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게임 목표

1. 나선 비경 금지

2. 가챠 금지

3. 레진 금지

1. 나선 비경은 신규 캐릭터 판매 판촉 전시장일 뿐. 결코 나선 비경을 즐기기 위해 이 게임을 시작하지 않았음. 광고대 위에서 침을 뛰기며 설명하고 있는 판촉원의 설명에 하염없이 앉아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시간이 없음.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조금씩 퇴보하시는 어르신들 상대로 키토산 베개라던지 알부민, 세라늄 영양제 같은 것들을 팔아치우는 전문적인 상술 조직을 상대로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현명한 처사를 해야 함. 경로당 경품 잔치 같은데 끌려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꼴.

줏대 없는 나선 비경은 게임의 중심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매달 바뀌는 게임 환경이기 때문에 그것을 목표로 게임의 방향을 잡을 수가 없음.

필드를 게임의 목표로 상정하고, 모험 등급 45, 월드 레벨 4 고정.

2. 한정 기원은 호기심으로 처음 시작하는 것치고는 계속해서 유저를 악랄하게 고문함. 희망 고문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결과적으로 큰 스트레스다. 한 사람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함. 도박의 무서움. 결국 한 번 한 번 희망으로 고문당하는 단차는 고통이라는 결론을 내렸음. 지나고나서 되새겨보면 어떻게 즐기기 위해 시작한 이래 고통의 나날이었음. 한정 기원의 희망 고문은 상당한 스트레스, 고통이다. 이것은 게임을 여가 활동 목적으로 시작한 처음의 마음가짐과 상반된다.

그렇다면, 한정을 확정으로 나 자신을 단속하는 수 밖에 없다. 90뽑 확정을 기준으로 픽뚫까지 감안하면, 1돌당 180뽑, 그러면 한 방에 2돌을 확정하려면, 180×3=550뽑. 뒤얽힌 인연을 550개 모은 다음에만 가챠를 한다. 550개의 인연이 확보되기까지 가챠 금지.

3. 레진 스트레스 또한 고통의 하나다. 매일 매일 레진이 쌓이는 시간까지 그것만을 생각해야 하는 고통에 시달린다. 이건 마치 이마로 물방울이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떨어뜨리며 고문하는 상황과 비슷. 결국 현상황을 도저히 어쩌지 못하고 무기력감에 시달려야 한다. 반 년 동안 패배 또는 무기력감 시달린 신체 또는 정신은 흡사 수용소에서 오랫동안 고생한 사람처럼 심하게 어눌하고, 자유를 주어도 정상적인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폐인의 지경에 이른다. 오랜 구속은 사람을 망친다. 이것 또한 즐기기 위한 시작한 처음의 게임 목적에 상반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봉착한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암덩이와 같은 희망 고문에 정상적인 일상을 꾸리기 힘들어지고,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기 일쑤이다. 상품을 광고하는 사업자조차도 소비자가 하루종일 그 상품만 생각하면서 폐인이 되는 지경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는 최소한 은행 ATM의 비밀번호 정도는 암기하고 있을 정도의 정상이여야 한다. 그러나 상품 광고와 한정 기원, 각종 한정 상술은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은 무언가를 기대하고 희망하기 시작하면 좀처럼 그것의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도 없다. 하루종일 신규 캐릭터만 생각하고 있는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면서도 어떻게 통제가 되지 않는다. 한정 기원 상술은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계획된 것이지만, 사람은 상품 판매 뿐만 아니라 그 한정이라는 스트레스에 올바른 판단 능력을 상실해가면서 폐인이 되다시피 한다. 한정 상술은 한 사람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알려지지 않은 인공 독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한정이라는 속박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모습을 나 자신에 증명하고, 그에 대대적인 정신적인 환기가 이루어져 이게 전부는 아니구나 하는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암담한 수용소 담벼락 같은 것이 아니구나. 나는 이것을 간단히 무시할 수도 있구나, 최소한의 증명을 나 자신에 보여주자. 의도적으로 레진을 방치하고 폐기한다. 절대 권력의 그것을 비웃어주자. 째각째각 한 시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레진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내 시간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자. 레진 프로그램은 다람쥐 챗바퀴처럼 한 사람에게 무기력감을 선사하는 악의적인 영구 장치 같다. 하루종일 뛰어야 하는 러닝머신 같은 것, 러닝머신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 기계의 권한을 갖고 조작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기계 또는 프로그램과 인간간의 정상적인 위치이다. 기계와 인간간의 윤리 제정에 따르면, 기계는 절대로 인간을 해쳐서는 안됨은 물론 인간을 구속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여 명시조차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인간을 구속하는 프로그램이 현존하고 있음은 참으로 불미스러운 역사이다. 조금이라도 아닌 것 같으면 결국에는 수정하고야 마는 인류의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언젠가는 이 암종자 같은 프로그램은 살아남지 못할 것. 처음부터 인간을 돕도록 설계되지 않은 프로그램이란 도박..

