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 최종장을 보고
블루 아카이브 최종장: "그리고 모든 기적이 시작되는 곳"을 마침내 완독하였다. 한국 서버에 최종장이 막 업데이트 되었을 때는 다른 취미에 빠져있어서 흥미를 갖지 못하고 미뤄두던 것을 이제서야 다 본 것이다. 폰을 켜고 누운 자리에서 수 시간을 들여 단숨에 진행하였고, 최종장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블루아카이브의 세계관을 간단히 설명하면, 플레이어가 "선생"으로 부임해 여러 학원을 종횡무진하며 "학생"들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해주는 그런 세계관이다. 흥미롭게도 학생들은 신화적 존재 혹은 신비롭게 여겨져 숭상받는 개념들의 화신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총탄을 수십발 맞아도 단순 생채기만 날 정도로 튼튼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어른의 지도가 필요한 평범한 학생과도 같다. 선생은 이런 학생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이들에게 도움받기도 하면서 선생 나름의 정의를 관철하며 학생을 해하려 하는 나쁜 어른들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려 한다.
블루 아카이브를 관통하는 주제는 여러 개가 있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는 바로 "어른의 책임과 의무"이다. 1, 2, 4장에서는 자립하려는 아이들을 곁에서 응원해주고 때론 도와주는 어른의 모습을 조명하고, 3장에서는 고통받는 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그에 대한 어른의 책임을 강조한다. 특히 3장이 가장 고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블루 아카이브가 제시하는 어른의 의미를 감동적인 연출과 치밀한 전개로 짜임새 있게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종장에서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찾아온 또다른 '나'가 자신의 제자를 부탁하며 최후를 맞이한다. 블루아카이브의 최종장은 이렇게 어른의, 어른에 의한, 그러나 어린이를 위한 대서사시로 갈무리된다.
이번 최종장은 게임속 플레이어의 대변인인 "선생"이 한 명 더 등장한다. 바로 평행세계의 선생, "프레나파테스"이다. 프레나파테스는 거짓된 선생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계획을 방해받은 정적이 그를 조롱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학생이 잘못된 길을 걷게되자 학생을 올바른 길로 되돌리기 위해 미지의 힘과 조우하여 죽음으로부터 돌아온다. 그는 평행세계의 자신이라면 본인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으며 평행세계를 배회하다가 "선생"이 있는 세계로 오게 된다. 그리고 그의 믿음대로 선생은 그를 쓰러트리고, 그의 학생을 구해주며 선생 본인 역시 그의 학생에게 구원받으며 최종장은 끝이 난다.
블루 아카이브의 선생이 생각하는 어른은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의 이상향과도 같다. 거의 "성인(聖人)"에 가까운 개념이다. 블루 아카이브의 선생은 학생을 믿기에 세간의 소문으로만 학생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며, 잘못을 하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하되 방임하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깨우치도록 도와준다. 그러다 학생들이 어찌하지 못할만큼 큰 일이 벌어졌을 때, 비로소 직접 나선다.(쓰면 쓸수록 수명과 시간이 깎이는 신용 카드를 쓰는 코믹한 장면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만큼 학생들도 선생을 믿으며 믿고 따른다. 이런 선순환이 학생을 바꾸고, 더 나아가 학교를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와 운명을 바꾼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쉽지 않은, 그야말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현실은 안타깝게도 푸르른 봄같은 블루 아카이브 속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욕심 때문에, 정치적, 종교적 이념 때문에,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젊은이들을 희생하는 못된 어른이 수두룩하다. 아직도 세계 어딘가에선 전쟁터에서 눈먼 폭탄에 맞고 죽는 아이들이 있다. 가난과 무지로 배를 곪으며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들도 많으며 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버림받는 아이들도 많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해서, 어른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하지 못해서 생기는 비극이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아이들이 올바르게 크도록 지도해주어야 한다. 어른이라면 갈등을 부추기지 말고 화합과 조화를 알려주어야 한다. 어른인 우리가 아이들인 너희를 믿고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너네도 언젠가 만날 너희의 아이들을 믿고 아끼고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인간 사회가 존속될 수 있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유지될 수 있다.
전통적인 가치가 쇠퇴하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며 각자도생이 금언처럼 여겨지는 요즘 시대에 블루 아카이브는 보기 드물게 최소한의 책임을 넘어서 어른의 책임을 다할 것을 강조하는 귀중한 게임이다. 나부터가 어른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작은 마음가짐 하나 하나가 모여 결국 기적을 일으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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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내가 봤던 최종장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한 명문이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가치를 선생과 등장인물의 행동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신의 존재 유무는 차치하더라도,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너도 다른 이를(심지어 그게 원수더라도!) 사랑하라"라는 가르침은 코끝을 찡하게 만들고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혐오와 비난이 난무하는 세상속에서 교과서적이고 고리타분한 이 글귀가 내게 더 와닿는 것은 생경하지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것이다. 사랑과 책임을 근본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긴 쉽진 않겠지만, 뭐든 첫 한술부터가 시작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