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신 드림 / 벤티 ] 자유를 향하여
자유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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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중요한 점은 벤티는 자유의 신이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들을 사랑하여, 그들의 곁에 존재하던 바람의 정령이 친우의 몸을 빌려 바르바토스가 되었나니. 그 이름이 벤티로 대신되고 있다 하여도 그는 여전히 바람과 자유의 신이었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존재였다. 때문에 그는 구태여 제 곁의 사람들을 붙잡지 않았다. 그는 늘 자유를 향하고 있으므로.
수백 년 전, 저와 함께 몬드를 수호했던 「사자의 이빨」 바네사를 비롯해 수천 년 동안 벤티는 수많은 이들을 자유의 품 속으로 돌려보냈다. 정말 이상하지. 벤티는 자유의 신인데도 자유를 얻어 하사하지 못하고 그들을 「죽음」이라는 세계로 떠나보내야 했다.
하지만 바르바토스는 괜찮았다. 무릇 수많은 생명을 거느리는 신은 그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더 많은 희생을 막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그는 괜찮았다. 언젠가, 바람에 날려온 그들의 이야기를 - 어쩌면 환청일지도 모른다-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세계의 진실이 밝혀지고 큰 파장이 일지 않는 이상, 바르바토스는 언제나 몬드의 곁에 있을 테니까.
언제나 「자유」의 곁에 머무르겠노라. 그 누구도 우리를 지배하게 두지 않겠노라. 벤티가 조용히 시를 읊었다. 수천 년 전 몬드에 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사람들이 외쳤다. 벤티에게는 그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옆 나라 리월에는 「마모」로 인한 고통이 크다는데, 신기하기도 하지...
벤티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티바트 하늘에 뜬 태양이 그를 비추었다. 썩 좋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벤티는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집중하고 싶었다. 자신의 오래된 친우를 떠올리고 싶었다. 그가 만약 이런 상황이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후회는 없어.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으니까.
결연한 의지의 말. 벤티가 처해있는 상황에는 알맞지 않았다. 벤티는 다시 자신의 머릿속을 뒤적였다.
-언젠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과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살아갈 거야.
낙관적인 소년의 말. 그 나이대 아이들이 할 법한 생각이다. 아니, 진정으로 자유를 추구했던 그 아이에게는 큰 의미였을 테다. 하지만 이것도 그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았다.
-사랑과 자유는 공존할 수 없는 걸까? 사랑을 읊자니 자유가 걸리고, 자유를 바라자니 사랑이 걸리더라...
이 말이다. 벤티는 어느 날 소년이 중얼거렸던 사랑 시를 마침내 떠올렸다. 자유와 사랑. 사랑과 자유. 벤티 그는 「자유」를 「사랑」하지만, 정작 자유롭게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한 사람만을 사랑하여 그를 위해 전부를 바치는 것은 벤티의 성미에 맞지 않았거니와 딱히 그럴 의지도 없었다.
사랑, 그래, 사랑. 이 얼마나 위대한가. 인간을 인간답게, 자유를 자유답게 만드는 그 힘은 단연코 생명의 근본임을, 벤티는 잘 알았다. 몬드의 주민들이, 그의 아이들과 다름없는 그들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약을 맺으며, 자식을 낳고 오손도손 살아가는 것은 자유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 소년도 사랑을 바랐고, 고민했으며, 자유롭게 사랑했다. 벤티를, 옛 몬드의 주민들을, 소년의 부모를, 소년의 친구를... 그러고 보면 언제 한 번 소년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았다.
하디만 단언컨대 벤티는 사랑할 생각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반려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그랬다. ......정말로 그런가?
벤티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바람을 타고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도망칠까 생각도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미동도 없이 그저 새하얀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가오고 있는 그 이가 벤티를 찾을 수 있도록. 얘기를 걸 수 있도록. 사실은 그 애를 만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몸이 따라주지 않은 게 아니라- 애초에 머리가 명령을 내리지 않은 거다.
벤티 자신이,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안녕 벤티. 여기 있었구나!”
“으음... 들켜버렸네.”
드넓은 들판에 앉아 있던 벤티에게 곧장 인사를 건넸다. 하늘을 감상하고 있었는지 미동도 없이 있었는데, 그 모습조차 너무 아름다웠다. 역시 벤티다.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조차 저렇게 요정 같고, 사랑스럽고! 천년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있는 거야?”
으윽. 벤티의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다. ...벤티 앞에 서 있는 게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 -예를 들면 그 여행자- 였다면 벤티가 조금 더 상냥했을까? 괜히 쓰린 마음이 들었다.
벤티는 늘 그랬다.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한 데 반해...
-앗, 벤티!
-어라라, 갑자기 급한 일이 떠올랐어! 난 이만 가볼게~
날 피하는 일은 다반사였고,
-그래서 그게 정말 좋았어. 벤티는 어떻게 생각해?
-.......
-벤티?
-아, 응. 뭐라고 했어?
대화할 의지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벤티! 너 자꾸 (-)한테 왜 그러는 거야!
-아하하. 느껴졌어, 페이몬?
-당연하지!
-(-)과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아니, 그냥...