나는 내가 게임을 즐기기 싶은 시간에만 게임을 할 것이다.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나온 결론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레진을 폐기하는 날짜를 만들고, 모든 캐릭터 육성 활동은 일요일에 몰아서 한다.

다시 정리하면,

1. 나선 비경 금지, 모험 등급 45 고정

2. 뒤얽힌 인연 540개 모을 때까지 가챠 금지, 상시 가챠는 만남의 인연 90개로 별도로 적용, 무기 가챠는 난이도가 넘사이므로 향후 이십년을 계획하지 않는다면야 전면 금지

3. 금요일 저녁 농축 레진 제작, 일요일 아침에 모든 캐릭터 육성 활동을 몰아서 시행함. 다른 요일에 육성 활동 금지. 화요일 저녁 농축 레진 제작, 수요일 그리고 목요일 저녁 간단한 성유물 비경 탐사. 성유물은 유효한 부옵 20줄 제한, 더 이상의 무의미한 파밍은 금지한다. 청록셋 원마뚝처럼 주옵부터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가 없겠지만,

일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저녁까지의 레진은 내가 의도적으로 버리기로 계획함. 장기적인 정신적인 환기 및 올바른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잿밥 정도로 미련을 버릴 것. 다른 게임을 한다던지 해서 한 게임에만 목매지 않고, 상식적인 게임 유행이라던지 감각을 되찾아 가던지, 그 시간에 잠을 더 자던지, 수면 부족은 비뇨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병폐이고, 그렇게 비뇨 잣대로 말미암아 오래전 잃어버렸던 평정을 되찾은 후에는 그것을 발판으로 활력 증진이라는 운동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월요일 저녁은 조금 일찍 자는 날 또는 비번, 긴밤 같은 신나는 날로 지정.

4. 게임 커뮤니티 및 유뷰트 관련 영상 금지. 관심 없음으로 갱신 앞으로 절대 열람하지 않는다. 공략에 해당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이건 천이면 천 모두 그러했다. 부조리 앞에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고, 정신을 유지할 기력조차 남지 않았다. 사실 끊임없는 선정적인 자극은 마치 바늘로 얇은 뇌막을 건드리는 듯 내 자신이 통제가 안되며,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 또한 고통뿐인 나날로 기억된다. 과도한 자극은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라고 하여도 사실상 정신과 신체에 무리를 준다. 자극은 좋던 나쁘던 평화와 상반되눈 개념인 것 같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마냥 잠만 자고 일어났을 때의 상쾌함은 그 무엇보다 값진 것. 신체 활동에 따라 느껴지는 살아있다는 기쁨과 비슷하지만, 조용한 평화는 그보다도 값진 보석만큼 너무나 소중하다. 생이 주는 선물. 차라리 섹스보다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한낱 게임에서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면, 정말 억울한 일. 그 누구의 강요 또는 설명보다는 선택지 앞에서 자유를 만끽하자.

내가 게임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그래도 현실보다는 게임이 성취 쾌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세태의 게임들은 현실에서의 실기 시험보다 더 어렵다. 300시간을 넘게 플레이를 해도, 반 년, 일 년을 해도 소용이 없다. 너무 어려운 고시 고시 공부를 무턱대고 시작할 용기가 없는 것처럼, 인간이 달성할 수 없는 난이도까지 미친듯이 치솟는 고난이도 게임들이 전혀 즐겁지가 않을 뿐더러 솔직히 피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해병대 캠프만큼 빡쎄기 때문. 내가 원신이란 게임을 이나즈마, 수메르 탐사도 100프로 찍어가면서 두 달 동안 정말 힘들게 노력했지만, 돌아온 보상은, 픽뚫 무기 두 자루에 신빙성 없고 애매모호한 이상한 설명의 5성 무기만 남았다. 원신이 3년이 넘도록 많은 무기와 캐릭터들이 추가되었지만, 한글 이해력을 의심케 하는 애매모호한 설명들은 사실 3성 무기 또는 4성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은폐하기 위한 중의적인 문장들뿐이었다. 너무나 많은 정력을 요구하지만, 정작 게임은 인간이 달성할 수 없는 난이도로 추구하고 한도 끝도 없이 어려워져만 간다. 난 이것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데, 그러면 고시 필기 시험 따위로 모든 인간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해병대 캠프가 모두가 즐기는 여가 활동인가? 빡쎈 만큼 더욱 즐거운가? 제발이지 여가 활동이라는 명분에 걸맞는 쉬운 게임은 왜 나오지 않을까? 요새는 드라마조차도 완결하지도 않았으면서 2부, 다음 이 시간에 따위로 애간장을 졸이는 상술을 펼치고 있다.

