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도시 몬드에서 시작하는 티바트 대륙 여행 - 원신

화면에 나오는 필드를 전부 일일이 밟아볼 수 있는 광활한 오픈월드가 특징인 이번 주의 게임.

폭풍의 그 게임

아, 진짜 내가 이 게임을 건드려보는 날이 올줄 2년 전에는 몰랐다.

분명 백도어 이슈라든가, 오픈월드 게임인데 젤다 야생의 숨결을 베꼈다든가, 캐릭터 모션이 다른 유명 게임의 것이랑 똑같다든가 온갖 부정적인 루머가 한가득이어서 얼마 못갈거라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보니까 인기가 너무 많아서 한강에 있는 섬에서 행사를 열었는데, 게임 팬이 너무 많이 와서 섬을 잇는 다리가 가라앉는 해프닝이 벌어지질 않나. 유튜브 광고로 나오는데 느낌이 3년전에 붕괴 3rd 광고같은 물건이 튀어나오질 않나. 아 비슷한 느낌이긴 하겠다. 붕괴와 원신은 같은 회사 작품이니까.

그저 인기많은 옆집게임 정도 느낌이었는데, 바닥에서부터 이렇게까지 성장한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을 해서 결국에는 하고 말았다.

활 캐릭터만 집중 육성하는 컨셉

게임을 시작하면서 주변에 원신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해 원칙을 정했다.

캐릭터 육성 재화는 항상 모자라기에 한정된 몇명만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활을 사용하는 캐릭터만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히는 게임에서 10~20레벨마다 제한이 있는데, 이 제한을 풀기위해서 아이템을 모아 돌파해야 한다.

그래서 활을 사용하는 캐릭터, 그리고 장비로 나오는 활 종류만 돌파를 하고 나머지는 그냥 진행을 했다.

계정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모으면 캐릭터의 레벨 제한도 풀린다.

마침 가장 먼저 얻게되는 캐릭터는 활을 쓰는데

뽑기에서 더이상 활 캐릭터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동안 원신이 아니라 엠버 온라인을 해버렸다.

처음 등장하는 적은 엠버로 잡았고

불 슬라임이 나오는데 불화살 원툴인 엠버가 상대하기 힘들지만 아무튼 엠버로 잡고

적이 많아도 활로 잡고

뭔가 굉장히 강해보이는 적들도 활로 잡고

정정당당한 진검승부를 요구하는 적에게도 비겁하게 활로 상대하고

드래곤도 활로 잡았다.

때마침 무조건 뽑아야 한다는 나히다 가챠가 시작이 되었는데

컨텐츠에 욕심이 났던 필자는 나히다를 거르고 요이미야에 모아놓은 원석을 모두 쏟아부었다.

울림풀....

그리고 비경 4-3층을 클리어하면 주는 콜레이를 얻었다.

그렇게 해서, 인터넷에서 평가하기로 세 활잡이가 전부 엠버와 비슷비슷하다(?)는 얘기가 돌던데

그 평가가 맞다는 전제 하에 어쩌다보니 3엠버 조합을 만들어버린 것같다.

당신은 여행자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상과는 다른 곳에서 온 존재다.

RPG 게임의 전형적인 클리셰로 시작하는 설정이다.

처음에 낚시로 건져낸 이상한 안내 요정이 나오는데 플레이어를 여행자 라고 지칭한다. 이방인이라는 소리다.

마스코트이자 티바트 대륙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하는 플레이어에게 이곳의 문화를 알려주는 가이드 역할부터 만담꾼에 비상식량(?) 역할까지 수행하지만 정작 이녀석의 정체가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행자 라는 호칭에 걸맞게,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티바트 대륙을 여행하며 각 지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알아나가게 된다.

대륙에 존재하는 일곱 나라가 어떤 이념으로 굴러가는지도 배우게 되고

npc와 상호작용하며 그들의 사연을 알아가기도 한다.

필드 위의 마물의 언어를 연구하는

일론 머스크.

심지어 일부 npc는 캐릭터의 특정 행동에 반응하기도 한다.

