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와 소년성 (2)

혹자는 바로 그렇게 책임만을 지는 존재를 두고서 부모나 선생 같은 성질을 떠올리고, 이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상향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어른’은 현실이 아닌 곳에서 등장해 오곤 한다. 가령 서브컬쳐 등지에서 목격되는 ‘마망형’ 인물의 등장은 우리가 ‘등가교환’의 시대를 벗어나 어떠한 교환비가 아닌 목격 이전의 무언가를 바라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들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허락된 일방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을 원하고, 여기에는 성적이거나 이성의 면모는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을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존재, 혹은 아무 곳에 가지 않고 항상 여기에 있는 존재를 원할 뿐이다. 여기서 하나의 사례로 들어볼 만한 [블루 아카이브]는 청소년 불가 게임이면서 동시에 소년성을 갈망하는 게임이다. 이는 특히 작품의 주된 이야기가 학생과 선생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또한 그 관계가 선생은 학생이 나쁜 길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해준다는 점으로 인해 확언된다. 작품의 주제의식은 “아이들의 고통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다”라는 대사로 요약되는데, 일본 서브컬쳐 문화의 영향 아래에 있는 이 게임이 근본적으로 한국 개발사의 작품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왜냐하면 어른과 아이의 관계는 허문영이 지적했듯이 한국사회에 떠도는 소년들의 모습, 혹은 우리가 구하지 못했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월호 이후의 달라진 소년성에 관한 한국사회의 일면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소년소녀’는 자신이 직접 책임을 마주하려 들기보다는 그런 책임을 짊어질 어른을 필요로 한다.

<블루 아카이브> 자체를 비평의 텍스트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야기를 담기에 그릇이 너무 얇고 넓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게임의 기본 전제인 어른과 학생의 관계에서 우리는 세월호 이후 달라진 한국사회의 소년성을 목격한다. 이는 단순히 ‘학생’을 다룬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선생이라는 단어의 표현 방식에 관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선생이라는 단어의 용례를 떠올려보자. ‘선생’이라는 말은 무릇 존경할 만한 인품을 가진 사람, 혹은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인에 관한 일반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게 섣불리 충고하는 이에게 “선생질하지 마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게임의 선생은 “이 세상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을 뜻하고, 의미의 범주는 그런 세상을 만든 사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선생은 그저 책임을 지는 사람일 뿐이며 여기에는 결과만이 있을 뿐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선생은 책임에 관한 원초적인 무언가이며 이는 한국사회가 선생을 일종의 ‘마망’형 인물로 바라본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선생이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예수를 모티브 삼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추측은 더욱 신빙성 있다. 모든 책임을 지는 존재로서의 어른은 마치 예수처럼 모든 사건과 감정을 짊어지고서 그들의 감정을 대리하는 존재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사회의 소년들이 책임을 마주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을 제기해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를 거부하고서 모든 책임을 어른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른은 일종의 책임회피 용도로 발명된 개념인 게 아닐까.

물론 게임 안에서 선생은 어른이라는 말과 사실상의 동의어로 파악되고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학교로 설정된 무대에서 선생은 유일한 어른이며, 그 외의 어른은 학교 소속이 아닌 적대 세력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특기할만한 점은 작중 등장하는 어른이 모두 [세계]의 밖에서 출몰해왔다는 점이며, 세계를 인식의 한계로 규정하는 전통 철학에 견주어볼 때 어른은 일종의 개념적 발명에 가깝다. 어떤 만화 장르에서 용사가 이세계로의 소환을 겪듯이 이 게임에서도 선생은 다른 세계로 출몰해온다. 바꾸어 말해 학생과 책임을 다루는 이 게임에서 선생은 말 그대로의 예수, ‘책임감’이라는 원죄를 모두 짊어지고서 세계가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돕는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어른’과 ‘선생’을 분리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대두한다. 어른이 단순히 아이의 바깥에 해당한다면, 어른은 아이들이 책임을 회피할 요령으로 만들어낸 ‘피터팬 증후군’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선생의 경우라면 아이들을 끝까지 믿고 따라가는 자로서 그 어떤 사례에서도 학생을 세계의 끝으로 인도한다. 따라서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한 선생은 아이들이 세계를 외면한 결과로 탄생했다기보다는 “아직 이곳이 살만한 세상이라는 개연”으로 보아야 한다. 폴 리쾨르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두고서 “견디기 힘든 세계는 결국 살 만한 세계라는 문제의식의 테두리 안에서만 성립”한다고 적었다. 이를 따르자면 우리는 ‘바깥’은 내부에 대한 하나의 요청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야말로 바깥의 틀 안에서만 성립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어른’은 처음부터 아이를 보듬는 존재였으며 학교라는 무대의 설정은 이들의 관계를 세계의 끝으로 연장하기 위함이었다.

