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원신元神과 식신識神
오직 생명 활동을 주재主宰하는 으뜸된 신[元神]만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는 참된 본성[眞性]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그 위에 있다.
그 정精이나 기氣라는 것은 하늘이나 땅을 따라서 썩거나 허물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지만, 생명 활동을 주재하는 으뜸된 신神이 그에 머물러 있게 되면 곧 무극無極이 이루어진다.
보통사람이 어머니의 태胎에 태어날 때에 그 생명 활동을 주재하는 으뜸된 신元神은 사방 한치 되는 곳[方寸]에 머물러 살게 되고, 의식意識의 신[識神]은 그 아래에 있는 심장心臟에 살게 된다.
[眞意]는 어찌하여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인가?
가장 묘하다는 것은, 빛이 이미 모여서 엉겨지고 뭉쳐져서 되고,
진리 그 자체인 몸[法身]이 차츰차츰 신령스럽게 통하면서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다.
위에 말한 것은 모두가 지금까지 몇 천 년이 지나도록 가르쳐 전하여 주지 아니하였던 비밀이다.
단丹을 이루는 길[丹道]에 있어서는, 정精이라는 수水와 신神이라는 화火와 뜻[意]이라는 토土, 이 세 가지를 위 없는 물로 삼는다.
정精이라는 수水는 무엇인가 하면, 다름아니라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고 참되고 하나뿐인 기[先天眞一之氣]이다.
신神이라는 화火는 곧 빛이다.
뜻[意]이라는 토土는 곧 가운데 궁궐 속에 있는 하늘의 중심이요, 하늘의 마음[天心]이다.
신神이라는 화火는 작용이 되고, 뜻[意]이라는 토土는 본체가 되고, 정精이라는 수水는 터전이 된다.
보통사람은 뜻[意]으로 인하여서 몸[身]을 낳는데, 몸이라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고 2미터도 채 안 되는 그 모습에 그치지 아니한다. 몸에는 넋[魄]이라는 것이 있는데, 넋은 의식에 붙어서 작용을 하게 되고, 의식은 넋에 힘입어서 생겨난다.
넋은 음陰하고, 의식[識]의 바탕이다.
의식은 끊임이 없으니, 생겨나고 또 생겨나고 한 세대世代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며, 넋의 모습이 바뀌어지거나, 그 넋이 몸담고 있는 그릇이나 그것을 이루게 되는 재료가 변하게 되는 일은 끝나지 아니한다.
오직 얼[魂]이라는 것이 있어서, 신神이 갈무리되어 있는 곳이 된다.
어떤 형태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넋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을 돌리게[回光] 되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얼[魂]을 불리게 되고, 신神을 보존하게 되면 넋[魄]을 눌러 놓게 되며, 의식[識]을 끊어버리게 된다.
옛 사람들이 세상을 벗어난 방법은, 음陰한 찌꺼기들을 모조리 불로 불려서 잡된 것 하나없이 순수한 양陽으로 이루어진 상태 곧 팔괘八卦 가운데의 건괘乾卦 상태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으며, 넋을 녹여 없애고 얼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었다.
빛을 돌린다[回光]는 것은 음陰을 녹여 없애고 넋을 눌러 놓는 방법을 가르킨 것이다. 순수한 양陽만으로 된 상태인 건괘乾卦의 상태로 돌아오는 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빛을 돌리는[回光] 방법만이 있을 따름이다.
빛은 곧 순수한 양陽만으로 이루어진 상태인 건乾이고, 그것을 되돌려 비춘다는 것은 곧 그것을 떠나갔던 상태로부터 되돌아오게 한다는 것이다.
오직 이 방법만을 지키고 있노라면, 저절로 정精이 가득 차게 되고, 신神이라는 화火가 피어 나오게 되고, 뜻[意]이라는 토土가 엉겨서 흩어짐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성스러운 태아[聖胎]가 맺힐 수 있게 된다.
얼[魂]은 하늘의 중심[天心]에 있게 되는데 양陽하고 가볍고 맑은 기氣이다.
이것은 텅 비고 고요한 우주의 근원[太極]으로부터 온 것인데, 우주에서 가장 으뜸이며 근원이 되는 창조주[元始]와 같은 모습이다.
넋[魄]은 음陰하고 무겁고 탁한 기氣인데, 모양·모습이 있는 모든 생물의 육체에 붙어 있다.
얼[魂]은 살기를 좋아하고, 넋[魄]은 죽기를 바라는 성질이 있다.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色]을 좋아하여 움직이는 모든 기氣는 모두가 넋[魄]이 그렇게 하는 바이다.
다름 아니라 의식의 신[識神]인 것이다.
붙어 있던 생물이 죽은 뒤에는 피로 된 음식을 받아 먹는데, 되살아나는 경우에는 음陰한 것들이 음陰한 것에게로 돌아가서 같은 것끼리 뭉치게 되기 때문에 아주 큰 불행이 일어난다.
배우는 사람은 그 정精과 기氣와 신神을 불리는 과정에서 이 음陰한 넋[魄]을 모조리 불태워 없애 버리면, 곧바로 잡된 것 하나없이 순수한 양陽으로 되는 것이다.
?제3장 회광수중回光守中
빛을 돌게 하면, 하늘과 땅의 음陰하거나 양陽한 기氣가 모두 모여서 엉기지 아니함이 없게 된다.
이른바 깔끔하고 세밀하게 깊이 생각한다는 것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고,
기氣를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하도록 순수하게 한다는 것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려보는 생각[想]을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하도록 순수하게 한다는 것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해가 떴다가 지기를 백 번 거듭하는 동안 오로지 이 일만을 하게 되면,
그제야 빛이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와 같이 참답게 된다. 이렇게 된 뒤에야, 그 빛이 신령한 불[神火]이 되고, 바른 생각[正念]을 이루게 된다.
위와 같이 배우고 닦으면서 해가 떴다가 지기를 백 번 거듭하고 나면, 빛이 저절로 모여들고 그 가운데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으며 참으로 양[眞陽]한 어떤 하나의 점이 저절로 갑자기 생겨나오는데, 마치 기장쌀 알맹이 같은 구슬이다. 부부가 서로 합하면 아이가 생겨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땅히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히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빛이 돌면 몸 속에 있는 불[火]이 운행을 하는데, 마치 해가 운행을 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기듯, 빛이 되돌려 비추는 곳에 따라서 몸 속의 불[火]이 운행하면서 여러가지 정황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빛의 돌아감이 곧 몸 속의 불[火]이 엮어내는 계절[候]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금꽃[金華]를 피우기 위한 길은 모든 것을 거꾸로 거스르는 방법을 쓴다. 빛을 돌린다[回光]는 것은, 한 사람의 몸에 있고 뛰어나고 훌륭한 광채[精華]를 돌린다는 것만이 아니고, 곧바로 우주 자연의 운행 변화를 일으키는 그 선천先天의 참된 기[眞氣]를 돌린다는 말이며, 그때그때 일어나는 헛된 생각을 한때 그친다는 것만이 아니고, 곧바로 천겁 동안이나 돌고 돌 윤회輪廻를 그쳐서 빌붙을 바 없는 공空을 이룬다는 것이다.
통틀어서 말하면, 사이사이에 끊어짐이 없이 계속하는 것을 훌륭하다고 하며, 끊임이 없으면 묘한 보람이 저절로 생겨나게 마련이다.
실제로 배우고 익히는 일[工夫]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一]라는 글자에 달려 있다.다만, 그렇게 한결같이 하나를 지켜 내고 있노라면, 저절로 차가운 느낌도 오고 더운 느낌도 겪게 되는데[冷暖自知], 그러한 경지나 느낌이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눈앞에 나타나는 하늘은 텅 비어 있고, 바다는 드넓어져서, 모든 존재나 이치[萬法]가 하나같이 하나같아지고 평등해지느냐[如如]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바라던 바를 얻었다고 할 수가 있다.성인聖人에서 성인으로 서로 전하여 내려온 것은 되돌려 비추는 방법[反照] 아닌 것이 없었다.
공자孔子는 "지혜에 이른다"[致知]라고 말하였고,
석가釋迦는 "마음을 살핀다"[觀心]라고 말하였고,
노자老子는 "안으로 살핀다"[內觀]라고 말하였는데,
그 모든 것이 결국 이 방법이었던 것이다. 다만, 되돌려 비춘다[反照]는 용어를 사람마다 말로는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서 실제로 얻지를 못한다면, 이 용어의 뜻을 참으로 알았다고는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되돌린다[反照]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서 가지고 있으면서 대상對象을 알고 깨닫는 능력[知覺]이 되는 마음 상태로부터 육신의 모습[形]과 그 신神이 아직 드러나기 이전인 사람으로서의 최초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이 여섯 자밖에 안되는 육신 가운데에서 하늘과 땅이 아직 생겨나기 이전의 본바탕을 되찾는다는 뜻이다.
눈길이 이르는 곳에는 마음이 또한 이르고, 마음이 이르는 곳에는 기氣도 또한 이른다.
"헛된 모든 생각을 그치고[止] 비추어 살핀다[觀]"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인데, 원래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뜻을 부어가면서 두 눈으로 코끝을 살피듯이 보며, 몸을 바르게 하여 편안하게 앉아서, 마음을 이끌어다가 연중緣中이라는 곳에다가 매어 두는 것이다.
도가道家에서는 단전丹田 즉 중황中黃이라고 하는 것을 불가佛家에서는 연중緣中이라고 하지만, 결국 같은 하나이다. 그리고 반드시 머리의 가운데에다가 생각을 매어 두어야 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고, 다만 두 눈의 가운데로서 편편한 곳인 이른바 선천조규先天祖竅라는 곳에다가 생각[念]을 매어 두면 되는 것이다.
헛된 생각을 그치고[止], 그것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노라면, 비추어 살피는[觀] 경지가 이루어지고, 비추어 살피는 경지에 이르러서[觀], 그것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노라면, 헛된 모든 생각이 그쳐지게[止] 된다. 이러한 이치가 곧 "마음을 흩어짐없이 한곳에 머물러서[定], 슬기의 빛이 조용히 비치게 함[慧]을 함께 닦는다[雙修]"는 가르침이 된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빛을 돌린다"[回光]는 것이 되는데,
돌린다[回]는 것은 헛된 모든 생각을 그친다[止]는 것과 같은 내용이고,
빛[光]이라는 것은 비추어 살핀다[觀]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생각을 그쳤다고 하는데[止], 비추어 살핌이 되지 아니하면, 돌리는 일[回]은 하고 있으나 빛[光]이 없다고 말하고, 비추어 살피는 일[觀]은 하고 있으나 헛된 생각이 그쳐지지[止] 아니하였으면, 빛[光]은 있으나 돌리는 일[回]은 없다고 말한다. 잘 알아두기 바란다
?제4장 회광조식回光調息
배우고 익힘에 있어서 가장 으뜸이며 핵심이 되는 내용은, 다만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한 순수한 마음만으로 실천하여 나가는 것일 뿐이다. 여러 가지 효험이 일어나지만 그것은 얻으려고 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다.
크게 몽뚱그려서 볼 때, 처음 배우고 익히는 경우에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 것은,어두움 속으로 깊이 빠져 버려서 정신이 없게 되는 것[昏沈]과 이 생각 저 생각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어지럽게 흩어지는 것[散亂], 두 가지라고 할 수가 있다.
이러한 잘못을 물리치고 나면, 하늘의 비밀을 열어 볼 수 있는 어떠한 구멍[竅]이 생기게 되는데,그렇게 되기 위하여서는 마음[心]을 숨[息]에 함께 붙어 있도록 하는 수밖에는 없다.
숨[息]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며, 스스로의 마음은 숨[息]이 되고 있는 것이다.마음이 한번 움직이면 곧 기氣가 생기게 되는데,그 이유인즉, 기氣라는 것은 본래 마음이 변화하여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사람의 생각은 그 움직임이 지극히 빨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의 헛된 생각[妄念]이 생겼다가 사라지는데, 그러는 과정에 한 번의 호흡呼吸이 그에 따라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속에서 일어나는 호흡[內呼吸]과 밖에서 일어나는 호흡[外呼吸]은 마치 사람의 목소리와 메아리가 서로 따르는 것과 같다.결국, 하루에 몇만 번의 숨[息]을 쉬니, 그 자체로써 몇만 번의 헛된 생각[妄念]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와 같이 흘러서, 내면 세계의 밝음을 유지하는 정신[神明]이 다 새어나가 버리면, 마치 나무가 죽어서 마르는 것과 같고, 불 꺼진 재가 싸느랗게 식는 것과 같아진다. 그렇다고 생각[念]이 없어지기를 바라겠는가?
생각[念]을 없앨 수는 없다.
또한 숨[息]이 없어지기를 바라겠는가?
숨[息]도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결국, 그러한 병病을 일으키는 얼개 자체가 바로 약藥으로 될 수 있음을 알아서 그렇게 되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름아니라, 마음과 숨이 서로 붙어서 의존하는 일[心息相依]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빛을 돌리는 일[回光]은 반드시 숨을 고르는 일[調息]과 함께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데,그 방법은 처음부터 끝가지 귀의 빛[耳光]이라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빛을 이용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하나는 눈의 빛[目光]이라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귀의 빛[耳光]이라는 방법이다.눈의 빛[目光]이라는 것은 바깥에 접해 있는 해[日]와 달[月]이 그 빛을 서로 어우르는 것이고, 귀의 빛[耳光]이라는 것은 속에 있는 해[日]와 달[月]이 그 정精을 서로 어우르는 것이다.
그런데 정精이라는 것을 다시 말하면 빛[光]이 엉겨서 한곳에 머물러 있는 장소이고, 같은 뜻인데 이름만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귀로는 잘 듣고[聰] 눈으로는 잘 보는[明] 것을 통틀어서, 그 모두가 하나의 신령한 빛에 지나지 아니한다.
마음을 흩어짐 없이 한곳에 머물게[定心] 하려면, 반드시 그보다 먼저 기氣를 길러야[養氣]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역시 마음을 가지고는 처음으로 손을 대서 시작할[入手] 곳이 없으므로, 기氣로 말미암아서 그 실마리를 삼는 것이다. 이른바 잡된 것 없이 순수한 기[純氣]를 지켜낸다는 것이다.
그대들은 '움직인다'[動]는 용어의 뜻을 밝게 알지 못하고 있는데, 움직인다[動]는 것은 끈으로 묶어 당겨서 움직이게 한다는 말이니, 결국 '끌어당긴다'는 용어의 별명別名에 해당한다.
한결같이 마음을 그곳에 쏟아 붓는다.
마음이 그 속으로 들어가면 기氣도 들어가게 되고,
따뜻한 기운을 얻어서 알이 깨어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암탉이 가끔씩 둥지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더라도 변함없이 알 속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서, 그 신神을 쏟아 붓는 바에는 조금도 틈이 생기지 아니하게 한다.
신神을 쏟아 붓는 바에 조금도 틈이 없게 하니, 따뜻한 기운도 역시 밤이나 낮이나 틈이 없게 된다.
신神이 살아 있는 것이다.
신神이 살아나기 위하여는 먼저 그 마음이 죽어 버려야 한다.
사람이 마음을 죽여 버릴 수 있으면, 그 자리에서 그 사람 전체를 주재主宰하는 가장 으뜸된 신[元神]이 살아난다.
그런데 마음을 죽여 버린다는 것은 나무가 말라 죽듯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마음을 오로지 하나로 모아서[專一] 나누어지지 아니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한곳에 놓아 두고, 무엇이든 일삼지 말고, 무엇을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말라"[置心一虛, 無事不辨]고 말씀하셨다.
어두움 속으로 깊이 빠져 버려서 정신이 없게 되는 것[昏沈]과 이 생각 저 생각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어지럽게 흩어지는 것[散亂]이라는 두 가지 잘못이 있는데, 그 두 가지 잘못은 오직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히 하는 일[靜功]에 의하여서만 고쳐진다.