벤티는 나를,
-그 애와 마주치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래, 알아. 안다고! 벤티는 나를 싫어한다. 그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에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었나, 도대체 왜 나를 싫어할까, 수도 없이 고민했지만 이제는 해탈하고야 말았다. 진 단장님, 다이루크 씨, 여행자... 벤티의 곁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나 같은 건 정말 초라하게 보이겠지. 어쩌면 벤티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식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벤티의 감정을 알게 된 이후로, 억울함에 슬픔이 섞여 벤티를 향한 나의 마음이 더 커져가고 있었다. 명색이 첫사랑인데, 달콤하기는커녕 울적함만 가져다주는 게 너무나 싫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벤티를 처음 만난 날, 내가 벤티에게 첫눈에 반했던 날, 그 날이 문제였던 것일까. 그때의 벤티는 참 다정했는데. 그는 길을 잃고 헤매던 나를 어루안고 달래주었다. 그 손길이, 내 등을 토닥거리며 불러주던 노랫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벤티를 좋아하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여행자가 내일 약속 잊지 말라고 전해달래서. 그리고 ‘그거’ 꼭 들고 오랬어. 그게 뭔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흐응. 걔가 그랬단 말이지? 알았어.”
난 이만. 오늘 공연을 하기로 했거든.
내 말에 가볍게 대답한 벤티가 자리를 떠나려 한다. 시원하게 옷에 묻은 잔디를 털어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모습에, 나는 다급하게 벤티를 잡았다.
“저, 저기!”
“...”
또다. 벤티의 눈빛이 나를 향했다. 불쾌함을 읽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좋은 것 같진 않다. 의중을 알 수 없다. 잡은 벤티의 옷깃을 화들짝 놨다. 작별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너무 급한 마음에 손이 나간 모양이다. ...불쾌했겠지, 벤티. 좋아하는 상대이니만큼 좋은 감정만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내가 옆에 있으면 그러질 못한다.
“아, 미안해! 그게 아니라, 그냥...”
“...신경 쓰지 마. 그래서 할 말은?”
“혹시 괜찮으면 공연하는 거 구경해도 될까?”
이 질문의 대답은 이미 알고 있다. 글쎄, 하고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거절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전에도, 그전에도, 그전에도 이런 식의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긍정적인 답변을 바라지도 않는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 내 공연을 보는 건 네 자유니까.”
윽, 역시 차가운 반응은 몇 번을 봐도 적응되지 않는... 응?
“가... 가도 돼?”
“응.”
“정말?!”
“그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마터면 벤티 앞에서 몹쓸 꼴을 보일 뻔했다! 순식간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며 나는 벤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애초에 왜 벤티가 승낙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말 기뻤다. 매번 거절만 들어오다가 저런 말이라도 들으니 하늘을 날 것만 같다. 이유야 뭐가 됐든 벤티가 허락해 준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럼 이만.”
감격에 젖은 나를 뒤로하고, 벤티는 인사 뒤에 그대로 떠났다.
멀어져 가는 벤티의 모습을 보며 몬드의 신, 바르바토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바르바토스께 매일 했던 기도가 드디어 먹힌 건가! 바르바토스시여, 앞으론 제가 매일 3회씩 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믿고 있었어요! 바르바토스 님 최고, 찬양합니다!
넌 인간이 아니야. 사랑하면 안 돼. 저 아이의 자유를 빼앗고 말거야. 네가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그것도 네가 제일 사랑하는 아이의 것을 빼앗고 말 거라고. 안 돼, 사랑하면. 절대 안 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는...
“벤티.”
“아니, (-). 난 너 안 좋아해. 나는, 너를...”
“...나는 널 좋아해.”
“이미 알고 있어. 그래서 내가 계속 널 피해왔던 거야, (-).”
“그것도, 알고 있어...”
서로의 말을 이어가며 팽팽히 맞붙는다. 멀리서 보면 고백이 아니라 다툼으로 보일 지경이다. 반은 맞는 말이지만. 이미 한 쪽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꾹 참는 모양새다.
“하지만 벤티... 내 자유는 너야!”
“뭐?”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게 「자유」라면, 그리고 내가 몬드의 백성으로서 자유로워야 한다면, 난 너를 계속 좋아할 거야.”
벤티의 입이 꾹 닫혔다. 보기 드문 찡그린 표정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거 알잖아.”
“(-).”
“그렇다면 벤티의 「자유」는 뭔데?”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는 시도도 안하도 그저 보내는 것?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남의 「자유」를 되찾아 주는 것? 좋아하는 사람의 자유를 억압할까 두려워 마음을 포기하는 것? 도대체 뭘 하면 벤티가 자유를 느끼는 거야?
속사포같은 날카로운 말을 들었음에도, 벤티는 표정이 그대로였다. 다만 손을 꾹 쥐었을 뿐. 벤티가 반박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벤티의 마음은 어떻게 되는 건데?”
“......”
“마음껏 사랑하고, 친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들을 포기하는 것을 애써 자유라고 꾸미는 거 아니고?”
대답은 없었다. 벤티는 침묵을 유지했다. 그런 벤티를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무례한 말인 것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말이 멈추지 않는다. 작게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벤티,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난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 걸.”
“그리고 그런 네 곁에...”
있고 싶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벤티의 곁에 있고 싶어.
...요컨대, 중요한 점은 벤티는 자유의 신이라는 것이다.
거센 바람 장벽 아래 갇혔던 불쌍한 이들의 영혼을 늘 기리겠노라, 내 이름은 「바르바토스」, 바람의 신이자 자유의 신이니. 나는 언제나 자유로 향하겠노라. 나는 언제나, 자유의 곁에, 「자유」의 곁에...
벤티 자신이 바르바토스로서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는 잊고 있던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자신이 정령이고 소년이 소년이었던 시절.
아직, 「사랑」에 대해 몰랐던 시절.
-난 말이야, 자유와 사랑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해. 하하, 그렇게 비관적인 이야기가 아니니 잘 들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