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도자’라는 말은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주는 일을 뜻하면서도, 세상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세계가 다 끝나버린 채라면 언젠가 길도 끊길 것이므로 인도자라는 직책은 유명무실하니 말이다. 이는 선생의 역할이 단순히 책임을 지는 존재인 것만이 아니라 세상이 아직 살만하다는 개연을 내보이는 것임을 말해준다. 이른바, 선생이 외부에서 출몰해왔다 한들 이러한 내부는 멸망한 외부에 보호령으로 존속하기보단 여전히 나아갈 수 있는 ‘바깥’을 확보하는 것에 불과하다. 세계는 아직 끝장나지 않았으며 따라서 개인의 책임은 밖으로 미루거나 버려둘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세계는 헬조선처럼 탈출해야하는 성격의 장소가 아니며, 아이들만이 존재하는 사회에 어른의 역할을 가져오면서 ‘이 세상’의 범주를 재설계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세상의 경계를 그리는 일과 책임의 한계를 부여하는 일을 한 가지 기준으로 병합하는 것이 가능하다. 앞서 말했듯이 세계의 크기가 곧 인식의 한계라는 점에서 책임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바깥에서 등장해온 선생은 가능세계의 인도자로써 개인을 다시 세계의 범주로 돌려놓는다. 왜냐하면 개인은 자신이 세계를 책임질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세계에 소속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어른의 역할이 아이에게 동심을 쥐여주는 것이라면 선생의 역할은 학생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험지를 주행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바깥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세계는 어떤 점에서의 꿈과도 같다. “우리가 꿈속에 있는 동안에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뭔가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깨어났을 때뿐이다.”

이때 매체를 두고서 관객이나 독자의 상상된 세계로 가정하는 일은 꿈에 관한 해석을 돕는다. 게임 속 캐릭터가 게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꿈의 세계를 연상해보자. 캐릭터는 게임이 끝남과 동시에 그곳 세계에 버려지며 오직 플레이어만이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플레이어의 탈출을 두고서 ‘무책임’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데, 이는 게임이 내보일 수 있는 걸 모두 보여주었을 뿐이기에 그렇다. 즉 게임에서 끝이라는 말은 인식의 한계를 의미할 뿐 세계의 멸망에 대입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는 멸망해야 한다. 꿈은 박살나기 위해 자신을 세계에 내보이며, 꿈이라는 가능세계는 버려진 의식을 수면으로 올린다는 점에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들의 총체이다. 어떠한 인식을 따라가는 일에서 세계는 결코 개연성 없는 무언가로 느껴지지 않으며 이는 기본적으로 꿈이 책임과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개연성은 우리가 그걸 책임져야 할 때, 즉 그들의 세계에 개입해서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점을 말해주기 위해 사용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여기서 꿈은 책임을 저버리면서 일탈을 허용하는 장소일 뿐, 그 본질에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버려둘 요령으로 설계된 공간은 아니다. 꿈은 세계의 바깥이라는 점에서 책임과는 거리가 있고 하지만 언젠가는 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 세계로 동행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것이 어떤 소년들이 스크린 안에서만, 그 매체의 틀 안에서만 잔존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영화에서 소년성이 줄곧 되풀이되는 이유는 단지 그 가능세계에서만 소년들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gq0OdRIEao&ab_channel=M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