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 히나 단편 -호접지몽.-

블루 아카이브 히나 단편 -호접지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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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꿈인가

현실인가

그곳의 나는

나인가

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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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게헨나 학원의 선도부장실. 그곳의 빛이란 컴퓨터의 화면과 창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달빛 뿐이었다.

그리고 그 빛들이 비추고 있는 것은 어린 소녀와 청년의 모습이었다. 소녀는 민소매 차림으로 뒤로 누워, 달빛을 머금은 하얀 장발을 흩뜨리며,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청년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아무리 나라도 부끄러워."

소녀, 소라사키 히나는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돌리며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하지만 청년은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대신, 조금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그의 표정에 소녀가 가볍게 미소를 짓는다. 소녀의 미소에 청년은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지?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어쩐지 안심이돼."

사실은.... 당신의 그런 표정을 좋아했어."

조금 몽롱한 듯, 가늘고 작아진 눈빛과 목소리. 히나의 말에 청년은 그녀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머리로 느껴지는 청년의 따뜻한 온기와 부드러운 손길에, 히나는 가슴 속이 따뜻해지는 느낌과 함께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거부할 수 없고, 거부하기도 싫은 감각에 몸을 맡긴 히나는, 서서히 정신이 현실에서 멀어져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아....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

멀어져가던 정신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온다. 동시에, 거슬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귀를 자극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꿈."

눈을 뜬 히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알람을 끄고는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꿈을 곱씹던 그녀는, 이윽고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최근 몇 번이나 꿨을 꿈인데도, 일어나게 되면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꿈의 내용에, 히나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으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니, 애초에 그건 꿈이 맞는걸까? 그러한 의문이 히나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확실히 청년, 선생은 게헨나 학원의 선도부장실에 찾아왔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마디. 좋아한다는 그 한 마디가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는 이미 현실과 꿈의 경계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 모모톡으로 선생에게 어제의 일을 물어봤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음에도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로 별다른 말을 안 했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을 하는건지, 진실은 선생만이 알고 있기에 그녀는 알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성가신 것은 물론, 그녀 자신이 그것을 꿈이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현실이기를 바라기도 한다는 점이다.

꿈이라고 바라기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생각과, 자신의 마음을 듣고도 선생이 자신을 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하지만 현실이라고 바라기에는 자신의 마음을 들켰다는 부끄러움과, 그걸 잠결에 말했다는 한심함.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알고도 선생이 자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기 때문이다.

꿈이기를 바라면서도 현실이기를 바라는 모순된 심정. 히나는 자신의 이러한 모순에 두통을 느끼면서도 착실하게 학교에 갈 준비를 마쳐갔다.

'생각만 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결국 그녀가 내린 결론은 '또다시' 보류였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의문을 품고, 같은 갈등을 겪은 끝에 내놓은 똑같은 결론이었다.

이것이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고,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것은 그녀 역시 잘 알고있다.

하지만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아니, 내려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히나가 머리를 감싸고 결론을 내렸다 한들, 결국 이것은 앞으로 하려는 선택이 아니라, 이미 끝나버린 일에 대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결론이 진실인지조차 알 수 없는 만큼, 어떤 의미로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로 바보같네."

히나는 자조하듯이 그리 중얼거렸다. 사실은 알고있다. 계속 고민하는게 아니라 그냥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전하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설령 거절당한다고 하더라도, 선생이라면 결코 자신을 피하지 않을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게다가 기회는 한 번 뿐만이 아니다. 거절당한다 해도 다시 도전하면 된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좋아하게 만들면 될 뿐이다. 심플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뭐, 일이 생각대로 풀린다면 인생에 고민은 없겠지만...."

그러나 생각대로 풀리지 않기에 인생이다. 히나는 그 심플하고 확실한 방법을 떠올리면서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작은 키. 아무리 손질해도 부스스한 머리. 아이같은 체형. 날카로운 눈매.

도저히 귀엽다고도, 예쁘다고도, 여성스럽다고도 느낄 수 없었다. 선생이 자신에게 해주는 모든 칭찬의 요소들이, 자신의 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 같은걸 좋아해줄리가 없지."

선생은 이상하긴 하지만 상냥하다. 누구에게나 상냥하다. 때로는 그게 심해서, 스스로가 위험에 뛰어들 정도로 지나치게 상냥하다.

그 상냥함이 독이 되어, 마음을 좀먹어간다. 선도부장이라는 직책으로 인해 드러내려 하지 않았던 감정들이, 선생의 앞에서는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어리광을 부려서는 안 된다. 좋아한다는 마음을 전해서는 안 된다. 선생은 모두에게 상냥한 만큼, 그녀 하나만을 신경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 선생에게 괜한 것으로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사랑. 거절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선생에 대한 미안함. 그것들이 한대모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고백해서 누군가가 힘들어진다면, 고백하지 않는 편이 좋은거겠지.'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기억을 뒤로하고, 그 기억의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조차 선택하지 않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왜 나는 계속 고민하고 있는걸까...?'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다. 해결할 방법도 선택할 수 없다. 그저 생각하지 않는 것만이 해결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도,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러면 안 된다. 자신에게 있어서도, 선생에게 있어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잊어버리자. 생각하지말자. 다른 일에 집중하자.

히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 시간은 여유로웠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방을 나서고, 길을 걸으며 게헨나 학원의 선도부장실로 향한다. 문을 열자 언제나처럼 대량으로 쌓여있는 서류들과 어째서인지 그 서류들을 읽고있는 선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순간적으로 머리가 새하얘졌다. 당황해서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왜 선생이 여기 있는지에 대한 의문보다,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 히나, 어서와."