어두움 속으로 빠지지 않도록 잠을 끊어 버리는 방법은 오직 호흡을 고르는 일[調息]에 달려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호흡[息]은 입과 코로 나가고 들어오는 호흡을 말한다 .비록 태어나기 이전부터 쉬고 있던 상태와 같은 참다운 숨[眞息]은 아니지만, 그 참다운 숨이라는 것도 역시 이 입과 코로 쉬는 호흡에 붙어 있는 것이다.
마음과 기氣를 닦는 일을 배우고 익히는 경우에는 언제나 반드시 마음의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히 하여야 하며, 기氣를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하고 순수하도록 하여야 한다.
귀에 그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면 가늘어지고[細], 가늘어지면 맑아지는데[淸],
거꾸로 소리가 들리면 기氣가 거칠어지고[粗], 거칠어지면 흐려지고[濁],
흐려지면 곧 저절로 어두움 속으로 빠져 들어가서[昏沈] 잠이 오게 마련이다.
눈은 오직 안으로만 보고[內視] 바깥을 보지[外視] 아니한다.바깥을 보지 아니하면서도 말똥말똥하게 깨어 있는 것이 곧 안으로만 보는 것[內視]이 되고,실제로 몸 속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5장 회광차류回光差謬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의 경지에 차츰차츰 잡된 것이 없어지고, 속속들이 익어가게 되면, 겉보기에 마치 마른 나무나 바위같이 앉아만 있을지라도, 그 나아가는 앞에는 옆길로 빠지거나 벼랑으로 떨어질 일들이 많이 놓여 있으므로, 참으로 자세하고 자세하게 알려주어야만 한다.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함에 들 때에는 반드시 하늘이 비밀로 하고 있는 어떤 기틀을 얻어내야 하고, 그 기틀에로 들어갈 수 있는 어떤 구멍[竅]를 얻어내야 한다. 그냥 할 일 없이 마치 거북이가 등껍질 속에 들어가 있듯이 앉아만 있어서는 아니된다.
이른바 선善이다 악惡이다 라고 말할 수 없고 아무 곳에도 빌붙을 바 없는 텅 빔[無記空]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연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말똥말똥 깨어 있으면서 저절로 일어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어떤 뜻[意]를 일으켜서 어떤 현상이나 일을 맡고자 하여서는 아니된다.
무릇 참다운 것만을 지나치게 인정하게 되면 이러한 결과로 되는데, 그렇다고 참다운 것만을 인정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참다운 소식[眞消息]은 그것이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若存若亡] 사이에 있는 것이어서, 뜻[意]이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말똥말똥하게 깨어 있어서 어두움에 빠지지 아니한 가운데,
모든 인연을 내려놓고 저절로 일어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인연 따라 생겨나는 헛된 세계[蘊界]에 떨어져서도 안 된다.
이른바 인연 따라 생겨나는 헛된 세계라는 것은, 다섯 가지 음陰한 마魔가 맡아서 좌지우지하는 세계이다.
?제6장 회광징험回光徵驗
뿌리가 얕고 그릇이 작은 사람에게는 맡길 수 없는 것이니,
반드시 중생衆生을 모두 건질 생각을 일으킨 사람이어야 하며,
교만하고 가벼운 마음이나 조그마한 것에 만족하는 게으른 마음에게는 맡길 수 없는 것이므로, 반드시 스스로를 낮추어 청하고 배우고, 스스로 실천하는 사람에게만 이 말을 하여 주어야 한다.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한 가운데 가늘고 길게 끊어짐이 없으면, 신神이 기쁘고 즐거워져서 마치 술에 취한 듯하고 따뜻한 물 속에 푹 담겨 있는 듯하다.
이렇게 되면 온몸이 양陽으로 조화되고, 황금 꽃[金華]이 갑자기 토해져 나온다.
모든 것이 이미 생기고 없어지고 하는 변화를 떠나서 함께 고요하게[寂] 되고 나면, 밝은 달이 하늘 가운데에 떠 있고, 온 누리가 모두 함께 빛나고 밝은 경계[回明境界]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경지가 되면 마음과 몸이 밝아지기 시작하니, 황금 꽃[金華]이 막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제일 첫째 단계는 『관경(觀經)』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해가 떨어지고, 큰물이 흐르며, 나무들이 쭉 늘어선 것과 같은 이치의 모습[日落大水 行樹法象]이다.
해가 떨어진다[日落]는 것은 음陰과 양陽이 나누어지기 이전 상태인 소용돌이[混沌]로부터 터전을 세우는 것이니, 무극無極인 것이다. 큰물이 흐른다는 것은 높은 선[上善]은 마치 물[水]과 같아서 맑고 흠이 없음을 말하는데, 이러한 경지는 태극太極이 주재主宰하는 경지이다.
솟아오르는 해요 동궁東宮을 막 나온 황제와 같은 경지로 되는데, 동쪽을 뜻하는 진震을 오행五行으로 나누면, 목木 즉 나무에 속하므로, 쭉 늘어선 나무[行樹]라는 말로써 상징하였던 것이다. 『아미타경』에 나오는 '일곱 겹으로 늘어선 나무[七重行樹]요, 일곱 구멍에서 나오는 빛의 밝음[七竅光明]이라는 것이다.
다시 설명하면, 후천팔괘도後天八卦圖에서 서북쪽은 건乾괘의 방위인데, 한 자리를 옮겨가서 감坎괘의 자리로 되니, 해가 떨어지고[日落] 큰 물이 흐른다[大水]는 것은 건乾이 감坎으로 되는 모습과 같은 것이다. 감坎은 자子라는 방위이며 동지冬至에 해당하는데, 이때에는 천둥[雷]이 땅속에서 잔뜩 웅크리고 힘찬 세력을 감추고 있는 때이다. 떨어졌던 해가 진震괘의 방위 곧 동방에 이르러서야 그 밝은 습[陽]이 비로소 땅 위로 나오게 된다. 이러함이 마치 열을 지어 쭉 늘어서 있는 나무[行樹]와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배우고 익힘에 들어서 앉아 있노라면 신神이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서,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마치 몇 리나 떨어져 있는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하게 듣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또렷또렷하게 들린다.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모두 마치 깊은 산골짜기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 소리 같지만, 조용히 하고 있으면 아닌 게 아니라 들린다. 들리기는 하지만 내가 일찍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이다. 이러한 효험은 신神이 골짜기 가운데에 들어가 있기 때문인데, 그때그때 스스로 경험하여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함에 들어 있는 가운데에 눈의 빛[目光]이 높이 높이 올라가고, 눈앞에는 온통 흰 빛으로 꽉 차서 마치 구름 가운데에 들어 있는 듯하다. 눈을 떠서 나의 몸을 찾아보아도 찾아서 볼 곳이 없어진 상태이다. 이러한 것을 두고 "텅 빈 방에 흰 빛이 생긴다"[虛室生白]고 말한다. 안과 밖이 서로 통하여 밝고 길하고 상서로운 일들이 가득하고 또 가득하다.
또 하나는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함에 들어 있는 가운데에 몸뚱이가 마치 솜뭉치 같고 옥돌 같으면서, 그 몸뚱이에 우주의 근본을 이루는 기운이 왕성하다. 앉아 있는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고 하여도 머무를 수가 없고, 위로 둥둥 뜨곤 한다. 이러한 상태는 신神이 맨 꼭대기의 하늘[頂天]로 돌아간 경지이다. 그러한 상태가 오래도록 끊임없이 일어나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일도 어렵지 않게 곧 이루어지리라고 기다려 볼 수 있다.
이상의 세 가지는 모두 현재 경험하여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역시 말만으로는 그 느낌을 다 전달할 수 없는 것이고, 사람마다 심어 놓은 전생前生의 뿌리와 타고난 그릇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마치 『지관론止觀論』가운데에서 말하고 있는바 "전생前生에 착한 씨앗을 뿌려서 이루어진 착한 뿌리는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善根發相]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이 일은 마치 사람들이 물을 마셔보고, 그것이 찬지 더운지를 스스로 알게 되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몸소 경험하여 믿게 된 다음에야 참다운 것이 된다.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어 온 하나의 기[先天一氣]가 그 자체로서는 눈앞에 나타나는 확실한 경험을 하노라면,저절로 "이것이 무엇인가?"하는 의심을 가지고 따져보게 된다.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어 온 하나의 기[先天一氣]를 얻게 되면, 단丹도 역시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크기는 겨우 기장알만하지만, 진리의 세계에 있는 한 알의 참다운 황금 구슬[黍珠]이다.
한 알 또 한 알씩 모아서,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상태로부터 아주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는 상태로까지 이른다. 그때 그때의 경우에 해당하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어 온 하나의 기[先天]'가 있는데, 한 알의 기장알만한 황금 구슬이 그것이고, 본바탕을 통틀어서 거느리는 '하늘과 땅이 구별되기 이전부터 있어 온 하나의 기'[先天]가 또한 있는데, 그것은 한 알의 알갱이일 수도 있지만 그에 그치지 아니하고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상태[無量]에까지도 이른다.
한 알의 알갱이에는 한 알의 알갱이로서의 능력의 크기가 있는 것인데, 그 능력의 크기를 본바탕을 통틀어 거느리는 경지의 헤아릴 수 없는 크기[無量]로까지 키우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사람에 따라서 그가 지니고 있는 얼의 크기를 가장 첫 번째로 키워야 하는 것이다.
?제7장 回光活法
내가 바른 생각[正念]을 가지고 나에게 닥쳐오는 일들을 다스려 나간다면, 빛은 사물에 영향을 받아 굴러가지 아니하고, 빛 그 자체로서 스스로 돌게 된다. 이러한 것을 그때그때 알맞게 응하되, 어떠한 모습에도 한정됨이 없이[無相] 빛을 돌리는 일이라고 한다.
맑은 새벽에, 나에게 작용하는 모든 환경과 조건을 털어 버리고, 변화와 움직임을 여읜 채로 조용히 두세 시간 앉아 있을 수 있다면, 그 이상 훌륭한 일은 없다.
모든 일거리에 응하고 물건에 부닥치게 될 때에는, 오직 빛을 돌이켜 내면의 세계를 되비추는 가르침을 이용할 뿐인데, 그렇게 하면 한 순간도 틈이 생기거나 끊어짐이 없도록 된다.
이와 같이 그 가르침을 배우고 익혀 나가기를 두세 달 하게 되면, 하늘 위에 있는 모든 진인[眞]들이 반드시 내려와서 나의 배우고 익힘이 잘못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여 준다.
?제8장 소요결逍遙訣
원시천존原始天尊이 살고 있다는 옥청궁玉淸宮으로부터 여유있고 한가롭게 배우고 익히는 법이 내려왔는데 다음과 같다.
저절로 그러한 대로 놔두고 인위적인 요소를 없애며 배우고 익혀서[無爲而爲],
신神을 엉겨 모이게 하여[凝神] 기혈氣穴로 들어가서,
한여름[六月]에도 갑자기 흰 눈이 날리는 것을 보게 되고, 한밤중[三更]에도 둥근 해가 이글거림을 보게 되거든, 물 속에서도 숨을 쉬면서 거센 호흡[巽風]과 눈빛의 힘을 빌리고, 하늘 위로 헤엄을 치듯 돌아갔다가, 다시금 내려와서,
유순하고 모든 것을 싣고 있는 땅의 공덕으로 먹여 키우라[食坤德].
아직도 한마디 아주아주 우리의 가르침에 맞으면서도 훌륭한 곳[玄中玄]이라는 말이 있으니, 세속의 티끌과 번거로움이 없고 텅 빈 그 곳[無何有鄕]이야말로, 영원한 진리와 통하는 나의 집[眞宅]이다.
진리를 이루는 큰 방법의 요점은, 저절로 그러한 대로 놔두고 인위적인 요소를 없애며 배우고 익힌다[無爲而爲]는 네 글자에서 벗어나지 아니한다.
저절로 그러한 대로 놔두고 인위적인 요소를 없애므로, 어떤 방법이나 장소나 모양, 모습에 의하여 가로막히지 아니한다. 저절로 그러한 대로 놔두고 인위적인 요소를 없애며 배우고 익히므로, 겉모습으로만 조용함에 들어서 어리석은 공[頑空]이나 생명없는 허망[死虛]에 떨어지는 일이 생기지 아니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는 작용은 하나의 중中이라는 글자 밖에 있지 아니한데, 여닫이 문의 지도리처럼 가장 중요한 핵심은 두 눈에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두 눈이라는 것이 마치 하늘에서의 북두칠성의 자루[斗柄)와 같은 것이다.
무릇 '빛을 돌린다'[回光]는 것은,
우리가 따르는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 전체를 통틀어서 일컫는 용어이다.
배우고 익힌 경지가 한 층씩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빛[光華]의 밝기가 한 차례씩 커지고, 그 빛을 돌리는 방법도 한 차례씩 거듭 묘해져 나간다.
앞에서는 밖에서부터 배우고 익힘으로 말미암아 안쪽의 세계를 눌러 다스리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안으로 들어가서 가운데에 자리잡고 살면서 밖의 세계를 거느리는 것이다.
모든 연분[緣]을 내려놓아 버려서 실 한 오라기도 걸려 있지 아니한데,
하늘의 중심[天心]이 가운데의 바른 자리에 자리 잡게 한 뒤에, 두 눈을 내려 떠서 발을 내린 듯이 한다.
마치 임금의 뜻을 받들어서 높은 신하들을 불러들이는 것과 같으니, 감히 어느 신하가 달려오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런 다음에, 두 눈의 초점을 이끌어서 안으로 단전[坎宮]을 비춘다.
빛[光華]이 이르는 곳에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던 참다운 양[眞陽]이 나타나서 그에 응한다.
같은 종류끼리는 반드시 가까워지게 되어 있으므로, 명命을 상징하는 감坎이라는 괘卦의 가운데에 있는 양陽이 위로 올라가게 된다. 이와 같이 위로 올라가게 되는 양陽은, 본바탕이 되는 곤坤괘의 속으로 건乾괘에서 하나의 양[一陽]이 들어와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본래 감坎괘의 양陽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나 건乾괘의 양陽이 건乾괘의 양陽에 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離괘 가운데의 음陰과 감坎괘 가운데의 양陽이라는 두 물질이 한번 만나게 되면, 곧 서로 묶어지고 맺어져서 흩어지지 않게 되고, 우주 자연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은 기운이 가득 차서 살아 움직이는데, 아주 빠르게 왔다갔다 오르락내리락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가 한다.
나 스스로의 단전[元宮] 가운데가 마치 우주의 태초처럼 크게 텅 빈 듯하고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이 커진 듯하여서 어리둥절하게 되며, 온몸이 가볍고 묘하여져서 막 날아오르려고 한다.
이른바 온 누리의 산허리에 구름이 꽉 들어차 있는 모습[雲滿千山]이라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오고 가는 발자취가 없어지고, 뜨고 가라앉는 구별이 없어지며, 맥박이 멈추고 기氣의 운행이 멈춘다.
이러한 상태를 두고, 참으로 서로 어울려 합쳐졌다고 한다.
이른바 온 누리의 물에 달이 담겨 있다[月涵萬水]라는 것이다.
그때에는 당연히 어둡고 어두운 상태인데, 그 어두운 가운데를 지키고 있노라면 문득 하늘의 중심[天心]에서 한 차례 움직임이 있게 된다. 이것이 곧 하나의 양陽이 다시 찾아오는 것[一陽來復]이며, 양陽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자시[活子時]라는 것이다.
