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새로운 시대의 문에 대한 고찰-아그네스 타키온을 중심으로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새로운 시대의 문에 대한 고찰-아그네스 타키온을 중심으로
극장판을 위주로 이야기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상 용두사미에 극장판은 미끼고 타키온 이야기만 잔뜩 한 것 같네요..그래도 포스팅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극장판이 개봉하고도 2개월은 족히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을 정리하고 포스팅을 쓴다. 사실은 미루고 미루고 미룬 거지만 누구도 알 필요는 없는 사실이다....
극장판 스포일러와 멘하탄 카페 육성 스토리 스포일러와 타키온에 대한 개인적인 사족으로 꽉!꽉 찬 글이니까 분명히 알아두고 읽어주었으면 한다. 재밌게 봐주세요!
:프리즘, 그리고 꿈
포스터
요주의 키워드는 '프리즘'이다.
프리즘, 빛을 굴절시키는 광학 도구. 포스터의 정중앙에까지 당당하게 등장한 정글 포켓의 프리즘 목걸이는 영화에서 '프리즘'이 꽤 상징적인 역할로 작동할 것을 암시한다.
프리즘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굳건한 주축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프리즘은 끊임없이 등장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보는 이들을 이야기에 몰입시킨다. 그리고 깨닫게 만든다. 프리즘이란 즉 '우마무스메의 꿈' 그 자체를 나타내는 요소라는 것을.
후지 키세키의 달리기를 보고 꿈을 움켜쥐는 정글 포켓, 최강이 될 수 없다는 절망감과 함께 흠집 나는 정글 포켓의 꿈, 극복의 발돋움 후 다시 그의 손에 쥐어지는, 스스로 붙잡은 꿈.
그러나 우리는 영화 속에 또 하나의 프리즘, 즉 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타키온과 카페가 점거한 구 과학실 한 구석의 창문. 그곳에 홀로 매달려있는 작은 프리즘 구슬. 바로 타키온의 것이다.
타키온은 정글 포켓과 현저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꿈을 움켜쥐지도, 흠집 내지도 않으며 오로지 바라본다. 철저한 관조자의 태도다. 그것은 분명 타키온 자신의 꿈일 텐데도.
타키온의 은퇴 선언 직후의 갈등에서 이것은 더욱 면밀하고 직접적으로 연출된다. 공교롭게도 더 이상 레이스에 뜻이 없다고 말하는 아그네스 타키온의 시선이 향한 곳은 창문에 매달린 프리즘이다. 언제나 꿈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정글 포켓과는 다르다. 타키온에게 꿈이란 멀기만 한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정말로 타키온에게 꿈은 멀기만 한 존재인가? 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도저히 붙잡을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타키온의 꿈은, 즉 프리즘은 기껏해야 타키온이 자리에 일어서 손만 뻗어도 가볍게 잡혀 손에 쥐어질 정도로 물리 세계 속에서 그녀와 가깝게 존재한다.
어째서 타키온은 그것을 간단히 잡아챌 수 없을까? 어째서 유리된 존재로 남는 것일까? 해당 포스트에서는 그것을 극장판과 인게임 내 타키온의 육성 스토리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할 예정이다.
: 우마무스메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첫 극장 영화 시리즈에서 타키온이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했다는 점 자체가 개인적으로 매우! 감사하고 벅찰 따름이지만 사적인 감정을 덜어놓고 보더라도 타키온은 사이게임즈의 베스트 초이스였다.
광기의 매드 싸이언티스트, 학교의 문제아 같은 독보적인 캐릭터성을 지닌 타키온은 자칫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속성과 달리 표방하고자 바가 아주 간단명료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우마무스메는 달리는가?
이 원초적이고 시리즈 전체의 핵심을 관통하는 물음은 타키온의 근간적 물음이자 스토리의 중심이다. 실제 타키온의 육성 스토리는 그녀의 달리고자 하는 욕망이 가장 순수하고 '평범한 우마무스메'의 욕망이며 타키온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의 우마무스메,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날것의 욕망을 가진 존재로 표현된다.
