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티 멀티스트라다 V4 S 시승기

오늘날 모터사이클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장르는 무엇일까요? 바로 멀티퍼포스(Multi Purpose)입니다. 멀티퍼포스의 인기 비결은 간단합니다. 자동차시장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죠. SUV처럼 어디든 갈 수 있는 전천후 성능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신 멀티퍼포스의 스타일이 뛰어난 것도 인기 이유죠. 쿠페형 SUV처럼 말입니다.

두카티 멀티스트라다 V4 S는 멀티퍼포스 장르의 인기 조건을 모두 충족합니다. 우선, 멋지죠. 현재 판매되고 있는 멀티퍼포스 모터사이클 중 멀티스트라다V4 S만큼 스타일이 뛰어난 모델은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멀티퍼포스는 오프로드 주행을 염두에 둔 탓에 거칠고 투박한 모습이 섞여 있는데, 멀티스트라다 V4 S는 다릅니다.

딱 봐도 멋지게 생겼죠. 물론 사람에 따라 여전히 호불호가 나뉘긴 하지만 경쟁 모델에 비해 그 정도가 덜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기에 역대 멀티스트라다의 디자인 정체성을 계승하면서도 최신 두카티 스타일들 더했죠. 예컨대 V자 형태의 DRL 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두카티 내에서 스포츠 모델로 분류되는파니갈레나 스트리트파이터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죠.

그럼에도 멀티퍼포스의 본분은 잊지 않았습니다. 험로 주파 시 손이 다치는 것을 방지하는 너클 가드를 포함해 옵션인 와이퍼 스포크 휠이나 엔진 밑에 추가할 수 있는 스키드 플레이트, 안개등 등이 거친 느낌을 연출하죠.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온로드 모터사이클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흙길보다는 잘 닦인 아스팔트, 심지어 트랙이 보다 잘 어울려 보이죠.

여러 장르의 특징이 섞여 있는 디자인만큼 멀티스트라다 V4 S는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가리지 않고 어디든 잘 달립니다. 포장도로에서는 스포츠 모터사이클 수준으로 빠르게 달릴 수 있죠. 비포장도로, 심지어 험지에서도 멀티스트라다 V4 S는 거침이 없습니다. 공식 영상이나 이미지를 보면 사막이나 산길을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죠. 결국 멀티스트라다 V4 S의 장르는 라이더가 어떻게 쓸 지에 따라서 결정될 뿐입니다.

저의 선택은 포장도로였습니다. 멀티스트라다 V4 S와 함께한 500여km의 여정 동안 이 선택에 후회는 없었습니다. 장거리 여정에서 멀티스트라다 V4 S가보여준 가장 큰 매력은 편안함입니다. 이러한 특징의 많은 부분은 공력 성능이 뛰어난 디자인에 기인하고 있죠. 특히 시속 100km가 넘는 고속에서 윈드스크린을 높게 올리고 몸을 낮출 때가 가장 극적입니다. 몸으로 느껴지는 바람 저항이 거의 없을 정도죠. 그래서 몸의 피로도가 현저히 낮습니다.

멀티스트라다 V4 S의 전면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디자인이 굉장히 복잡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멋지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고속에서 공기를 효과적으로 가르고 걸러내기 위한 두카티만의 비법이죠. 윈드스크린, 헤드램프 주변부, 측면 페어링의 공기 배출구, 측면 하단부의 윙렛까지 모든 게 공력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디자인 요소입니다.