그가 움직이면[動] 다른 것들이 그와 더불어 함께 움직이는데[動], 이와 같이 움직일 때에는 상단전上丹田을 의미하는 '하늘의 부리'[天根]에 근거하고, 그가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靜] 있으면 다른 것들도 그와 더불어 함께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靜] 있는데, 이와 같이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있을 때에는 단전丹田을 의미하는 '달이 숨어 있는 굴'[月窟]에 숨는다. ?天根月窟44
모든 것을 그치고 한가롭게 쉬는 것[休息]은 위와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나도 또한 나를 주재하는 하늘의 임금[天君]과 더불어 위와 아래의 단전丹田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을 그치고 한가롭게 쉰다[休息].이른바 하늘의 뿌리[天根]와 달이 숨어 있는 굴[月窟] 사이를 아무런 꾸밈없이 한가롭게 오고 간다는 것이다.
[天根月窟閑來往].
하단전下丹田을 의미하는 천심天心이 가라앉아서 조용한 상태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뜻이 움직여서 그 시기를 어기게 되는 경우를, 너무 어린 것을 캐려고 하는 잘못이 있다고 한다.
하단전下丹田을 의미하는 천심天心이 이미 움직인 뒤에 나의 뜻이 움직여서 그것에 응하고자 하는 경우를, 너무 늙은 것을 캐려고 하는 잘못이 있다고 한다.
하단전下丹田을 의미하는 천심天心이 한번 움직이려고 할 때에, 지체없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나를 주재하던 참되고 무의식적인 뜻[眞意]을 대뇌大腦의 건乾이라는 궁궐로 올라가 있게 하고, 신神의 빛으로 하여금 정수리를 보도록 하여서, 그 움직인 것을 이끌어 올린다. 이것이 바로 움직임이 있을 때에 정확하게 그 시기를 맞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서, 하단전下丹田[天心]에서 움직이던 단丹이 이미 건乾이라는 궁궐로 올라가 있게 되면, 물 속에 둥실 떠 있는 듯하고, 스스로 "이제는 되었다" 하고 만족해 하며, 갑자기 모든 변화를 여의고 고요해 지려고 한다.
이때에는 재빨리 태어나기 이전부터 나를 주재하던 참되고 무의식적인 뜻[眞意]으로써 그 단丹을 이끌고 내려와서 중단전中丹田을 의미하는 황정黃庭에 들어가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는 눈빛으로 단전丹田을 의미하는 중황中黃에 있는 신神의 방[神室]을 본다.
이미 모든 변화를 여의고 고요해지려고 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 이 경지에 이르면 한 생각도 생겨나지 아니한다.
그러니 내면의 세계를 보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이러한 때가 되면, 몸과 마음이 한마당 크게 놓여 버리고, 모든 연분이 자취도 없어지고 마는 경지로 되어서, 이제까지 나의 하단전下丹田과 상단전上丹田의 신神의 방[神室]에 차려 놓고서 불을 때고 단丹을 불리던 화로[爐]와 솥[鼎]조차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된다. 나의 몸을 찾아보려고 하여도 그렇게 되지 아니한다.
이러한 경지를 두고, 하늘이 땅속으로 들어간 경지[天入地中]요,
모든 훌륭하고 묘한 것들도 그 뿌리로 돌아간[衆妙歸根] 때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신(神)을 엉겨 모이게 하여, 하단전下丹田을 의미하는 기氣의 구덩이[氣穴]에 들어가게 하여 봉하여 두는'[凝神入氣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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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돌리는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하나로 묶어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흩어진 것들을 거두어들이려고 하는 과정으로서, 사람의 여섯 감각기관을 사용하는 일을 하지 아니한다. 이 과정을 두고 사람의 본래 타고난 근원[本源]을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를 기르듯 기르는 과정[涵養本源]이요, 등잔에 기름을 다시 채워서 꺼져가는 불꽃을 다시 살려내듯이 명命을 잇는 과정[涵油接命]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미 거두어들여진 것들은 저절로 아무런 말썽도 일으키지 아니하고 한가롭게 모여 있으니, 깃털 하나 들어 올릴 힘조차도 쓰게 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두고 사람이 비롯된 근원을 이루는 기氣가 들어 있는 구멍을 의미하는 단전에 신神이 편안히 있는 과정[安神祖竅]이요,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들을 거두어들여서 모아 놓은 경지[翕聚先天]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미 그림자나 산울림 같은 것들이 모두 없어져 버리고 나면 마음이 쓸쓸할 정도로 고요하면서 흩어짐 없이 한곳에 크게 머무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두고 마음이 단전丹田을 의미하는 기氣의 구덩이[氣穴]에서 겨울잠을 자듯이 웅크려 감추어져 있는 경지[蟄藏氣穴]요, 여러가지 훌륭하고 묘한 것들이 모두 그것이 자라나온 본래의 뿌리로 들어간 경지[衆妙歸根]라고 한다.이러한 빛을 돌리는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하나의 마디 가운데에 세 가지 마디가 갖추어져 있다.
그 '사람의 본래 타고난 근원을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를 기르듯 기르는 과정'[涵養]에 들어서 처음으로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한[靜] 때가 되면,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들을 거두어들여서 모아 놓은 일[翕聚]도 역시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를 기르듯 기르는 일[涵養]로 되고, 마음이 단전丹田을 의미하는 기氣의 구덩이[氣穴]에서 겨울잠을 자듯이 웅크려 감추어져 있게 하는 일[蟄藏]도 역시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를 기르듯 기르는 일[涵養]로 되어 버리고, 뒤에 이르면 그러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를 기르듯 기르는 일[涵養]이 모두 마음의 단전丹田을 의미하는 기氣의 구덩이[氣穴]에서 겨울잠을 자듯이 웅크려 감추어져 있게 하는 일[蟄藏]인 것이다.
그렇게 되는 가운데에 들어 있는 한 층의 과정은 그러한 이치로부터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있는 장소[處]를 바꾸지 아니하면서도 그 있는 장소가 여럿으로 나누어지니,
이러함을 두고 모습없는 구멍[無形之竅]이라고 한다.
천개 만개 장소[處]가 결국 하나의 장소[一處]이다.
그 해당하는 시간[時]이 변경되지 아니한 채로 시간이 나뉘어지니, 그것들 두고 어떠한 시간적인 마디를 나눌 수 없는 시간[無候之時]이라고 한다. 태초에서 하늘과 땅이 갈라질 때로부터 시작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돌고 돌게 되는 시간의 큰 마디 작은 마디들[元會運世]이 결국 하나의 순간인 것이다.
무릇 마음은 더 이상 조용할 수 없을 정도까지 변화와 움직임[動]을 여의고 조용해지지[靜極] 아니하면 움직일 수 없는 것인데, 움직이고 움직여서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본래의 바탕[本體]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나 물질을 느껴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성性에서 피어나온 욕심[欲]이라고 한다.
만약 어떠한 일이나 물건[物]에도 느껴지지 아니하고 움직인다면, 곧 하늘의 움직임인 것이다. 그러하므로 어떠한 일이나 물질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성性에서 피어나는 욕심[欲]이라는 것이며, 만약 어떠한 일이나 물건[物]에도 느껴지지 아니하고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의 하늘의 움직임에 의하지 아니하고 움직이는 경우에는 하늘[天]이라는 용어에 대립하여서 성性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그 경우에 쓰이는 성性이라는 용어를 설명하자면 결국 욕심[欲]이라는 용어에 떨어지게 된다.
욕심[欲]이라는 것은 어떠한 일이나 물건이 있는 곳[有物]에 있게 되는데, 이것은 그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서 살피고 있는 생각[出位之思]이며,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하나의 생각도 일어나지 아니하면, 곧 큰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는 바른 생각[正念]이 생겨나니 ,이것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나를 주재하던 참되고 무의식적인 뜻'[眞意]이라는 것이다.
고요한 상태로 흩어짐 없이 한곳에 크게 머물러 있노라면, 하늘의 기틀[天機]이 갑자기 움직인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도 일어나는 움직임이 아니겠는가?" 저절로 그러한 대로 놔두고 인위적인 요소를 없애며 배우고 익힌다"[無爲而爲]는 것이 바로 이 뜻이다.
이른바 마음을 씻고[洗心], 생각을 털어 버린다[滌慮]는 것으로서, 빛을 돌리는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일 가운데에서 따뜻한 물로 머리 감고 몸 씻는 일[沐浴]에 해당한다.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배우는 일[聖學]은 먼저 그칠 곳을 아는 것[知止]으로부터 비롯하여서 지극한 선[至善]에 그쳐 머무르는 것에서 끝나는데, 결국 끝없이 커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우주 자연의 큰 근원[無極]에서 시작하여 다시 그 큰 근원[無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에서는 "어떠한 곳에도 머무르지 않도록 하여서[無住], 그 마음 자체를 살리라[生其心]"는 것으로써 부처님과 여러 높은 스님들이 지은 불교경전[大藏敎] 가운데에서도 하나의 큰 가르침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따르는 가르침인 도교道敎에서는 "텅 빈 상태에 이른다"[致虛]는 말로써 성性과 명命을 닦는 모든 일을 모두 완성하고 있다.
신령한 단[神丹]이란 어떠한 것인가?
어떠한 곳, 어떠한 경우에서든 언제나 마음의 움직임이 없는 것[無心]일 뿐이다.
우리가 따르는 가르침인 도교道敎에서 가장 알기 어렵고 감추어져 있는 것은 '머리 감고 몸 씻음'[沐浴]이라는 것인데, 이 하나의 일을 온전하게 배우고 익히기 위하여서는, "마음을 아무것도 빌붙을 바 없도록 비우라"[心空]는 말만 가지고도 그 일을 다 이루어 마칠 수가 있다.
?제9장 백일축기百日築基
심인경心印經에서 `호흡과 빛을 섞어서 임독맥을 돌리기[回風混合]를 백날 동안 계속하면,그 효험이 신령해진다`[百日功靈] 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말하여, 터전이 되는 일을 배우고 익히기를 백날 동안 계속하면, 진리의 참된 빛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치 그대들의 현재 상태의 눈빛은 신령한 불[神火]도 아니요, 본성의 빛[性光]도 아니요, 슬기의 횃불이나 촛불[慧智炬燭]도 아니지만, 백날 동안 계속해서 임독맥을 돌리게 되면, 정精과 기氣가 저절로 충분해지고,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은 참된 양[眞陽]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진리의 참된 불[眞火]이 저절로 물[水] 가운데에 있게 되는데, 이러한 일을 그침이 없이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나가면, 저절로 감坎과 이離가 서로 어우러지게[交構] 되고, 진리의 태아[道胎]가 맺혀지는 일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제서야 나는 한 번 가본 적도 없고 들어서 안 적도 없는 하늘에 가 있게 되고,
진리의 아들[영兒]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애를 쓰거나 꾸밈이 있으면, 그것은 옆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제10장 성광식광性光識光
빛을 돌리는 법[回光之法]은 원래 사람의 모든 행동 곧 가거나[行] 멈추거나[住] 앉거나[坐] 눕거나[臥] 모두에 통하는 것인데, 중요한 문제는 스스로 그 통하는 기틀의 구멍[機竅]을 찾아 가지는 것일 뿐이다. 내가 앞에서 `텅 빈 방에 흰 것이 생긴다`[虛室生白]고 설명하여 보인 적이 있었는데,
빛[光]이 곧 흰 것[白]이 아니겠는가?
다만, 처음에 아직 빛이 나타나지 아니할 때에 이러한 효험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고서, 만약 빛이 나타났다고 여기에 그것에 뜻을 붙여 놓게 되면 그 자체로써 의식意識에 떨어지게 되니, 본성의 빛[性光]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그대들은 그와 같이 빛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오직 생각없이[無念] 생각을 살려야[生念] 할 뿐이다. 無念生念
어떻게 하는 것을 생각이 없다[無念]고 하는가?
모든 경우에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여도[千休]
모든 경우를 저절로 깨달아 얻게 되는 것[千處得]이다.
어떻게 하는 것을 생각을 살린다[生念]고 하는가?
한평생 지킬 수 있는 하나의 생각[一念]은 빗나감이 없는 바른 생각[正念]이니,
보통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같지 아니하다.
알고 보면, 마음이 생각으로 되는 것이니, 생각이라는 것은 나타나 있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그 자체가 빛[光]이요, 황금꽃 가운데의 암꽃술[葯]인 것이다.
마음을 쓰면[用心] 그 자체로서 의식意識에 떨어진 빛[識光]이 되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그대로 본성의 빛[性光]이 된다.
털끝만한 차이가 천리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니, 가려내지 아니하여서는 아니된다.
의식意識을 끊어 버리지 못하면 신神이 살아나지 못하고 마음이 그에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도록 비어 있지[空] 못하면 단丹이 맺히지 아니한다.
마음이 움직임과 변화를 여의고 조용하면[靜] 곧 단丹이 이루어지고,
마음이 그에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도록 비어 있으면[心空] 그 자체로서 단丹을 이루는 원료原料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황금꽃의 암꽃술[葯]이 된다.
하나의 사물도 붙여 두지 아니하는 것[不着一物]을 마음이 움직임과 변화를 여의고 조용하다[心靜]고 부르고,
하나의 사물도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것[不留一物]을 마음이 그에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도록 비어 있다[心空]고 부른다.
그에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이 비어 있음[空]으로 보게 되면,
그 빌붙을 수 없이 비어 있음[空]은 아직 참으로 비어 있음이 되지 못한다[未空].
그에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이 비어 있되[空],
그 아무것도 빌붙을 수 없이 비어 있음[空]조차도 잊어버려야
참으로 아무것도 그에 빌붙을 수 없는 비어 있음[眞空]이 된다.
?제11장 감리교구坎離交媾
무릇 정精과 신神을 새어나가게 하고,
변화하고 움직여서動 사물과 엇갈리는 것은 모두가 이離괘로써 상징할 수 있다.
무릇 신神과 의식意識을 거두어들여서 바꾸어 놓고,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하여서靜 가운데로 가라앉는 것은 모두가 감坎괘로써 상징할 수 있다.
이離괘의 가운데에 있는 하나의 음[一陰]은 색色을 쫓거나 소리[聲]를 따르기를 주로 하고, 감坎괘의 가운데에 있는 하나의 양[一陽]은 몸 속에서 나는 소리를 귀기울여 듣거나[返聞] 생각의 실마리와 함께 눈길을 몸 속의 한곳에 모아 놓기를[收見] 주로 한다.
감坎괘와 이離괘라는 것은 곧 음陰과 양陽이다.
음陰과 양陽은 그 자체가 성性과 명命이고,
성性과 명命은 그 자체가 마음[心]과 몸[身]이고,
마음[心]과 몸[身]은 그 자체가 신神과 기氣이다.
한 번 스스로 숨[息]을 거두어들이는 것만으로도 정精과 신神이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흘러내려 가면서 변화하는 어리석음을 짓지 아니하게 되니, 그렇게 하면 곧 음陰과 양陽에 해당하는 두 가지 것들이 참으로 어우르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가르침에 맞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하게 깊이 진리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일에 들 경우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제12장 주천周天
원圓을 그리는 궤도를 도는 일[周天]은 기氣를 주主로 삼지 아니하고,
마음[眞意]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를 훌륭하고 묘한 방법이라고 한다.
만약 끝까지 따져 보아서 `어떻게 하면 원圓을 그리는 궤도를 돌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낌새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마치 어린 모[描]를 빨리 자라라고 뽑아 올려놓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음을 씀이 없이[無心] 지키고, 뜻함이 없이[無意] 행하는 것이다.
마음은 곧 북두칠성의 첫째별[斗樞]이고, 기氣는 곧 많고 많은 뭇별들이다.
우리 몸의 기氣는 원래 팔다리와 모든 뼈마디에 통해 있어서, 조금도 힘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불로 불려서, 의식으로 떨어져 있는 신[識神]을 불리게[鍛鍊] 되면 거짓된 것을 보는 일[妄見]이 끊어져 없어지니,
그렇게 된 뒤에야 꽃에 있어서 암꽃술과 같은 알짜[葯]가 생겨난다.
