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런: 킹덤] 황금도시의 멸망
제목 보시고 이미 아셨을 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 잔인할 수도 있는 묘사가 소량 등장합니다...
근데 진짜 유치하게 쓴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경고해 놔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근데 진짜 이번 거 왜이렇게 망했냐... 원래도 망했지만 이번건 더망했다... 에휴....
사실 이거 전투씬&사망씬 연습용이거든요? 근데 저 이런거 안 쓰고 그냥 햅삐한 로판이나 열심히 쓸게요. 나는 다크판타지나 피폐물을 쓰려고 해서는 안 돼...
"...지나갈 수 없다."
이 말을 힘겹게 되뇌이는 게 도대체 몇 번째일까. 지금 자신의 몸이 반쯤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바스크치즈였지만, 관문 밖에 우글거리는 저 끔찍한 괴물들에게 무릎 꿇는 일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없기를 바랐다. 한숨을 내쉬면서도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면 아래로 흘러내리는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느껴졌다. 하지만 감정 따위에 굴복하면 모든 게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만다. 자신의 삶과 고향이, 그리고 태양신이 언젠가 자신에게 건넸던 부탁까지.
그의 주군이자 어쩌면 단순한 상관 이상이었던 태양의 여신은 그에게 말했었다. 자신의 찬란하고 눈부신 왕국에 그 어떤 어둠의 손길도 닿지 못하게 해 달라고.
어찌 그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른 모든 백성들에게와 마찬가지로, 태양신의 존재란 바스크치즈에게 구원자이자 빛이자 어둠을 비추어 주는 유일무이한 빛으로 다가왔다.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바스크치즈는 언제나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왔다. 온 마음을 다해 충성을 맹세했고, 온몸이 찢어질지언정 무엇이든 해냈다. 물론 그 말 또한 충실하게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문지기는 지난날을 되새기며 다시 날 선 검을 집어들었다. 밑도 끝도 없이 달려드는 저 괴물들이 관문을 통과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자신의 태양신에게 부여받은 임무를 저버릴 수 없었다.
자칼들이 물어뜯고 할퀴어 가며 시간을 버는 동안, 바스크치즈는 눈앞에 들끓는 괴물들에게로 검을 휘둘렀다. 태양볕이 강하게, 그리고 황홀하게 내리쬐던 날에는 언제나 찬란한 광채를 자랑하던 검이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태양조차 뜨지 않은 어두컴컴한 날에는 그 빛도 진가도 발휘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반쯤 부서지다시피 한 팔이었지만, 어쨌든 검을 휘둘렀다. 최대한의 힘을 실었다. 그러나 철갑을 두른 듯 단단한 괴물들에게 상처를 입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승부를 낼 법한 치명상은커녕 조그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산맥처럼 커다란 몬스터가 가소롭다는 듯 비웃는 모습을 바스크치즈는 어렴풋이 본 것 같았다. 어쩌면 지친 나머지 피곤해진 감각이 그를 속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정말로 그랬는지는 영영 알 수 없었다. 잠시 방심한 사이, 그는 순식간에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태양의 축복을 받은 검은 그 주인과 함께 강한 적 앞에서 속절없이 패배했다.
정신이 멍하고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시야는 뿌옇게 흐릿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바스크치즈는 거대한 괴물들의 군단이 관문을 부수려는 듯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
안 돼. 이래서는 안 된다.
고통에 젖은 신음을 내뱉으며, 그는 힘겹게 몸을 가누고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려 했다.
이미 바스크치즈의 몸은 너무나 피곤해져 있었다. 심장은 여전히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의 야속한 육신은 휴식, 오로지 휴식만을 원했다.
그게 설령 영원한 휴식일지라도.
그러는 와중에도 바스크치즈는 최대한 큰 목소리로 왕국 도심을 향해 외쳤다.
"왕국이 위험합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빠져 갔다.
"어서... 전투 준비를..."
