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덕과 철학 (2) - 원신과 중국 특색 사회주의

중국의 게임 회사 '호요버스'에서 만든 '원신'이라는 게임은, 나올 당시에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표절작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짱숨 (짱깨의 숨결)이라는 멸칭으로 불렸다는 건 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대충은 알고 있을 거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가히 오픈월드의 새 경지를 쓴 닌텐도의 역작이며, 당시 신세대 기기였던 닌텐도 스위치의 판매량을 견인한 타이틀작이기도 하다. 평론 사이트 메타크리틱의 한마디로 세간의 평을 정리한다 :

"Game of the year? Think bigger. Critics are calling the new Legend of Zelda one of the best games ever made."

(올해의 게임? 더욱 크게 생각해 보세요. 비평가들은 이번 새로운 젤다의 전설을 역사상 최고의 게임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임을 표절했다는 것만으로도 원신의 비판 근거는 당위성을 받아 "짱깨가 짱깨 했다"라는 인종차별 발언도 서슴지 않을 정도의 강도 높은 힐난이 게임 커뮤니티에서 이어졌다. (물론 원시는 젤다에게 거의 표절 수준으로 영향을 받은 게 맞다. 그러므로 표절에 대한 비판은 적어도 유효하다. 이 점은 확실히 하고 가자)

원신이 출시된 지 2년이 넘은 지금. 호요버스는 그 어떤 오타쿠 게임 회사들과 비벼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졌고, 원신 ip는 이미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오타쿠 ip들을 (페그오, 동방, 보카로...) 능가하는 듯 보인다. 중국의 서브컬처 시장은 이미 본토인 일본을 위협하고 있다.

원신에 등장하는 '리월'이라는 국가는 티바트 대륙 동쪽에 위치한 풍요로운 항구 도시이며,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원신에는 현실 국가를 모티브로 한 가상의 지역들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이나즈마는 일본을, 수메르는 인도와 이집트를 모티브로 했다. 판타지 작품에서 현실 국가에 모티브를 얻는 건 흔한 일이다. 그렇다면 리월은 어디를 모티브로 한 지역인가?

건물의 양식이나 인물들의 의복을 보면 리월이 중국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또한 리월을 다스리는 7명의 상인들을 '리월 칠성'이라 부르는데, 마침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7명이다. 이건 기막힌 우연이 아니라 의도한 바이지 않을까?

여기 의문점이 있다. 왜 리월 칠성의 구성원들은 '상인'인가?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며, 공산주의는 시장경제를 배척하지 않는가?

이 질문의 답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중국은 이미 시장경제를 받아들인지 오래되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짬뽕된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기존의 사회주의 이론을 살펴보자.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는,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에서 촉발된다. 그의 유물론에 따르면 하부구조(경제체계)가 상부구조(정치체계)를 결정하기 때문에, 중국의 낙후된 자본주의로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가 없다.

레닌은 후진국에서 정치적 상부구조가 경제적 하부구조를 작위적으로 변화시켜 공산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당시 중국과 같은 후진국에서의 공산혁명을 긍정한 것이다.

마오쩌둥은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하고 봉건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사회주의 사상을 도입하였다. 마오쩌둥이 기존의 사회주의 사상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꿔 중국에 보급한 것이 '마오이즘'이다.

마오이즘이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차별화되는 점은 혁명의 주체를 농촌과 농민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의 이론의 기반이 되는 모순론과 실천론은 지금 여기서 다루기에는 부적절하니 넘어간다. 마오이즘을 간단히 설명한 이유는 마오이즘이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이 중국을 얼마나 후퇴시켰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현대 중국에서 마오쩌둥을 평가하는데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 공칠과삼 (공로가 70% 과오가 30%)에서 그 30%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중국의 경제적 빈곤은 더욱 심화되었다. 중국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세계 체제 내의 국가 간 체계에서 도전을 받고 있었다. 외부의 위협뿐만 아니라 내부도 뒤숭숭했다.

이 상황에서 마오쩌둥이 죽자,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후계자였던 화궈펑을 축출하고 실권을 장악했다.

덩샤오핑(1904~1997)은 제3대 중화인민공화국 최고 영도인으로, 개혁개방정책을 실행했던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천안문 항쟁 당시 무고한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독재자이기도 하다.

그가 했다고 알려지는 "不管黑猫白猫, 能捉到老鼠就是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없이,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라는 말은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중국의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무엇보다도 인민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미국과 전면 수교하고 4곳의 경제특구를 지정했다. 덩샤오핑은 이러한 개혁개방정책의 사상적 이론으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내세웠다.

덩샤오핑은 마르크스 사상에 입각했다. 중국은 완전한 사회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로 향하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기본 요건을 갖추고 공산주의를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바탕 아래에서 정치 체계는 민중 민주주의의 독재를 유지하면서, 경제 체계는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시작되었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바탕이다.

다시 원신으로 돌아오자. 티바트 대륙 전체는 '모라'라고 하는 화폐를 이용하는데, 이는 암왕제군이 자신의 몸을 쪼개서 만든 리월의 화폐이다. 리월의 화폐가 기축통화인 셈이다. 현실에서 어떤 화폐가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그 나라에 첨단 금융 시장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리월은 게임 속에서 어마어마한 금융대국임이 틀림없다.

호요버스가 중국을 모티브로 한 리월을 금융대국이자 상인 집단들의 나라로 표현한 것은 의외로 현실을 잘 파악한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중국은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 공산주의적이면서 자본주의적인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