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여신: 니케] 니케가 된 슈엔
“지금 뭐라고 했어?”
이 고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미실리스의 CEO 슈엔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눈앞에 있는 여자를 향해 물었다.
“못 알아들으신 것 같으니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방주의 모든 시스템을 관리한 인공지능, 에닉은 슈엔에게 내려진 형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먹을 수 있게 또박또박 말했다.
“미실리스트 인더스트리의 CEO 슈엔을 니케로 만든다.”
“….”
“단, 그 두뇌는 방주에게 큰 도움이 되므로 기억 소거는 행하지 않는다.”
“….”
“단, 불손한 행동과 생각은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므로 NIMPH를 통해 교정한다.”
“….”
“니케가 된 슈엔은 미실리스트 인더스트리의 CEO 직위를 박탈.”
“….”
“특수별동대 카운터스의 휘하에 들어간다.”
“….”
“이상이 미실리스트 인더스트리의 CEO 슈엔에게 내려진 처벌입니다.”
슈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이 세상의 종말을 목격한 사람처럼 절망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몸은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직 부상이 낫지 않았기에 두통이 오지만, 슈엔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누린 모든 걸 박탈당하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노예로 전락하라는 형벌이 떨어졌는데 어찌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벌이 내려져봤자 겨우 벌금형에 불과할 거라고 여긴 슈엔으로서는 최악인 결말이었다.
“우, 웃기지 마.”
간신히 슈엔은 입을 열었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고!”
에닉의 판결을 슈엔은 정면으로 부정했다.
“내가 니케로 개조? 웃기지 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데!”
그렇다, 이번 방주 테러는 자신의 탓이 아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폭주한 고철들이 저지른 짓이다.
그리고 메티스 스쿼드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저지른 짓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영웅이 있다면 방주에게도 가장 좋은 이야기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게 왜 잘못되었다고 하는 건가? 왜 이게 죄다 된다고 하는가 말인가?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이 왜 사형을 당해야만 한단 말인가!
누가 뒤에서 조종한 거 아닌가?
“머스탱이냐?”
슈엔은 물었다.
“그 망할 변태 새끼가 작당한 거냐? 아니면 잉그리드? 그것도 아니면….”
“착각하지 마십시오.”
반발하는 슈엔에게 에닉은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내린 판결입니다. 사적인 이유로 내려진 보복이 아닙니다. 이번 테러 사건에 연루된 모두에게 합당한 벌이 내려질 예정입니다. 당신은 첫 번째 타자가 된 것에 불과합니다.”
“이, 이, 이 망할 고철이….”
“이제 곧 당신을 회수할 부대가 올 겁니다. 그러니 얌전히….”
에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슈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웃기지 마, 내가 니케가 될 것 같아?’
니케가 된다.
인간으로서 누린 모든 권리가 박탈당한다.
명령에 복종하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전장에 나가게 된다.
평생 고철 취급을 당하며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된다.
그런 걸 어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이대로 당할 순 없다. 어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농성이라도 벌어야 한다.
회사에 소속된 니케들을 전부 소집해서 어떻게든….
“멈추십시오.”
이때, 슈엔을 가로막는 존재들이 있었다.
“명령에 따라 당신을 회수하러 왔습니다. 얌전히 이쪽 지시에 따르십시오.”
그녀의 앞을 양산형 니케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니케로 개조당한다는 형벌을 받은 인간들을 회수하기 위해 창설된 부대였다.
이 부대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었다.
“야, 비켜.”
슈엔은 그들에게 명령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막는 거야? 나는 미실리스트 CEO….”
“죄수 번호 XXXXX, 이름 슈엔.”
니케들의 대장이 슈엔에게 권고했다.
“선고가 내려짐에 따라 당신을 데려가겠습니다.”
“으….”
“허튼수작은 하지 마시길. 당신은 이제 CEO가 아닙니다. 한낱 범죄자에 불과하지.”
이들은 에닉이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부대다. 고로, 범죄자인 슈엔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윽, 이거 놔!”