인공 첨가물처럼 유해한 문제

게임을 하는 이유.. 그러니까 게임이란 것은 제작자가 유저를 온갖 규칙들로 괴롭히기 위해 만든 것이냐, 하는 의문이 들어서 입니다. 사실 요새는 이런 의문이 들 법도 합니다. 0.1초 안에 반응해서 보스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프레임 회피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했던 플레이로 완전 똑같이 반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캐릭터가 죽는 것보다 그것을 지루하게 반복해야 하는 유저의 부담감이 실질적인 패널티인 것입니다. 그러나 보세요. 이렇게나 어려운데, 게임 세계들을 미쳐돌아가고 있는데도, 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죽어가면서 계속해서 반복 플레이합니다. 여기서 제가 하려는 말은, 게임 세계가 보통 인간이 수행할 수 없는 난이도까지 미쳐돌아가고 있는데도, 어째서 그 게임을 외면하지 못하는 걸까요? 저는 여기서 하나의 암묵적인 약속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게임 제작자와 유저가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룰이 있다. 제작자는 자신이 공들여 만든 세계에 대한 권한을, 최근의 유행으로 보아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미련, 오만 같은 것이 상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완성도 높은 자신의 창작물이 누군가에게 의해 쉽사리 정복되는 것을 곱게 보아 넘기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자신의 피붙이 형제가 어디서 흠씩 두들겨 맞고 온 얼굴을 볼 때의 심정과 비슷할런지. 대중들에게 결코 만만하게 보여선 안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만큼 대중들에게 대단하게 보이기를 희망하고, 어떤 전설이 되기를 희망하는지도 모릅니다. 테트리스 끝판을 처음으로 정복한 이가 있어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테트리스 난이도는 후반으로 갈수록 인간의 반응 속도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라진다고 합니다. 슈퍼 컴퓨터가 처음으로 테트리스 끝판을 정복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처음으로 인간이 그것을 해냈다. 이 기념비적인 사건은 인간이 처음으로 달에 발을 들여놓은 사건처럼 화제가 되었습니다. 테트리스 난이도, 인간이 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난이도를 올린 데에는,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어떤 자부심이 같은 것이 서려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 제가 하려는 말은, 게임은 인간이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만들기 쉬운 일방적인 구조이다. 그러나 게임 제작자와 유저간의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그 어려운 것에 대한 권한 일체를 300시간 정도의 정성을 쏟은 유저에게 전부 양도한다는 내용의 작은 글씨로 남겨놓은 내부 약관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게임이다, 그렇게 제작자와 유저는 오랜 시간 동안 동의하고 소통을 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만든 함정에서 인간을, 유저를 구속하고 함정에 빠뜨리는 일은 너무나 간단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놀이 명목에 함정에 제 발로 들어왔고, 구속 또는 온갖 규칙들로 결박하는데도 재미있어 하며, 그것을 조금이라도 타파했을 때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기까지 하니까 말입니다. 들짐승처럼 미련한 것들이 유저인가,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게임이란 것이 함정처럼 보여도 반드시 빠져나갈 미로와 같은 해법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게임이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암묵적인 룰입니다. 게임은 그 겉면만 간단히 보아서는, 이게 함정인지 게임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함정 장치와 너무나 비슷하게 작동합니다. 캐릭터가 매번 죽을 시에는, 레벨을 올리거나 면역을 타파하거나 몬스터가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막의 상성을 알아내야 한다, 이런 돌파구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그게 게임이라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게임이기도 하고요. 제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이 부분의 개념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돌파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국면을 맞이한다면? 순전히 유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제작된 함정이라면? 최근의 게임들은 게임이라기보다는 함정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어떤 게임 시스템은 미래의 시간을 할부로 몽땅 끌어다 쓰지 않고서는 돌파구가 전무합니다. 유저로써는 무력하게 아무런 손을 쓸 수가 없고, 또 그 레진이 게임 내의 가상 시간을 중축이라서 그 게임을 하려면 레진 시스템에 적응 또는 복종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기존의 게임 플레이 방식과는 성격이 다른 새로운 실험 또는 만행입니다. 레진 시스템은 심지어 돈을 준다고까지 하여도 6회이상은 절대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절대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철옹성 같은 게임 세계이고, 타협 불가한 내부 규칙은 어찌보면 수용소의 죄수들을 관리하는 규칙과 비슷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이렇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독단적이고 정복 불가한 게임의 등장에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잘 헤아리기 힘든 스트레스가 노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게임이라면서 게임 같지 않는 게임을 붙잡고, 되지도 않는 일을 자꾸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이건 어쩌면 기존의 게임들을 상대했던 이력으로부터 나온 플레이 방식으로 고정관념이 깊게 자리했기에 내부적으로 어떤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게 맞다. 제작자도 이것을 게임이라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날에 게임을 하지 못하고, 레진 시스템을 절대로 거스를 수가 없다. 시쳇말로 약한 레진 100개만 있으면, 반 년치의 플레이 시간을 오늘 당장에 끝낼 수도 있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당장에라도 끝낼 수 있는 육성치를 반 년에 걸쳐 지루하게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는 돌파구가 전무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반 년짜리 함정인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돌파구 전혀 마련하지 않은 인간 함정이 게임의 탈을 쓰고 있다. 이에 유저는 어떤 환상통 같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분명 여기에는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릴 묘책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모든 게임이 그래왔고, 이것도 게임이므로 언젠가는 이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언젠가는 레진 스트레스부터 벗어나는 초고수의 길 같은 것이 유일한 희망으로 보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초고수 역시도 레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절연 비경을 일년 내내 매일 3충씩 해가면서 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유저는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처음으로 대면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직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저는 여기서 문제가 과중시키는 스트레스에만 괴로워할 게 아니라, 그 문제 자체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문제라고 문제의 자격에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난센스 문제가 아니라면, 문제는 반드시 해법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문제의 자격이다. 문제가 너무 어렵다면, 그 문제 자체를 문제삼아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모든 문제들이 적절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문제 중에 어느 것은 악랄하게도 해법을 숨겨놓은 척 사실 아무것도 마련해놓지 않았다. 인간은 문제 앞에서 날파리처럼 꼬이길 마련이므로.

