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난이도 조정 = 모험 등급 돌파 네번째 임무 거절하기

모험 등급 돌파 퀘스트를 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모험 등급을 고정시킬 수 있습니다. 월드 레벨 6으로 받는 패널티는 월드 레벨 8과 비교하여 아예 없는 수준과 같습니다. 지역 보스 잡을 때, 가끔 5성 성유물이 안 나온다는 점만 빼면 그러한데 잡동사니 취급하는 그깟것에 10번에 4번 안 나온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레벨 90, 특성10, 반년 레진 쏟아부어야 완성될런지 확실치 않은 성유물까지 맞추고도 더 높이 스펙업을 할 수 있는 요소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험 레벌을 낮춰 몬스터들을 약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앞서 캐릭터를 성장시키기에 얼마나 피눈물이 나는 노력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선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고 그저 모험 등급 돌파 퀘스트를 무한정 연기하면 그만입니다. 그로써 더 이상 강해질 여지가 없는 90레벨 완전체 캐릭터는 마치 100레벨을 달성한 것처럼 더욱 강해집니다. 캐릭터도 강해지고 몬스터도 강해지는 대결에서는 항상 맥이 풀리는 느낌이나, 드디어 모험 등급 50에서는 캐릭터의 진가를 보여줄 기회로 성장시키는 재미가 더욱 배가됩니다. 츄츄족 한 방에 썰기를 목표로 하거나, 하여튼 일퀘는 정말 빨리 깨고, 필드 어디서든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캐릭터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서 왕처럼 필드를 지배하는 느낌입니다. 

제가 모험 등급 돌파 네번째 임무를 무한정 연기해서 모험 등급 50으로 고정한 계정이 있습니다. 그 계정에서는 5성 캐릭터 명함만 꺼내도 필드 그냥 작살납니다. 여기서 또 월드 레벨을 5로 내리면, 명함으로 필드 아주 썰고 다니고, 다른 계정에서는 고개도 들지 못하던 4성들이 나대고 다닙니다. 제가 원하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거든요. 콘솔 솔플 같은 플레이 방식에서 꼼수로 약간 치트키를 쓸 때가 저는 게임이 가장 재밌는 것 같습니다.

도박이란, 머릿속에서 한 번 하고자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결국에는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찌 이것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하고자 하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 방법으로는 아싸리 언제든 확정 천장을 할 수 있는 만큼의 원석을 모아놓고 기원 페이지를 가급적 열지 않아야 합니다. 원석은 없는데, 기원 페이지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면, 십중팔구 결정을 사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어떤 캐릭터든 살 여력이 된다고 여유가 생기면, 쓸데없이 과장 광고에 현혹되어 좋긴 좋은데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 캐릭터까지도 구매하지 않게 되고, 조금 더 이성적으로 캐릭터 상품들을 다급하지 않고 차분하게 비교분석하여 나에게 맞는 캐릭터를 적절하게 구매하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서 또 다른 놈은 동물 같은 놈이었지만, 이번의 또 다른 분은 사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은 아니고, 다이소에 들어가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고 나오는 합리적인 소비 생활을 하는 도시인으로 누구도 그것을 주체하기 힘든 충동을 이겨내야 하는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잘 닦이는 화장지 코너에서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며, 그저 똥꼬만 잘 닦이면 그만이라고 분별력 있게 행동합니다. 한 마디로 언제 어디서든 다급해지지 않도록 지갑에 돈을 충분히 넣고 다니고, 그러니까 다이소에서 파는 천 원짜리 같잖은 상품들을 절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조금 더 상황을 지배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나에게 꼭 맞는 상품만을 고르게 됩니다. 또한 직원이 아닌 이상, 하루종일 다이소에서 상품들 구경하고 있을 필요는 없죠. 하루종일 천 원짜리 자질구레한 천만가지 상품들을 하나 하나 손으로 집어서 이게 무슨 용도이고, 무엇이 기발한지 모두 분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것만 사면 그만이라는 전제를 두고, 조금 더 상황을 지배적으로 바라본다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쓸데없이 구경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결론은 내가 필요한 캐릭터란 너무 쎌 필요도 없고, 그저 필드 돌아다니는 데에 불편함만 없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데, 옆에서 불필요하게 조금 쎄게 때려봐 하면서 버프나 하는 캐릭터를 살 필요는 없습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모양도 예쁜 상품이면 그만입니다. 

