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게임이 ‘브롤스타즈’는 아니었으면

생활성서 3월호

기관사 레이노의 풍경

어릴 때 오락실에서 기차 게임을 자주 했다. 기차 게임은 많은 게임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기차 게임

은 어려웠다. 나의 서투른 실력에 게임 속 승객들은 쓰러졌고 기차는 정차역을 지나쳤다.

나는 오락실 게임이 좋았다. 돈이 없어도 갔다. 동네 형들이 하는 게임을 뒤에서 쳐다만 봐도 재미있었다. 동전을 넣지도 않은 게임기를 습관처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오락실 주인이나 동네 형들이 선심 쓰듯 한판 던져주면 실실거리며 좋아했다.

어떻게 아셨는지 어머니는 귀신같이 오락실로 찾아오셨다. 어머니 손에 하릴없이 끌려나온 나는 혹독한 대가 또한 치러야 했다. 성당에 헌금해야 할 돈을 가지고 오락실 갔던 기억도 있다. 그때는 어머니의 연락을 받은 본당 수녀님 손에 끌려 나갔다. 아버지와 동생도 어머니 수사망에 걸린 나를 잡으러 오락실로 곧잘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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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오락실에서 어울려 같이 놀던 친구는 신부님이 되었다. 얼마 전 오락실 하나 없는 쿠바에 가서 선교 활동도 하고 왔다. 나는 기차 운전하고 아이 셋 키우며 별일 없이 살고 있다.

게임은 나의 보물이 되지 않았고 어머니께서 걱정하시던 심각한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왜 그렇게 걱정했어”라는 내 얘기에 부모님과 동생은 그때를 회상하며 웃는다. 단언컨대 놓지 않은 관계의 끈 안에 믿음이 생기면 다 큰아들 녀석이 엄마 등 뒤에서 안아주는 기적도 일어난다.

부모를 사랑하는 아이는 절대 게임에 중독되지 않는다. 게임에 대한 내 생각이다. 역시 40년 게임 경력을 가진 전문가답다. 우리 아이들도 엄마, 아빠 안아주는 건 못해도 사랑하는 마음이라도 갖길 바란다.

우리 아이들도 이담에 커서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 잘하잖아, 걱정하지 마.”

흔히 인생을 게임에 비유한다. 내가 하는 삶이라는 게임이 총을 쏘는 ‘브롤스타즈’나 치고받는 ‘스트리트 파이터’는 아니었으면 한다. 때론 ‘현질’도 필요하겠지. 커피 마시고 음악 듣고 여행을 가는 ‘아이템 장착’은 인생이라는 게임에 재미를 더해주니까.

좋은 캐릭터가 꼭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살면서 얻게 되는 아이템과 능력만큼 각자 바라는 대로 즐겼으면 좋겠다. 결혼이라는 2인용 게임에 아내는 호랑이 캐릭터를 골랐다. 나는 호랑이에게 빌붙어 위세 부리는 여우로 이번 판을 겨우 넘기고 있다. “얘들아, 저기 엄마 온다. 얼른 핸드폰 꺼!”

나는 내 삶이 ‘모래성 게임’이었으면 좋겠다. 다 같이 모여 모래로 성을 쌓고 차례대로 모래를 나눠 갖는 ‘모래성 게임’.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다. 게임에 임하는 마음과 선택이 중요하다. 인생, 모래를 많이 갖는다고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모래를 적게 가졌다고 지는 게임도 아니다. 그저 깃발을 쓰러뜨리지만 않으면 된다.

홍인기 세 아이를 키우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철도 기관사.

출처:https://m.blog.koreamobilegame.com/biblelife83/223352328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