암꽃술과 같은 알짜[葯]라는 것은 모양, 모습이 있는 그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성의 빛[性光]이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고 참된 기[先天之眞氣]이다.
내가 능히 음陰과 양陽을 수레바퀴처럼 돌게 할 수 있어서, 몸이 조화롭게 길러지고 살아나서 저절로 그러함에 이르게 되면, 한때에 문득 구름이 뭉게뭉게 일고 비가 내리며, 풀과 나무가 술기운이 가득 오른 듯이 싱그럽고, 산이 푸르고 강이 힘차게 흐르며, 온몸이 탁 풀리되 가슴이 빠르게 쿵쾅거리는 듯하다가 곧 단박에 풀어짐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곧 큰 원의 궤도를 도는 것[大周天]이다.
그 무엇이 살아 나오기 시작하는 때[活子時]의 모습이 매우 설명하기 어렵고 묘한데,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무엇이 바른 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때[正子時]라는 것을 인정하여야 하니,
마치 눈에 보이는 모습에 매이는 일 같지만, 눈에 보이는 모습에 매달리는 일이 아니다.
그 무엇이 바른 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때[正子時]를 또렷하게 가리켜 내지 못한다면,
어디로부터 그 무엇이 살아 나오기 시작하는 때[活子時]를 알아낼 수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이미 그 무엇이 살아 나오기 시작하는 때[活子時]를 알아냈으면
확실히 그 무엇이 바른 자리를 자리 잡고 있는 때[正子時]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가 곧 둘인 경우이고, 바른 자리를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따로 있지도 아니하고, 살아 나오기 시작하는 때가 따로 있지도 아니하는 경우이다.
모든 것은 결국 배우고 익히는 그 사람이 진리에 합하는 참된 것을 알아내야 한다는데 달려 있다. 하나가 진리에 합하는 참된 것이면, 그것이 바른 자리에 자리 잡고 있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요, 그것이 살아 나오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참되지 못한 것을 보는 경우라면, 어떤 것이 살아나게 되고, 어떤 것이 바른 자리에 자리잡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와 같으므로 그 무엇이 살아 나오기 시작하는 때[活子時]라는 것은 때때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그 무엇이 바른 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때[正子時]에 이르게 되어, 뜻[志]과 기氣과 맑고 밝으면, 그 무엇이 살아 나오기 시작하는 때[活子時]가 깊은 병에서 살아나듯 잠에서 깨어나듯 피어 나와서 나타나게 된다.
만약 미처 살아 나오는 때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은 오직 바른 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때에 대하여서만 경험을 가지게 될 뿐이다.
다시 말하면 바른 자리에 바르게 자리잡고 있는 것[正者]은 눈앞에 나타나 있지만, 살아나오기 시작하는 것[活者]은 헤아리기 어렵게 신령하고 묘하지[神妙] 아니함이 없다는 말이다.
?제13장 권세가勸世歌
여조呂祖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이제 세상을 건져 단丹이 속속들이 익었으니, 친절한 마음으로 아낌없이 한마디 하노라. 석가釋迦께서도 큰 인연因緣을 위하여, 생사生死의 본 자리를 바로 가리켰건만, 안타깝도다, 깨달은 자 얼마이던가! 노자老子께서도 우리 몸을 걱정하시어, 곡신谷神을 가르쳐 주셨건만,
사람들은 알아내지 못하네. 내가 이제 진리의 길을 찾는 일을 간추려 말하노니, 한가운데 길을 쭉 통하는 이치가 역易이라는 큰 진리에 실려 있도다.
내 몸의 어디엔가 바른 자리가 알고 보니 진리의 관문[玄關]이며, 자子와 오午의 중간에서는 숨을 안정시킨다[定息] 빛이 있어 태어난 뒤로 막혀 버린 그 구멍[祖竅]으로 돌아오면, 온몸의 신神이 편안해지고, 약藥이 몸에 흐르는 강물의 근원에서 생겨나니, 하나의 기氣가 솟아나온다. 가려진 막을 뚫으면, 변화가 일어나서 금빛[金光]이 찬란하며, 한 덩어리 둥그런 해가 변함없이 붉게 빛난다.
세상사람들은 감坎과 이離의 속 알맹이라 잘못 알고 있지만, 신腎에서 심心까지 옮겨 가려면 아직도 그 사이가 가로막혀 있다. 어찌하면 사람의 길이 하늘의 중심[天心]에 합할 수 있을까? 하늘이 만약 부합符合해 준다면 사람의 길은 저절로 합해질 텐데……
모든 연분[萬緣]을 내려놓고 털끝 하나도 일으키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태어나기 이전[先天]이요, 진리에 합하는 참된 무극無極이다.
태초太初 같은 텅 빔[太虛]이 아름답도록 조용하여, 어떠한 낌새도 녹아 들어가 버리고, 성性과 명命으로 들어가는 곳에서 의식意識을 잊어버린다.
의식意識을 잊은 뒤에야 본래의 참된 진리가 나타나는 것이니,
물이 맑으면 구슬이 보이되 깊이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처음을 알 수 없는 번뇌의 가로막음이 하루아침에 휑하니 터져 버리면,
하늘나라[玉淸]에서 아홉 마리의 용龍이 수놓인 책을 내린다.
구름과 은하를 걸어서 하늘의 궁궐에 오르고, 천둥 번개를 손에 잡고 벼락을 타고 달린다.
신神을 엉겨 모이게 하거나[凝神], 숨을 안정시키는 것[定息]은 처음 배우고 익히는 기틀[初機]이요,
남모르는 자리에 되돌아와 감춤이 바로 모양·모습[相]을 여의고 변함이 없음[常]이며, 번뇌를 끊음[寂]이다.
내가 접때에 장진노張珍奴라는 사람에게 두 마디 글귀를 주어서 우리의 가르침의 큰 진리를 깨닫게 하여 이끌어 주었다. 자子의 뒤이니, 오午의 앞이니 하는 것들은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후천後天 팔괘 방위에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후천後天 팔괘 방위에 있어서의 감坎괘와 이離괘를 가리키는 것이며, 사람의 몸에 있어서 그 방위에 해당하는 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숨을 머무른다[定息]는 것은 숨을 쉴 때마다 그 숨이 마음과 서로 하나가 되고 기氣가 우리 몸의 가장 한가운데[中黃]에 있는 뿌리[丹田]로 돌아가는 모습[息息歸根]을 말한다.
앉아 있다[坐]는 것은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이다.
등뼈[夾脊]라는 것은 등뼈의 마디마디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로 곧바로 뚫고 올라가는 큰길 즉 독맥督脈을 말한다.
등뼈에 나란히 있는 두 개의 관문[雙關]이라는 것은 이곳에서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모든 것을 잊고 신神이 지켜 주어서 마음을 텅 비게 하고 번뇌를 끊으며,
아무것도 없음[無]에로 돌아가는 경우에만 이 관문을 보게 되고 또한 뚫고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말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이곳이다.
그리하여 땅에서 번개와 천둥이 쳐서 산봉우리를 흔들어 놓는 경지에 이르면, 진리에 합하는 참된 기[眞氣]가 생기는 것이다. 노란 새싹[黃芽]이 땅속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진리에 합하는 참된 약[眞藥]이 생기는 것이다.
그 모든 일의 터전은 오직 나란히 있는 두개의 관문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큰길[雙關]을 신神이 지킴으로 말미암아 쌓여진다. 위의 두 글로써 진리의 길을 닦아 나아가는 일을 이미 다 말하였다.
이것들을 똑똑하게 알게 되면, 남들의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할 것이다.
빛을 돌리는 일[回光]은
잡됨이 없어 순수한 마음으로 배우고 익혀 나가느냐 아니냐 하는 데 달려 있으니,
오직 마음과 숨이 하나로 합하여져서
몸의 한가운데 해당하는 곳[中宮]을 초점을 맞추어 비추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지켜 나가면, 저절로 신령해질 수 있고, 변화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움직임과 변화를 여의고 조용하며[心靜],
기氣가 안정되어야만 그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은 마음 자체를 잊어버리고[心忘], 기氣는 엉겨 모여서 덩어리를 이루면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기氣조차도 끊어지고, 마음에는 아무것도 빌붙을 바 없이 비어 있게 되면[空], 단丹이 이루어진다.
마음과 기氣가 완전히 섞여서 하나로 되면,
마치 어머니가 사람의 태아를 열 달 동안 따뜻이 기르듯이 진리의 태아[道胎]를 따뜻이 기르게[溫養] 된다.
마음이 밝게 빛나고 본성이 나타나면[明心見性], 진리의 길을 다 지나와서 마친 것이다.
그대들은 각자 제나름대로 힘써 배우고 익혀 왔지만, 세월을 헛보냈으니, 안타깝다.
하루동안 이 일을 배우지 익히지 아니하면, 하루가 곧 사람을 죽이는 귀신이 되는 것이며,
한 번 숨을 쉴 동안 이 일을 배우고 익히면, 한 번 숨쉴 동안은 참으로 죽음을 초월한 신선神仙인 것이다.
우주 자연의 운행 변화와 생물의 자라남[化育]에 참여하고 그를 돕는 일도 이 일을 배우고 익힘에 말미암아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도지 해설서>
"마고복본을 꿈꾸며"
김 태형
제 2장 : 부도(不渡)의 시대
第五章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支巢)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을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작으므로, 여러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마시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차례나 되었다. 곧 돌아와 소(巢)에 오르니, 배가 고파 어지러워 쓰러졌다. 귀에는 희미한 소리가 울렸다. 오미(五味)를 맛보니, 바로 소(巢)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였다. 일어나 펄쩍 뛰었다. 그 독력(毒力)의 피해 때문이었다. 곧 소(巢)의 난간에서 내려와 걸으면서 노래하기를.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능가한다.
이 어찌 도(道)인가!
포도의 힘이로다.] 라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지소씨의 말을 의심하였다. 지소씨가 참으로 좋다고 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포도를 많이 먹었다,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이에 제족이 포도를 많이 먹었다.
白巢氏之族 支巢氏ㅣ與者人으로 往飮乳泉할새 人多泉少어늘 讓於諸人하고 自不得飮而如是者五次라. 乃歸而登巢하야 遂發飢惑而眩倒하니 耳嗚迷聲하야 呑嘗五味하니 卽巢欄之蔓籬萄實이라. 起而偸躍하니 此被其毒力故也라. 乃降巢闊步而歌曰浩蕩兮天地여 我氣兮凌駕로다. 是何道兮요 萄實之力이로다. 衆皆疑之하니 支巢氏曰眞佳라하거늘 諸人이 奇而食之하니果若其言이라.於是에 諸族之食萄實者多러라.
第六章
백소씨(白巢氏)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곧 수찰(守察)을 금지하니 이는 또 금지하지 아니하되, 스스로 금지하는, 자재율(自在律)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니, 마고가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에 덮혀 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唾)은 뱀의 독(毒)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올빼미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혈육이 탁(濁)하게 되고, 심기(心氣)가 혹독하여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태정(胎精)이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하였다. 명기(命期)가 조숙(早熟)하여, 그 죽음이 천화(遷化)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 미혹(迷惑)하게 되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白巢氏之諸人이 聞而大驚하야 乃禁止守祭하니 此又破不禁自禁之自在律者也라. 此時에 食實之習과 禁祭之法이 始하니 麻姑閉門撤冪이러라. 已矣오 食實成慣者ㅣ皆生齒하야 唾如蛇毒하니 此는 强呑他生故也오 設禁守祭者ㅣ皆眼明하야 視似치目하니 此는 私 公律故也라. 以故로 諸人之血肉이 化하고 心氣ㅣ酷變하야 遂失凡天之性이라. 耳之烏金이 化作兎沙하야 終爲天聲하고 足重地固하야 步不能跳하며 胎精不純하야 多生獸相이라. 命期早熟하야 其終이 不能遷化而 하니 此는 生命之數ㅣ 惑 縮故也라.
第七章
이에 사람(人世)들이 원망하고 타박하니,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서, 권속(眷屬)을 이끌고 성을 나가, 멀리 가서 숨어 버렸다. 또 포도의 열매를 먹은 자와, 수찰을 하지 아니한 자도, 역시 모두 성을 나가,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가니, 황궁(黃穹)씨가 그들의 정상을 불쌍하게 여겨 고별(告別)하여 말하기를, [여러분의 미혹(迷惑)함이 심대(甚大)하여 성상(性相)이 변이(變異)한 고로 어찌할 수 없이 성중(城中)에서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오. 그러나, 스스로 수증(修證)하기를 열심히 하여, 미혹함을 깨끗이 씻어, 남김이 없으면, 자연히 복본(復本) 할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시오.]하였다. 이 때에 기(氣)와 토(土)가 서로 마주치어, 시절(時節)을 만드는 광선(光線)이, 한 쪽에만 생기므로, 차고 어두웠으며, 수(水)와 화(火)가 조화를 잃으므로, 핏기 있는 모든 것들이 시기하는 마음을 품으니, 이는, 빛을 거둬들여서 비추어 주지 아니하고, 성문이 닫혀 있어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於時에 人世ㅣ怨咎하니 支巢氏ㅣ大恥顔赤하야 率眷出城하야 遠出而隱이라. 且氣慣食萄實者와 設禁守祭者ㅣ亦皆出城하야 去各地하니 黃弓氏ㅣ哀憫彼等之情狀하야 乃告別曰 諸人之惑量이 甚大하야 性相變異故로 不得同居於城中이라. 然이나 自勉修證하야 淸濟惑量而無餘則自然復本하리니 勉之勉之하라. 是時에 氣土相値하야 時節之光이 偏生冷暗하고 水火失調하야 血氣之類ㅣ皆懷猜忌하니 此는 冪光이 卷撤하야 不爲反照하고 城門이 閉隔하야 不得聽聞故也라.
第八章
더구나 성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전날의 잘못을 뉘우친 사람들이, 성 밖에 이르러, 직접 복본(復本)을 하려고 하니, 이는 복본에 때가 있음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곧 젖샘을 얻고자 하여, 성곽의 밑을 파해치니, 성터(城址)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흘러 내렸다. 그러나, 곧 단단한 흙으로 변하여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성 안에 마침내 젖이 마르니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일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混濁)이 지극하여, 청정(淸淨)을 보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황궁(黃穹)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곧 백모(白茅)를 묶어 마고(麻姑)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와 제족(諸族)에게 고하기를 [오미의 재앙이 꺼꾸로 밀려오니,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이 이도(理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 혹량(惑量)이 불어 났기 때문이다. 청정(淸淨)은 이미 없어지고, 대성(大城)이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를 어찌할 것인가.]하였다. 이 때에 천인(天人)들이 분거(分居)하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본전하고자 하므로, 황궁씨가 곧 천부(天符)를 신표(信標)로 나누어 주고, 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사방에 분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청궁(靑穹)씨는 권속(眷屬)을 이끌고 동쪽 사이의 문을 나가 운해주(雲海洲)로 가고, 백소(白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서쪽 사이의 문을 나가 월식주(月息洲)로 가고, 흑소(黑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남쪽 사이의 문을 나가 성생주(星生洲)로 가고, 황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북쪽 사이의 문을 나가 천산주(天山洲)로 가니, 천산주는 매우 춥고, 매우 위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스스로 떠나 복본(復本)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맹세였다.