오래점 60만원 현질할 계정이 있는데, 라이덴 2돌 찍어놓고 이상하게 거의 사용하지 않는가 하면, 급기야는 이 계정을 버리고픈 충동이 생기고 있습니다. 캐릭터 많아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원신이 처음에는 쉽고 발랄한 캐츄얼 게임을 지향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기적으로 하는 이벤트들 보면 대부분 아주 쉬우면서도 재밌게 만드려는 흔적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두운 이나즈마의 길에 들어서서 죽을 상을 한 고인물들만 남기고 많은 유저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수목이 푸르른 수메르를 보고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다시금 이 게임을 해볼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러운 가챠 게임이지만 자연에 대한 묘사가 싫지 않아서 어떻게 지내나 일 년 넘게 접었다가 다시금 접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접을 것이면, 영원히 외면할 수도 있었는데, 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접속하게 되었나, 그건 지금도 가챠 중독에 손이 떨리고 머릿속에서 혜성들이 하루종일 쏟아지는 것 같고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저는 푸른 벌판의 시원한 풍경이 그리워 다시금 접속한 것 같습니다. 수메르 신규 지역이 열라 넓으니까, 와 저길 한 번 가보지 않으면 왠지 손해일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그러고보면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하면서 많은 실망감을 주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여행자의 앞길에는 놀라자빠질 만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젊은 사람으로써 항상 새롭고 신기한 것을 추구하는 여행자의 생동감 넘치는 삶도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여행도 참 좋고, 독특한 미적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된 깔끔한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ㅅㅂ니다.

한 계정에 모든 캐릭터를 다 모아놓고 고무줄이나 가죽 허리띠, 나프탈린 같은 잡동사니를 파는 아저씨처럼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대충대충, 제발 그만 좀 고민하고, 와이낫 그냥 키우고 싶은 캐릭터 있는 계정을 대충 갖고 노는 식으로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 생애 단 하나의 계정과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했었는지, 또 다른 계정과 기존 계정간의 삼각 관계에서 정말 미쳐버릴 정도로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또 다른 계정이 글쎄, 성현2, 반암2, 닐루2돌, 이 모두를 초회로 돌파했습니다. 그러니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는데, 사실 계정 하나만 돌리기에도 직장인이라 시간이 빠듯하고 신랑이 사놓은 커피 포트, 알루미늄 냄비, 인체공학적인 기능성 신발, 그리고 산뜻한 고양이 목도리, 내부 장치로 환기가 되고, 발열이 되는 만능 방석 등등 그 모두를 신랑이 샀으니까 상품 리뷰를 달아야 하느라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열심히 타이핑을 해야했었는데, 실리콘 키보드 손목 보호대 그리고 세라믹 니트릴 라텍스 마우스 거치대로 작업이 한결 편하긴 하지만서도. 하여튼 게임을 할 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신랑이 한 시간마다 상품들 들고 와서 원숭이마냥 이리저리 살피다가 화가 났는지 집어던지곤 하니까, 내가 그거 다 치우고 또 리뷰도 써야하고 해서. 