이런 특징 때문인지 멀티스트라다 V4 S는 체감 속도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여기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두카티라는 이름값과 고성능에 비해 배기음이너무나도 조용한 것도 큰 이유죠. 유로 5 규정에 맞춘 대부분의 최신 모터사이클이 그렇듯 멀티스트라다 V4 S 또한 배기음이 크지 않습니다. 심지어 시승차의 경우에는 아크라포비치 사일렌서를 달았음에도 말이죠. 너무 큰 소음은 분명 민폐입니다. 반면 적당한 배기음은 라이딩의 즐거움을 키워주는데, 멀티스트라다 V4 S는 그런 부분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체감 속도가 낮아지는 것에 반비례 해 자신감은 커집니다. 동시에 스로틀을 비트는 오른손에 힘이 더해지죠.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깜짝 놀랄 속도에 도달합니다. 실제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빠른데, 몸에 닿는 바람의 양이 워낙 적다 보니 그 속도를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멀티스트라다 V4 S의 또 다른 고속 주행 비결은 엔진에 있습니다. 170마력의 최고출력과 12.7kg.m의 최대토크 발생 시점이 각각 10,500rpm, 8,750rpm으로 설정된 고회전 엔진이죠. 그러나 회전수를 3,000rpm 이상으로만 높여도 충분한 힘이 쏟아집니다. 확실히 V2 엔진만큼 저회전대 토크가 두툼하진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박진감도 떨어지는 편입니다. 그러나 공차중량이 약 240kg인 차체를 빠르게 가속하고도 남을 힘이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저회전대에서 일찍 만들어진 힘이 고회전까지 매끈하게 이어져 어떤 상황에서든 호쾌한 가속이 가능합니다. 어느 회전대에서든 스로틀을 살짝만 비틀어도 속도가 빠르게 올라가죠.

어반/엔듀로/투어링/스포츠로 준비된 주행 모드를 스포츠에 두고 엔진 회전수를 8,000rpm 이상 끌어올리면 이야기가 또 달라집니다. 이전과는 달리 날카롭고 위협적인 모습이 드러나죠. 순간 가속은 놀랍도록 빠릅니다. 시속 100km 이상에서도 스로틀을 와락 감으면 앞바퀴가 들썩일 정도죠. 코너에서는 무게를잊을 만큼 경쾌하고 민첩합니다. 당장 슈트를 입고 트랙으로 달려가도 될 것 같은 모습이죠.

스포츠 주행 모드의 세부 설정을 바꾸면 장르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집니다. 예컨대 5단계로 조절 가능한 앞뒤 서스펜션의 댐핑을 가장 단단하게 맞추고, 8단계로 나뉘는 트랙션 컨트롤의 개입 정도를 늦출 때 그렇습니다. 이럴 때 모습은 마치 파니갈레 같은 스포츠 모터사이클 같습니다.

다만 다양한 지형에 초점을 맞춘 19인치 휠이 어느 정도 영역을 구분 짓습니다다. 일반적인 스포츠 모터사이클에 적용되는 17인치 휠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무거운 휠 때문에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죠. 이런 부분에서 앞쪽에 17인치 휠을 꽂은 파이크스 피크 버전의 운동 성능이 매우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멀티스트라다 V4 S의 가장 큰 특징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을 작동하고 사각지대 경고 장치의 도움을 받으면 장르가 또 한번 바뀝니다. 이 순간부터는 더없이 안락한 투어링 모터사이클로 변하죠. 헤드램프 사이에 위치한 라이다(Radar)의 도움을 바아 시속 30km 이상부터 작동하는 SCC 덕분에 두 팔과 두 다리가 한결 편안해집니다. 자동변속기를 쓰는 자동차의 그것돠 달리 앞 차와의 거리, 그리고 속도 변화에 따라 변속을 해줘야 하지만, 퀵시프트 덕분에 부담이 없습니다.

사각지대 경고 장치는 테일램프 아래 위치한 라이다로 작동합니다. 차선 변경 시 후측방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나 모터사이클을, 라이더가 인지하지 못하면 사이드 미러에 경고등을 켜 사고를 방지해주죠. 자동차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최첨단 기술을 탑재한 모터사이클은 현재로서는 멀티스트라다 V4가 유일합니다.

무엇보다 SCC를 사용하는 상황에서는 연비가 대폭 상승합니다. 멀티스트라다 V4 S는 23L의 넉넉한 연료 탱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유를 가득한 후의 주행거리는 300km에 미치지 못합니다. 비슷한 용량의 연료 탱크를 갖춘 다른 멀티퍼포스가 400km 내외를 달릴 수 있는 것과 비교해 아쉬운 부분이죠. V4 엔진의 고성능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고급유를 찾기 어려운 지방에서 주유를 자주해야 한다는 점은 투어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입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멀티스트라다 V4 S는 어떤 상황에서든 엄청난 속도와 뛰어난 재미, 최상의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잠재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스포츠, 투어링, 오프로더 등 여러 장르의 재미를 맛볼 수 있죠. 무엇보다 라이더의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 않더라도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이런 재미를 맛볼 수 있다는 게더욱 인상적입니다. 그만큼 멀티스트라다 V4 S는 친절하고 상냥하며, 강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