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의 저주와 축복[오후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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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3-10-05 11:36
입력 2023-10-05 11:36
이철호 논설고문
시작은 사소했다. 지난달 24일 중국의 한 유튜버가 ‘원신’ 게임을 하던 중 휴대전화 온도가 48도까지 치솟는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아이폰15 발열 이야기다. 뛰어난 퀄리티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원신’은 대표적 고(高)사양 모바일 게임. 2년 전 갤럭시 ‘GOS(Game Optimizing Service) 악몽’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이 게임으로 발열 및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자 인위적으로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속도, 해상도, 초당 프레임 수(FPS) 등을 떨어뜨린 게 드러났다. 삼성전자는 대표이사가 공식 사과하고, 갤럭시 S23부터 방열판을 키웠다. ‘원신’의 저주였다.
발열은 아이폰15 시리즈 중에서 유독 고사양인 프로와 프로맥스가 심했다. 두 제품은 티타늄 소재와 대만 TSMC의 3나노 AP를 처음 적용한 게 공통 분모다. 사과에 인색해 온 애플은 발매 일주일 만에 발열을 인정하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티타늄 소재에 대해선 “과열의 원인이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묘하게 CPU·GPU·통신칩 등을 한데 모아 놓은 3나노 AP에는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는 3나노 AP에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GOS 파문 이후 큰 손실을 무릅쓰고 자사 제품인 4나노 엑시노스 AP의 갤럭시S 탑재를 포기한 바 있다. 대신 3나노 AP부터 칩에서 전류가 흐르는 통로(채널)가 4면인 ‘GAA’(게이트올어라운드)라는 새 방식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절대 강자인 TSMC는 3나노에도 채널이 3면인 ‘핀펫’(FinFET) 방식을 고수했다. GAA는 생산 공정이 까다롭고 수율 확보도 어렵지만, 전류 제어와 전성비(성능/전력)가 핀펫보다 뛰어나다. 무엇보다 AP의 발열 원흉이라는 누설 전류가 적다.
삼성은 GOS 사태로 단골 고객이던 퀄컴이 TSMC에 AP 생산물량을 몰아주는 바람에 뼈아픈 일격을 당한 기억이 있다. 만약 아이폰 발열이 핀펫 방식 AP가 원인이라면 애플·퀄컴은 삼성전자가 성공시킨 GAA 방식 3나노에 대규모 물량을 몰아줄 수 있다. 아이폰이 과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만 발열을 잡을 수 있을지 IT업계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원신’의 저주가 2년 만에 축복으로 뒤바뀔지 지켜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