그냥 아무 계정이나 막 돌려서 하고 싶은 캐릭터 막 키우면 될 것 같지만, 그런데 내가 알기론 월드 임무가 하나가 세 시간이 넘게 걸렸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한 계정이 모범생처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완벽히 플레이했다면, 다른 하나는 씨발 성유물에 레진 다 꼴아박고 발전이란 발전은 생각도 하지 않은채, 접속만 하면 강원 랜드 도박장 달려가듯이 이나즈마 던전에 레진 몽땅 탕진하는 방탕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양아치한테도 진귀한 성유물이 나타나지 않는다곤 할 수도 없으니 그냥 지켜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레진이란 온종일 언제나 로딩 상태에 있는 것, 게임을 잠시 중단하거나 한동안 그만둘 수 없게끔, 진행중인 상태 그대로 항시 유지하는 상술인 것 같습니다. 창고 대정리 폐업 세일을 한다고 광고를 써붙이긴 했지만, 확실한 날짜와 시간을 고지하지 않고, 그저 소비자들이 하염없이 기다리도록 조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도한 기대 망상증이 나타납니다. 오랫동안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을 때, 군대에서 초코파이가 존나 맛있듯이 별 것도 아닌 것에 과도한 망상을 품게 되고, 이런 심리를 상술에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는 언제나 로딩 중인 것 같은 착각, 망상에 빠지게 되고, 게임에 접속하지 않는 동안에도 언제나 게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과도한 기대 망상은 커피 중독자가 커피향을 끌리는 것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과 관련되었다면 무엇이든 멍하게 듣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게 만듭니다. 그래서 보통 같았으면 무시했을 온갖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애착의 한 형태가 아니라, 그저 뇌가 게임에 중독되어 그와 관련된 것들에 집착하는 것뿐입니다. 저는 커피 중독자인데, 물이랑 커피 포트만 보아도 조금 안심이 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동안 내 몸이 커피를 갈망하며 안절부절하는 것을 문득 자각하기도 합니다. 게임할 때는 하루에 커피를 20잔도 더 마신 적도 있습니다. 내 몸에 어느 정도까지 넣어야 하는지 절제가 되지 않는 것은, 뇌가 내 몸의 통제력을 상실했으니 중독의 한 증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현기증이 나서 쓰러져 응급실에 누워서도 저기 커피 한 잔만 그리고 담배 좀 피우고 와도 될까요 하고 부탁할지도 모르겠고, 저는 뇌에 자극을 주는 기호품들에 아주 취약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도박은 죽어도 하지 않기로 맹세를 했으며, 마약을 물론 술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마시다가 바닥에 남은 앙금은 싱크대에 쏟아버리곤 합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작년 라이덴 뽑고 단 한번도 접속을 하지 않았다가 지금 한 일주일 넘게 복각해서는, 일년 내내 이 게임에 미쳐지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기원 일정 나오기만 하면 또 저걸 못 뽑으면 어쩌나 벌벌 떨고, 똥 누면서도 그 생각만 합니다. 이건 생각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 걱정이 만연한 상태에 뇌가 푹 절여져서 정말 아무런 생각을 못합니다. 실험실의 생쥐 꼴로 실험자가 주면 주는데로 노예처럼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지금의 나는 무언가 커다란 구멍이 난 상태로 시체와 같고, 지금의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또 다른 나는 일상의 모든 문제들로부터 순순히 자백하고 멀쩡한 척 하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렇지 않으면 뇌에 난 구멍이 들통이 나고 말테니까요.

