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 단편 -선생이라는 자리.-

블루 아카이브 단편 -선생이라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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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라는 동물을 아니?

가시 때문에

서로 가까이 있고 싶어도

서로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는

슬픈 동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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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선생님! 선생님이면 선생님 답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하잖아요! 정말로 아이인가요?!"

샬레의 부실. 남색의 투 사이드업 머리와 남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 슈트. 조금 헐렁이는 하얀 후드를 걸치듯이 입은 소녀, 유우카가 목소리를 높히며 소리친다.

그 말을 들은 청년, 선생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어색하게 웃음을 흘린다. 그들이 있는 공간에는 다양한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고, 유우카의 말투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최근 바쁘다고는 하셔도 청소는 확실하게 하셔야죠! 이런 환경에서 일이 손에 잡히나요?!"

입으로는 계속 선생을 나무라지만 그녀의 손에는 이미 쓰레기봉투와 빗자루, 쓰레받이가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선생에게 넘기고는 새로운 빗자루, 쓰레받이를 들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도울테니까 바로 청소해요. 정말이지, 제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하셨으려고...."

유우카는 그대로 주변의 쓰레기와 먼지를 쓸어내며 청소를 시작했다. 선생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쓰게 미소를 지었다.

"늘 고마워, 유우카."

"네, 네, 고맙다면 입이 아니라 손을 움직여 주세요."

흘려듣는 듯이 그리 말하는 유우카. 선생은 그녀의 말대로 청소에 집중하기로 했다. 단 둘 뿐인 샬레의 부실이었기에, 두 사람이 말 없이 청소를 하자 적막함 만이 감돌았다.

"영수증은 왜 나오는 건가요? 제가 모르는 영수증인데, 혹시 저에게 숨기신 건가요?"

"으엑.... 유통기한이 일주일이나 지난 빵의 봉투...? 대체 언제부터 있던 쓰레기인가요?!"

"처음보는 피규어.... 선생님.... 또 몰래...."

물론 중간중간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들려오는 것은 선생을 꾸짖는 말과 변명, 사죄의 말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청소는 착실히 진행되어갔고, 꼼꼼한 유우카는 이미 쓰레기 봉투에 일반과 플라스틱, 캔 등 을 표기해 분리수거를 수월하게 진행하도록 손을 써두었다.

"그건 그렇고 전부 편의점 도시락 아니면 컵라면, 빵 뿐.... 밥은 제대로 챙겨드셔야죠. 이것도 몇 번이나 말했는데...."

가벼운 청소가 끝난 뒤, 쌓여있는 도시락 통과 라면 컵. 그리고 빵 봉투를 보며 유우카는 안타깝다는 듯이 다시금 선생을 나무랐다. 점점 선생을 어른이 아니라 아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한 유우카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챙겨드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했나요?"

"그래도 필요하다면 치우지 않았을까?"

"의문형으로 답하지 말아주세요."

짜증이 섞인 답변에 선생이 웃음을 흘린다. 시덥잖은 농담에 질린 듯, 유우카는 다시금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다른 학생들의 일에는 착실하게 대하면서 왜 자신의 일에는 이렇게 대충인건지...."

"학생들의 문제에 진지하게 임하는건 선생으로서 해야할 일이니까."

"청소는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이거든요."

다시금 시답지 않은 대화가 오간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서도 유우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입과 태도로는 선생을 꾸짖지만 유우카도 내심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어딘가 모자란 선생을 돌봐주는 것이 선생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기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약 선생이 착실한 생활을 하게 된다면 진심으로 안심하고 칭찬하겠지만 어딘가 아쉬워할 자신의 모습을 손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본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다. 이건 선생에게 하고 싶은 말 중 하나, 특별한 말에 속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걸 말할 때가 아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좀 더 그에게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말해줬으면 한다.

'네가 계속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알고있다. 이것이 얼마나 비겁한 짓인지를, 그를 사모하는 학생이 많다는 것은 물론, 일과 생활을 인질로 잡는 행위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둔감해빠진 눈 앞의 남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움직여 자신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런 행위에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과도한 참견으로 오히려 밉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우카는 항상 선을 넘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쓰고 있다.

화를 내더라도 항상 도와주거나, 잔소리 이상은 하지 않거나, 그런 식으로 유우카는 '결국에는 도와주는 참견쟁이' 정도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내 계산대로라면 이제 얼마 안 남았을텐데....'