한없이 달리고파하고 터프에 서고자 하며 머리칼을 가르는 바람을 느낀다. 이보다 '우마무스메'에 가까운 존재가 어디 있을까.
: 플랜 B
타키온의 자랑은 뛰어난 지능과 그에 걸맞은 이성적 사고다. 그 이성적 철저함에 따라, 타키온은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크게 두 갈래의 방향성을 설정해 두었다.
플랜A. 타키온 자신의 힘으로 궁극적 목표, 가능성의 끝에 도달하는 것.
플랜B. 타키온 자신이 아닌 타인의 힘을 빌려 가능성 끝에 도달하는 것.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다. 가능성의 끝, 우마무스메의 한계.
이 신비롭고도 매료되는 생물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 순수한 육체만으로 어디까지 빨라질 수 있는가? 가능성의 끝은, 그리고 그 한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타키온의 입을 거치면 여러 전문용어가 덧붙여져 영 알아듣기 힘든 모양새가 되곤 하지만 물음의 본질 자체는 순수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우마무스메는 어디까지 빨라질 수 있을까? 지나가는 어린아이도 가질법한 간단한 궁금증은 타키온 평생의 탐구 거리이자 숙명이다.
타키온은 두 방향성에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은 오직 학자로서 가능성을 '탐구'하며 이 모든 것은 가능성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플랜 A가 가능하다면 좋은 것이고, 플랜 B를 따른대도 타키온에게 약간의 아쉬움 말고 손해 볼 것은 없다. 그래, 약간의 아쉬움 말고는.
: 아주 약간의 아쉬움
극장판 속의 타키온은 약간의 아쉬움을 가진, 즉 플랜 B를 선택한 타키온이다.
사실 타키온이 자신의 발로 달리기를 결정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나'라는 존재가 개입한 타키온의 개인 육성 스토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야기 속에서 타키온은 어떠한 운명에 따라 사츠키상 이후 은퇴를 선언한다. 이 과정은 멘하탄 카페의 육성 스토리에서 자세하게 그리고 파헤치듯 보여진다.
타키온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개인 육성 스토리에서마저 모든 것을 혼자 결정 내려 정리한 뒤 결과를 통보하는 것뿐이지 나머지 것들은 비밀로 부친다. 화면 밖의 우리들조차 그녀의 진위는 심증으로 유추할 뿐이다.
그러나 플랜 B를 선택하고, 약간의 아쉬움을 지닌 채 카페의 어드바이저로 취직한 타키온은 우리에게 보다 많은 것을 알리고 보여준다. 스토리를 진행할수록 우리는 타키온에 대한 더 많은 새로운 사실과 새로운 면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갈수록 고조되며 6월의 후반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극에 달했다. 터프 위에서, 타키온은 낱낱이 해부 당한다. 포효하는 아쉬움과 선망, 절망감은 타키온이 품고 있는 근본적 욕망이 무엇인지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결정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줬다. 그곳엔 포효하는 절망보다 잔잔한 우울과 박탈감이 꾸준하게 존재한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다시 멘하탄 카페의 육성 스토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사실 문제의 6월 후반이 오기 전까지 타키온은 꽤 '잘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적어도 플레이어의 시선에서는 그러하다.
가끔 쓸쓸한 표정을 짓고 날 서린 말을 하기도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큰 문제는 없는, 정말 아무렴 괜찮고 미련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영화와는 꽤 차이가 있다. 이야기의 극적임과 보는 이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진은 타키온을 아예 분리하기를 택했다. 동기와 갈등을 만들고, 어드바이저란 한 줄의 대사로 지나갈 뿐 타키온의 행보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창 하나 사이에서 철저히 분리된 관조자. 그것이 신시대의 문 속 아그네스 타키온이다.