사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들은 제 정신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믿을 게 못됩니다. 나도 내가 말한 게 정말 그러한지 확신이 없습니다. 정말로 월드8(7) 계정이 월드6(5) 계정보가 못한 것 아닐지도 모릅니다. 왜 그러냐면, 저는 월드8 계정을 플레이하면서 조금이라도 답답한 게 생기면 너무 과몰입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츄츄족이 왜 한 방에 안죽는지 심각하게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월드6 계정은 한 방에 죽잖아. 성유물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말이지. 하지만 여유를 갖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츄츄족 썰고 다니는 일이 이 게임에서 별로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란 말이죠. 나선 비경이나 던전은 월드 레벨과 무관하니 모험 등급에 따른 차이는 미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큰 부분이 아니다. 하루종일 월드맵에서 살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월드맵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하루종일 그곳을 누빈다면 그 땐 확실히 월드6 계정이 훨씬 더 쾌적하겠죠. 제가 쓸데없는 말들을 계속해서 늘어놓는 것 같아도, 글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 중독의 암흑에 빠지는 단계, 세상 모두가 암막 커튼을 드리운 것처럼 어두워진 것 같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으며 항상 쫓기는 듯하고 망해버린 것 같고, 무언가가 나를 무겁게 짓누를 때, 그런 상태를 조금 더 명확하게 밝혀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암흑에 빠져드는 원인, 그리고 정확히 암흑이란 어떤 상태이고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런 화제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 누구보다 게임에 미쳐버린 내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미쳐도 도대체 어떻게 미쳐가는 것인지 미치지 않은 사람에게조차 상세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나 자신을 하나의 표본으로 실험 관찰하여 게임 중독에 빠져드는 현상을 나름대로 규명해보고자 합니다. 가끔가다 사람은 시야가 좁아지고, 무언가 정신이 완전히 지배되어 넋이 나간 상태로 살아갈 때가 있는데, 넋이 나갔는데 어떻게 일상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을 해보고, 그리고 특정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넋이란 것이 별로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려주려고 합니다. 내가 미치든 말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 나는 내가 미쳤는지도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 저는 게임을 일 년이 넘도록 절제한 상태인데도 암흑에 빠졌으니, 무언가 보통 사람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함정 같은 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쉬는 시간이든 언제든 손에 핸드폰이 쥐어져 있으면, 거의 강박적으로 게임 커뮤니티를 살펴봅니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는 것인지, 실질적으로 읽는 행동을 하지 않고, 그저 멍하게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는 풍경을 그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꼴입니다. 마치 맛 있는 음식이 차려친 식탁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어린이처럼요. 그러면 그 맛 있는 것, 그러니까 중독에 빠져드는 단계가 정말로 좋으니까 나의 뇌가 그것을 탐닉하는 것은 아닐런지. 좋지 않으면 계속해서 멍청하게 그러고 있을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어찌보면 나의 뇌는 참으로 단순 동물적인 기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담배 한 갑 줄담배를 도저히 끊지 못하고, 매일 하던 것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해파리 같은 하등 동물이 헤엄치는 광경 같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로 제가 살아온 삶은 불미스럽게도 게임 중독의 길이었습니다. 이건 내가 외면하려고 해도 외면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회화의 결정적인 시기인 이십대에 피씨방에 노숙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십대에 품었던 생각이 평생을 간다고 하는데, 인간은 원래 이십대에 목격한 주변 환경과 동갑내기 친구들의 영향으로 인해 그 자신이 고착된다고 합니다. 나 자신의 생각을 자신하기 전에 내가 이십대에 어떻게 조각되었는지까지 고려하여 완전 새로운 생각을 품기란 상당히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이십대 시절에 로봇처럼 프로그램이 설치되었고, 그 이상 또는 그 이하로는 생각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는 다른 무엇보다 많은 시간을 게임으로 보냈고, 근본적으로 게임은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습니다. 