已矣오. 出城諸人中悔悟前非者ㅣ還到城外하야 直求復本하니 此未知有復本之時所故也라. 乃欲得乳泉하야 掘鑿城廓하니 城址破損하야 泉源이 流出四方이라. 然이나 卽化固土하야 不能飮철이라. 以故로 城內에 遂乳渴하니 諸人이 動搖하야 爭取草果하니 混濁至極하야 難保淸淨이라. 黃穹氏ㅣ爲諸人之長故로 乃束身白茅하고 謝於麻故之前하야 自負五味之責하여 立誓復本之約이러라. 退而告諸族曰五味之禍ㅣ反潮逆來하니 此出城諸人이 不知理道하고 徒增惑量故也라. 淸淨已破하고 大城將危하니 此將奈何오. 是時에 諸天人이 意決分居하야 欲保大城於完全하니 黃穹氏ㅣ乃分給天符爲信하고 敎授採葛爲量하야 命分居四方이라. 於時에 靑穹氏ㅣ率眷出東間之門하야 去雲海洲하고 白巢氏ㅣ率眷出西間之門하야 去月息洲하고 黑巢氏ㅣ率眷出南間之門하야 去星生洲하고 黃穹氏ㅣ率眷出北間之門하야 去天山洲하니 天山洲는 大寒大險之地라. 此는 黃穹氏ㅣ自進 難하야 忍苦復本之 盟誓러라.
第九章
분거제족(分居諸族)이 각 주(洲)에 이르니, 어느덧 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각지(各地)에 잡거(雜居)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주(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청소하고, 대성(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의 현상이 있었다.
分居諸族이 繞倒各洲하니 於焉千年이라. 昔世出城諸人之裔ㅣ難居各地하야 其勢甚盛이라. 然이나 殆忘根本하고 性化猛獰하야 見新來分居之族則作群追跡而害之러라. 諸族이 已定住하니 海阻山隔하야 來往이 殆絶이라. 於時에 麻故與二姬로 修補大城하고 注入天水하야 淸掃城內하고 移大城於虛達之上이러라. 是時에 淸掃之水ㅣ大漲於東西하야 大破雲海之地하고 多滅月息之人이라. 自此로 世界之重이 變化하야 曆數生差하니 始有朔?之象이라.
第十章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장자(長子) 유인(有因)씨에게 명하여,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此子) 와 삼자로 하여금 모든 주(洲)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곧 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 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이것은 곧 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象)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계불을 전수(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 유인, 환인)가 수증하기 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黃穹氏ㅣ到天山洲하야 誓解惑復本之約하고 告衆勸勉修證之業이라. 乃命長子有因氏하야 使明人世之事하고 使次子三子로 巡行諸洲러라. 黃穹氏乃入天山而化石하야 長嗚調音하야 以圖人世惑量之除盡無餘하고 期必大城恢復之誓約成就러라. 於是에 有因氏ㅣ繼受天符三印하니 此卽天地本音之象而使知其眞一根本者也라. 有因氏ㅣ哀憫諸人之寒冷夜暗하야 鑽燧發火하야 照明溫軀하고 又敎火食하니 諸人이 大悅이라. 有因氏千年에 傳天符於子桓因氏하고 乃入山하야 專修契불不出이라. 桓因氏ㅣ繼受天符三印하야 大明人世證理之事하니 於是에 日光均照하고 氣侯順常하야 血氣之類ㅣ庶得安堵하고 人相之怪ㅣ稍得本能하니 此는 三世修證三千年에 其功力이 庶幾資於不 者也라.
제 3 부 : 부도(符都)의 시대
내가 부도지를 보면서 가장 많이 고민을 한 것은 과연 이것이 어느 시대냐는 것이다.
부도지를 읽어 보면 거의가 인물 중심으로 나와 있다.
그래서 우선 몇 가지 알고 있는 사실을 중심으로 시대를 분류 하였다.
일단 전체의 족보를 보면
이 뒤에서도 보면 마고가 궁희와 소희를 낳고 이들이 세상의 창조주로 조화를 담당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이 4명의 천인을 낳고, 다시 8명의 천인을 낳는 것으로 하여 이들이 총 12명의 천인을 낳는다.
앞에서 보면 [천인(天人)들이 분거(分居)하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보전하고자 하므로…]라는 대목이 나온다 환국이 총 12개의 연방국가 이고 이들은 12명이다.
또한 환국의 역사를 보면 삼성기에서 63,182년 또는 3,301년이라 했는데 부도지 10장에 보면 황궁씨, 유인씨, 환인씨가 각기 1,000년을 다스렸다 했으니 합이 3,000년이니 환국의 역사 3,301년과 유사하다.
뒤에 보면 임검씨때는 시대적 배경이 중국의 요순 때이니 이는 단군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럼 환웅씨는 자연히 배달국의 환웅이 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황궁씨다, 유인씨다 하는 것은 특정한 인물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몇몇 학자들에 의하면 환인이란 특정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환이란 밝다는 뜻이고 인이란 님이란 존칭에 해당하는 이두식 표현이라 한다.
이렇게 놓고 봤을 때 마고성시대는 환국의 역사 63,182년 중 3,301년을 뺀 나머지의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판단이 된다.
몇몇 상고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50,000년에서 60,000년 전에 이미 초 고대문명이 있었을 것이라는 학설을 내 놓기도 하니 그것이 이 마고성의 시대가 아닌가 한다.
또 신의 지문이라는 책에서 보면 약 1만년 전에 지구에 큰 변혁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9장에서 보면 마고가 마고성을 청소하면서 큰 변혁이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때가 환국으로 보면 시기적으로 일치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 4 부 : 오미(五味)의 화(禍)가 말하는 의미는..
부도지에서 오미의 화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왜 많고 많은 것 중에서 하필이면 포도를 먹었을까?
성경에서는 사과(선악과)를 먹었다는데 이 차이점은 뭘까?
왜 이것 때문에 마고성에서 나와야 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야 했을까?
땅에서 솟아나는 지유를 먹었다 함은 힘들여 먹을 것을 탐할 필요도 없었고 먹기 위해서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의식주 문제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노동이 없었고 욕망이 없었다.
이를 그리스신화에서는 황금의 시대로 말하였고 성경에서는 에덴동산, 우리 신화에서는 마고성 시대로 말하였다.
포도(사과_성경)를 먹었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맛을 알게 되었고 식욕에 대한 욕망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식욕과 성욕을 같은 개념으로 본다.
결국 식욕과 성욕을 중심으로 성취욕, 명예욕, 인정에 대한 욕구 등 각종 욕망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포도에 달린 이 수많은 알갱이가 하나에서 엮어가는 수많은 욕망을 상징화 시킨 것이다.
결국 이 욕망에 의해 관념(선악과)이 생겨나고 이 관념으로 인해 여러 가지 피해의식이 생겨나고 결국 본성이 가려져 신성을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마고성시대는 욕망이 없는 본성만이 있는 시대 였기에 법이라는 것이 필요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백소씨족에 의해 오미의 난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그들은 마고성을 나왔으나 결국 법이 없었던 관계로 욕망의 세계에서 살다가 일부 인원이 속은 놔두고 껍질만을 가지고 섣불리 마고성(깨닮음)시대로 환원을 하려 했다가 결국 전체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에 황궁씨는 어쩔 수 없이 욕망의 시대로 나왔으나 언젠가는 다시 본성을 찾아 마고성을 복본(復本)하려는 사명을 띄게 된다.
그래서 백소씨의 예를 상기하여 법을 세우고 이 법으로써 백성을 이끌게 되는 것이다.
이 법과 하나가 되어 생활한 시대가 고열가단군시대 까지다.
삼일신고를 통해 지감 조식 금촉하여 본성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제 5 부 : 한국(桓國)시대
한국(桓國)은 시베리아(사백력, 斯白力) 하늘 밑 바이칼 호수의 동쪽으로 흐르는 흑룡강(黑龍江, 龍江, 天河, 天海)을 중심으로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리의 거대한 제국이다. 한국(桓國)의 한이란 밝다는 말이다.
한국은 7대 한인(桓因)이 3,301년 동안 나라를 이뤘다.
II 교화(敎化)의 시대
교화(敎化)의 시대….
교화의 시대란 마고성에서 나온이후의 시대를 말한다.
오미의 화 이후 많은 혼란기가 있다.
이때 황궁씨는 준비가 되지 않았던 백소씨의 일족 일부와 지소씨의 일족이 세상에 나왔다가 적응치 못하고그 법을 잃어 버리는 모습을 보고 법을 보존키 위해서는 다시말해 마고로의 복본을 위해서는 사람들을 흩어지지 않게 묶어 줄 수 있는 법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천부삼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바로 본성을 가리는 욕망을 제어 해야 다시 마고성(본성)으로의 복본이 가능함을 알기에 천부삼인의 가르침을 내려 바른 길로 인도하고 스스로의 모범을 보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가르침을 쫗아 다시 마고로의 복본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를 교화의 시대라 한다.
교화의 시대에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뉜다.
한국(桓國) 천손족의 시대, 배달국, 조선…
처음 마고성에서 나온 이들을 지손족(당시의 원시 부락)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신령스럽고 밝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천인이라 불렀고 이들을 가르켜 한님(桓因), 즉 하느님이라 불렀으며 한님이 사는 나라라 해서 한국이라 했다.
배달국은 천손족과 지손족이 결합한 최초의 국가이다.
한(桓)이란 하늘을 말하는 것이고 웅(雄)이란 땅을 말하는 것이니 한웅(桓雄)이란 천손족과 지손족을 아우르는 말 일것이다.
이때를 최초로 하늘(천손족)을 열어 땅(지손족)을 받아 들였다 하여 개천(開天)이라 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최초로 지손족중에 왕이 출현을 하니 이가 무리들 중에 왕이라는 뜻에서 임검(壬儉)이라 하였고 이가 바로 단군왕검이시다.
지손족이 하늘로부터 나라를 물려 받아 세웠다 하여 하늘이 주신 땅이라 하여 ‘쥬신’이라 불렀고 ‘쥬신’의 이두식 표기가 조선(朝鮮)이다.
중국 요와 순의 오행의 화로 인해 조선이 문화 침투를 당하여 42대 단군이후로는 지방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니 결국 47대 단군 고열가단군께서 부도의 법을 닫고 폐관을 하기에 이른다.
이때 이후가 치화(治化)의 시대 이니, 치화의 시대 앞 약 7천년에 이르는 기간을 교화의 시대라 한다.
제 3 장 : 배달국 시대
第十一章
환인씨의 아들 환웅씨는 태여날 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천부 삼인을 계승하여, 수계제불 (修계除불) 하였다. 천웅(天熊)의 도를 수립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유래한 바를 알게 하였다. 어느덧 인세(人世)가 의식(衣食)의 일(業)에만 편중하므로, 환웅씨는 무여율법(無餘律法) 조(條)를 제정하여, 환부(鰥夫)로 하여금 조절하게 하였다. 1조는, 사람의 행적(行蹟)은, 때때로 깨끗하게 하여, 모르는 사이에 생귀(生鬼)가 되지 않게 하고 번거롭게 막혀, 마귀(魔鬼)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통명무여일장(通明無餘一障)하게 하라. 2조는, 사람의 취적(聚積)은, 죽은 뒤에 공을 제시하여, 생귀의 더러움을 말하지 않게 하고, 함부로 허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보흡무여일감(普洽無餘一憾)하게 하라. 3조는, 고집이 세고 사혹(邪惑)한 자는 광야(曠野)에 귀향을 보내, 때때로 그 사옥함을 씻게 하여, 사기(邪氣)로 하여금, 무여어세상(無餘於世上)하게 하라. 4조는, 죄를 크게 범한 자는 섬도(暹島)에 유배시켜 죽은 뒤에 그 시체를 태워서, 죄집(罪集)으로 하여금, 무여어지상(無餘於地上)하게 하라 였다. 또 궁실(宮室)을 짓고, 배와 차(車)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거주(居住)하고,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에 환웅씨가 바다에 배를 띄워 시승(始承)하여 사해(四海)를 순방하니,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수신(修信)하고, 제족의 소식을 소통하여 근본을 잊지 않을 것을 호소하고, 궁실을 짓고, 배와 차를 만들고, 화식(火食)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었다. 환웅씨가 돌아와 8음2문(八音二文)을 수학하고, 역법(曆法)을 정하고 의약술(醫藥術)을 수업하며,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저술하니, 홍익인세(弘益人世)였다. 이는, 세대는 멀어지고, 법은 해이하여져서, 모든 사람들이 몰래 사단(詐端)을 모색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용(日用)하는 사물 사이에서, 근본의 도를 보전하여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비로소 학문을 하는 풍조가 일어나니, 인성(人性)이 혼매(昏昧)하여, 배우지 않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桓因氏之子桓雄氏ㅣ生而有大志하야 繼承天符三印하고 修계除불하고 立天雄之道하야 使人知其所由러라. 於焉人世ㅣ偏重於衣食之業하니 桓雄氏ㅣ制無餘律法四條하야 使鰥夫로 調節하니 一曰人之行蹟은 時時淸濟하야 勿使暗結生鬼하며 煩濟化魔하야 使人世로 通明無餘一障하라. 二曰人之聚積은 死後堤功하야 勿使陳垢生鬼하며 濫費化魔하야 使人世로 普洽無餘一憾하라. 三曰頑 邪惑者는 謫居於曠野하야 時時被其行하야 使邪氣로 無餘於世上하라. 四曰大犯罪過者는 流居於暹島하야 死後焚其尸하야 使罪集으로 無餘於地上하라. 又作宮室舟車하야 敎人居旅러라. 於是에 桓雄氏ㅣ始乘舟浮海할새 照證天符修信하고 疏通諸族之消息하며 訴言根本之不忘하고 敎宮室舟車火食之法이너라. 桓雄氏ㅣ歸而修八音二文하고 定曆修醫藥하며 述天文地理하니 弘益人世라. 此는 世遠法弛하야 諸人之暗취摸 이 增詐端故로 欲保根本之道於日 用事物之間而使昭然也라. 自是로 始興修學之風하니 人性昏昧하야 不學則不知故也라.
제 6 부 : 환웅씨 시대.
부도지에서는 환웅씨에 관해서는 거의 나온 것이 없다.
그래서 한단고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여기에 적어 보겠다.
한인의 서자 환웅이 있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으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 한다.
배달국은 9개의 나라로 이루워져 있고 18대 환웅이 1565년간 재위하였다.
한단고기에서 ‘삼성기’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뒤에 한웅씨(桓雄氏)가 계승하여 일어났다. 천신(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에 내려 왔다.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천평(天坪)에 마련하고 청구(靑邱)에 정지(井地)를 정했다. 천부인(天符印)을 지니고 다섯가지 일을 주관하였으며, 세상에 머무르며 인간을 교화하고 크게 이롭게 하였다.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배달(倍達)이라 하였다. (…)]
제 4 장 : 임검(壬儉)씨 시대(조선시대)
第十二章
환웅씨가 임검(壬儉)씨를 낳았다. 때에 사해의 제족(諸族)이 천부의 이치를 강(講)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미혹(迷惑)속에 빠져,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임검씨가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천웅의 도(天雄之道)를 닦아, 계불의 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갈고, 심고, 누에치고, 칡을 먹고, 그릇을 굽는 법을 가르치고, 교역(交易)하고, 결혼하고, 족보를 만드는 제도를 공포하였다. 임검씨가 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므로, 몸에는 털이 길게 나가지고, 사해를 널리 돌아다니며, 제족을 차례로 방문 하였다. 백년사이에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수신(修信)하고, 해혹복본(解惑復本) 할 것을 맹서하며, 부도(符都)를 건설할 것을 약속하니, 이는 지역은 멀고 소식은 끊어져, 제족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로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함께 모여 협화(協和)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 강(講)하여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후일에 회강(會講)의 실마리가 되니, 인사가 번거롭고 바빠, 강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桓雄氏生壬儉氏하니 時에 四海諸族이 不講天符之理하고 自沒於迷惑之中하야 人世因苦라. 壬儉氏懷憂於天下하고 修天雄之道하며 行계불之儀하야 繼受天符三印이라. 敎耕稼蠶葛陶 之法하고 布交易稼 錄之制러라. 壬儉氏ㅣ啖根吸露하고 身生毛 하야 遍踏四海하야 歷訪諸族하니 百年之間에 無所不往이라. 照證天符修信하고 盟解惑復本之誓하며 定符都建設之約하니 此는 地遠信絶하야 諸族之言語風俗이 漸變相異故로 俗講天符地理於會同協和之
而使明之也라. 是爲後日會講之緖하니 人事煩忙하야 不講則忘失故也라.