숨이 점점 꺼져 들어갔고, 결국 그 말을 끝맺지는 못했다.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생명의 끈이 끊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와서 나서 봤자 아무것도 막을 수 없으리라. 게다가 그의 몸은 순간순간이 흐름에 따라 극도로 허약해지고 있었다. 태양신을 향한 충애도, 임무를 완수하고자 하는 욕심도 그의 파멸을 막을 수는 없으리라.
끝내 관문을 완전히 부숴버리고 만 몬스터들을 죄책감과 슬픔이 섞인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바스크치즈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속삭였다.
ㅡ나의 태양, 나의 여신, 나의 왕이시여.
죄송합니다.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주검을 몬스터들이 밟아 뭉개며 산산조각내고 지나갔다.
얼마 전까지 황금빛으로 찬연하고 호화롭게 빛났던 골드치즈 왕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근심이 가득 어린 높고 앙살진 외침이 이곳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러분! 이곳은 더는 안전하지 않아요! 어서 다른 건물로 이동하세요, 빨리!"
다급한 이 외침의 주인은 다름아닌 황금도시의 관리자. 여유롭고 능청스러운 평소의 말투는 어디 가고, 지금의 모짜렐라는 한없이 나약해져만 있었다.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목소리를 높였는데도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두려움이 뚝뚝 묻어났다.
하지만 이런 일에 겁을 먹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
단호하게 마음을 먹은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며칠 전에 간신히 만들어낸 은신처 안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살아남겠다는 일념 하에 모여 있었다.
"몬스터들이 이쪽으로도 몰려오고 있다고 하니 곧 이 은신처도 박살날 게 분명해요. 마지팬맛 쿠키들, 그러기 전에 어서 쿠키들과 치즈볼새들을 다른 건물로 최대한 빨리 대피시키세요."
"네. 알겠습니다."
기계적인 목소리로 답한 마지팬맛 쿠키들은 곧 명령받은 바를 훌륭하게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겁먹은 꼬마 쿠키 하나가 모짜렐라를 바라보며 울먹였다.
"모, 모짜렐라 님은 안 피하세요?"
"저는 가장 마지막에 나갈 거예요. 우선 어린아이들과 노인들부터! 당신도 어서 마지팬맛 쿠키들을 따라가세요. 여기 더 있다가는 건물이 아예 붕괴될 수도..."
어린아이에게 공연히 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모짜렐라는 그쯤에서 입을 다물었다.
모짜렐라에게 그녀의 태양신은 어떤 의미였을까. 당연히 모셔야 할 주군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벗이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6년쯤 전 비바람에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골드치즈 왕국 안에 들어온 모짜렐라는, 이곳의 태양신에 의해 단번에 황금도시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그때는 주군의 경계심이 별로 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실 태양신은 모짜렐라를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아기 때부터 부모에게 버려졌던 소녀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 소녀에게 황금도시의 태양신은 마치 모성애와도 같은 존중과 애정을 보여주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모짜렐라는 골드치즈 왕국을 위해 헌신과 충애를 바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짜렐라의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살아갈 기회를 선사한 공간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모짜렐라는 날카로운 일격을 맞은 듯 고통스러웠다.
그런 추억에 잠긴 동안, 어느새 모든 국민들이 빠져나가고 건물 안에는 오로지 그녀만이 남아 있었다. 이제 그녀도 나가야 했다.
줄곧 웅크리고 있던 다리를 펴려는데, 어디선가 쉭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근원은 필시 독사였으리라. 한쪽으로 피하려다 보니 발뒤꿈치에 웬 물컹하는 감촉이 느껴졌다.
아, 난 운도 없지. 저 망할 뱀을 내가 밟았구나.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속으로 온갖 욕지거리를 퍼붓는 동안에도, 점점 다리의 고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아니, 아예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던 모짜렐라였지만, 곧 무언가를 직감했다. 자신의 최후는 이쯤에서 끝나리라는 것을. 몇 초 지나지 않아, 며칠 동안 모짜렐라를 비롯한 국민들을 감싸 주던 대피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땅까지 흔들리는 걸 보니 밖에서 꽤 거대한 괴물들이 돌진해 오는 모양이었다.