불행인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을 한다면, 게임과 관련된 생각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내가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머릿속에서 게임 관련 생각들을 뿌리까지 뽑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처음부터 게임의 기억이 완전히 제거된 진공 상태에는 도달할 수 없으며, 게임으로 정의되는 세계에서 한동안 게임이 부재한 상태로만 인식합이다. 한 번, 도를 넘은 감각에 빠지면, 인간 그 감각으로부터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각이란 태초부터 과한 위험한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감각은 본연적으로 파멸로 치닫는 상한선에서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감각 자체가 멈추지 못하는 프로세스를 탑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맵고, 짜고, 달고, 원점과 비교하여 특정한 수치를 도출하기 위해 감각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감각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지점까지 겁 없이 치달아 올라가는 온도계 같은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과하여 위험한 것이 있다면, 그 위험해지는 특이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감각은 원체 하등하여 위험하든 그렇지 않든 무조건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려고 합니다. 감각은 설계부터가 절제를 모르는 매커니즘이었다고 상상합니다. 나 자신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거든요. 누군가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싶다는 상상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그 생각을 머리속에서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최고의 감각을 향락하는 인생을, 모든 사람들은 가장 멋진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동경하고 있습니다. 기뻐도 더욱 기쁘고, 미치도록 기쁜 나날들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슬퍼도 너무 슬프고, 죽도록 슬픈 나날들에 의해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저 감각에 이끌려가는 삶이 전부인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 더 좋은 삶은 더 짜릿한 자극이었던 것 같고, 내게 있어 좋은 것들이란 솔직히 고작 그런 것들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모험 등급 돌파 네번째 임무를 무한정 연기함으로써 콘솔 게임 솔플하는 듯한 쾌적함 느끼실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아무도, 그 누구도 캐릭터만 사라고 했지, 월드 레벨 요령껏 낮춰서 솔플하시라고 귀뜸하지 않습니다. 암묵적으로 모두가 외면하는 이유는, 게임사와 각종 광고하시는 분들 그 모두가 유저 한 명이 얼마나 편해지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자만 보면 잘한다 잘한다 칭찬만 하는 이유는 그 여자가 나에게 잘해주기를 바라는 조건부이지 그 여자가 정말로 혼자서 잘 지내기를 진심으로 바라기는 힘듭니다. 그렇기에 난이도를 조정하는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그것을 찐따나 하는 병신 같은 짓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난이도를 조정하는 기능은 그 누구도 아니고 자기 자신의 편익을 위해 취사 선택하는 종류의 사적인 일인데, 선풍기를 강으로 틀지 약으로 틀지는 그 누구도 아니고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선풍기를 쐬는 것도 아니면서, 다른 사람이 선풍기를 약으로 틀었다고 해서 상관할 바가 아니고, 또한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게재도 아닙니다. 한 마디로 이것은 더운 사람이 선풍기를 트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일입니다. 그리하여 조용히 방 안에 앉아 게임 패드를 쥐고 가볍게 콘솔 게임하는 기분으로 즐기실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집니다. 캐릭터는 90레벨, 특성, 성유물까지 마스터했는데, 월드 레벨은 5입니다. 바바라가 나다녀도 월드맵 지존 먹습니다. 이런 편의를 안다면, 절대로 월드 레벨에 따른 보상 따위로 투덜대지 못합니다. 난이도를 낮춰주는 유일한 기회마저 사라질까봐 조마조마할 뿐입니다. 모두들 별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막상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면 절대 간과하기 힘든 막중한 선택지임을 깨닫게 됩니다. 선풍기 한 대 밖에 없는 좁은 방에 에어콘을 설치하는 격과 같습니다. 허나 더워도 참을만 하다거나 더운 것이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는 논리를 펴는 분들이 많은데, 분별하여 들으셔야 합니다. 제가 현금 60만원 일시불에 반년 공이 들어간 쓸데없이 캐릭터만 많은 계정이 있지만, 월드 레벨이 빵구나서 정내미가 떨어집니다. 라이덴 2돌로 월드 레벨 8에서 고생하느니, 씨발 라이덴 명함으로 월드 레벨 5에서 노는 게 더 낫습니다. 이번 수내미, 층암거연, 산호궁, 거기다가 이나즈마 탐색도 30프로를 넘긴 지역이 없고, 이참에 모험 등급 50으로 고정한 계정으로 새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최소 한 달은 플레이할 수 있는 분량으로 보입니다.

몬스터가 약하니까 더 강력한 캐릭터를 픽업할 필요가 잦아들고, 5성 무기에도 욕심이 덜 합니다. 자족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니까 게임에도 너무 과몰입되지 않으며 한가로이 즐기게 됩니다.

