그것도 싫습니다. ‘동문’도 안 배울래요.”
오공의 이런 투정에 보리조사는 발끈 화를 내며 죽비를 집어 들고 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보리조사: “이 원숭이녀석! 이래도 싫다. 저래도 싫다 허니 뭘 배우겠다는 게냐?”
조사는 오공에게 다가가 죽비로 오공의 머리를 세 번 치고는 제자들을 버려둔 채 뒷짐을 지고 안으로 들어가 중문을 꽝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제자1: “이런 막돼먹은 원숭이자식, 무례하기 짝이 없어. 사부님께서 도법을 전해주신다는 데, 지 분수도 모르고 왜 말대꾸만 하는 거야. 이제 사부님의 비위를 건드려났으니 언제 다시 법문을 듣게 될지 모른단 말이야.”
제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오공을 윽박지르며 화를 냈어요. 그러나 오공은 노여움도 타지 않고 구박을 순순히 받으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요. 사실은 조사가 오공의 머리를 세 번 때린 것은, 삼경인 밤 열두 시를 가리킨 것이고 뒷짐을 지고 중문으로 들어가 버린 것은, 뒷문으로 들어오면 비결을 가르쳐 준다는 뜻이었지요. 오공은 조사가 보낸 암시를 재빨리 알아차렸던 거예요. 그날 저녁 사형들과 잠자리에 든 오공은 눈을 감고 잠든 척하고는 숨소리를 헤아리며 시간을 재었지요. 대략 삼경이 되었을 때, 오공은 가만가만 일어나 옷을 주워 입고는 남모르게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달빛은 밝고 이슬은 찬데,
맑게 개 인 밤하늘 티끌 한 점 없네.
새들도 깊이 잠든 수렴 속,
개똥벌레 밤을 새워 깜박이고
기러기 떼 줄지어 밤길 다그친다.
때는 바로 삼경 득도한 진인을 뵐 때라네.
오공이 낯익은 길을 따라 뒷문 어귀에 다다르니 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살며시 문틈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간 오공은 새우잠을 자고 있는 조사의 침상 곁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히 조사가 일어나기를 기다렸어요. 얼마 안 있어 조사는 깨어나 두 다리를 쭉 폈습니다.
보리조사: “어렵고도 어렵도다! 어려워!
도가 가장 현묘한 것이거늘,
금단을 등한시 하지 말라.
묘결을 전할 사람 만나지 못하면,
나 홀로 빈 소리에 침만 마를 뿐이네.“
손오공: ‘사부님! 저는 아까부터 여기 꿇어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보리조사: “네 이 원숭이놈! 이 야밤에 네 방에서 자지 않고 여긴 뭣 하러 온 거냐?”
손오공 : “사부님! 어제 여러 제자 앞에서 저더러 3경에 뒷문으로 도를 배우러 오라고 암시하셨잖아요. 그래서 전 무람없이 이렇게 찾아왔어요.”
보리조사: “이놈이 과연 천지가 생성한 놈인지라 당장에 내 수수께끼를 풀었구나.”
손오공 : “사부님! 지금 여기는 저 혼자입니다. 부디 자비심을 베푸시어 제게 장생불로 법을 가르쳐 주세요. 그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보리조사 : “네게 그런 인연이 있다니 나도 기쁘구나. 네가 나의 수수께끼를 풀었으니 내 너에게 불로장생의 묘도를 상세히 가르쳐 주마. 이리 가까이 와서 잘 듣거라.”
조사는 오공에게 한 수의 시를 읊어 주었습니다.
불법에 두루 통달함이 참된 비결이니
장생불로 다른 방도 찾을 것 없으리.
모든 것 다름 아닌 정 과 기에 달렸으니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누설치 말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누설치 않을 때
너의 도술 길이 번창하리라.
구결을 기억하면 이로운 점 많으리니
나쁜 욕심 제거되고 마음도 해맑아지리.
네 마음 해맑아져 밝게 빛날 그날엔
선경에 올라 밝은 달을 보게 되리니
달은 옥토끼 감추고 해는 까마귀 감추었으니
절로 거북이와 뱀이 얽히게 되리라.
서로 얽혀 있으면 성명이 강해지니
불속에 달궈진 금련처럼 되리라.
오행이 한데 모여 거꾸로 쓰여 지고
공이 완성되면 부처도 신선도 될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