결국, 도주에 실패한 슈엔은 두 명의 니케에게 양팔이 잡히고 말았다. 이 결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슈엔은 몸부림을 쳤으나,
“이거 놓으란 말…윽?”
그대로 축 늘어졌다. 반항하는 슈엔에게 니케 한 명이 전기 충격기를 가했기 때문이었다. 죄인이 얌전해지자 니케들은 슈엔을 니케 생산 시설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슈엔이란 인간은 죽게 될 거다.
그리고, 슈엔이란 이름의 새로운 인형이 탄생하게 될 거다.
그토록 고철이라고 얕잡아 보던 존재로 말이다.
“아, 안 돼. 나는…싫어. 니케 따위 되고 싶지 않아아….”
당연히도 슈엔의 절규를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그로부터 일주일 뒤.
니케 생산 시설.
이곳에는 수많은 유리통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유리통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여성이 갇혀 있었다.
이들은 니케다.
인류의 적인 랩쳐로 인해 지하로 쫓겨난 인류를 다시 지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싸우는 여신들.
그 여신들이 지금 산소마스크에 의지한 채 통 속에 잠들어 있었다.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로 물거품이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여신들 머리에는 수많은 케이블이 꽂혀 있었다.
이 케이블을 통해 나노 머신 ‘NIMPH’가 주입되고 있었다.
아무리 완벽을 자랑하는 여신이 육신이라도 그걸 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리고 의무를 저버리고 인류와 적대 행위를 하는 여신들도 존재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노 머신이 주입된다. 주입된 나노 머신은 뇌가 육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도록 조치를 한다. 절대로 인류에게 적대하지 못하도록 자물쇠를 걸 것이며, 인격에 문제가 있는 자들은 가공될 것이다.
통 속에 갇혀 있는 니케, 슈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
어째서 나는 이곳에 있는 걸까?
의식이 조금 깨어있는 슈엔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싫어, 싫어, 싫어, 니케가 되기 싫어어어!
자신은 에닉에게 선고를 받았다.
방주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 죄목으로 니케가 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로 인해 자신은 니케로 개조하는 시설로 끌려왔다.
니케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람의 뇌. 여자의 뇌다.
그 뇌를 얻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죽이고, 머리의 뚜껑을 따고, 뇌를 꺼낸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죽은 여자인 경우는 비교적 쉽게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산 사람인 경우는 안락사를 할 수밖에 없다.
슈엔 역시 안락사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기 싫다고 울부짖었으나, 수술대에 강제로 눕혀지고, 사지가 속박된 상태에선 그녀가 도망칠 수단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야, 내 말 좀 들어봐. 제발! 여기서 풀어주면 내가 다 줄게. 돈이든, 집이든 다 줄 테니까 제발!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이 가진 부를 가지고 흥정을 시도하던 슈엔이었으나,
-윽?
애초에 협상이 될 리가 없었다.
개조를 집도하는 자는 인간이 아닌 기계였으니까.
천장에 달린 수많은 기계 팔이 집도의였다.
기계 팔 하나하나에 달린, 오직 뇌를 수거하기 위한 도구가 달린 기계 팔에 호소해봤자 상황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 기계 팔 중 하나가, 사람을 안락사시키는 데 사용하는 독이 든 주사기가 달린 기계 팔이 밑으로 내려왔다. 슈엔의 목덜미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었다. 순식간에 경동맥을 통해 독이 주입되었고,
-아아, 아, 안 돼, 안 돼, 싫어. 죽기 싫어….
효과는 바로 일어났다.
발버둥을 치던 슈엔은 점점 얌전해졌고, 심장 박동 수는 약해졌으며, 두 눈에 생기가 사라져갔다.
-어째서, 내가, 왜 내가 이런 걸, 왜, 왜….
어째서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 걸까?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런 걸 당해야만 하는 걸까?
자신이 한 일이라곤 오직 메티스 스쿼드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은 것뿐인데, 그들을 내세워 회사의 명성을 높이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지?