저는 실업급여를 받아가며, 온종일 게임하면서 좁은 콘크리트 정육면체 안에서 애벌래처럼 살아가는 것이 예전에나 지금에나 제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가장 재미있던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무엇하나 확실하지 않고, 이대로 계속 게임만 하면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는 불안에 한 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지만, 그런 망쳐버린 기분에 뇌가 완전히 젖어들어서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완전히 틀려먹었으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오히려 시간이 남았다면, 그 시간을 게임을 효율적으로 플레이하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르다며 더욱 과몰입했던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어김없이 담배를 피우면서 오늘 하루 해야할 일로는 퀘스트나 던전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뇌가 게임에 푹 절여져 있을 때에도 시간은 흘렀고, 나는 아침마다 커피 20잔 마신 조바심에, 다른 무엇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캐릭터를 육성할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일 년 동안 게임을 금지하며 나름 건전한 생활을 하려고 했으나, 나의 오랜 습관이 다시 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게임 폐인의 시간을 철저하게 외면하지 말고, 무엇이든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다시금 회상해보는 것이, 나의 어두운 게임 인생에서 오히려 의미 있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전부를 부정하면, 결국에는 나를 부정하는 꼴이 되고, 나는 처음부터 없는 놈이 되는데, 이것이 제 자신에게 반가울리 없습니다. 만약 내가 감옥에서 20십년을 살았다면, 감옥 살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 시간들 동안 내가 어떤 의미로 시간을 보냈는지 타협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평생 감옥에 살았다면, 그곳이 싫더라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는 길이 곧 싫어도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내가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나는 그곳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가지게 될 것이고, 어차피 끝나버린 시간들 앞에서 다른 어떤 결론을 끄집어낼 수도 없으니.. 좁은 콘크리트 정육면체 안에서 보낸 수 많은 세월들을 회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무언가가 있을 거란 말입니다.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자 다짐입니다. 나는 앞으로는 더 이상 기원 일정에 속박되어 허둥대지 않을 것입니다. 캐릭터의 평가는 나중에 1분만 티어표를 참조하고, 그 평가가 좋은 캐릭터를 복각 때에 구매하는 것으로 합니다. 또한 쓸데없이 캐릭터 구매할 생각만 하지 않을 것인데, 캐릭터를 샀으면 그걸로 게임을 플레이할 생각을 해야지, 캐릭터만 주구장창 사고 있은 병신 같은 짓거리를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계속해서 출시되는 캐릭터들을 평가, 논쟁하면서 소모적이고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일 자체가 뇌가 중독되어 사리분별을 못하고 그와 관련된 일들에 집착하는 행동입니다. 쓸데없는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것을 모르진 않으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기간 한정 상술에 걸려들어 언제나 조마조마합니다. 사실 이 게임을 하는 목적이 역전되어서 의미 없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는 내 모습이 괴이하게 비쳐집니다. 캐릭터를 사는 게 일인 것처럼 보여서는 안되며, 어디까지가 월드맵을 모험하는 것이 이 게임의 목적입니다. 신규 지역 탐험을 마쳤으면, 다른 게임을 하던지 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 따위 병신 같은 게임에 나의 정력을 허비하지 말아야겠다고 국기에 대고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얼간이로 살아간 세월은 또 세월이고, 내 기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미입니다. 일 년간 농축된 나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 같아 감정이 격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거의 백만원 가량을 낭비한 것도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제가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이런 실수를 안 할 것처럼 상당히 아쉬워했지만, 이젠 이런 일들은 그러려니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말은, 사람을 닭장 속의 닭들로 취급하는 너무나 가혹한 현대의 삶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게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언젠가 미어터지도록 밀집된 닭들이 모두 폐사하는 특이점이 닥치고 말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을 뿐더러, 나 또한 내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보다 의미심장하다고는 생각지 못합니다. 저는 그저 60명 학급 뒷자리에 앉아있었던 이름 모를 학생이며, 전철 옆 자리에서 졸고 있는 회사원이자, 내가 아닌 다른 누구와도 비슷한 것 같은 마네킨입니다. 고로, 나는 내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과 다를 수 있는 가능성조차 잘 이해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고, 그래서 억지로라도 나 자신을 격려하는 편입니다. 이게 글을 중구난방, 마구 던지는 스타일로 쓰는 습관이 된 것인데, 언제든 삭제해도 미련조차 없습니다. 다만 글을 쓸 때는 내가 아니면 하지 못할 말들을 해보고자 노력하고, 사실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무엇이든 생각이 나는 것에 감사하고, 조금이라도 불규칙적인 패턴이 등장하면 오히려 환영하며 아무렇게나 끝까지 쓰는 편입니다.

