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月 2X

D.

있잖아.

실수에 대해 생각해 봤어.

잘못에 대해 생각해 봤고.

그 다음에는 자리에 대해 고민해 봤어.

대체 삶은 무엇이기에.

인간은 무엇이고. 명목이란 어떻게 생기는 것이기에.

우리는 많은 것들에 책임을 져야만 하고

또 지지 않아도 되는지.

왜 빛나는 것들의 추락은

언제나 자극적인지.

우리는 왜 그것에서 눈을 뗄 수 없는지.

만약 추락이 불가피하다면 말이야.

나는 차라리 아주 아름다워지기로 마음먹었거든.

한 번 걸림돌이 되는 것은

영원히 극복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

돌이켜보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가장 처음의 그 걸림돌에 있었잖아.

기어코 원동력으로 삼았던 것이.

걸림돌이라는 본질을 잃지 못하고

끝끝내 나를 넘어지게 만드는 꼴을

거부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잖아.

그것만 없었다면.

더 찬란할 수 있는 삶이었을 텐데도.

조금 덜 괴로운 삶이었을 수 있는데도.

이상하게 그런 것들은.

우리가 가장 안일할 때에만 발목을 잡으니까.

이쯤이면 다 나았다고.

이쯤 되면 다 극복했다고.

나는 그 모든 장애물에도 이렇게 성장했다고.

이제는 조금 더 괜찮은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믿을 때쯤 죽지도 않고 찾아와서

제 머리를 들이밀고는 씽긋 웃어.

나를 잊지는 않은 거지.

네가 나 없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나는 네가 탄생시킨 늪이잖아.

벗어났다고 믿은 건 아니지.

너는. 그렇게 내게 잠겨야만 하는 삶을 자초했잖아.

속삭이면서.

그 미소는 언뜻 비소 같아 보이기도 하고

자조 같아 보이기도 해.

아마 결국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렇겠지.

사실 알고 있었잖아.

드문드문 밀려오는 여전한 두려움들이. 의문들이.

아직 그 어떤 것에서도 해방된 적 없음을

나타내는 반증이라는 걸.

아직도 사랑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고유한 정의를.

알지 못하니까.

그리움은 뭘까. 외로움은 뭘까.

그래서. 난 정말 사랑을 받았고 주었던 걸까.

그럴 자격이 존재하는 사람인가.

대답을 알 수 없으니까.

분명 눈앞에 두고 있을 때는

잡힐 것도 같고. 잡힌 것도 같고.

다 괜찮아진 것만 같은데

보이지 않고 닿을 수 없고

전할 수 없으니 또 헷갈리는 거야.

정말 그게. 그게 맞았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지독한 현실이 꼭 원래 있어야만 했던 자리 같고.

보았던 건 전부 허상 같고.

사실 나는 이리 살았어야 했다고.

상처만 줄 뿐이라며.

그래 너의 모든 행동을

너는 회의했을까.

이러나 저러나 결국 또 네 손으로 망치고 말았다며.

그렇게 홀로 조용한 고통을 견뎠을까.

그런데 말이야.

나는. 그 엇비슷한 과정을 겪는 내내

모든 생각이 너로 수렴했어.

아무리 봐도.

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아주 많이 괴로워하는 것도.

마땅한 죗값을 치르는 것도.

평생일지 모를 그 늪에서 간신히 허덕이기만 하는 것도.

너만 존재한다면.

나는 너를 위해 그렇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어.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그것에 억울해할 수 없어도.

몇 년이 지나도 면제되지 않을 잘못을.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을.

나는 그렇게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어.

나도 여전히 모르겠어.

그냥 네가 사라지니

세상 모든 것들이 너무 날카로워.

이런 게 사랑이라면.

평생 몰라도 될 것 같은데.

그러니 네게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자격이 뭐가 중요하냐고.

사랑 따위. 굳이 알지 않아도.

나는 내내 너뿐인 생각을 하고.

너는 결국 우리인 미래를 바라잖아.

설령 우리가.

네가. 내가.

기어코 맺은 세상을 다 끊어버렸다고 해도.

그것을 묶을 수 없고, 계속 엉키기만 한대도.

나는 네가 필요해.

아마 너도 그럴걸.

그것만으로도 네가 내게 올 명분은 충분해.

자책. 반성. 후회. 고해.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이잖아.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가 멈출 수 없는 것들이잖아.

그러니까 당연한 것들은 그런대로 두고.

너는 내가 널 필요로 한다는 것만 알아줘.

상처. 혹은 미움. 원망. 혐오. 증오.

나도 두려워하고. 너도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나는. 너는. 익숙하잖아.

이미 오래 씹어삼킨 거잖아.

뱉을 수 있는 유일한 진심이. 다정이.

사과였고 잘못의 고백이었던 상황이.

결국 너는 그런 식으로 또 사랑을 증명했다는 게.

알 수 없는 것들은 속으로 꾹꾹 눌러놓고.

상처 냈다 생각하는 진심들을 위한 말만

피하지 않고 늘어놓는 네가.

나는 기꺼워. 그래서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흘러.

혼자서는 눈물을 숨길 네가

내가 눈물이 나는 건 두고 못 볼 걸 알아.

나조차 매번 제대로 나지도 않는 울음을

소리 없이 먹는 방법만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내 눈물을 본 넌 달려올 걸 알아서.

내가 울며 네가 필요하다 말하면

넌 망설임 없이 찾아올 걸 알아서.

답지 않게 이런 편지나 쓰고 있는 거야.

바보야.

내 아득함의 원인은 전부 너야.

네 두려움의 원인이 전부 나고.

블랙홀은 모순적이게도 은하를 더 밝게 만든대.

막을 수 없이 블랙홀은 탄생해버렸고

그래서 무분별하게 우리 속을 좀먹고 있지만.

하여 어김없이 밝아지고 있지만.

너와 나의 추락을 바라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미 추락하고 있을지 모르는 너와 내가.

아니 우주가.

가장 아름다워지기를 바라.

그렇게 우린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추락을 겪자.

그 끝이 안전한 착륙이 아닌

조각난 파편이더라도.

그렇게 너와 내가 전부 조각조각 흩어진대도.

생의 마지막까지 붙어있자.

이게 내가 찾은 답이야.

묻고 물어 내린 결론이야.

어차피 피차 인간일 뿐인 존재들에게

나는 정답을 얻을 생각이 아니었어.

붕괴한다고는 하는데 그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에 던진 각오같은 거야.

제아무리 직접 빚은 고통이고

걸림돌이고 늪이라 하더라도.

결코 그 속에서 해방되지 못하더라도.

찾아오고 가로막고

그렇게 눈앞에 현실을 들이밀어도.

나는 역시 네가 필요해.

너도 반드시.

나를 상처 줄까 두려워?

그럼 나도 네게 똑같이 상처를 낼게.

눈에 보이지 않으면

나는 아득함에 질식할 것 같거든.

같은 자리에 같은 상처를 품고

서로를 향해 웃어 보이면 된 거야.

우리는 아니까.

완전한 해방은 없다는 거.

또 걸려 넘어지고 말겠지.

그럼 뭐 어때.

여전히 나는 널 원할 텐데.

먼저 일어난 사람이

손을 잡아주기로 해.

아무렴 너와 나 사이에는

이제 그 무엇도 소용이 없으니까.

사랑. 사랑? 파랑. 너.

ㄴre: 10月/ 그러니까 난 이때도 사랑을 말하고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