그러나 이상하게도 선생에게는 연심은 물론, 의존 비슷한 반응마저도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유우카가 계산한 시나리오대로 라면, 지금 쯤 유우카에 대한 의존도는 매우 높아져 있을 터다. 하지만 선생은 의존은 커녕, 언제나처럼 장난만 칠 뿐이었다.

'이상하다.... 계산이 잘못되었나...?'

유우카는 자신의 계산이 틀렸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계산을 해온 유우카답게, 그녀는 곧바로 계산의 오류를 찾아나갔다.

다정함이 부족한가?

참견이 지나쳤나?

너무 챙겨줘서 엄마라는 느낌인건가?

혹은 미인계...?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지만 문제 해결로 이어질 공식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 미인계 마저도, 선생 주위의 학생들을 생각하면 정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선생님은 좋아하는 여자 타입이라던가 있나요?"

그렇기에 유우카는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물론 분위기를 깔고 물어보면 속내가 들킬 것이 뻔한 만큼 잡담과도 같은 분위기로 물어보았다.

청소가 끝나 여유로워진 샬레의 동아리실. 느긋한 티타임 속에서 흘러나온 유우카의 질문에 선생은 커피를 가볍게 홀짝이더니 가볍게 목소리를 흘렸다.

"흐음.... 글쌔? 그다지 생각해본 적 없는데? 갑자기 그건 왜?"

"선생님은 평소 여러 여자아이들과 노닥거리시니까요.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미리 파악해 두는 거에요."

선생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효율을 중시해, 모든 것을 계산하는 유우카에게는, 사랑마저도 계산을 통해 이루어진다.

고백한다고 해도 선생이 그것을 받아들일 확률이 불확실한 지금, 무리하게 밀어붙히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기에 유우카는 일부러 자신이 관심이 있어서가 아닌, 이타적인 이유라고 포장하며 선생의 속마음을 확인해 보기로 결정했다.

"내가 그렇게나 신뢰가 없었구나...."

"평소 행실을 생각해 주세요."

유우카의 말에 조금 섭섭한 듯한 말투로 그리 중얼거린 선생. 유우카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걸 내색하지 않고 완고한 자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렇게 물어도 취향이라던가 그런건 생각해 본 적 없단 말이지...."

"그럼, 지금까지의 불건전한 행실은 전부 취향도 아닌 아이들에게 했다는 건가요?"

"불건전하다니, 모두들 나의 소중한 학생들이야. 조금 장난을 치긴 했지만 불건전한 일은 없었어."

선생은 자신의 행동이 결코 불건전하지 않다며 부정했지만 유우카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 장난에 불건전함이 가득 담겨있으니 하는 말이잖아요."

"으윽...."

찔리는 일이 없지 않아 있었다. 행동적으로 불건전한 일은 없었지만, 가벼운 성희롱은 적지 않게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선생은 유우카의 말에 재대로된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뭐, 그래도, 확고한 취향이 없다면 지금까지 이상의 일은 일어날리가 없다는 걸까요?"

"아무리 그래도 선은 지키는데 말이지...."

선은 지킨다. 하지만 유우카의 말처럼 불건전한 일이 몇가지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반박을 하진 못하고 기어가듯이 중얼거리는 정도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조심하라는 거에요. 선생님의 행실이 다른 학생들 귀에 들어가기라도 했다간, 그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상담하는걸 주저할지도 모른다고요?"

"알았어. 주의할게."

"그 대답도 이미 몇 번이나 들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더이상 따져들면 미운털이 박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유우카는 한숨을 쉬며 꾸짖는걸 그만둔다. 그리고 문득,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슬슬 회의가 있는 시간이라는걸 깨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돌아가볼게요. 밀레니엄에서의 샬레 지원 건에 대한 서류는 선생님 책상에 놔뒀으니 확인해 두세요."

"응, 고마웠어."

"고마우면 성실하게 있어주세요."

유우카는 마지막까지 삐딱하게 대답하고는 샬레의 부실 밖으로 나갔다. 유우카가 나가고, 한동안 유우카가 나간 문을 빤히 바라보던 선생은 잠시 후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우카에게 미안한 짓을 했네."