오래전 이등병 시절에 보급 받은 군화가 있었습니다. 제 발이 정확히는 265 사이즈이지만, 발 건강 특히 발등의 유연함 등을 고려하자면 270을 신는 것이 좋았겠지만, 그건 발이 아플 정도로 꽉 조여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발 뒤꿈치 쪽에 작은 못 같은 것이 뛰어나와 있어서 뛸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것도 오래 신다보니까 조금 무감각해졌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포 같은 양말을 두 겹으로 신어서 완충 역할을 하거나, 또 한 번은 안에 깔창을 잘라낸 조각을 덧대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여의치 않았지만,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잊고 있다가 상병으로 진급하고 병장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동기가 나의 군화를 잠시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휴가 때 신으려고 물광을 내서 아끼고 아끼고 있으니 잠시 내것으로 신겠다는 것이었고, 저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점심 쯤이 되어서 동기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내 앞에 섰습니다. 발이 너무 아파서 안 되겠다. 너 이런 걸 어떻게 신고 다녔냐? 내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면서 반응을 살피는 등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여성스럽게 행동하는 것이라 여겨 단번에 무시하고, 예전부터 그랬지만 매사를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그 친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상냥함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이었고, 그 후로도 역시나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동기가 보급관에게 부탁해 얻은 새 군화를 넌지시 내 앞에 툭 놓고 갔습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는 그에 적합한 것이 있기 마련이고, 이것은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떠나지 않고 고통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가지 방법을 찾는 등 노력을 하지만, 머릿속이 지배당하여 많은 번민을 합니다. 한 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고, 가만히 서 있을 적에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박합니다. 시간은 마치 나의 내부 장기들을 시계 톱니처럼 비틀어 힘이 들여야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시간 동안 해야 할 일들, 스케줄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을 때는 정적이란 공포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 안에 평화가 없는 것이라면, 정말 그러할까 새삼스레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듣지 않던 줄리아 마이클스 님의 리틀 디드 아이 노우를 듣다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찾았던 그 많은 부속들이 모두 헛된 것이 아닐런지 의심이 들었고, 내가 정상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부속인 여성스러움이 적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는 나는 시간 위에서 유유자적하며 평화를 만들어냅니다. 시간은 가라고 있는 것이 아니며, 잠시도 멈추지 않고 생각하고 걱정해야 하는 모든 일들은 내 존재에게 있어 하나의 시련입니다. 일 초, 일 초를 민감하여 감각하면서 하루 24시간을 전전긍긍할 적에, 그렇게 무언가에 완전히 구속되어 정신이 나간 상태로 일상을 겨우겨우 버텨나갈 적에, 나 자신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 것인지 자각해야 합니다. 중독은 내게서 평화를 앗아갑니다. 나는 시간이라는 레일 위에서 한 시도 쉴 수 없는 공장 노동자 같은 처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게 다 피씨방에서 노숙하던 시절의 처절한 감정이 되살아나 결과인 것 같습니다. 나는 언제나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동네 정육점에서 만 원에 세 근하는 불고기를 사다가 지글지글 약간 타도록 오래 익혀서 먹고 있는데, 조금 매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매운 것고 매운 것인데, 입 인이 타들어가는 청량 고추 같은 것도 아니고, 느닷없이 유리 조각을 씹은 듯한 느낌이 시작됐습니다. 