그리고 극복 불가한 스트레스가 나에게 어떤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는지도 충분히 검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문제들은 대부분 인간이 어렵지 않게 해법을 찾아낼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래서일까 인간은 문제에서 어떤 달콤한 향기라도 나는 것처럼 날파리처럼 꼬여들여서 그것에 전념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시에 어떤 쾌감, 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도파민 보상을 받습니다. 유기농 문제를 대함에 있어서는 충동 조절 문제도 해결되고 정신적인 안정, 평화를 얻는 등, 해법을 찾아가면서 인간은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공 합성물과 같은 인간 동족이 만든 인공적인 문제에서 불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 자신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뻔히 예상하고 있고, 그래서 인간 대용 고묘한 함정을 만드는 장본인이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인공 합성물처럼 인간에 해로운 해법 자체가 없는 유해한 문제가 있다. 이에 인간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전에 겪어보지 못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고 있다. 도파민 보상 체계는 문제자체의 자격에 대해 의문을 품지 못하는 헛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문제가 눈 앞에 나타나면, 적절히 분별하지 못하고 앞뒤 가르지 않고 무조건 전념하는 습성을 보인다. 도박 중독 사례. 그리고 또한 절대 풀리지 않는 문제는 인간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으로 도파민 보상 체계를 교란하고 있다. 끝없는 갈망 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같은 것을 느끼면서 악의적인 문제에 너무나 무기력하게 노예처럼 한 없이 빠져들어 간다. 이건 인간이 인공적인 문제에 대한 대처 경험이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일까 정서 불안정 또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게임 중독 사례.

자연적이고 건강한 문제들로 건강한 식단을 꾸리기 위해선, 선천적으로 인간이 대처하지 못하는 결함을 인정하고, 대단히 권위적인 인간 친화적인 규칙을 만들어 그것을 철저히 따르는 길이 있다. 이 문제가 자연적인가 아니면 해법이 없는 악의적인 문제인가 하는 분별은 한 개인이 해낼 수가 없는 과분한 과제인 것 같다. 중독의 사회적인 도움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아바타를 통해 엄격한 사회 체제를 체험하는 셈

원신 같은 가챠 게임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게임이 종착을 맞이했다라는 느낌이 2년을 해도 전혀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 이유는? 엘든링, 몬헌은 끝판에 도달한 후에 머릿속의 게임 생각이 잠잠해진다. 그리고 그 후의 게임 플레이에도 미련이 생기지 않고, 유종의 미를 가둔다.