선생은 나지막하게 그리 중얼거리더니 유우카가 놔둔 밀레니엄의 샬레 지원 서류를 가볍게 훑어보았다. 유우카나 히비키, 네루 등, 밀레니엄에서 샬레에 지원을 해준 인물들이 사용한 탄약의 수와, 그에따른 특이사항 같은 것들이 적혀있었다.

선생은 훑어본 서류를 내려놓고는, 책상의 서랍에서 추가로 다른 학교의 지원 서류들을 꺼내들었다.

각 서류에 적혀있는 내용들을 천천히 비교한 선생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그에따른 경비를 계산하고는, 유우카가 건내주었던 청구서 양식을 작성해 나갔다.

아까까지 유우카와 함께 있을 때 보여줬던 느긋하고 모자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진지하고 차분한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유우카가 지적해왔던 서류를 미뤄오는 행위를 비웃듯, 선생은 빠르게 모든 서류의 작성을 끝내버렸다.

그리고, 비교적 중요도가 낮거나 처리기간이 긴 서류들을 적당히 모아서 일부러 눈에 띄는 장소에 놔두었다. 이렇게 해두면 분명, 유우카는 다시금 이 서류들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도와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만, 그러면 유우카가 아쉬워하겠지."

모아보니 상당히 높히 쌓여버린 서류더미를 보며, 선생은 쓰게 웃고는 그리 중얼거렸다. 선생은 알고 있었다. 유우카가 자신을 챙겨주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챙겨주고 싶어하는 이유까지도....

하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해왔다. 그녀의 연심을 계속 외면해 왔다. 그리고 그건, 유우카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유우카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그걸 알고도 계속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선생이니까.

샬레는 모든 학교에 간섭을 할 수 있고, 학생들을 가입시킬 수 있는 특수한 동아리다. 그 특성상 얼핏보면 가장 자유로워보이는 동아리지만, 실상은 반대로, 가장 자유와는 거리가 먼 동아리다.

아무리 모든 학교에 간섭을 할 수 있다고 해도, 학교 간의 불화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게헨나와 트리니티가 있다.

만약, 선생이 둘 중 하나의 학교의 편을 들어준다면 다른 쪽 학교에 간섭을 하는 것은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적대관계인 학원의 편을 들어준 존재로 인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샬레라는 동아리 특성상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샬레는 키보토스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동아리. 그만큼 학생들이 샬레에 의지해줄 필요가 있었다.

만약 학생들이 샬레를 의지해주지 않는다면, 나아가 샬레를 적대하는 일이 생긴다면 샬레의 활동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

그렇기에 선생은 자유롭게 학생들과 필요이상의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억누를 필요가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해 누군가와는 멀어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선생이라는건.... 어른이라는건 뭘까...."

적당히 일을 마치고, 선생은 창 밖으로 보이는 키보토스를 내려다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직업으로서 선생을 하고 있고, 학생들에게 어른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른. 사전적인 의미로는 다 자라서 사회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과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세상에는 나이를 먹었어도 아직 사회적인 책임을 질 수 없을 듯한 사람이 수두룩하게 존재한다. 그렇다면 분명 나이는 어른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모는? 외모가 어른스럽다고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그것또한 아니다. 외모는 외적인 요소일 뿐, 그게 사회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 행동이 어른스럽다고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이 경우, 어른스러운 행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 행동이 어른스러운 행동이라면, 그 사회적인 책임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라는 걸까?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이를 먹고도 장난감을 좋아하고 학생들을 속이는 짓을 하는 자신이 어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선생은 아이들과 가까이 있고 싶다. 하지만 입장상 어느정도 거리를 둬야한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게, 누군가와 멀어지는 것이라면, 반대로 누구하고도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 누구하고도 멀어지지 않는 길일 테니까.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네, 나는...."

고슴도치 딜레마와도 같은 사고를 마친 선생은, 아무런 답도 내지 못하고 생각하기를 포기한 자신을 조소하며 그리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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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말해두지만 고슴도치는 가시를 마음대로 세우거나 눕힐 수 있어서 자기들끼리 찔리는 일은 없습니다!

선생을 이렇게 묘사한 이유는 작중 선생이 보인 모습이 진지와 가벼움이 오가는, 일관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진지한데 일부러 가벼운 척 하는건가?' 같은 생각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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