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봤다] 'K-MMORPG'의 현주소 '오딘: 발할라 라이징'

[해봤다] 'K-MMORPG'의 현주소 '오딘: 발할라 라이징'

사진=카카오게임즈 제공

늦은 새벽, 리뷰를 써야 하는데 게임을 멈추기가 어렵다. 결국 '절전 모드'로 돌려 놓고 간신히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눈은 모니터를 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미드가르드 평원을 달린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았다

지난달 29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 발할라 라이징'(이하 오딘)은 기대만큼 잘 만든 게임이다. 출시 전부터 화제가 됐던 그래픽은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고, 북유럽 신화를 배경으로 한 세계관도 충분히 개성 넘쳤다. 이제 고작 레벨 27을 지나고 있긴 하지만, 오랜만에 '찍먹'이 아니라 진지하게 빠져들고 있다.

/사진=오딘 게임 캡쳐

연신 스크린샷을 찍게 만드는 배경 그래픽과 그로테스크한 몬스터 디자인, 그동안 흔히 보던 중세 판타지와는 차별화 된 다채로운 캐릭터들은 신선함과 더불어 높은 시각적 만족감을 선사한다. 말을 타고 풀이 흔들리는 들판을 달리며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노라면, 마음까지 탁 트이는 기분이다.

그간 많은 모바일 게임들이 뛰어난 그래픽을 어필했지만, 실제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 탓에 크게 공감 가는 게임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딘은 뛰어난 광원 효과와 섬세한 모델링, 현실적인 모션이 어우러져 '보는 맛' 하나는 확실히 뛰어나다. 개인적으로 게임에서 타격감을 중요시 하는 데, '19금' 게임답게 피 튀기는 고어한 연출과 시원시원하게 터지는 이펙트가 맘에 들었다.

/사진=오딘 게임 캡쳐

오딘은 게임 업계 내에서도 '사기'란 말이 나올 정도로 잘 만든 게임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14년 '블레이드'를 통해 스타 개발자로 발돋움한 김재영 라이온하트 스튜디오 대표가 개발을 맡고 '삼국블레이드'의 이한순 PD, '마비노기 영웅전'의 김범 AD 등이 참여해 이미 '소문난 잔치'였는데, 실제 먹을 것도 많았다는 평이다.

북유럽 리니지? NO! 가장 진화한 K-MMORPG

다만 오딘의 스토리 연출이나 퀘스트 진행 방식, 성장 요소, 자동 전투 등은 그동안 많이 봤던 한국형 모바일 MMORPG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 게임과 '겉'은 다른데 '속'은 같다는 게 일부 이용자들이 오딘에 대해 아쉬워하는 지점이다. 일각에선 오딘을 '귀여운 리니지'(트랙스터M), '지브리니지'(제 2의 나라)에 이은 '북유럽 리니지'라고 부르며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사진=오딘 게임 캡쳐

냉정하게 말해 오딘이 일명 '리니지류' 게임인 건 사실이다. 허나 리니지와 비슷하단 이유 하나로 이 게임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플랫포머 게임을 얘기할 때 항상 '슈퍼마리오'로 시작하듯, 본격적인 시작이 이제 5년 남짓 된 한국형 모바일 MMORPG(이하 K-MMORPG) 작품에서 리니지의 존재감을 완전히 지우는 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K-MMORPG가 이미 어느 정도 고정된 틀과 팬층을 갖고 있다고 봤을 때, 이후 신작들의 목표는 '얼마나 진화 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그런 관점에서 오딘 자체는 현 시점에 가장 순수하게 진화한 K-MMORPG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딘은 그간 출시된 K-MMORPG 작품들의 '정수'를 결합했다. '리니지2M'의 방대한 심리스 오픈월드, 'V4'의 경쾌한 타격감과 역동적인 전투, '검은사막'의 개성있는 분위기와 고품질 그래픽 등 각 게임들의 장점들을 모아 오딘 만의 독특한 색채로 풀어냈다. 각 요소를 떼어 놓고 보면 어디서 본 듯 한 느낌도 들지만, 이를 오딘이란 총체로 바라봤을 땐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냈다고 평할 수 있다.

/사진=오딘 게임 캡쳐

실제 이 게임이 출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모태라 할 수 있는 '리니지M' 시리즈를 제치고 양대 마켓 1위 자리를 차지한 것도 이런 진화를 이용자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리니지류의 강점이자 약점은 수익성은 높지만 그만큼 이용자들의 거부감도 큰 '매운' 과금 체계인데, 오딘 역시 기본적인 틀은 리니지를 따랐지만 납득할만한 '순한맛'으로 적절히 풀어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다

오딘은 국내 게임업계에서 어느정도 수익성이 검증된 K-MMORPG 모델에 '익숙한 듯 참신한' 게임성을 더해 승부를 건 게임이다. MMORPG에 지나치게 편중된 국내 게임업계 전반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투영하지만 않는다면, 오딘 자체로는 완성도 높은 K-MMORPG로서 1위 자리에 오를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

물론 게임 자체로 단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직 사소한 버그들이 눈에 띄고, 최적화도 더 손을 봐야 할 것 같다. 나름 최고 사양이라 생각한 '아이폰12 프로 맥스'에서도 그래픽 옵션을 조금만 올리면 금방 뜨거워지며 버벅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회피 동작이 없어 보스전에서 수동 조작이 크게 의미가 없다거나, '장판' 공격의 판정이 애매하다는 것도 다른 이용자들의 불만에 공감가는 부분이다. 모바일 MMORPG가 스마트폰이란 폼팩터의 한계상 조작성을 강조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소소한 조작의 즐거움은 게임의 본질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메인 진행이 다소 단조로운 점도 앞으로 보강할 과제다. 다행히 현재 마련된 협업 콘텐츠인 파티 던전과 대규모 PvP 콘텐츠인 '발할라 대전'은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국내 이용자들의 콘텐츠 소진 속도가 남다른 만큼, 빠른 업데이트가 향후 인기 유지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자! 오딘의 세계로

/사진=오딘 게임 캡쳐

새벽 4시, 밤까지 길게 늘어 섰던 대기열도 사라진 시간에 마감을 미뤄 놓고 또 다시 스나이퍼가 활시위를 당긴다. 이 기사가 출고될 때 쯤이면 레벨 앞자리 정도는 바뀌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필자와 같이 그동안 리니지의 문턱이 다소 부담스러웠던 이용자라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오딘의 문을 두드려 봄은 어떨까.

남도영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