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음악에 대한 찬사
이제 알 사람은 다 아는 나는 원신, 그 중에서도 특히 OST 쪽에 굉장한 팬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리월과 이나즈마 쪽의 OST에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음악 하나하나가 나의 감정선을 자극한다. 그런 음악을 여태 못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수준, 밀도, 정보량, 빈도로 나를 자극한 적은 없었다. 음반을 사면 왠만해서는 아무리 좋아하는 아티스트라도 당첨과 꽝이 섞여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원신 음반은 당첨 비율이 엄청나게 높다.
작년 3/4분기만 하더라도 원신이라는 게임은 하지도 않았고, 초기 지역의 OST에서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만 리월 지역 이후부터는 찾아 듣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가요는 듣지 않아도 OST는 찾아 듣는 사람이다. 중학생 이후부터 내 선곡 리스트는 늘 OST였다. 그런 나에게 원신의 OST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이었다. 특별히 중국 콘텐츠를 선호하지도 않고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중국을 싫어하기도 하는 내가 이것을 칭찬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용물이 뛰어났을 뿐이다.
그리고 위의 비하인드 영상을 봤을 때 그 말도 안되는 퀄리티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냥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서 돈과 시간과 열정을 들여서 채산성을 도외시하고 최선의 결과물을 낸 것일 뿐이다. 사업적으로 보자면 보기 드문 시도이다. 우리가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대부분의 문화 콘텐츠는 채산성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결국 한계에 대한 타협은 기저에 깔려있는 적당히 괜찮은 것들을 소비하게 된다.
물론 원신 음악도 어딘가는 한계가 있었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선에서는 타협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문자 그대로 "무제한의 자원을 들이지 않았을 뿐"이라는 개념적인 것이지, 사실상 한계까지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쌓아올린 최선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여타 상업적인 타협을 한 미디어물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실례일 것이다. 적어도 원신 OST를 제작할 때 타협한 것은 상업적 타협은 아닐 것이다.
이 부분이 나의 심금을 울리는 인터뷰 장면.
물론 저 자막은 좀 감상적인 어투로 번역한 것이고 "이번 곡들은 제 악기가 없으면 정말로 어려웠을 부분들이 많았는데, (고토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가 조금 더 원어의 어감에 가깝다.
어쨌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고집을 쌓아올려 자신만의 경지를 이룩한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콘텐츠 제작자로서 지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신의 OST는 그렇게 했던 프로젝트였으며 실로 그 결과물은 아름다웠다.
나도 고집을 부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