여기서 탈룰라 각을 잡네.

어우 좀 심하다...

이외에도 필드를 돌아다니며 얻은 재료를 활용해 요리를 하는 등 여행에 요긴한 물건을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가장 주된 요소는 탐험이다.

많은 지역을 답사해보고, 다양한 특산물을 수집하고, 장애물을 돌파하며 새로운 지역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이동을 위해 다양한 편의기능을 제공한다.

대륙 곳곳에 워프 포인트가 있어서 한 번 갔던 지역은 빠르게 다시 오는 것이 가능하고

산이나 절벽이 꽤 많은데 등반이 가능해서 우회하는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게임이 산양 시뮬레이터가 되어 있다.

정신 차려보면 언제나 절벽을 타고 있다.

중간마다 쉬어갈 수 있는 발판이 있는 곳을 잘 보고 등반해야 한다.

탐험을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방법

월드를 탐험하는 것이 주된 컨텐츠이지만, 플레이어는 생태학자라서 티바트 생태계를 조사해서 논문 써야 하는 처지도 아니고 프로 등반가라서 산이 그곳에 있기에 오르는 사람도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기꺼이 게임을 하며 티바트 구석구석을 돌게 만드는 방법은

대륙 곳곳에 숨겨져 있는 아주 풍부한 보물상자나 재화들이다.

워프포인트를 찍고 새로운 곳을 향하게 되면 필드에서 인간에게 적대적인 마물들을 조우하게 되는데,

이들을 처치하면 보물상자를 열 수 있게 된다.

보물상자를 열 때가 가장 신나는 순간이다.

이외에도 필드를 돌아다니면서 등장하는 퍼즐도 존재한다.

예상치 못한 퍼즐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퍼즐을 풀었을 때의 보상은 꽤 푸짐하다.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서, 혹은 더욱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필드 곳곳을 열어야 하는데

필드를 열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을 접하고, 이걸 극복하면 보상이 주어지고, 보상으로 게임이 진행되면 더 넓은 곳을 열고 싶게 되는 선순환을 자극하게 된다.

퍼즐을 풀면 숨겨진 지역이 열리기도 한다.

심지어 필드에서 다양한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도전과제도 잔뜩 준비되어 있다.

정말 별게 다 있다.

지도를 채워나가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것 같다.

중요한 것은 원소반응

탐험하는 것이 주요 요소인 게임들은 많다.

원신이라는 게임을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필드에서 벌어지는 원소들의 작용이다.

캐릭터가 사용하는 기술이나, 돌아다니며 보게 되는 지형지물 중에는 속성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활용하도록 되어 있다.

일곱가지 원소들인 바람, 바위, 불, 물, 얼음, 번개, 풀이 상호작용하며 반응을 일으킨다.

처음 티바트 대륙에서 깨어난 여행자가 가장 먼저 겪는 속성은 물이다. 강을 건너 헤엄치면서 캐릭터가 '습기' 상태가 되는데, 물에 들어가서 물 원소가 묻어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만약 물 원소가 묻은 상태에서 번개 원소 공격을 받게 되면 감전 상태가 되어 지속적으로 hp가 깎이고, 얼음 원소와 반응하면 빙결 되며 불 원소에 가까이 가면 물이 증발하며 추가 데미지를 입게 된다.

탐험을 할 때에도 이러한 원소반응은 지형지물을 극복하는데에 응용된다.

예를 들어 멀리 있는 섬까지 수영해서 갈 수 없을 때 바닷물을 얼려서 발판으로 만들면 손쉽게 건널 수 있다.

얼음 원소를 사용하는 캐릭터를 이용해 바다를 얼려 횡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투에서도 캐릭터가 사용하는 기술을 조합해 원소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적에게 데미지를 입혀서 한번에 쓸어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게임플레이를 하기만 하면 난이도가 크게 높은 편은 아니고, 원소 반응이 주는 이점이 커서 무쌍을 하듯이 진행을 하게 된다.