음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살을 파고드는 감각이었는데, 그것도 참으려면 참을 수 있겠다 진정하고자 노력했지만, 싱크대로 달려가 입 안을 헹구고 세수도 조금 하고 숨을 돌리려 했는데 전혀 그러질 못했습니다. 내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전해져오는 전기 자극 같은 것이 한 시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 곧 고통이란 공식은, 이렇게 치아의 신경이 손상되었을 때 찾아오는 극심한 고통과 비슷합니다. 극심하다는 표현도 적합하지 않은 것 같고, 내 신체 깊숙한 곳의 아주 연약한 부위가 고양이한테 붙잡힌 생쥐 꼴로 날카로운 송곳니 앞에 연약한 맨몸뚱이가 드러난 듯한, 누군가가를 나를 냄에 넣고 끓여서 가장 부드러운 부위를 골라 먹기 위해 껍질을 통째로 벗기고 물컹물컹한 맨들맨들한 부위에 포크를 확 쑤셔박는 듯한, 정말이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을 수 없는 감각이 나를 침범했습니다. 참을 수 없음에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금방이라도 똥이 나올 듯한 긴박감, 청량 고추를 먹은 것은 오히려 조금 양호한 편이고, 황홀경, 극치감도 어찌보면 고통의 한 부류인 것 같습니다. 신경이 손상되어 인간으로써는 한 시도 견딜 수 없는 날카로운 고통을 겪을 때,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태, 이런 것들이 내게 평화가 사라져 마음이 황폐하고 정신이 메말라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들과 비숫한 것 같습니다. 인간이 견디기 힘든 어둡고 침울하고 무거운 감각들이 수건이 젖어들어가듯 내 안으로 조금씩 침투합니다. 나는 이대로는 내가 미쳐갈 수 있다고 직감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식당에서 줄을 서며 가만히 있어야 할 적에는 나를 어떻게 관리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 척해야 하나, 이게 바로 포인트입니다. 평생 얼굴 한 번 본 적 업는 먼 친척이 거실을 점령하고 있을 때, 모른 척 나가버리기도 미안하여 티비만 보는 척 하고 있는데, 어쩐지 그 친척이라는 사람의 시선이 내 뒤통수에 꽂혀있는 것 같을 때,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줘야 하나. 평생토록 여자와 격리되어 살아왔다가 뜬금없이 내 앞에 나타난 여성이 나를 찐따 취급할 때, 그리고 어린시절 여자로부터의 격리는 곧 감옥 같은 패널티였음을 깨달았을 때, 여자들은 멋 모르고 자신이 동물원의 호랑이처럼 신기한 동물로 취급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초식남이니 비인간적인 버린 자식이라느니 경멸을 표할 때,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진정시켜줘야 하나. 모든 것이 망해버려 곧 벼랑으로 뛰어내릴 것만 같아도 경솔한 여자의 뜬금없는 사랑을 받았을 때, 그저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여자가 나를 좋아해주게 만드는 것이 곧 나의 세계 전부를 밝게 건설하는 일이었던가, 나는 그것만 하면 되는 것인가. 내가 살아갈 유일한 안식처, 나뭇가지로 엮은 둥지 같은 곳을 여성스런 빙크빛으로 건설하고, 짝짓기의 새들이 괴상한 춤을 추듯이 여자를 유혹하기 위한 말장난 같은 것들을 궁리하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던가. 아니, 그러한 것보다, 진정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표현하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곧이 곧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줄로 알고 밝게 웃는 여자 앞에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도 무엇이고. 사실 예쁘장한 새 한 마리를 잡아다가 새장에 넣어놓으면 그것으로 참 안락한 삶이 되겠지만, 내가 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은 있는지 그리고 새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선택받을 복지 같은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이 들면서 불쑥 나부터가 사라져야 할 것 같고. 그러니까 그런 딸내미 같은 여자 앞에서 할 말이야 여러가지 생각나는대로 쏟아내면 충분할 것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무언가 겸연쩍고 더 이상 같이 있기가 불편할 때. 앞에서 경솔함이란 돈으로 상냥함과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허락하시는 분들을 말합니다. 이것은 도시의 혜택이었던가. 복지 같은 것. 이건 사실 말하기가 껄끄러운 화제이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것인 같고, 무언가 흐리멍텅하고 아리송한 것이 아무렇게나 말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