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여름 축제를 보러 -20230722(토)

약속이 있어 나갔다 왔는데 큰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 엄마, 광주에서 원신 축제 보러 ○○이가 올림픽 공원에 혼자 왔데요. 근데 축제장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뉴스 때문에 작은 아빠가 가보라고 부탁하셔서 왔거든요?"

나는 원시인 축제라고 잘못 들어서 이건 또 뭔 소리인가 했다. 고 1인이 된 사촌 조카가 방학을 맞아 SRT를 타고 이 축제를 보겠다고 밥도 안 먹고 올림픽공원에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폭발물 설치라니 안 그래도 뒤숭숭한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폭발물은 없었고 취소되었던 행사를 하게 되어 큰아들이 사촌 여동생 안전을 위해 게임장에 동행하고 있는 중이란다.

'원신' 이 뭔가 알아봤더니 중국 게임사 호요버스의 오픈월드 어드벤처 역할수행게임(RPG)이라고 한다. 우리 아들들은 해봤자 롤(LoL) 정도였는데 조카들은 여러 종류의 게임을 하고 있나 보다. 국내 게임 이용자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는데 11.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 설치되어 있는 각종 부스를 구경하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고 코스프레 퍼레이드를 즐기는 행사라는데 다녀온 큰아들은 코스프레를 하고 온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애초에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광주 가는 SRT를 타러 9시까지 수서역에는 데려다줘야 해서 허리가 아프지만 복대를 하고 운전을 해서 근처 이탈리안 음식점에 데리고 갔다. 이곳은 큰아들이 고등학생 때 지친 학교생활로 힘들 때면 기운 내라고 데리고 오던 곳이었다. 오랜만에 왔는데 여전하다. 창밖으로 올림픽로와 나무들을 볼 수 있고 음식 맛이 평타는 치는 곳이라 가볍게 이용하기 좋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조카는 날치알 새우 크림 파스타와 라즈베리 에이드, 아들에게는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를 그리고 루콜라 피자를 주문해 줬다.

" 엄마 ○○이가 이번에 내신 1.7을 받았데요."

" 오마나, 공부하느라 애썼네. 우리 곱실이가 공부도 잘하는구나!"

아기 때부터 곱슬머리여서 곱실이라고 불렀는데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숱 많은 곱슬머리를 한 갈래로 묶고 온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엇에 관심 있냐고 했더니 과학 공부가 재미있다고 한다. 언젠가 우리 집에 와서 화분에 아보카도 씨를 심어 키우고 있는데 영양제를 줄 거라며 노란 액체 영양제를 가져간 적이 있었다. 생명 공학, 신약 개발에 관심이 있다고 연구원을 하고 싶다고 한다. 한국사처럼 외워야 하는 공부가 지겨워 그 과목에서 점수를 까먹은 것이 아쉽다고 해서 앞으로는 더 성적 잘 나올 거라 얘기해 줬다. 공부 욕심이 있는 녀석이다.

수서역까지 데려다주는 동안 차 안에서 그새 잠이 들어 버린 조카의 행동에 웃음도 나고 그런 열정이 귀엽기도 했다. 게임 축제를 보러 새벽같이 일어나 밥도 안 먹고 그것도 혼자서 서울을 올 생각을 다하는 열정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덕후 기질이 차후에 다른 분야에 발현되면 그것도 좋은 에너지로 작용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큰아들은 공부해야 하는 시간에 본의 아니게 사촌 동생을 따라다니느라 정신을 쏙 빼고 와서 힘들었나 보다.

엄마, ○○이가

"아! 너무 좋아.

10년이 넘어도

오늘을 잊지 못할 거야. "

라고 기뻐해서

힘들었지만

그건 좀 좋았어요

큰아들은 광주에서 걱정하고 있을 작은 아빠의 부탁도 들어드렸으니 마음도 편할 것이다. 수서역 주차장에 도착해서 자는 조카를 깨워 용돈 봉투를 쥐여주니 " 고맙습니다." 하고 덥석 받는다. 큰아들에게 플랫폼까지 데려다주라고 하고 기다리는데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나 고집 세고 땡깡 부리던 아기 꼽실이가 17살이 됐나 싶다. 내년에 축제 보러 온다고 또 오려나? 인생은 흐르는 물과 같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을 사는 것이니 언제 이런 시간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허리가 묵직하게 아팠지만 사건 사고 많은 요즘 데려다주고 오는 마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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