나는 예능같은 플레이를 하고싶어서 활 캐릭터만 키우는 제약을 걸기는 했지만,

실력과 시간의 문제로 결국 다른 캐릭터들을 같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적에게 원소를 붙여주며 전투하는 것이 개발진의 의도이고

그 의도를 무시하고 무작정 때리기만 하면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아져서 나는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스토리가 탄탄하다.

게임을 하면서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원신에 대해서 그런걸 기대하지는 않았다.

온라인 게임으로 나오는 스토리라고 해봤자 뻔한 걸 많이 봐온 편이고 게임의 재미와 스토리의 재미는 별개이며 세계관을 관통하는 주요 스토리를 정성들여 뽑는것은 가성비가 좋지 않기에 대충 머리 빼놓고 이해하면 충분한 수준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경우 다른 세계들을 탐험하며 잠시 티바트에 들렀는데, '천리의 주관자'라는 신에게 힘을 빼앗기고 함께 여행하던 동생이 납치 당하게 되면서, 동생을 찾기 위해 티바트의 일곱 신을 만나러 다닌다.

그러면 편하게 천리의 주관자는 나쁜놈이고 만악의 근원이니까 여행자가 강해져서 처치한다는 것으로 내용을 간단하게 할 수도 있을텐데

이 게임은 그런 선택 대신 일곱 신과 인간 사이에서 생기는 알력, 인간과 적대적인 심연교단, 다른 신의 힘을 흡수하려 들며 공격적인 외교를 하는 얼음 신 등등 여러 세력들이 활발하게 서로 견제하는 세계관을 만들어두었다. 이런 갈등 이면에는, 의외의 반전들을 투입해서 여행자가 티바트 대륙을 떠날 수 없는데에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플레이어에게 계속해서 암시하고 있다.

이래도 안 뽑을래?

한편으로 인게임에서 원소반응이 중요하듯, 원소반응을 일으키는 기술을 사용하는 캐릭터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이 존재한다. 서브컬쳐풍의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이런 캐릭터들의 면모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이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다는 감정을 자극하며, 매출로 직결된다.

그걸 위해서 각 캐릭터마다 깊이있게 교류하는 퀘스트도 존재한다.

미연시?

이런 퀘스트도 허투루 만들지 않아서

캐릭터마다 사연이 존재하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서 엔딩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걸 전부 수집하는 요소마저 존재한다.

세상에나 멀티엔딩이라니

정상적으로 진행하면 이틀마다 한 명의 퀘스트를 열람할 수 있으니,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캐릭터를 직접 플레이 하지 않더라도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들면 돈을 질러서 뽑겠지.

경쟁이 없어 콘솔게임 같은 RPG

이 게임도 엄연히 온라인이 지원되고 다른 플레이어와 협동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기본적인 유저간 거래 기능이 막혀있다.

pvp도 없고 엔드컨텐츠를 하려고 스펙을 많이 올리거나, 좋은 캐릭터를 굳이 뽑지 않아도 게임이 진행이 된다.

이 게임을 하면서 내가 예전에 RPG를 정말 좋아했었고 그 느낌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당시에 하던 게임에서 현금으로 뽑기 재화를 구매해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었는데

그 흐름을 읽지 못하고 엔드컨텐츠에 들어갔다가 같이 참여한 사람들이 나보다 열 배는 강한것을 보고는 게임 접었던 것도 함께 기억이 났다.

지금까지 봐왔던 RPG 게임의 흐름은 대체로 그랬다. 수려한 그래픽이나 그런 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홍보수단이고

막상 게임을 들어가면 별것 없어서 그냥 최대한 빨리 만렙을 찍고 다른 유저들과 세력전을 벌이거나, 레이드를 한다. 그런 식으로 판에 박힌 것들만 있었기에 나는 더이상 RPG를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일들은 게임 안에서 마저도 시간낭비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원신이 내게 보여준 것들은 다시 한 번 가상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느긋하게 필드를 돌아다니고 도시에서의 문화와 자연 생태계를 관찰하며 가끔은 지인들과 함께 적당히 어려운 과제를 함께 하는, 그 감각을 다시금 느끼게 될줄은 몰랐다.

