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 메인 스토리 깬 느낌
마비 길드 분에게 추천받고 시작한 블루 아카이브, 메인 스토리 나온 데까진 끝까지 봤습니다. 약간 기분이 미묘합니다. 캐릭터가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게 아닌 붕어빵 기계에 파라미터로 찍어낸 성격들을 갖고 있어서, 제작자가 인간을 혐오하는 거 아닌가 그런 느낌마저 듭니다. 아니면 단순히 이게 서브컬쳐식 캐릭터인걸까요? 약간은 캐릭터를 숨겨주고는 있지만, 양자역학적 명상 같은 소리를 듣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할 뿐입니다.
그래도 적당하게 마음에 드는 캐릭터들은 생겼습니다. 평소에도 정신력 강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편이고, 이 작품의 전투력은 경험+정신력(?)이라는 기괴한 조합이라서, 전투력 높은 캐릭터만 좋아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1. 타카나시 호시노
아비도스 학생회장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학생회장의 묘사가 그저 조금 멍청한 호시노인 걸 보면, 실제로는 그 반대임을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1학년의 호시노는 단발이었는데, 죽은 사람 따라 한다고 머리까지 기르는 모습은 조금 기괴합니다. 한편으로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아비도스 학생 근처뿐이라는 게 불쌍합니다. 대미지는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세계관에서 비나의 주포를 맞고 멀쩡한 캐릭터인 걸 보면 아비도스 이유 하나로 얼마든지 혼자 견뎌내는 '아버지' 캐릭터가 맞는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말투가 이 아저씨가 어쩌구 그러는 걸 보면..
2. 미소노 미카
죄를 피하려고 더 큰 죄를 짓는 전형적인 죄인 캐릭터입니다. 생각하는 것부터 말하는 것까지 헛소리에 엄청 충동적으로 보이지만, 행동은 철저하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헛소리와 충동적인 모습이, 자신이 죄에 손대야 한다는 모순을 견디지 못해서 나오는 현상 같기도 합니다. 자비를 부정하고 있는 캐릭터의 클리셰입니다.
세이아의 발언과 미카의 헛소리를 이용한 서술 트릭을 치워놓고 보면, 공주 취급이 아닌 고립된 상태로 견디고 있던 게 미카, 겁에 질려서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있던 게 세이아였죠.
왠지 모르겠지만, 키리후지 나기사에 엄청 집착합니다. 아무리 봐도, 에덴조약을 방해하는 것도 조약이 성립된 이후 토사구팽 당할 나기사 때문이고, 아리우스를 끌어들이려고 했던 것도 내부의 견제 세력을 하나 포함시키려는 모습이고, 세이아를 치워버리려 들은 건 트리니티를 단절시키고 있었던 위험분자로 봤기 때문입니다. 나기사에게 마지막 남은 적이 배신한 사오리만 남자마자 그대로 달려들어서 죽이려 들기까지 합니다. 독백을 읊는데, 그 내용은 이성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죽여야 할 계기를 찾으려 시도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결국 용서하고 멈춰서긴 했지만요. 이 추측의 연장에서, 에덴 조약이 진짜 체결되었다면 게헨나의 선도부장을 살해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게헨나 사람들을 보자마자 벌레 취급 해왔으니 행동한다, 뭐 그런 식으로 했을 것 같아요. 그 결과가 나기사에게 해악 밖에 안되는게 꽤 비극적입니다.
3. 시라스 아즈사
그 어떤 등장인물보다 최악의 조건에서 아리우스 해방이라는 목표까지 달성시킨 멘탈갑입니다. 아리우스 때부터 계속 어딘가 싸움 걸고 숙소에도 부비트랩 깔면서 저항해 왔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아리우스와의 교류는 사오리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이뤄졌음에도, 카타콤의 구조를 기억해두고 기회가 오자마자 낚아챘습니다. 정작 사오리는 카타콤을 모르는데 말이에요. 종교적인 의미의 구원이 없는 상황이라 매우 취약한 상태였음에도 장기간의 줄타기를 성공시켰습니다.
4. 조마에 사오리
플레이어는 '어른'과 '선생' 두 가지로 불립니다. 어른은 리더로서 키보토스에도 여럿 있지만, '선생'은 조금 다른 맥락으로 사용됩니다. 키보토스를 낙원으로 재건하는 사람에 가깝고, 그 내용은 어떤 대명사들보다 가장 무거운 표현입니다. 그런 와중의 '예비 선생님'입니다. 그것도 '무조건 옳은 말'이 되는 플레이어 선생님의 말이에요. 아마 진짜 플레이어 다음의 키보토스 구원자가 되지 않을까요. 가장 크게 죄를 지은 캐릭터지만 그럼에도 하나하나 회복해나가고 있습니다.
5. 텐도 아리스
가정 교육을 판타지로 인생을 게임으로 배운 게 좀 웃깁니다. 그와는 별개로 전투 미션에서 총소리를 안내서 좋아합니다. 총소리 별로 안 좋아하다 보니, 역으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옛날에 유튜브에서 이라크전 아프간전 동영상 안 볼 걸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