정글 포켓과의 갈등 직전, 타키온은 평소 같이 자리에 앉아 실험이나 하고 있으리란 예상과 달리 예상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창문. 자신의 꿈을 걸어둔 그곳.
타키온은 창문을 넘어감으로써 일종의 세계를 건넜다. 하나는 잔디 위의 것이고 하나는 어두침침한 구 과학실의 것. 이전에는 두 세계 모두를 자유로이 다닐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 타키온은 하나의 세계로부터 철저히 분리됐으며 고작 창문 하나로 이전 자신이 거닐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다.
영화 속 타키온은 정말 안 괜찮은 사람처럼 보인다. 웃음은 전혀 웃음처럼 보이지 않고, 잔디를 밟는 그리운 소리에 반응해 다리를 떠는 일이 다반사다. 누가 봐도 미련이 흘러넘친다. 처참한 방의 상태는 또 어떻고.
나는 이 점이 신시대의 문 속 타키온과 인게임 속 타키온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본다. 캐릭터의 본질적인 차이라기 보다는 상황이 만들어낸 차이라고 보는 쪽이긴 하다마는. 하루 종일 어두운 방에서 컴퓨터만 하면 누구든 정신상태가 안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끝은 비슷하다. 영화는 이것에서 극적임과 속도감을 한층 더 추가했지만 본질은, 아그네스 타키온이라는 인물이 내린 결론은 같다.
:다시 잔디 위로
타키온 스스로가 간과한 사실이 있는데, 그건 바로 타키온 자신이 달리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는 거다. 레이스에 나가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타키온은 달리는 걸 너무 좋아한다.
속도 붙은 바람을 맞는 것도 터프 위를 내지르는 것도 순수하게 좋다. 참 여러 의미로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는 인물이다. 이것은 타키온의 SSR 카드 [Q≠0]의 육성 이벤트에서 정말 자세히 설명되는데, 이것은 영화에 관한 글이므로 설명을 삼가하지만 개인적으로 타키온의 정수가 담겨있는 이벤트라고 생각하니 시간이 나는 사람은 보고 오길 추천한다....
병합 훈련을 제안하려 타키온을 찾아온 정글 포켓에게 타키온은 프리즘을, 즉 꿈을 비추어 본다. 햇빛을 받아 잠시 반짝이던 프리즘은 타키온이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유리 플라스크들에 힘이 보태져 온 방을 비추고, 타키온의 눈동자에 비친다. 방은 온통 반짝이는 꿈에 매워지고, 정글 포켓이 떠났음에도 빛은 그 자리에 여전히 남아있다.
몇 개월 치의 쓰레기와 비품을 정리하던 타키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미 어떠한 예감을 했거나 무력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자세한 것은 타키온 본인만 알 것이다.
기다려주게
정글 포켓의 말은 하나의 기폭제가 된다. 기어코 타키온은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을 억누르던, 혹은 자신이 억누르고 있던 하나의 사실을 마주했다.
스스로의 다리로 도달하지 않은 한계의 너머 같은 것은 의미 없다. 나의 다리로 가야만 한다. 그리고, 나도 그곳을 보고 싶다.
생각 이전에 본능으로 발을 움직인다. 어디로든 뛰쳐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결론적으로, 타키온은 다시 하나의 세계를 넘어간다. 분리된 곳에서 뛰쳐나와 엉망으로 내달린다. 그야말로 부활이자 상쇄의 달리기다.
이 시점에서 다시 꺼내볼 물음이 있다. 어째서 우마무스메는 달리는가? 대체, 왜 달려야만 할까? 이건 우마무스메 본인인 타키온이 와도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본질적 질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 속 타키온의 달리기를 보면 이에 대한 조그마한 힌트를 얻는 것 같기도 하다.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살아가야 하므로.
'달리기=삶'의 공식에 따르는, 아주 우마무스메다운 이유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