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캐릭터 "레일라"에 대한 이색적인, 분석글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상평
원신 캐릭터 "레일라". 속성은 얼음. 학자 컨셉인 것과 반대로, 무기는 법구가 아닌 한손검이다. 이런 레일라는 안타깝게도 몽유병을 앓고 있다.
「여긴 어디지… 난 뭐하고 있었지… 설마 또 몽유한 건가?」
대표 대사부터가 이 캐릭터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여긴 어디냐는 부분에서 당혹감이 느껴지고, 난 뭐하고 있었냐는 부분에서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설마 또 몽유한 건가?" 라고 말하며, 무언가 체념 섞인 분노가 저 활자에서 느껴진다.
이 아이의 공식 홈페이지 캐릭터 소개를 보개면 이렇다.
1. 과중한 학업으로 눈가에 다크서클이 드리운 르타와히스트 학부의 학생. 항상 피곤해 보인다. 그러나 과제가 아무리 많아도 항상 최고의 결과물을 보여주기에, 다른 이로 하여금 꿈속에서도 논문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2. 르타와히스트 학부는 수메르 아카데미아 관할 하의 6대 학부 중 하나이며, 6대 학파 중 하나인 명론파의 관리를 받고 있다. 6대 학파의 연구 대상은 모두 다른데, 명론파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모든 생명을 뒤덮고 있는 별하늘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레일라는 수많은 명론파 연구자 중 하나인 학생이다. 그녀는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이미 여러 이상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 「몽유 괴인」, 「걸어 다니는 인간형 계산기」, 「하늘에서 떨어진 논문」… 이것들은 전부 레일라의 지인들이 그녀에게 지어 준 별명이다. 게다가 그녀의 별명은 나날이 늘어가는 추세이다.
'르타와히스트'는 현대식으로 치환하면 "천문학자"라고 보면 된다. 원잘알 친구에게 물어보고, 확답을 얻어 검증받은 이론(?)이니 믿어도 된다. 앞으로 나는 레일라를 간단하게 '천문학도'라고 하겠다.
공식 설정에 의하면 천문학도인 그녀는 친구가 그닥 많지는 않아보인다. "몽유 괴인"이라는 별명으로 봤을 때 추리할 수 있다. 친구를 괴인이라고 부르진 않지. 거기다가 "하늘에서 떨어진 논문"이라는 대목에서 다른 동료 천문학도들이 레일라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깎아내리는 모습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레일라가 쓴게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졌다"는거다. 이건 레일라를 향한 경멸이다. 학자로서 논문을 인증받지 못한다는건 프라이드가 크게 깎여나가는 일이다.
그런데 그 프라이드 저해 현상을 레일라가 겪고 있다. 다른 천문학도들로부터.
저런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달고 다니는 레일라는 삶이 참 고달프겠구나 싶었다. 아무리 만들어진 캐릭이라도 말이다.
그런 레일라에게 나는 동질감을 느낀다.
위키의 스토리 모음집을 보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모르겠어」, 「왜지」, 「망했다」라는 감정 담긴 혼잣말들을 내뱉는다고 한다. 이것은 레일라가 스스로 품은 생각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내뱉는 말들이 아닐까? 본인도 본인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레일라의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장기간의 불면증이라는 설명이 있다. 이것조차 나랑 똑같다. 나도 고등학생 때부터 불면증에 시달려왔고, 밤에 못 자면 낮에 학교에서 자는 식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해왔다.
나의 불면증은 지금은 거의 극복한 정신질환인 "양극성장애"로 인한 것이였다.
"양극성장애가 뭐냐? 갑자기?" 라고 싶을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기분(감정)의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병이다. 감정이 미친듯이 좋았다가, 미친듯이 우울해지는 극과 극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학업의 압박을 상시로 느끼는 레일라처럼, 나도 감정이 미친듯이 들떴을 때 이 감정이 또 다시 우울하게 변할거라는 압박감에 압도당해왔다.
레일라의 몽유병은 신기한 특성을 지녔다. 그것은 레일라가 몽유병에서 정신을 차릴 때 마다 한 글자도 작성하지 못한 논문이 한 치의 논지 오류도 없이 완성되어 있다는 것.
나는 저 병을 앓지 않았었기 때문에 저 병의 구조를 모른다. 몽유병이 다 저러한 패턴을 보이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양극성장애를 거의 평생동안 앓아온 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저건 내가 앓았던 이 병과 비슷한 면이 있다. 양극성장애도 "우울-조증-우울-조증" 이렇게 반복되는 굴레 속에서 얻어지는 거'는' 있다. 바로 "우울→조증" 으로 가는 과정이다. 저 과정 속에서, 양극성장애 환자는 가공할 만한 정신적 에너지를 손에 쥐게 된다. 주로 창의력 관련으로.