게임을 향한 애정, 그것이 원신을 대단하게 만들었다.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가 마냥 기뻤을까?

빗대어 표현하여 토니스타크가 아크원자로를 만든 걸 본 오베디아 같은 심정이었다.

한때 중국 게임이라고 하면 조악한 마감에 어디선가 어설프게 베껴온 코딩덩어리를 지칭하는 대명사이기도 했다. 플레이 하면 짜증날 정도로 지루한데도 노골적으로 과금을 강요해서 사람을 더이상 붙잡아두지 못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 당시에 게임 강국이었고 독창적인 면이 있다고 호평을 많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에 관계가 역전되었다.

원신은 다른 게임에서 좋은 점을 서슴지 않고 들고오는 것이 있는데, 보통 창작자들은 이런걸 감추려 하지만, 원신은 대놓고 보여줄 정도로 뻔뻔하다고 비판을 받는다.

표절만으로 짜깁기한 누더기였다면 이미 세계 시장에서 퇴짜를 맞았어야 할 물건이 아직도 건재한 이유는 게임을 이루는 시스템이 유저를 끌어들일 수 있을 만큼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미호요의 슬로건은 'Tech Otakus Save The World'라고 한다.

올해 여름에 원신에서는 네 번째 지역인 수메르가 업데이트 되었고 음악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후일담 형식의 영상이 올라왔다.

수메르는 사막과 우림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하나의 신이 상반되는 지역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독특한 성격에 걸맞게, 같은 선율을 다른 악기를 사용해 지역색을 보이려 시도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음악팀이 파견되어서 배경이 되는 문화권의 전통 악기를 배워오고 주법을 연구하여 원하는 음색을 내고 듣기만 해도 문화권을 연상할 수 있는 선율을 만드는 연구를 위해 3년의 시간을 쏟았다는 것이다.

원신의 스토리텔링은 파고들수록 톨킨병 환자를 생각나게 한다.

판타지 소설을 쓰는 사람들 중에서 소설을 쓰지 않고 세계관만을 깎는 사람들을 반지의 제왕을 쓴 작가 톨킨을 모방하려 든다고 하여 '톨킨병'에 걸렸다고 하는데, 이들은 소설의 줄거리와는 상관없는 세계 구석구석까지 잡다한 설정을 갖다붙여서 연재가 지연되거나, 묘사에 잡다한 설명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서 늘어지는 지루한 글을 써내는 경우가 많다.

오픈월드 게임에서는 그런걸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륙 구석구석까지 짜놓은 세밀한 설정은 시간이 흐르면 결국 어딘가의 npc에게 사용되고, 플레이어에게 노출된다. 유튜브에서 플레이어들의 댓글을 둘러보면 필드 구석에서 만난 npc의 독특한 사연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이야기하며 세계관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혹자는 게임 내부의 책을 탐독하고 유적들을 탐사하며 숨겨진 신화를 찾는다. 독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쏟아붓는다는 것이 게임이라는 매체에서는 오히려 살아숨쉬는 세계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아직까지 티바트 대륙 전체가 다 공개된 것도 아니고, 완결난 스토리를 가진 것도 아니기에 어쩌면 우스갯소리를 조금 덧붙여서 이 게임은 전세계에 얼리액세스를 해놓고 클라우드펀딩을 받아 아직까지 개발중인 상태다.

보통 이런 상황에 있는 게임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원신이 마켓에서 최상위권의 매출을 낼 수 있고, 오프라인 행사를 열면 안전사고가 우려될 정도로 많은 팬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제작진이 게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며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타쿠의 방식대로 게임계의 상식을 뒤집어버렸다.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컴퓨터의 성능이 점차 발전하여 게임업계는 무제한급의 경쟁을 펼치는 시대가 되었다. 100GB의 용량을 훌쩍 뛰어넘는 게임도 사람들은 플레이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개발자들의 창의력을 가로막는 기술적인 한계는 사실상 없고 오로지 더 나은 결과물만을 내놓으면 되는 이 때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월등히 선두에 있지는 않고,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체계만을 찍어내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