第十三章
임검(壬儉)씨가 돌아와 부도(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다. 즉 동북의 자방(磁方)이었다. 이는 2와 6이 교감(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와 8이 상생(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와 1의 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삼근영초(三根靈草)와 오엽서실(五葉瑞實)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이 금강(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니, 이는 1과 3과 5와 7의 자삭(磁朔)의 정(精)이 모여,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곧 태백산 밝은 땅의 정상에 천부단(天符壇)을 짓고 사방에 보단(堡壇)을 설치 하였다. 보단의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량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길의 사이는 천 리였으며, 도랑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마고본성(麻故本城)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부도의 하부를 나눠 마을을 만들었다. 삼해(三海)의 주위에 둥그렇게 못에 잠기었다. 사진(四津)과 사포(四浦)가 천 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진(津)과 포(浦)사이에 다시 6부를 설치 하였다. 6부에는 제족(諸族)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니, 웅려(雄麗)하고 광명하여 사해를 총화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제족의 생맥(生脈)이었다.
壬儉氏ㅣ歸而擇符都建設之하니 卽東北之磁方也라. 此는 二六交感懷核之域이오 四八相生潔果之地라. 明山麗水ㅣ連선萬里하고 海陸通涉이 派達十方하니 卽九一終始不 之其也라. 三根靈草와 五葉瑞實과 七色寶玉이 托根於金剛之臟하야 遍滿於全域하니 此一三五七磁朔之精이 會方成物而順吉者也라. 乃築天符壇於太白明地之頭하고 設保壇於四方이라. 保壇之間에 各通三 道溝하니 其間이 千里也오 道溝左右에 各設守關하니 此取法於麻故之本城이라. 劃都坊於下部之休하고 圖涵澤於三海之周하니 四律四浦ㅣ連隔千里하야 環列於東西라. 律浦之間에 又設六部하니 此爲諸族之率居也라. 符都 成하니 雄麗光明하여 足爲四海之總和요 諸族之生脈
第十四章
이에 황궁씨의 후예 6만이 이주하여 지키고, 곧 나무를 베어 뗏목 8만을 만들어서, 신부(信符)를 새겨, 천지(天池)의 물에 흘려 보내, 사해의 제족을 초청하였다.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얻어서 보고, 차례로 모여들어, 박달나무 숲에 신시를 크게 열고, 수계정심(修?淨心)하여, 천상(天象)을 살핀 후, 마고의 계보(系譜)를 닦아 그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의 음에 준하여 그 어문(語文)을 정리 하였다. 또 북진(北辰)과 칠요(七耀)의 위치를 정하여 반석의 위에서 속죄의 희생물을 구워 전(奠)을 올리고, 모여서 노래하며 천웅(天雄)의 악(樂)을 연주하였다. 제족이 방장산(方丈山) 방호의 굴(方壺之堀)에서 칠보의 옥을 채굴하여 천부를 새기고 그것을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하여 칠난(七難)을 없애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매 10년마다 반듯이 신시를 여니, 이에 어문(語文)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인세가 태화(太和)하였다. 인하여 바닷가에 성황(城隍)을 지어 천부에게 전을 올리고, 제족으로 하여금 머물러, 집을 지어 살게 하니, 그 뒤에 천년 사이에 성황이 전역에 널리 퍼졌다.
第十五章
또 예와 양(陽)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조시(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에 해시(海市)를 열어,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행하니,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토산물을 바쳤다. 산악의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쳐 송축하기를
[고기와 양을 희생으로
조제에 공진하니,
오미의 피를 신선하게 하여,
창생의 재앙을 그치게 하네]하였다.
이를 가르켜 조선제(朝鮮祭)라 하였다. 이 때에 산악과 해양의 제족이 물고기와 육(肉)고기를 많이 먹으니, 교역하는 물건이 거개가 저린 어물과 조개와 가죽류이기 때문에 곧 희생제(犧牲祭)를 행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 하고, 공에 보답하게 하였다. 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니, 이는 물체가 대신 오미의 잘못을 보상하여, 재앙을 먿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즉 육친고충의 고백이었다. 언제나 세제(歲祭) 때에는 물화(物貨)가 폭주 하므로 사 진과 사 포에 해시를 크게 열고, 몸을 깨끝하게 하여, 지리(地理)를 거울 삼아, 교역의 법을 시행하여, 그 값과 분량을 정하며, 물성(物性)의 근본을 분별하여 이용하는 법을 밝혔다. 또 부도 팔택의 모양을 본떠서 뭇을 파고, 곡수(曲水)의 사이에서 보새(報塞)를 지내고, 회연(會燕)하여 제물(濟物)하는 의식(儀式)을 행하였다. 제족이 봉래산 원교봉(圓嶠峯)에서 오서(五瑞)의 열매를 얻으니, 즉 잣나무 열매였다. 봉래 해송(海松)이라 하여, 은혜롭게 오행(五幸)을 얻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해가 산업이 일어나서 교역이 왕성하게 되므로, 천하가 유족하였다.
第十六章
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州) 대여산(岱與山)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것을 영주 해삼이라 하였으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갔다. 대개 인삼이 그 수격(數格)을 갖추어, 자삭방(磁朔方)에서 난 것은 반드시 장생하니 40세(歲)를 1기로 휴먼하고, 13기를 1삭(朔)으로 축정(蓄精)하고, 4삭을 경과하여 씨(子)를 맺어 화(化)하니, 이러한 것은 부도의 지역이 아니고는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영효(靈?)가 있으므로, 시(市)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의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은 진실로 불암삼역(不咸三域)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의 천혜(天惠)였다.
제 7 부 : 임검(壬儉)씨 시대
여기서 임검씨란 그 시대적 배경이 요순임금의 시대 이므로 한배검 단군을 말하는 것 같다.
앞서 환국과 배달국에서의 임금은 천손족인 마고성의 후예였으나 한배검 단군께서는 웅족(熊族, 지손족)중 가장 세력이 강한 단국(檀國)의 후손으로 천손족에서 지손족으로 이어지는 첫임금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라의 이름도 하늘(天, 천손족)이 주신국가라 하여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또한 한배검께서는 조선의 전체의 행정구역을 3한(三韓, 三王)이 나눠, 한배검 자신은 진한(辰韓) 인 진임금(辰王)으로써 마한(馬韓)과 변한(卞韓)을 거느리고 있었다.
임검씨는 먼저 흩어져 있는 마고성의 여러 민족을 찾아 다니며 부도를 다시 건설 할 것을 약속하고 6만의 백성을 먼저삼신산으로 이주시켜 자리를 지키게 하고, 텟목 8만을 만들어 이주를 하여 박달나무숲에 신시를 여셨다. 이는 흩어진 마고성의 여러 민족을 모아 천부의 이치를 가르쳐 분명히 알게 하여 부도의 법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다.
임검씨는 마고성을 모방하여 신시를 꾸미고 사방에 흩어진 민족들을 초청하였다.
III 치화(治化)의 시대
치화의 시대의 계기가 된 것은 [오행의 화]이나 이때 치화의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만들어 진 것이지 이때부터 치화의 시대는 아니다. 본격적인 치화의 시대는 47대 고열가단제의 폐관 이후로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오행의 화에 대해 나오는데 부도지의 내용중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 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다.
오행의 화란 하늘에 대한 인간의 반란으로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흐름을 바꿔 놓았고 결국 그것이 조선의 막을 내리며 부도의 법이 끊어 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제 5 장 : 오행(五行)의 화(禍)
第十七章
이 때에 도요(陶堯)가 천산(天山)의 남쪽에서 일어났다. 일차로 출성(出城)한 사람들의 후예였다.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堡)의 간(干)에게서 도(道)를 배웠다. 그러나 원래 수(數)에 부지런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9수5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중5(中五) 이외의 8은, 1이 즉 8이라고 생각하고, 내(內)로써 외(外)를 제어하는 이치라 하여, 오행(五行)의 법을 만들어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등이 심히 꾸짖고, 그것을 거절하였다. 요가 곧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예(苗裔)를 쫓아냈다.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有因)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壬儉)씨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비어 있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三方)으로 흩어졌다. 요가 곧 9주(九州)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5중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여,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때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과, 명협(蓂莢)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符都)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세 두번째의 큰 변이었다.
第十八章
이에 임검씨가 그것을 심히 걱정하여, 유인씨(有因氏)의 후손 유호씨(有戶氏)의 부자로 하여금 환부(鰥夫)와 권사(權士)등 100여인을 인솔하고 가서 그를 깨우치도록 하였다. 요가 그들을 맞아, 명령에 복종을 하고, 공순하게 대접하여 하빈(河濱)에서 살게 하였다. 유호씨가 묵묵히 그 상황을 관찰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여러 번 그 거처를 옮겼다. 이보다 먼저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에 칡을 먹고 오미를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키는 열 자요,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 임검씨보다 나이를 100여살이나 더 먹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직업(業)을 이어,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사자(使者)가 되어, 완미(頑迷)한 세상을 구제하니, 그가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때에 요가 유호씨의 아들 유순(有舜)의 사람됨을 보고, 마음 가운데 딴 뜻이 있어, 일을 맡기고, 도와 주며, 두 딸로 유혹하니, 순이 곧 미혹하여졌다. 유순이 일찍이 부도의 법을 행하는 환부가 되어, 마침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두 딸을 밀취(密娶)하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하였다.
第十九章
이 때 유호씨가 수시로 경계를 하였으나, 순은 예, 예, 하고 대답만 하고는 고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요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苗族)을 정벌하였다.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꾸짖고, 그를 토벌하니, 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하였다. 유호씨가 이르기를, 오미의 재앙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오행(五行)의 화를 만들었으므로, 죄는 땅에 가득하고, 북두성은 하늘을 가리어, 수사(數事)가 많이 어그러져, 인세(人世)가 곤고(困苦)하여 졌다. 이는 불가불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혹 용서하여 가르칠 수도 있으나, 알고 범하는 자는 비록 지친(至親)이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하고 곧 차자(次子) 유상(有象)에게 명하여 권사(勸士)를 이끌고 무리를 모아 죄를 알리고, 그를 치게 하니, 수년 동안 싸워서, 마침내 당도(唐都)를 혁파(革罷)하였다. 요는 유폐(幽閉) 중에서 죽고, 순은 창오(蒼梧)의 들에 도망하여, 도당(徒黨)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의 무리 우(禹)가 순에게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그를 추격하여 죽여버렸다. 순의 두 처(妻)도 역시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우가 곧 정명(正命)으로 입공(立功)한다고 말하고, 상의 군사를 위로하고 돌아가므로 유호씨가 물러나서 우의 소행을 관찰하니, 이 때에 우가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와 창을 보수하고 유호씨에게 항거하여, 자칭 하왕(夏王)이라 하였다.
第二十章
우가 마침내 부도를 배반하고 도산(塗山)에 단(壇)을 설치하였다.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候)라 하고, 도산에 모이게 하여, 조공을 받았다. 이는 부도 제시(符都際市)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었으나, 폭돌(暴突)한 것이었다.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 부도로 도망하여 오는 자가 많았다. 우가 곧 수륙(水陸)의 길을 차단하여, 부도와 연락을 끊고, 내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 때에 유호씨가 서벙에 살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여, 소부와 허유가 사는 곳과 통하고, 서남 제족과 연락하니, 그 세력이 심히 왕성하여, 스스로 읍(邑)을 이루웠다. 유호가 곧 권사(權士)를 보내, 우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요는 천수(天數)를 몰랐다.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하였다. 기회를 틈타 독단(獨壇)을 만들고,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하여, 사람을 몰아낸 후, 자칭 제왕이 되어, 혼자서 처리 하였다. 세상은 토석(土石)이나 초목처럼 말이 없고, 천리(天理)는 거꾸러 흘러, 허망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천권(天權)을 훔쳐, 사욕의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 제왕이 만약 천권을 대행하는 것이라면, 능히 일월(日月)을 개폐(開閉)하여, 만물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왕이란 수의 요체(數諦)요, 사람이 거짓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칭하면, 다만 사기와 허망의 나쁜 장난이 될 뿐이다. 사람의 일이란 증리(證理)요, 세상의 일이란 그 증리한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니, 이 이외에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명확하게 증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무(本務)를 수행하게 하고, 그 본복(本福)을 받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비록 선후는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숙하고 생소한 것은 있으나, 끌어들이고 몰아내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해가 평등하며, 제족(諸族)이 자행(自行)하는 것이다. 오직 그 오미(五味)의 죄책을 보속(報贖)하는 것과, 대성의 일(大成之業)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일인 희생의 주관아래 있는 것이요, 여러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일은 예로부터 세상 일(人世之事)에 섞이지 아니하였다. 황궁(黃窮)씨와 유인(有因)씨의 예가 바로 이것이다.
第二十一章
또 그 소위 오행(五行)이라는 것은, 천수(天數)의 이치에 이러한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위(方位)의 중앙 5는 교차(交叉)의 뜻이요, 변행(變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1로부터 9까지 이므로, 5는 언제나 중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9가 윤회하여, 율(律)과 여(呂)가 서로 조화를 이룬 후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기수(基數)를 이르는 것이요, 그 57이 크게 번지는 고리(大衍之環)에 이르면, 그 자리가 5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47이 있는 것이다. 또 그 순역(順逆) 생멸(生滅)의 윤멱(輪冪)은 4요, 5가 아니니, 즉 원수(原數)의 9는 불변수이기 때문이다. 또 윤멱이 한 번 끝나는 구간은 2X4=8 사이의 7이요, 5가아니다. 또 그 배성지물(配性之物)은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다섯 중에서 금(金)과 토(土)를 왜 따로 구별하는가.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구별을 하고자 한다면, 기(氣)풍(風)초(草)석(石)따위는 어찌 같이 들지 않는가. 그러므로, 다 들자면, 수가 없는 것이요, 엄별해서 들자면, 금목수화 혹은 토목수화의 넷이요, 다섯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물성(物性)을 어떤 이유로 수성(數性)에 짝지우는가, 수성지물(數性之物)은 그 원수가 9요, 5가 아니다. 그러므로 5행의 설은, 참으로 황당무괘한 말인 것이다. 이로써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무혹(誣惑)하여, 곧 천화(天禍)를 만드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第二十二章
또 그 역제(曆制)는, 천수(天數)의 근본을 살피지 못하고, 거북이나 명협의 미물(微物)에서 근본을 취하였으니, 요는 또 무슨 속셈인가. 천지의 만물이 다 수에서 나와, 각각 수를 상징하고 있는데, 하필 거북과 명협 뿐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물사(物事)에, 각각 그 역(曆)이 있으니, 역이라는 것은 역사(歷史)다. 그러므로, 요의 역제는, 즉 거북과 명협의 역이요, 인간의 역이 아니니, 그것이, 인세(人世)와 불합(不合)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삼정(三正)을 번복하여, 구차스럽게 맞추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하늘의 죄를 끌여들였다. 역(曆)이라는 것은, 인생증리(人生證理)의 기본이므로, 그 수는 몸소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면, 천리(天理)와 인사(人事)가 증합(證合)하여 복이 되고, 역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에 어긋나 화가 되니, 이는 복은 이(理)가 존립(存立)하는데 있고, 이는 정증(正證)에 존립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은, 인세 화복(禍福)의 발단이니, 감히 삼가 하지 않을 것인가. 옛날, 오미(五味)의 화(禍)가, 한사람의 미혹에서 나와서, 만대의 산사람(生靈)에게 미치고 있는데, 지금 또 다시 역의 화가, 장차 천세(天世)의 진리에 미치고자 하니, 두렵기만 하구나.