이에 대한 답을 슈엔은 바로 내릴 수 있었다.
‘내가 방주를 위기로 몰아넣었으니까.’
방주는 인류의 최후의 거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낙원이다.
그 낙원을 자신이 부술 뻔했다.
메티스 스쿼드를 영웅으로 만든다는 이유로 인류의 적인 랩쳐를 방주로 불러드렸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 휘하의 니케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탓에 방주로 랩쳐가 침입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전부 자신의 탓이다. CEO였던 자신의 탓이다. 자신이 제대로 행동하지 못했기에 생긴 참사다.
그런 일을 저질렀기에 니케가 된다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독이 주입되어 안락사를 당하는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머리가 갈라지고, 뇌를 적출당하는 결말을 맞이했다.
머리를 잃은 시신은 소각되고, 남은 뇌는 니케의 몸에 이식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잘못을 저질렀으니 당연히 이에 대한 응보를 받는 게 정상 아니겠는가?
고로, 자신이 니케가 되는 것은 결코 부당한 일이 아니다.
대역죄인이 자신에게 그나마 내려진 자비다.
‘나는 속죄해야만 해.’
방주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마주 보며 싸워야 한다.
그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식으로 슈엔의 머리는 가공되었다. 뇌 속에 주입된 나노 머신이 슈엔의 더러운 성깔을 지우고, 속죄를 위해 발버둥 치는 죄인의 성격으로 바꿔갔다. 기억은 소거되지 않았으니 평생 자신의 죄에 괴로워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설령 조작된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제조 완료.]
이때, 슈엔이 갇힌 유리통에서 안내 음성이 나왔다. 나옴과 동시에 통에서 액체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바닥에 있는 배수관을 통해 액체는 전부 빠져나왔다. 그다음에 천장에서 따뜻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물에 흠뻑 젖은 슈엔의 몸은 말끔하게 말려졌다.
이어서 머리에 꽂힌 케이블들이 떨어져 나갔고, 마지막으로 입에 달린 산소마스크도 떨어져 나갔다.
그 직후, 유리통이 개방되었다.
“….”
유리통은 좌우로 열리듯이 개방되었다. 개방된 쪽으로 슈엔은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개체 명: 슈엔]
밖으로 나온 슈엔을 향해 다리에 바퀴가 달린 소형 로봇이 다가왔다. 로봇은 양팔로 쟁반을 들고 있었다, 쟁반 위에는 슈엔이 입어야 할 전투복이 있었다.
[지급된 전투복을 입으십시오.]
얄궂게도 CEO 시절 입었던 복장과 똑같았다. 예전이었으면 진짜 악질이라고 욕했을 슈엔이었으나,
“알았어.”
지금 그녀는 아니었다.
죄인인 자신이 그런 걸 따질 수 없으니까.
슈엔은 묵묵히 옷을 갈아입었다.
다 갈아입은 다음에 슈엔은 로봇의 안내에 따라 니케들이 훈련하는 기관으로 가게 되었다.
슈엔이 나타나자 니케들은 크게 경악했다.
그 악명 높은 CEO가 니케가 되어 나타날 줄이야.
에닉에게 천벌을 받았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사실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슈엔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속죄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훈련을 이수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슈엔은 오직 그것만을 위해 총을 들었다.
이런 슈엔의 변한 모습에 지상에서 맹활약을 펼치던 지휘관도, 그 지휘관 휘하의 카운터스 니케들도 경악했으나,
이는 나중에 벌어질 일이다.
PS: 이번에 나온 챕터 24 내용을 보고 바로 작성함. 본래는 야설로 쓸 생각이었는데, 쓰다보니 외설스러운 내용은 넣지 않았음. 억지로 넣을까 고민했으나,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대로 수정해서 올림.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서이웃으로 돌릴 생각이다.
그나저나, 슈엔이 니케가 되다니. 대가를 치를 거란 예상은 했지만, 설마 니케가 되는 벌을 받게 될 줄이야. 니케가 되기 싫다고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