완성된 패키지 형태로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 콘솔 게임은 처음부터 끝판왕을 포함해서 판매하지만, 가챠겜은 절대로 끝판에 대한 언급이 없고,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하는 등,, 그러면 맨처음부터 내가,, 완성된 패키지만을 고집했더라면, 이런 스트레스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 그러니까 원신이 업데이트, 끝판왕을 업데이트한 후에 게임을 시작한다라.. 내가 처음부터 나 자신의 게임 플레이 환경에 대한 고집이 있었더라면, 여러 게임사들이 유저들을 홀대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의 초대 또는 불친절함에 나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엄격하게 대했더라면,,

무언가 답답하고 스트레스만 쌓여가는데, 이게 문제인지 게임의 플레이의 하나인지 영역이 모호하고, 의문을 품기에도 어렵다. 게임 플레이에서 답답하다 못해 무언가 아닌 것 같다는 부분,, 유저 권리가 아예 인정되지 않고 있는 게임 세계에서 노예처럼 구속되어 가더라도 그것을 게임 플레이의 하나로 착각하고 큰 문제 삼지를 않는다. 이 게임은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 나는 원래 차별, 각종 한정 기원의 고문, 강요되는 일일퀘 등 이 게임 세계는 원래 그런가 보다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원래가,, 내가 원래 다른 게임에서도 이런 처우를 받았었나 생각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나는 원래 게임을 시작하면, 무엇보다 게임사가 사료를 꾸준히 잘 지급하는지 체크하진 않았다. 생소한 개념으로 아직 정착되지 않았을 뿐, 유저를 막무가내로 대하눈 게임사들의 횡포도 그저 최근의 일,, 게임 시장은 무정부 상태로 유저 권리에 대한 개념조차 없지만,, 게임의 역사가 조금만 완성되어 간다면, 가챠 게임의 횡포는 하나의 본보기가 될지도

만약에 이 모든 불합리한 게임 환경 내에서도 엔딩을 꿈꿀 수가 있다면.. 어느 정도 게임이 진행되면 엔딩을 보고 싶은 마음에 갈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내가 처음에 이 게임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됨. 나는 게임을 현실과 다른 시간 동안 빠른 시일 내에 끝을 보여주는 현실의 본보기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게임 세계가 현실과 평행선을 그리면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면, 나는 평생에 걸쳐도 그 게임을 끝낼 수가 없으므로 그 게임 세계는 현실을 위협하는 또 다른 세계로써 혼란을 초래한다. 아마도 게임이 게임으로써 가치를 가지는 중요한 쟁점은, 현실과 다른 빠른 시간 내에 이야기가 끝이 난다는 점인 것 같다. 나는 이야기와 게임 등 여러가지 여가 활동을 그렇게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끝이 나지 않는 순간부터 조여오는 답답함, 초조함은 내가 처음에 이 놀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나는 방과 후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땅을 선을 긋고, 편을 가른 후에 정확히는 부모님이 문제삼지 않는 시간 안에 놀이를 끝마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이터에서 불량 친구들에게 억류되어 새벽까지 무모하고 방탕한 놀이를 실험할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으며, 그 놀이 가출 청소년의 일상이 되어버리는 파국까지는 꿈도 꾸지 않았다. 놀이는 처음부터 일상을 침해하지 않는 정도로 끝마침을 상정하는 활동이었다. 그렇듯 나는 언제까지고 게임만 하려고 게임을 시작하진 않았다. 게임 내의 시간이 현실과 평행하게 무한대로 흘러간다면,그것은 게임이 아니고 유사 현실 세계다.

동물처럼 사료를 받아먹는 행위,, 이것은 아무리 게임 세계의 논리라 하여도 문제가 있다. 구속,, 권리,, 인권,,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음에도 그것을 그저 게임 플레이의 하나로 치부하면서 문제삼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나는 아바타를 통해서 엄격히 자유가 통제되는 사회 체제를 체험하는 셈..

이제는 일하기 싫어서 마냥 시간을 허비하고픈 도피형 마인드로 게임을 시작할 수가 없다. 왜냐, 게임도 이제는 고도의 전략, 지능, 엄청난 수고를 요구하기 있기 때문,, 요새 게임들은 존나 빡쎈 해병대 캠프에 자처해서 지원하는 꼴로 게임 플레이 나날이 너무나 고단하다. 이래서야 재미를 추구하는 여가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발 좀 멍청하게 한 시간이라도 보내고 싶지만,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극성맞은 인간들의 희대의 걸작 앞에서 조마조마 숨조차 돌리기 힘들다. 존나 긴장하고, 존나 열성이어야 하고, 모래 한 알 한 알 세고 수집할 만큼 존나 완벽주의여야 한다. 그런 노력이라면, 사실 현실에서 고시 공부하는 게 걸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