第二十三章
천도(天道)가 돌고 돌아, 종시(終始)가 있고, 종시가 또 돌아, 4단씩 겹쳐 나가, 다시 종시가 있다. 1 종시의 사이를 소력(小曆)이라 하고, 종시의 종시를 중력(中曆)이라 하고, 네 번 겹친 종시를 대력(大曆)이라 한다. 소력의 1회(回)를 사(祀)라 하니, 사에는 13기(期)가 있고, 1기에는 28일이 있으며, 다시 4요(曜)로 나뉜다. 1요에는 7일이 있고, 요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한다. 그러므로, 1사에 52요복이 있으니, 즉 364일이다. 이는 147성수(性數)요, 매 사의 시작에 대사(大祀)의 단(旦)이 있으니, 단과 1은 같기 때문에 합하여 365일이 되고, 3사의 반(半)에 대삭(大朔)의 판(?)이 있으니, 판은 사의 2분절이다. 이는 258법수(法數)요, 달이 긴 것이 1일과 같기 때문에, 제 4의 사는 366일이 된다. 10사의 반(半)에 대회(大晦)에 구가 있으니, 구는 시(時)의 근원이다. 300구가 1묘(?)가 되니, 묘는 구가 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9633묘를 지내서 각(刻), 분(分), 시(時)가 1일이 되니, 이는 369의 체수(體數)다. 이와 같이, 끝나고 또 시작하여, 차차 중력(中曆)과 대력(大曆)에 미쳐서, 이수(理數)가 곧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의 이 세가지 잘못은, 허위(虛僞)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가히 부도 실위(實爲)의 도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허위는, 안에서 이(理)가 불실하여,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실위는, 이(理)가, 나를 언제나 만족하게 하여, 스스로 함께 존립한다.
第二十四章
유호(有戶)씨가 이와 같이 단단히 타일러서, 제법(諸法)을 폐지하고, 부도로 돌아 올 것을 권하였으나, 우(禹)가 완강하게 듣지 아니하고, 반대로 위협이고, 모욕이라 하여,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수차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모산(茅山) 진지(陣地)에서 죽었다. 이에 하중(夏衆)들이 비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 만이였다. 이는 거의가 우와 함께 치수(治水)를 한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啓)가 이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邑)으로 진격하여 오니, 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 천이었다. 그러나, 하군(夏軍)이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번도 전적을 거양하지 못하였다. 계가 마침내 두려워서 퇴진하고, 다시 공격하지 못하자, 그 무리가 격양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하중(夏衆)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제족(西南諸族)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읍(邑)이 자연히 없어졌다.
제 8 부 : ‘오행(五行)의 화(禍)’가 주는 의미
부도의 법에서는 기(氣)화(火)수(水)토(土)라는 4대 원소로 만물이 구성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이 4가지의 구성 요소가 오행 목(木)화(火)토(土) 금(金)수(水)의 5가지 구성 요소와 차이는 무엇일까?
부도지(符都誌)에서는 이 구절에서 상당히 많은 자리를 할당을 하여 설명을 하였다.
물론 상당부분은 내용에 대한 설명이긴 하지만 그만큼 중요하게 다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도지에 나오는 4대 원소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충하며 완성으로 나가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아이와 어른, 밤과 낮과 같이 서로 상반되는 개념끼리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만물을 이루는 개념이다.
이는 높고 낮음, 잘나고 못남, 귀함과 천함이 없이 모든 것에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그것이 서로 어울러져 조화를 이룰 때 완성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개념이다.
실제 고대 우리나라의 국가는 완전평등을 실현한 공산주의 국가로 높고 낮음이나 귀천의 개념이 없는 완전한 평등 사회라 한다.
이는 우리의 음식문화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외국의 경우 재료 본래의 맛을 살리거나 주된 맛 뒤에 첨가하여 맛이나 향을 첨가하거나 보조해 주는 형식인데 반하여. 우리의 음식은 여러 가지 재료가 어울어져 새로운 맛을 만드는 이른바 비빔밥으로 대표가 되는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행의 원리에서는 토가 중앙에서 다른 네가지 원소의 균형을 제어하는 형상으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통재하며, 희생을 받거나 희생을 하는 관계등으로 이루워져 있다.
이는 지도층의 절대 권력을 형상화 시킨 것으로 계급사회, 투쟁을 정당화 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수(水)는 화(火)를 이기며, 토(土)에게는 지며, 목(木)을 생(목을 위해 희생)하고, 금(金)의 희생을 바탕으로 생성이 된다.
목은 토(土)를 이기며, 금(金)에게는 지며, 화(火)를 생(화을 위해 희생)하고, 수(水)의 희생을 바탕으로 생성이 된다.
또한 토(土)는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니 중국의 황제(皇帝)나 지배층을 형상화 하여 만들어진 개념이라 하겠다.
결국 모든 것이 하늘에서 나온 산물이며 만물이 서로의 부족한 면을 서로 메워주며 이들의 조화에 의해 세상이 만들어 진다는 이론이 서로 생하는 힘에 의해 생성이 되고 극하는 힘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되어 폭주하는 것을 막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이론으로 바뀌었다.
결국 이로 인해 지배자(상극하는 힘)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권력에 대한 욕망에 의해 투쟁이 일어나니 오미의 화에 의해 생긴 관념에 오행의 화로 인한 투쟁의 힘이 보태져 세상을 더욱 혼란하게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제 9 부 : 부도의 역(曆)
부도의 역은 마야나 잉카의 역과 유사하다. 마야나 잉카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태양력을 사용을 한다.
우리민족도 역시 광명을 숭상하여 국가 이름도 밝음을 상징하는 환국이나 배달국이니 그들과 같은 태양력을 사용을 한다고 가정을 하고 이를 보는 것이 유사 할 것 같다.
서양 역시 태양력을 사용한다고 하나 자연의 주기에는 관계가 없이 1년이라는 단위에 날자를 끼어 맞춰 실지 자연의 주기와는 맞지 않는다.
우리의 역은 천부경의 원리에 따라 시작과 끝이 하나(시작과 끝의 주기로 여기서는 1년을 뜻한다.)이니 이것이 한번 돌아가는 것을 소력(小曆)이라 하고 소력의 1회를 사(祀)라 한다.
1사에는 13기(期)가 있고, 1기는 4요(曜)가 있고, 1요에는 7일이 있어, 1사는 52요복(13기X4요)이 있으니 합이 364일이다. 여기서 1사(년)의 시작에 단이 있으니 시작에 1을 합하여 365일이 된다.
또한 여기서 4번째 사에 다시 1을 보태니 366일이 된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1년은 13달이 있고 1달에는 4주가 있고 1주일은 7일(그러니까 1달은 28일)이고 1월달은 하루가 더 있어 29일이 있다. 그래서 1년은 365일이 되고 4년에 한번 윤년이 오면 366일이 된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1년이 13개월이 너무나 과학적인 방식이므로 2000년부터는 이 방식을 취하자 하며 주장을 하는 것으로 봤을 때 우리 조상님들은 너무나 과학적인 달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 6 장 : 잃어버린 부도의 법
第二十五章
이로부터, 천산(天山) 남쪽 태원(太原)의 지역이, 뒤숭숭하고 떠들썩하며, 주인이 없는 것과 같아서, 소위 왕이란 자는 눈이 멀고, 소위 장님은 백성이 되어, 암흑이 중첩하였다. 강자는 위에 있고, 약자는 아래에 있어, 왕과 제후를 나라에 봉하고, 생민(生民)을 제압하는 풍폐(風幣)가 만연하여 고질이 되고 마침내 서로 침탈하기에 이르니, 헛되게 생령(生靈)을 죽이고, 한가지도 세상에 이로운 것이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하은(夏殷)이, 다 그 법으로 망하고서도, 끝내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이는 스스로 부도에서 떨어져 나가, 진리의 도를 들을 수 없게 된 까닭이었다. 어느덧 유호씨가 그 무리를 이끌고, 월식성생(月息星生)의 땅에 들어가니, 즉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의 후예가, 오히려 소(巢)를 만드는 풍속을 잊지 아니하고, 고탑(高塔)과 층대(層臺)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천부(天符)의 본음(本音)을 잊어버리고, 탑을 만드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여, 도를 와전하여, 이도(異道)가 되고,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싸우고 정벌하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마고(麻姑)의 일은 거의가 기괴하게 되어, 허망하게도, 형적이 아주 없어지니, 유호씨가 두루 제족의 지역을 돌고, 마고와 천부의 이(理)를 설(說) 하였으나, 모두가 의아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 전고자(典古者)가 송구스럽게 일어나서 맞이하였으므로, 이에 유호씨가 본리(本理)를 술회하여, 그것을 전하였다.
第二十六章
임검씨가 유호씨의 행상(行狀)을 듣고, 그 길을 장하게 여겨, 유호씨의 족(族)에게 교부(敎部)에 취업하게 하여 살도록 하였다. 이때에, 임검씨가 하토(夏土)의 형세를 심히 걱정을 하고, 마침내 입산(入山)하여, 해혹복본(解惑復本)의 도를 전수(專修)하였다. 임검씨의 아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천지가 하나의 이치가 되는 것을 증명하여, 인생이 일족(一族)이 되어, 크게 부조(父祖)의 도를 일으키고, 널리 <천웅(天雄)의 법을 행하여, 인세 증리(證理)의 일에 전념하였다. 일찍이 <운해족(雲海族)과 긴밀하게 연락하여, 하토(夏土)가 하나로 돌아오기를 시도하더니, 이도(異道)가 점차 성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를 아들 읍루씨(?婁氏)에게 전하고 입산하였다. 읍루씨가 날 때부터, 대비(大悲)의 원(願)이 있어, 천부삼인을 이어받고, 하족(夏族)이 도탄에 빠진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진리가 사단(詐端)의 지역에 떨어진 것을 슬프게 생각하여 마침내, 명지(明地)의 단에 천부를 봉쇄하고, 곧 입산하여, 복본의 대원(大願)을 전수(專修)하며, 백년 동안 나오지 아니하니, 유중(遺衆)이 통곡하였다.
임검씨가 후천(後天)의 말세의 초에 태여나, 사해의 장래를 미리 살피고, 부도 건설을 시범하니, 천년 사이에 그 공업이 크게 이루어졌다. 이에 이르러 천부의 전해짐이 끊어져, 마고 분거(分居) 이래로, 황궁(黃穹), 유인(有因), 환인(桓因), 환웅(桓雄), 임검(壬儉), 부루(夫婁), 읍루(?婁)의 7세에 천부가 전해진 것이 7천년이었다.
제 10 부 : 잃어버린 부도의 법
상고사에 있는 우리 고대국가를 보면 큰 의문점이 하나가 있다.
한단고기나 기타 다른 상고사에 관련된 서적을 보면 우리민족의 영토가 너무나 거대했다.
그 영토를 어떻게 관리를 했을까?
조선시대 인구 조사를 한 것을 보면 1억8천만의 인구가 있다 했다.
이것으로 봤을 때 당시의 영토는 지금의 유라시아 대륙의 상당부분을 차지를 했을 것이다.
특히 당시에는 통신기기나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지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 중앙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기가 힘이 들었을 것이다.
만약 지방에 어떤 세력을 지닌 지방 호족이 나쁜 마음을 먹고 은밀히 세력을 모은다면 중앙에서는 알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예를 봐도 국가의 크기가 어느 정도 이상 커지면 관리의 어려움으로 통제력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중국 같은 경우를 봐도 역사가 200년 이상 되는 나라가 없다.
앗시리아제국, 사라센제국, 원나라 같은 경우도 그렇다.
로마 같은 경우는 교통망을 엄청 강화시켜(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교통망에 엄청난 에너지를 쏳았다.)그래도 그나마 오래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고대 국가는 그러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국가가 유지를 할 수 있었을까?
당시 환국은 3301년, 배달국은 1565년, 조선은 209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잉카제국의 국가 형태를 보면 답을 알 수가 있다.
잉카제국도 우리와 같은 우리와 같은 공산주의 체제 였다.
그들은 강력한 종교의 힘으로 국민을 묶어 일을 하지 않음은 죄악 이였기에 특별한 통제 수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우리 고대국가가 공산주의 사회라는 말을 했었다.
우리는 환인, 환웅, 단군을 한얼님이란 말로 자주 불렀다.
이것은 큰 얼을 가진 님이란 뜻이니 이들이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었다는 말이다.
부도의 법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기에, 천손족의 문화로써 정신적으로 모두가 한 울타리안에 있었기에 국가가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고성의 시대는 본성만을 가지고 있었던 시대이다. 그렇기에 그때는 우리 모두가 신성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오미의 화로 욕망이 생기고 관념이 생겨 본성에 막이 생겨 신성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마고성에서 나오게 되었고 12명의 천인(天人)에 의해 민족은 여럿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황궁씨(黃穹氏)에 의해 그 법이 잘 지켜져 주변의 다른 나라의 정신 지도국으로 그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었다.
다시 오행의 화가 있고 이에 의해 지나족은 혼란한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이들은 안정된 조선으로 흘러 들어 오게 되고 이들에 의해 이민족의 저급한 문화에 의해 문화 침투를 당하게 되어 우리가 오히려 오행의 화를 입게 된다.
이 오행의 화에 의해 지배욕이 생기게 되고, 투쟁심이 생겨 민족을 이루고 있는 정신적 고리가 끊어지며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어 결국 부도의 법을 잃어 버리고 국가가 분열하게 된다.
고열가 단군 때에는 더 이상 통제를 하기 어려운 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까지 가서 결국 법을 안고 폐관을 하게 된다.
제 7 장 : 삼한에서 삼국으로
小 符 都 誌
第二十七章
은(殷)의 망명자 기자(箕子)가, 패군과 난민을 이끌고, 부도의 서쪽에 도망하여 왔다. 명예를 위하여 당우의 법을 행하고, 오행 삼정(五行三正)을 써서, 홍범 무함(洪範巫咸)을 시행하였다. 천웅의 도와는 절대로 서로 용납할 수 없었다. 은의 군민(軍民)이 무력으로 부도의 유중(遺衆)을 억압하므로, 유중이 마침내 명지(明地)의 단(壇)을 봉해버리고, 동해의 물가로 피하여 살았다. 즉 옛날의 사례벌(斯禮筏)의 공지(空地)였다. 사해벌은 긴 기(長旗)니, 광야(曠野)에 유배된 사람이, 아침에 내걸고, 저녁에 거둬들여, 먼곳에서 살면서 지키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망가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곧 육촌(六村)을 설치하고, 입접의 제족과 분담하여, 함께 지키되, 각각 한(韓)이라 하고, 보위(保衛)하였다. 한은 보위의 뜻이다.
북의 마한(馬韓)과, 남의 변한(卞韓)과, 동의 진한(辰韓)의 삼한이 부족의 자치를 행하고, 선세(先世)의 도를 굳게 지켜, 이후 천년 사이에 기자의 법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보위 방비하는 일에 전념하여, 거의 여력이 없었다. 이 때 하토(夏土)의 쟁탈의 바람이 점차 격심하여, 동요와 혼란이 삼한에 파급되므로, 육촌의 사람들이 서로 모의하고, 서쪽의 화가 점차 임박하여, 보수(保守)하기가 장차 위태로우니, 어쩔 수 없이 통합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마침내 경계를 정하고, 요새(要塞)를 세워, 혁거세를 추대하여, 통어(統御)하는 일을 위임하였다. 남은 백제(百濟)요, 북은 고구려(高句麗)였다. 고구려가 곧 북보(北堡)의 땅을 회복하여, 서침(西侵)하는 사람들을 쫓아버리고, 그 지역을 완전하게 보위하였다.
