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포켓몬고에 빠져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 폐업 '될'(수동태이다) 예정이다. 얼마 전 대선과 지선이 있었다. 이 분야는 대부분이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권 교체 시기마다 긴장을 한다. 그리고 그 여파로, '정권 교체 후 없어지는 첫번째.. 뭐시기'가 내 직장이 되었다. 보통 정치적 외압을 받거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으면 필드 내부에서 연명을 하거나 성명을 내는 등의 움직임이 있는데, 여긴 신생이고 지역적 토양에 뿌리내리지 못한데다가 국내 활동인들과의 접점도 많지 않다. 더군다나 지자체 장의 정당도 그대로(보수당에서 보수당)이기 때문에 폐지를 반대할 정치적 명분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나는 직장을 잃을 예정이다.

지선 이후 한달동안 출근은 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대부분의 시간은 포켓몬고를 하거나 포켓몬고 정보를 검색하는 식으로 빈둥대며 보냈다(키워드: '포켓몬고 레이드 티어', '포켓몬고 땅타입 약점', '뮤츠 레이드 공략' 등). 전 직장 동료들이 모여있는 포켓몬고 단톡방에도 초대받아 들어가고 애인에게도 함께 하길 종용하는 등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다. 다만 비건으로서 이 게임을 즐긴다는 사실에 무척 큰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포켓몬고는 비인간동물 대상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종 차별적이다. 경쟁주의와 우생학은 자연스럽다. 나 또한 이에 충실히 입각해 포획한 포켓몬의 개체값이 좋지 않은 경우 '박사에게 보내'버린다(파양 또는 유기와 같은 맥락이다).

먹고 쓰는 것과 연관한 비거니즘의 실천과 자기 검열에 대해선 스스로와 투쟁/합의한 나름대로의 내재적 기준이 있지만 게임에 관해선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길을 찾는 중이다. 이 게임(과 포켓몬 파생 컨텐츠)을 그만두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여도, 포켓몬고는 불안혼란초조한 요즘 그나마 집중할 수 있는 활동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렵다. 다른 재미를 찾아 나서던지, 아니면 내가 개빻은 비건이라는 걸 받아들이던지. (물론 비건들이 타인보다 더 강한 도덕적·윤리적 검열에 자의/타의로 시달리고 있다는 것과, 이에 대한 부담을 더는 것이 스스로를 보살피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나에게는 아직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노력 중.)

이런 생각들을 곁들인 채로 포켓몬고를 하며 무료하고 끔찍한 출근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 포켓몬고를 하는 팀원 2명과 함께 레이드를 뛰거나 교환도 한다. 간간히 구직 사이트도 들낙이며.. (저는 이제 脫영화zㅔ 할 것입니다.) 영화zㅔ 경력 외엔 아무 것도 없는데 그 필드 바깥에서 먹고 살 수나 있을지 고민이 아주 크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물론 하루에도 몇번 씩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있긴 하다.. 건투를 빌어주십시오.

*내가 일해온 분야의 노동 환경에 대해서 언젠가 따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 불안정 고용 환경, 마치 유령처럼 이 플랫폼과 저 플랫폼을 떠돌 수 밖에 없는 구조에 대하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