그 진동은 황금도시의 관리자가 맞이해야 할 억울하고도 황당한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아까 자신에게 매달렸던 꼬마 쿠키가, 바깥에서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 모짜렐라는 다 괜찮아질 거라는 뜻으로 마지막 미소를 짜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미소는 황폐해진 건물의 잔해에 완전히 파묻히고 말았다.
어둡다.
지금은 시간상으로 정오. 하루 중에서도 태양이 가장 높이 떠서 만물을 황금빛으로 비추어야 할 시간이거늘, 오늘은 태양빛 한 줄기 보이지 않다니. 드디어 태양이 이곳을 버린 것일까.
스모크치즈는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으로 범벅이 되어서는 빛이 한 방울도 스며들지 않는다. 태양이 선사하는 빛과 온기에 모든 것을 맡기던 왕국에 태양이 보이지 않으니 왕국민들의 두려움은 실로 엄청났다. 설상가상으로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괴물들의 침략까지 이어지니, 왕국이 지금 망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지금은 이 괴물들이 어둠의 보금자리에서 탄생했으며, 태양빛이 들지 않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 때문일 거라 어림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태가 죽 이어진다면, 앞으로도 이 추측이 진짜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전에 이미 숨통이 끊어져 있을 테니까.
이런 괴물들과 적들을 세뇌시켜 한곳에 가두어 두는 게 스모크치즈의 일이지만, 그게 업무라고 해서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언제나 딱딱한 스모크치즈였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겁먹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태양신도 자리를 비우고, 하다못해 햇볕조차 한 방울도 보이지 않는 이 왕국을 위해 묵묵히 견뎌낼 뿐이었다.
동료들이 하나하나 죽어 나가고, 건물은 무너져 내리고, 그러는 동안에도 태양은 무심한 듯 고개 한번 이쪽으로 돌려 주지 않았다.
어쩌면 이 태양이 그들의 여왕을 대신해 주고 있는 걸까. 그녀는 이대로 영원히 이 왕국을 외면하려는 걸까. 평생 돌아오지 않은 채, 한때 그토록 사랑하던 왕국민들이 죽어 나가고 한평생 일구어온 모든 것이 모래로 돌아가는 이 광경을 잊으려는 걸까.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쉬지도 않고 되뇌이면서도, 배신감과 의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정작 가장 중요한 때 우리를 남겨 두고 떠나다니." 하늘을 향해 외친 스모크치즈의 말이었다. 마치 그러면 그의 주군이 듣기라도 할 것처럼. "당신은 무책임하고 철없기 짝이 없는 왕입니다. 모든 걸 다 줄 것처럼 아꼈던 이들이 산산조각나는 광경을 그렇게도 외면하고 싶으십니까?"
하지만 이렇게 태양을 원망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그의 태양신은 듣고 있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스모크치즈는 다시 숨을 고르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이 왕국이 완전히 멸망하기 전에, 모든 것이 파괴되기 전에 한 마리의 몬스터라도 더 막아야 했으니까. 처음에는 과도하게 훈연을 해대다가 어느 순간 힘이 다해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지금 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몬스터들에게 공격당하나 체력이 모자라 쓰러지거나 죽는 건 매한가지가 아닌가.
다만 그의 마음속을 적신 한 가지 근심은 이 왕국에 관한 것이었다. 남들의 눈에는 그저 퉁명스럽고 불만 많은 쿠키로 비쳤을지 몰라도, 사실 그는 이 왕국을 누구 못지않게 아꼈다. 왕국의 파멸을 막을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간절히 바란다고 한들, 이 왕국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란 이제 없었다. 그 사실이 저릿하게 느껴지고 스모크치즈의 심신은 비할 데 없이 지쳤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태양을 향해 부르짖었다.
ㅡ언제쯤 와 주실 겁니까. 도대체 돌아오시긴 할 겁니까.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이 왕국은 오로지 당신만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당신이 없으면 이 왕국은 제대로 돌아갈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한 왕국의 태양신이자 여왕으로 군림하던 쿠키가 어찌 이렇게 생각 없고 어리석을 수 있습니까?
원망이 가득한 그 외침이 스모크치즈의 마지막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