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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새 #동화 #나팔꽃 #기억

아기새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바닥이 점점 더 뜨거워져서 그늘에 숨어있다가 벌레들이 들꽃을 깨우지 못하도록 하거나 냇물에서 몸을 식히며 지냅니다.

아기새는 그늘에서 잠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저녁때 만날 계곡풍을 생각해서 열심히 날개짓 연습도 합니다.

계곡에 우렁차게 울리며 퍼지는 ‘맴맴~~~’ 소리를 들으며 홀로 뜨거운 낮을 보냈습니다.

더운 한낮이 지나 공기가 서늘해 질 무렵 졸고 있던 연한 보라 들꽃이 서서히 눈을 뜨고 말합니다.

이제 슬슬 떠나가겠구나.

뭐? 어딜 가? 꽃도 움직일 수가 있어?

하하하. 움직이지는 못해도 갈 수는 있지.

난 곧 이 곳을 떠나. 네 덕에 잠도 잘 자고 할 일을 다 마쳐서 편히 갈 수 있게 되었어. 고마워.

아냐. 나도 당신들 덕분에 뜨거운 낮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어.

그래? 그럼 다행이구나. 아차. 근데 넌 뭘 하려고 여기 있는 거니?

날기 위해 여기에 왔어. 아직 날지는 못하거든.

계곡 안쪽에 사는 노란 할미꽃이 계곡 끝에 가서 바람을 타라고 했는데 아침 바람을 노쳤어.

이제 저녁에 올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렇구나. 그런데 바람이라면…. 계곡풍을 기다리는 거지?

그는 꼭 때 맞춰 오니까 너만 준비하고 있으면 될 거야.

단지 바람의 등을 타거든 최선을 다해 날개를 펴.

넌 새니까 그거면 충분히 날 수 있을 거야.

내가 새가 맞긴 할까?

뭐라고? 하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냇물에 비춰진 널 봐. 넌 분명 새야. 그러니까 날고 싶은 거지.

날고 싶은 게 확실하다면 넌 새 인 거야.

난 날고 싶지 않거든. 그래서 날겠다는 꿈을 꾸 지도 않아!

아기 새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지만 날 수 있다고 확신을 주는 이가 있는 것이 싫지는 않습니다.

근데 넌 어딜 가는 거야?

난 이제 죽어.

뭐?

놀란 아기새의 눈이 빗방울 100개 만큼 커졌습니다.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은 너보다 짧거든.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아기 새는 온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겨우겨우 입을 떼어 말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거지?

그렇지. 누구나 죽어. 대신에 어디에선가는 아기 꽃이 태어나겠지.

그게 세상의 가장 큰 규칙이거든.

난 네 덕에 할 일을 다 할 수 있어서 평안히 죽을 수 있겠어. 고마워.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졸리다.

너도 시간이 없어. 계곡풍은 하늘이 가장 빨갛게 타오를 때 오거든.

곧 하늘이 타오를 꺼야. 서둘러! 어서 가!

하늘은 왜 빨갛게 타는 건데? 응?

그건… 시간이 없으니까 나중에 물어보고 일단 가!

마지막으로 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옅은 보라빛 들꽃이 졸린 눈을 간신히 뜨며 잠시 머뭇거린 뒤 수줍게 말했습니다.

내 이름은 나팔 꽃이야. 이름을 기억해줘. 그럼 정말 기쁠 것 같아.

아기 새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마음속에 퍼지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눈물은 어떤 의미 일까요?

응.. 잊지 않을게. 나팔꽃.

연한 보라 들꽃, 아니 나팔꽃이 따뜻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꼭 성공하길 바래. 그리고 날 돌아 보지 마. 난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을 거니까…

어서 가… 어서.. 떠나는 것과 죽는 것은 같은 거….야…….

누군가를 떠나는….. 그 순간 너의 시..간에서.. 그는 없을…거…. 니까….

그러니.. 같이 있었……던 때를 기억....해!

연한 보라 들꽃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나팔꽃은 뒤돌아 보지 말라고 했지만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고개 돌렸습니다.

지금까지 보던 모습 중에 가장 평안한 표정으로 바닥에 얼굴이 닿을 듯 말 듯 했습니다.

아기 새는 목이 메어왔지만 뒤로 돌아 절벽 끝을 향해 갔습니다.

준비운동으로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힘주어 나아갑니다.

점점 하늘이 붉게 타올랐습니다.

나팔꽃의 말처럼 계곡풍이 올 때가 되어가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서둘러 계곡 끝을 향하여 갑니다.

뒤돌아 보지 않습니다.

눈물도 꾹 참습니다.

난 새니까! 날아야 해! 시간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