제 11 부 : 열국시대로
앞에서 얘기를 한 것처럼 오행의 화에 의해 혼란진 중국의 여러 국가(夏, 殷)의 유민이 삼한으로 흘러 들어옴으로써 삼한의 백성들이 꺼꾸로 문화 침투를 당하여 부도의 법이 끊어지고 의식의 고리에 틈이 생겨 국가의 통제력의 한계를 맞게 된다.
특히 44세 단군 때부터는 삼한은 통치는 받으나 군사권은 각각 나눠 가졌으며, 47세 고열가 단군의 폐관 이후는 실질적인 법통을 잃어 삼한이 여럿으로 분열이 되니 그 여러 제후국 중 가장 강한 나라에서 단군이 나왔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법통을 가진 진한의 후예가 이러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권력 쟁탈전에 회의를 느껴 이 들의 세력이 닿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 가서 나라를 세우니 이가 신라가 되었다.
그리고 삼한의 여러 나라 중 고구려와 백제가 있어 다른 여러 나라를 병합 하여 커지니 후세 사람들이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이렇게 생성 되었다.
제 8 장 : 잃어버린 역사
제 12 부 : 한사군의 허구
70년대 중반 재야 사학자 임승국은 한사군의 명칭이 사마천의 ‘사기(史記)’ 115권 조선열전(朝鮮列傳)은 물론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지극히 단순한 이사실 하나를 발견하는데 2000년이 걸렸다면 과연 믿겨질 만한 일인가?
한말 친일어용 사학 단체인 청구학회의 공동 대표 였으며 해방 후 반세기 동안 남한 사학계의 태두였던 이병도는 사기(6권)에 한사군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했으나 임승국에 의하면 사기 그 어느 곳에도 그러한 기록이 없다.
일연스님조차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가 한사군을 논한 것을 보고 군의 수도 명칭도 틀리다 하였으나 어찌 2000년 동안 한번의 의문도 없이 이를 받아드렸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한무제가 보낸 수군제독 양복은 열수를 거슬려 올라가다 조선 수군의 습격을 받아 패전하여 배는 가라앉아 버렸고 상륙하여 도망다니는 치욕을 치렀다. 또한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한무제에 의하여 사형이라는 극형을 당하고, 사체는 찢겨 사대문에 걸리는 기시(棄市)에 처해 졌던 것이다. 육군 사령관 순체(筍?)도 같은 기시를 당했다. 이 전쟁의 주역이였던 양군의 사령관이 모두 기시에 처해 졌다는 것은 이들이 승전의 주역이 아니라 패전의 주역 이였다는 말 일 것이다.
만약 이들이 승전고를 울렸다면 이들은 승전의 영웅이지 결코 이렇게 죄를 물어 처형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패전한 나라가 한사군을 설치를 할 수 있었겠는가?
실지 위만조선으로 알려진 우거 정권이 구테타로 무너진 뒤 그곳에 설치된 사군은 한나라사람이 다스리는 사군이 아니라 조선사람 참최음협이라는 네 사람이 다스리는 평주홰청추저날양이라는 4군이였다.
사기에서는 조선이 평정되어 4군이 되었다고 하며 평주홰청추저날양이라는 4군을 소개 했고, 이 사군의 행정 통치 책임자들을 조선족인 최음참협이라는 네 사람이라 했다. 또 그 4군의 위치를 발해 연안에서 산동반도까지라 했다.
그러면 우리 역사의 기록에서 흔적을 보면 낙랑국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나온다.
많은 사학자들이 낙랑군과 낙랑국을 같은 존재로 봤으나 이들 둘은 서로 다른 존재이다..
삼국사기에서의 낙랑국에 대한 이야기는 저유명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 져 있다.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大武神王) 15년(서기 32년)때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보면 낙랑왕 최리(崔理)가 낙랑군의 태수가 아니라 왕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낙랑이 멸망을 한 시기가 강단사학자의 말을 빌리면 미천왕 14년(서기 313년)에 고구려에 의해 멸망을 하였다 하니 대무신왕(大武神王) 15년(서기 32년)에 멸망을 한 낙랑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또한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림이사금(基臨尼師今) 3년조의 “3월에 우두주(牛頭州)에 이르러 태백산에 망제(望祭)를 지냈다. 낙랑과 대방 양국(兩國)이 귀복하였다”는 기사 역시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으로 이야기가 되었고, <삼국사기>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조에도 ‘낙랑은 신라와 이웃나라이다’라 했다.
이 낙랑국의 위치는 앞서 고구려본기에서는 고구려의 남쪽이라 했고 남해차차웅조에서는 신라와 이웃나라라 했으니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있는 작은 국가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렇게 여러 자료에서 보듯 낙랑군은 그 이름만이 보이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유령국가 이다.
제 9 장 : 어둠속으로
第二十八章
이보다 먼저, 육부(六部)의 촌장(村長)들이 약(藥)을 캐는 날에 모여서, 선도산 단묘(仙桃山壇廟)의 성모(聖母)가 알을 낳다는 말을 듣고, 여러 사람이 가서 보았다. 동쪽의 우물을 보로 덮어 가리고, 껍질을 벗겨서, 남아를 얻었다. 몸에서는 빛이 나고, 귀가 부채만큼 컸다. 곧 박(朴)으로써 성을 삼고,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하였다. 박은 단의 어음이 박달이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여 성을 삼았으며, 혁(赫)은 빛이니, 즉 광명으로써 암흑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뜻이다.
육촌의 사람들이 함께 양육하니, 점차 자라면서, 신기(神氣)가 수명(秀明)하고, 대인(大人)의 도가 있었다. 13살에 여러 사람이 추거(推擧)하여, 거서간(居西干)이 되니, 거(居)는 거(据)요, 간(干)은 방(防)이요, 장(長)이다. 즉 서방에 의거하여, 경계하는 방어장(防禦長)의 뜻이다. 서방은 즉 저들 서침하여 사도(詐道)를 행하는 자들이다.
第二十九章
혁거세씨는, 천성(天性)은 신과 같고, 지혜는 성인과도 같았다. 또 현비(賢妃) 알영(閼英)을 맞이하니, 그 때 사람들이 그들을 가르켜 이성(二聖)이라 하였다. 능히 여러 부족을 통솔하여, 선세(先世)의 도를 행하며, 제시(祭市)의 법을 부흥하고, 남태백산(南太白山)에 천부소도(天符小都)를 건설하였다. 중대(中臺)에 천부단을 축조하고, 동서남북의 사 대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여, 계불(??)의 의식(儀式)을 행하고, 대인(大人)으로 하여금, 금척(金尺)의 이치에 따라, 천지시원의 근본을 증리(證理)하여, 옥관(玉管)의 음을 내서, 율여화생법(律呂化生法)을 수증(修證)하였다. 해마다 10월에 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으니, 이는 황궁(黃穹)씨의 속신백모지의(束身白茅之義)를 따르는 것이었다. 달구(達丘)에 조시(朝市)를 배풀고, 율포(栗浦)에 해시(海市)를 열어, 육해 교역의 제도를 수립하였다. 항상 순행(巡行)하여, 농상(農桑)과 방적(紡績)을 권장하니, 들에는 노적(露積)이 쌓이고, 집에는 베(布)가 저장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착한 일을 크게 일으켜, 여러 사람과 함께 그 고락(苦樂)을 같이 하고, 밖으로 방패와 창을 쓰지 아니하며,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보존하였다. 한 마음으로 복고(復古)하고, 중건(重建)하는 일에 전념하니, 경내가 도가 있어, 옛날과 흡하사였다. 이 때에 변진(弁辰) 제족이 합동하여 협력하니, 비록 경계를 두고 방비하나, 나라를 칭하지 아니하고, 또 왕을 칭하지 아니하였다. 경내를 다스리는 일은 선세(先世)의 법을 준수하여, 제회(祭會)에서 의결되지 아니하면, 일찍이 한가지의 일도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영수계위법(領首繼位法)이, 역시 혈계(血系)를 한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현명한 사람을 택하여 영수를 삼았다.
第三十章
남아 나이 20살이 된, 아름답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택하여 마랑(馬郞)이라는 직을 주고, 명령을 받들어 원행(遠行)하게 하였다. 혹 성생월식의 옛 땅에 나아가며, 혹 운해천산의 여러 지역에 가니, 이 원행은 부도 수신(修身)의 유제(遺制) 였다. 동해에 피하여 산 지 천여년사이에 제시의 회(祭市之會)를 열지 못하여, 서로 내왕이 오래 끊어지고, 또 봉국쟁탈(封國爭奪)의 풍조가 사해에 만연하여, 제족이 각자 나라를 칭하고, 오랜 세월에 전란이 반복하니, 겨레(族)가 종횡으로 나뉘고, 말이 잡다하게 변하였다. 천부는 거의 망각하기에 이르고, 혹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어도, 다 변형(變形)하여, 음이 다르니, 마랑들의 원행이 심히 어려워, 순절(殉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랑들이 만리 원행에서도 절조를 지켜, 능히 굳은 뜻을 가지고, 백난을 극복하여 사명을 완수하니, 그 거룩한 인격이 진실로 호매(豪邁)하였다. 장하게도 귀환하면, 반드시 직사(職事)에 임명하여,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와 역수(曆數)와 박물(博物)을 공부하게 하니, 이는 즉 선세에 사해를 통화하여, 인세(人世)를 하나의 법에 맞추는 유업이었다.
第三十一章
서례벌(西禮筏)을 창도(創都) 한 후로, 어느덧 삼세(三世)를 지나니, 백여년이 되었다. 세상의 풍조가 크게 변하여 보수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국왕(國王)을 세워, 대권을 행사 하게 하자는 여론이 대두하여, 이러니 저러니 하고 시끄러웠다. 그 반대자들은 선세의 유법이 밝고 밝게 천부를 비추니, 지금 비록 시대가 어려우나, 보수하고 튼튼히 방비하여,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 어찌 사단(詐端)에 굴종하여 스스로 소자(小子)가 되어, 패리지중(悖理之中)에서, 모독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와 같이 된다면, 의롭게 목숨을 바쳐, 진도(眞道)를 뚜렷하게 나타내어, 후세에 남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 찬성하는 사람들은, 외세가 긴박하여 파동이 격심하니, 어떻게 방비를 하겠는가. 담장 안에서도 이반하여 시끄러움이 그치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보수한단 말인가.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같이 경쟁하는 마당에 뛰어들어, 부강하게 된 후에, 유업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지금 사해 제족이 사도에 미쳐 날뛰어, 봉사가 된 지 오래 되었다. 우리가 지금 자멸하여 버리면 누가 진도를 현창하며, 후세에 누가 있어, 이를 알 것인가. 만약 능히 방비하여, 보수한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고립되면, 새 백마리 가운데 백로 한 마리가 되어, 오히려 이도(異道)가 되고 세상에 존립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니, 장차 또 그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 같은 것은 다 옳지 못하여, 오직 택할 바는, 나라를 세우고 왕을 높여, 대권(大權)을 집행하며, 군마를 호령하여, 파죽지세로 전진하고, 부도 전역을 회복하는 것 뿐이다. 부도를 다시 세워, 그 근본을 명시하면, 제족이 비록 완강하더라도, 반드시 각성하여, 근본으로 돌아올 것이다.
第三十二章
이에, 마침내 중론(衆論)이 결정되었으므로 인망(人望)이 왕국 수립을 주장하는 석(昔)씨에로 돌아 왔다. 석씨는 동보(東堡) 유배인의 후예로, 옛날부터, 해빈(海濱)에서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체격이 장대하고 지략이 있었으므로, 남해씨(南海氏)가 딸을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대중의 여망에 따라, 자리를 이어 탈해왕(脫解王)이라 칭하니, 즉 보수(保守)의 질고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또 서라국(徐羅國)이라 칭하고, 비로소 방패와 창을 사용하여 경내(境內)를 평정하였다. 용병(用兵)을 과도하게 하여, 필경은 배척당하였다. 중론이 다시 박씨의 보수계로 돌아오니, 이에 박씨가 다시 계승하고, 왕국의 칭호를 폐지하였다. 4세를 지나, 중론이 또 석씨에게로 돌아 갔으나, 단 정벌하는 일을 원하지 않으니, 이가 벌휴씨(伐休氏)였다. 석씨 4세 사이에 정벌을 다시 시작하니, 중론이 김씨의 중화(中和)로 돌아왔다. 김씨는 원래 부도에서 동쪽으로 옮겨와 살던 비족으로, 온양덕후(溫讓德厚)하여, 지마씨(祗摩氏)가 손녀를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자리를 이으니, 이가 미추씨(味雛氏) 였다. 이 때를 당하여 서북의 환(患)이 계속해서 일어나되, 하나도 조치된 바가 없으므로, 중론이 다시 석씨에게로 복귀하였다. 이에 석씨가 다시 자리를 이어, 3세 사이에 정사(征事)가 허다하여, 민물(民物)을 탕진하므로, 크게 시대의 배척을 받았다. 중론이 다시 김씨에게로 돌아가니, 이에 김씨가 다시 이어 오늘에 이르렀다.
第三十三章
오직 우리, 근본을 지키는 족들이 동해에 피하여 살면서, 방비하고, 보수한 지 삼백여년 사이에, 중론의 번복이 이와 같으니, 가히 역외(域外) 풍운이 어떠함을 살필 수가 있을 것이다. 또 가히 천부의 진리가 사단의 세상에서도 의연하게 살아 있음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세 중론이 반드시 이 도가 무너지지 않는 것에 근거하여, 역대 영수가 오히려 중론의 소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과격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능히 조절하여, 보수를 크게 전하였으니, 마침내 오늘의 사람들로 하여금 가히 천부의 실재를 알게 하며, 또 장차 후인으로 하여금 때를 만나 그것을 행하게 하여, 능히 부도를 다시 건설하고, 사해를 통화하며, 인세가 복본하여, 진리를 명증(明證)하게 하면, 당시 석씨의 논이 과연 불행 중에서 행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題詩
[아지랑이 초초(??)하게
흐르는 걸 바라보니,
나그네의 마음도
가을처럼 지는구나.
세간(世間)의 견백(堅白)도
유유(悠悠)한 일도
징강(澄江)을 대하고 앉아
근심을 잊는다.]
觀雪堂
음신지, 역시지, 천웅지, 성신지 계속 출간중. 편찬자 백영해 박씨 대종회
제 13 부 : 어둠속으로
조선의 정통성을 이은 진한(眞韓)의 후예가 서라벌로 옮겨오면서 박혁거세를 거서간(居西干)으로 삼는다.
혁거세씨는 부도의 법에 맞춰 제시(祭市)의 법을 부흥하고, 금척(金尺)의 이치에 따라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오행의 화가 그 주변에 미쳐 세상의 풍조가 크게 어지러워 지자 신라의 재계층 역시 따라 흔들려 여러가지로 의견이 분분하였다..
결국 박(朴),석(昔),김(金)씨로 번갈아 가면서 왕권이 바뀌어 본래의 뜻(부도의 법을 수호)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의 시달림에 지친 신라가 당과 연합을 하면서 많은 유학자나 심지어는 왕족 조차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 오면서 부도의 법을 잊어 버리고 문화 침투를 당해 오행의 화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병합하면서 정통은 수호 하였으나 이미 이들은 오행의 화에 노출이 되어 있었기에 결론적으로 민족의 정기에 큰 손상을 가져 온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영향을 받아 김부식과 같은 사대주의 학자는 그 뿌리를 잊어버리고 모화사상에 쌓여 우리의 역사를 왜곡을 시켜 후세 사람들이 제 역사를 알고자 해도 알 수가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대들은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라.
[출처] 태을금화종지_여동빈 신선술|작성자 탈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