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4.8 시뮬랑카 월드퀘스트 <내레이션의 주석> 개인적 후기
새로운 국가 나타가 진작 업데이트되고 시뮬랑카는 사라졌지만(한국기준 24. 8.28) 좋아서 남기는 후기..
메타적인 시점의 게임인 <스탠리 패러블>의 형태를 다수 차용한 월퀘였다. 용량 등의 한계로 조금이긴 하지만 지시사항보다 먼저 움직이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하면 앗 그렇게 행동하실 건가요??그쪽이 아닙니다! 같은 식으로 아저씨 내레이터가 플레이어에게 잔소리를 함. 이하 귀찮아서 다 찾아보진 않아서..팩트와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음 아이고귀찮다
시뮬랑카는 마녀회라는 캐릭터 집단이 만든 동화 속 세계이다. 마녀들은 각각 이 세계에서는 무슨무슨 여신으로 불림. 내부의 캐릭터(목각 인형 등등)는 운명의 여신이 만든 레일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아침식사를 무엇으로 할지 등의 사소한 오차는 있어도 운명은 정해져 있다. 이는 원신에서 무대가 되는 티바트가 실제로는 어떤 형태인지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딩창에서도 당신의 운명은 이미 티바트의 하늘에 새겨져 있다 어쩌구저쩌구하니깐..
주인공은 호호 석실이라는 동굴에서 세 가문의 후계자와 만나게 된다. 후계자들은 세 가문 전부가 각각 한 마리의 악룡을 쓰러트렸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화 속 일이니 실제로는 한 가문만 가능한 업적이었기 때문에 셋은 어떤 게 진짜일지 다툰다(실제론 주로 한명만 우기고 나머진 딱히 관심없었던 듯..)
월드퀘스트의 주인공인 카패, 보보라노, 올비치
여행자가 과연 어떤 가문이 진짜로 악룡을 쓰러트렸는지 진실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도중의 내용은 생략하고.. 세 가문에 얽힌 퍼즐을 풀면 내레이션은 '바깥의 허구와 이 세계의 진실 중 어떤 것이 더 진실할지' 물어본다. 나는 세번째 답을 골랐음. 내레이션은 긍정하면서 보상을 준다.
또 생략.. 세 가문의 후계자들이 여기까지 진행하고도 진상을 파악하는 데에 별로 관심이 없자 내레이션은 후계자 한명을 폭행하면서 본 모습을 드러낸다. 죄다 목각인형이라 다행히 건강에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어머 깜짝이야
내레이션(탐정)은 이 세계가 동화에 불과하며 거기 큰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진상을 파악하는 데에 관심이 없자 이러한 소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탐정은 궁극적으로 이야기의 한 역할일 뿐인 자신이, 그리고 자신이 포함된 세계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 진짜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그에 대한 답을 외부에서 구하고자 한다. 이야기의 끝에서 마녀는 목소리로 등장해서 비록 동화 속 세계의 단편일지라도 너희는 진실하다는 말을 들려준다.
탐정은 존재에 대한 답을 얻고 동화속 세계의 법칙에 따라 잡혀감..그리고 계속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네코마타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키라라쟝
한편 세 가문의 후계자들은 항상 자신들의 진실함을 믿어왔고 서로를 좋아했기 때문에 계속 그러한 입장을 관철하고자 한다. 자신들이 허구의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셋의 우정은 변치 않을 것이다. 월드퀘스트는 처음 호호석실에서 얻어 여기저기에서 작동시킨 태엽을 다시 원래 위치에 꽂으면서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재미있었던 퀘스트였기 때문에 정리해 봄. 원신이 문제 많은 게임이긴 하고 가끔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삐걱대는 게 보이지만 스토리 내러티브 자체는 항상 선의를 가지고 쓰여진다는 점에서 이 게임을 좋아한다. 가챠게임을 하고 있다 보면 이 모든 게 다 BM팔이를 위한 수단이라는 게 느껴져서(특히 상자까기를 미친듯이 할 때.......) 세상에 대한 회의까지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시간을 들이는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특히 여름 이벤트들이 그랬는데 복귀했던 3.8에 이어서 4.8버전의 월드임무도 참 좋은 이야기였다.
최근에 읽은 책을 인용하면서 마무리~
...<파인딩 파라다이스>에서 닐 와츠 박사는 말한다.
"가끔은 우리의 기억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허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는 허구와 진실에 대해 치열하게 묻는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가 허구를 옹호하고 있다고 느꼈다.
때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허구와 진실은 구분되지 않으며,
그렇기에 허구도 진실만큼이나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이 말은 마치 모든 이야기 매체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들리기도 했다.
우리는 허구를 만들고 있다고, 어차피 이 모든 것은 다 거짓말이라고.
그래도 이 세계는 선명하게 아름답고,
우리가 초대한 이들이 여기서 행복했다면,
이것은 가치있다고. 마치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물론 그 허구 속 행복은 짧고 허망하다.
언젠가 덧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어차피 삶도 그런 것 아닌가.
<아무튼, SF 게임> 김초엽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