그 예시로, 양극성장애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이 앓아왔다.
윈스턴 처칠도 양극성장애 환자였다. 또한 문학의 아버지이자 거장인 헤밍웨이도, 검은고양이라는 소설을 썼던 에드가 엘런 포도, '리튬'이라는 노래를 작곡한 커트 코베인도, 클래식의 거장인 차이코프스키도, 빈센트 반 고흐도 이 병을 앓아왔다.
이런 모습의 병을 앓고 있는 '나'와 몽유병으로 인해 "하늘에서 떨어진 논문"을 쓴 '레일라'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한 레일라는 오르모스 항구로 가서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 모습은 내가 시내버스를 타고 도시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거기다가 인상 깊었던 사람으로 야바위꾼 얘기가 나오며, 그녀의 날카로운 관찰력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 점도 소름돋게 나랑 비슷하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프로 관찰러이기 때문에!
또한 날카로운 관찰력과 추리력, 천문도의 궤적을 남들보다 배는 빠르게 그려낼 수 있는 손, 괜찮은 수준의 수학적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카데미아에 들어오자마자 본인의 능력이 볼품없음을 깨달으며 스스로를 평가절하 하는 모습도 지금의 나와 비슷하다.
나는 나를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양극성장애라는 정신질환에 걸린 이상한 사람. 딱 그 정도로 나를 생각한다. 이런 점 마저도 나는 레일라와 닮아있다. 또한, 레일라는 자기의 단점이 자신이 문제를 고민할 때 너무 과하게 신중하고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걸린다고 답변했다.
거기다 그녀는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에, 다른 이와 토론을 할 때 항상 관점을 주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다른 이들은 레일라가 고아한 척 하며 남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며 혼자 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그녀가 토론을 꺼리는 이유를 알거 같다. 추론해보겠다. 레일라가 동료들과의 브레인스토밍을 피하는 이유를.
자기 관점이 너무 다양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게다가 사고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남이 그것을 못 받아들이는거다. 그러한 경험이 과거의 기억으로 데이터처럼 차곡차곡 쌓여있었기 때문에, 경직된 학자 사회에서는 자기의 "의견"이 더더욱 묵살되지 않을까? 또한 레일라는 자기가 이런 모습을 다른 이에게 온전히 드러낸다면 은연 중에 견제를 받을거라 추론했을거다. 그러니 피하고 다니는 거지.
어쨌든, 레일라는 스스로를 항상 "남들에 비해 부족하다"라고 생각하며 채찍질 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모습 마저도 나랑 똑같다.
레일라의 마지막 스토리를 가져오며 이런 엉망진창인 글을 마치겠다.
"어떤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강인하고, 똑똑하고, 겸손했으며, 때로는 겸손이 도를 넘기도 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의 미미한 똑똑함이 진정한 천재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더욱 뛰어난 사람이 되길 바랐으며, 진정한 천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족과 스승이 자랑스러워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모순적인 마음은 그녀를 속박하였다. 그녀가 감히 자유자재로 행동하게 두지 않았으며, 평범하고 내키지 않는 생활을 이어 나가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끄러움, 실망, 갈망… 여러 강렬한 감정이 계속해서 끓어올랐고, 그녀의 마음은 부담을 견뎌내지 못해 자신의 영혼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자그마한 구멍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다.
신체와 정신이 완전히 깨어있을 때, 여러 속박을 받고 있는 레일라는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지만, 수면에 들어서면 그녀의 마음은 오히려 짧은 자유를 얻은 듯, 영혼의 날카롭고 제멋대로인 면이 깨어난다. 몽유 상태일 때,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의심하거나 억압하지 않으며, 논문 작성, 천문도 그리기, 성위표 제작 등, 평소에 골머리를 앓던 일들을 매우 손쉽게 해낸다. 그녀는 자신의 관점을 숨김없이 말하고, 어려운 문제에 도전한다. 이건 마음속 깊은 곳, 그녀가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해방이다. 하지만 꿈은 언젠가 끝나는 법. 몸이 다시 깨어날 때, 그녀는 자신감이 부족한 내성적인 소녀로 돌아온다. 깨어난 후의 레일라는 심지어 엄청난 재능이 담긴 글과 계산식은 사실 자신이 적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 강인하고도 겸손한 소녀는 그녀이고, 예리하고도 자유로운 소녀 역시 그녀이다. 둘은 본래부터 같은 본체의 두 가지 면이다.
그녀는 여전히 성장 중인 묘목이다. '자신에 대한 의심'과 '돌파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동요하면서, 이러한 불균형이 소위 몽유 상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깨어있는 것이 그녀의 어떤 면이든, 모두 레일라 자신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