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에 대한 한없는 잡담 ~표절작인가, 혹은 혁신인가~

드디어 그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020년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게임인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판과 찬사를 받고 있는 그 게임. 바로 원신입니다. 본격적으로 플레이한지는 약 보름 정도 된 거 같은데, 이제야 의심으로 가득한 시선에 가려진 이 게임의 본질은 조금은 이해할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몬드를 20시간 동안 여행하며 제가 느꼈던 이 게임의 정수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Genshin Impact, a nearly picture-perfect reproduction of Japanese fantasy role-playing games, has raked in billions of dollars and sent shock waves through the world’s aging video game super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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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은 뉴욕타임스에 올라온 이 기사였습니다. 번역하자면 [일본의 자랑거리로 그들을 격침시키다: 중국에서 날아온 강펀치]라는 제목의 글은 원신이라는 게임에 무관심하던 저로 하여금 꼭 한 번 이 게임을 플레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죠.

일단 이 글은 첫 문단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화두를 던집니다.

원신은 일본에서 개발된 비디오 게임의 흥미로운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다. 거대한 로봇과 등신대 사이즈의 검, 커다란 눈과 다채로운 색으로 칠해진 머리카락을 갖춘 캐릭터, 그리고 메이드 같은 체형을 가진 여성 캐릭터에 대한 광적인 집착까지.

하지만 이 게임에는 한 가지 반전이 있다. <원신>은 중국산이다.

이걸 중국에서 만들었다고?

이건 아마 원신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동의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캐릭터의 비주얼부터 흘러가는 이야기의 구조. 심지어는 가챠 시스템까지. 원신에는 일본의 서브컬쳐 콘텐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특징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이 게임이야말로 일본에서 만든 것보다 더 일본스러운 서브컬쳐 콘텐츠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죠.

그래서일까요. 원신은 일본의 서브컬쳐 콘텐츠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특히 닌텐도의 역작인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를 표절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죠. 젤다 시리즈의 팬들은 원신을 단순한 표절작으로 격하시키는 반면, 원신의 팬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애써 논란을 묻어버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뉴욕 타임스의 기사는 이 논란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제시하면서 이것을 일본 게임업계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시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원신을 시작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뉴욕 타임스의 해석이 옳은 건지, 혹은 다른 누군가의 주장이 옳은 건지 궁금했던 거죠.

솔직히 이건 너무 비슷...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원신의 제작진이 적지 않게 젤다의 전설 시리즈, 특히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를 참고하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필드 여기저기에 여신상이 있고 거기에 특정한 수집형 아이템을 바치면 스테미나가 늘어나는 시스템부터가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그것을 꼭 닮았습니다. 그밖에 패러세일(혹은 날개)로 높은 곳에서 활강하는 것이나 다양한 효과가 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도 유사하다고 볼 수밖에 없죠. 원소 반응이나 가챠, 파티 시스템처럼 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요소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결코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를 참고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이것을 표절로 볼 것인가, 혹은 레퍼런스로 볼 것인가 하는 건 각자의 판단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판단을 내리기 위해 약 20시간 정도 여행자가 되어 몬드의 들판을 뛰어나다녔습니다. 가야 하는 길도 갈 수 없는 길도 정해지지 않는 그곳에선 밤이 되면 별이 떠오르고 아침이 되면 해가 지평선 너머로 떠오릅니다. 때로는 적을 만나서 전투를 벌이기도 하고, 동료 여행자를 만나 도움을 받기도 하죠. 그러면서 제가 느낀 기분은 링크가 되어 하이랄 곳곳을 돌아다니던 시절과 매우 유사했습니다.

지금도 끝없이 펼쳐진 하이랄을 보면 그 시절의 감동이 떠오릅니다

돌아보면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스토리가 훌륭한 게임도 아니었고, 타격감 터지는 액션이 있는 게임도 아니었습니다. 캐릭터 묘사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외전작인 <젤다무쌍 대재앙의 시대> 쪽이 더 인상 깊었죠. 그럼에도 이 게임이 그토록 훌륭했던 이유는 단 하나.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뛰어다니기만 해도 즐거울 정도로 하이랄이라는 세계를 충실하게 구현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돌아보면 하이랄에 처음 당도했을 때에는 나뭇가지 하나만 들고 바람에 풀이 나부끼는 언덕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게임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링크가 되어 하이랄을 1인칭 시점에서 모험하고 있다는 감각. 저를 비롯해 200시간 넘게 이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들의 간증이 이어지는 건 아마도 그 경험으로부터 주어지는 몰입감이 상당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는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등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하면서 모든 컨텐츠는 과거의 그것을 복제하며 발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를 계승하고 발전하는 흐름 속에 있습니다. 이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건 참으로 공허한 일이죠.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자기복제의 과정을 거친다면, 결국 표절과 레퍼런스를 가르는 건 얼마나 새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과거의 그것이 가진 정수를 이해하고 있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원신에는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전하고자 했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름다운 몬드를 여행하는 건, 적어도 제 관점에서 볼 때는, 하이랄을 여행하는 것처럼 환상적인 경험입니다. 그 세계는 오직 뛰어다니기만해도 한없이 즐거운 그런 공간이니까요.

그저 아름다운 이 세계를 앞으로도 여행할 거란 사실이 설레고도 설렐 뿐입니다

오픈월드 RPG 장르의 가장 큰 매력은 아마도 게임을 즐기는 방법이 플레이어의 숫자만큼 다양하다는 것에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성과지상주의가 게임에까지 스며든 우리나라에는 딜량이니 아이템 수급이니 하는 걸 최우선시하는 플레이어들이 주류를 이루는 거 같지만, 저처럼 느긋하게 정말로 여행자가 된 기분에 젖어들고 싶다고 해서 안될 것도 없죠. 파티도 애정캐 위주로 슬슬 만들어 갈 예정이고요.

그러므로 원신은 앞으로도 쭉 플레이할 예정입니다. 이야기에 대해서나 캐릭터에 대해서, 혹은 세부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더 할 이야기가 있을 터이지요. 원신에 나온 요리들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그래서 원신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입니다.

한없이 이어질 다음 잡담에서 뵙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