하지만 탈출로는 곧바로 막히고 말았다.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그리 말하는 선생의 모습에, 히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거기 앉아있는거야? 선생님."

"그야 히나는 평소에 일에 치여살잖아? 그러니까 도우러왔어."

히나는 슬쩍, 선생의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서류를 보았다. 위치와 쌓여있는 양을 보건데, 아마 이미 처리한 서류들로, 상당히 일찍부터 일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도우러왔다니.... 누가 들여보내 준건데?"

"이오리가."

또 한 장의 서류를 처리하며 선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선생이 게헨나 선도부 전체와 가깝게 지내는 만큼, 이런 식의 방문은 아무래도 어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오리에게는 나중에 따로 벌을 줘야겠군.'

히나는 이오리에 대한 스트레스로 두통을 느끼면서도, 일단 보류를 하며 선생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서류뭉치가 크게 세 종류로 나뉘어져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이건...?"

"하나는 내가 해도 괜찮아 보이는 서류. 또 하나는 반드시 히나가 처리해야 되는 서류야. 나머지는 이미 처리한 서류고."

히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미 처리된 서류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선생의 말대로, 굳이 히나가 아니어도 처리하는데 문제가 없는 내용의 서류들 뿐이었다.

단순히 서류를 대신 처리하고 있었다면 일찍 시작했을 뿐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분류의 작업이 포함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산더미와도 같은 서류를 분류하는 것은, 시간적 소모가 상당히 들어가는 작업이다. 평소에는 히나가 모든 것을 처리하기에 굳이 분류의 작업을 거칠 필요가 없었지만, 선생은 그녀의 일을 옆에서 돕기위해 일부러 이런 작업에 시간을 쏟은 것이다.

히나는 다른 서류들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말했다.

"대체 언제부터 이러고 있던거야?"

"아니, 진짜 얼마 안 됐어. 아코랑 치나츠 덕분이지. 어제 내가 미리 분류해 달라고 부탁했거든."

"난 들은게 없는데?"

"그야 너는 거부할게 뻔하니까."

선도부장에게는 말도 없이 선도부의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히나는 이오리 말고도 다른 두 명에게도 벌을 줘야겠다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고, 선생은 그런 히나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모두 네가 걱정인거야. 평소에 일을 열심히 하니까 여유가 없잖아? 가끔은 여유를 가져야지."

"선생님 한테만은 듣고싶지 않은데."

히나는 선생의 옆에 앉아, 서류를 읽으며 그리 대답했다. 고집불통인 선생을 설득해 돌려보내는 것은, 경험상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샬레의 일은 게헨나 선도부의 일보다 많고 힘들잖아? 왜 자신의 소중한 시간까지 쪼개면서 나를 도와주는거야?"

대신, 선생이 그녀를 도와주는 이유를 물었다. 샬레는 총학생회의 직속 동아리로, 키보토스에서 일어나는 대다수의 사건을 파악하고 있다. 그건 다시말해, 모든 학원에서 일어나는 재정적, 군사적 일이 샬레에게 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유따위는 전혀 없을 위치. 그런데도 그는, 수 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며 그 범위는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명백히 범위 밖에 있는 일이다. 자신에게도 소중한 시간을 포기하고, 도움을 청하지도 않은 일을 하는 것은, 도움을 준 이에게 질책을 받을 수도 있는 오지랖에 가까운 행위였다.

히나는 선생이 왜 그렇게까지 해서 자신을 도우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서류를 잃는 것을 멈추고 선생을 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

그러자 선생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 곤란한 듯한 분위기를 띄는 웃음. 히나가 좋아하는 선생의 표정이었다.

"나도 네가 걱정이거든. 아직 어린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일하는건 분명 힘들거라고 생각했어. 네 입장에서는 쓸대없는 오지랖이라고 여기겠지만, 나는 선생으로서, 학생의 자유시간을 보장하고 싶거든."

"...."

쓸대없는 오지랖이다. 괜히 신경쓰게 만드는 행동이다. 이럴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상황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선생의 쓸대없는 오지랖이 좋다.

괜히 신경쓰게 만드는 행동이 좋다.

비생산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좋다.

...그저, 곁에 있을 수 있어서 좋다.

"마음대로 해."

히나는 그리 말하면서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분명 일하는 것은 지금까지와 똑같은데, 어째선지 기분은 고양되어 있었다.

마치 아까까지의, 아니, 지금까지의 고민이 전부 쓸대없는 시간낭비라고 말하듯, 히나는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꿈이면 어떻겠는가?

현실이면 어떻겠는가?

전하지 못하면 어떻겠는가?

민폐라면 어떻겠는가?

뭐가 어찌되었든, 선생을 향한 히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좋아하고, 계속 함께있고 싶다. 오직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뭘 고민하고 있던걸까.... 선생이 나를 어찌 생각하든, 내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히나는 결국, 답을 내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오답이라고 여겨왔던 것이 정답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 정말로 간단한 해답. 하지만 도달하기까지 무척이나 멀었던 해답이었다.

꿈 속의 히나와 현실의 히나에 구별이 있지만, 꿈이든, 현실이든, 히나는 선생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히나는 히나다. 귀찮은 것을 싫어하고 어리광부리기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랑하는 소녀다.

그러니까 더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즐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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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지몽.... 상당하 난해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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