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티 파니갈레 V4 S 2020 시승기 DUCATI PANIGALE V4 S

Origin

and

Evolution

of

Species

DUCATI PANIGALE V4 S

두카티의 슈퍼바이크 파니갈레 V4가 모델 체인지 되었다. 레이스 호몰러게이션 모델이었던 V4 R을 토대로 새로운 V4를 창조해 냈으니, 두카티다운 발상이었다. 공도용 바이크를 레이스 머신처럼 바꾸는 일보다, 레이스 머신에 번호판을 달게 하는 것이 훨씬 쉬웠던 것이다. 적어도 두카티에게는 그랬다.

●글 최홍준 ●사진 두카티 프레스

종의 기원

단 2년 전의 일이었다. 두카티의 슈퍼바이크 파니갈레가 L트윈 2기통 엔진에서 V4 4기통 엔진으로 바뀌게 된지 말이다. 2012년, 두카티는 1198을 대체하는 모델을 발표하면서 1199가 아닌, 1199 파니갈레라고 명명했다. 두카티가 나고 자란 이탈리아 볼로냐의 보르고 파니갈레. 그곳은 두카티의 모든 핵심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곳의 이름을 자신들의 바이크에 붙였다. 그만큼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바이크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었다. 숫자로만 이루어지던 기존의 두카티 슈퍼바이크들에게 파니갈레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2018년 두카티는 V형 4기통 엔진을 장착한 파니갈레 V4를 공개했다. 물론 올린즈 서스펜션과 추가 옵션이 들어간 S버전도 발표했으며 더불어 레이스 호몰러게이션 모델인 V4 R도 연이어 등장시켰다. V4, V4 S는 1103cc였지만 V4 R은 998cc였으며 배기량뿐만 아니라 프레임과 페어링도 달랐다. 무엇보다도 V4 R에는 2016년부터 GP머신에 사용했던 돌출형 윙렛이 달려있었다. 디자인은 역대 어떤 파니갈레보다 뛰어났다는 평이다. 그러나 과연 두카티의 V4 엔진을 어땠을까. 의심도 있었고 기대도 있었다. 결과는 금방 드러났다. 쉽다는 것. 역대 그 어떤 두카티보다 타기 쉽다는 것. 더 빠르고 잘 달리지만 다루기 쉬워졌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지난 2년간 가장 많이 팔린 슈퍼바이크가 바로 파니갈레 V4였다.

L트윈 엔진은 보통 4기통 엔진에 비해 다루기 어려운 편이다. 그런데 V4는 더 어렵다. 출력은 더 높아지지만 차체 디멘젼은 작아질 수 있으니 과격한 바이크가 되기 쉬운 것. 그러나 파니갈레 V4는 그렇지 않았다. 그점이 파니갈레와 두카티의 가장 큰 장점이 되었다.

진화의 시작

보통 이런 모델이 나오면 짧게는 5년, 평균 1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다음 세대 모델이 발표되기 마련이다. 소소한 마이너체인지나 하면서 풀 체인지를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2020년형으로 발표된 파니갈레 V4는 마이너 체인지라고 하기엔 변경점이 너무 컸다. 너무 빠른 느낌이었지만 두카티는 자신들의 기술을 묵혀두고 조금씩 빼 쓸 생각이 없었다.

베이스는 같지만 이미 한 세대 진보된 모델을 만들어놨으니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V4 R을 베이스로 V4의 1103cc 엔진을 넣으면 되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았겠지만 없던 상태에서 개선해 나가는 것보다 이미 개선품을 함께 만들어 놓은 상태였기에 이렇게 빨리, 비슷하지만 또 완전히 다른 신형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두카티는 1198에서 파니갈레라는 변이를 만들었었다. 그 파니갈레는 이제 1299에 머물지 않고 V4가 되었으니 이 새로운 종이 본격적인 진화를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파니갈레

2020 파니갈레 V4 S를 처음 만난 곳은 중동의 바레인 F1 서킷이었다. 일 년에 고작 2~4번만 비가 오는 곳. 연평균 강우량이 50mm가 안되는 곳이었지만 시승을 했던 날에는 1년치 비가 모두 내렸다. 프레스 테스트를 망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은 기우. 오히려 V4가 가진 안정성과 개선점들을 더 쉽고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모든 개선점이 라이더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외형상 가장 큰 변화는 사이드 페어링에 달린 날개이다. 모토GP에서는 이제는 저렇게 돌출형 윙은 달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공도용 바이크에 날개를 달아버린 것이다. 이 윙렛은 기존 V4와 R을 구분하는 중요 포인트였다. 그러나 이제는 V4, V4 S에도 저 윙렛이 들어간다. 프론트 페어링이 조금씩 커졌다. 날개와 더불어 프론트 볼륨감이 상승해 더 날렵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V4 엔진 때문에 빵빵하게 늘어난 연료탱크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만큼 밸런스를 잘 맞춰준다. 사이드 페어링에도 상어 아가미 같은 덕트가 크게 생겼다.

엔진

엔진은 1103cc의 데스모세디치 스트라달레 엔진이다. 보어는 81mm 스트로크는 53.5mm, 압축비는 14:1로 상당히 높다. 엔진의 레이아웃은 일반적인 GP머신들처럼 역 크랭크를 사용한다. 이는 코너링시 차체를 더 민첩하고 정확하게 만들어준다. 가속을 하거나 제동을 할 때 리어부분을 낮추는 역할을 해 윌리현상을 억제한다. 트윈 펄스 점화로 강렬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며 미드 레인지의 토크를 최대화 시켜 공도에서도 넉넉한 힘을 쓸 수 있으며 13000rpm에서 최고 214마력을 낸다. 최대 토크는 10000rpm에서 124Nm. 분명 공도 주행을 염두에 둔 세팅이라고는 하나 그 기반이 GP에 사용되는 엔진이다. 과연 이 엔진을 일반 사람들이 다룰 수 있을까? 그걸 위해 프레임을 다듬고 전자 장비를 세팅했다. 이제 슈퍼바이크씬에서 최대 마력은 큰 의미가 없다. 못 만들어서 못내는 출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가 기술의 차이. 그 엔진을 사람들이 다룰 수 있게, 무엇보다도 손쉽게 다룰 수 있느냐가 바로 파니갈레 V4의 핵심이었다.

프레임

섀시도 두카티 코르세가 만들어내고 V4 R에 사용되었던 프론트 프레임을 적용했다. 레이스에서 요구하는 강성 높고 가벼운 이 프레임에 연성을 더 높이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졌다. 연성이 높아지면 타이어 스트레스가 적어진다. 코너링에서의 안정감도 따라온다. 여기에 마그네슘으로 만들어진 서브프레임과 알루미늄 시트 프레임을 이었다.

24.5도의 레이크각과 100mm의 프론트 서스펜션 트레일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리어 쇽의 마운트 위치가 변경되고 쇽의 길이 자체가 길어졌다. 더불어 초기 하중은 강해졌지만 스프링 레이트는 더 부드러워졌다. 이는 브레이킹이나 가속시 차체를 더 안정시키기 위함이라고 했다. 노멀 버전에는 쇼와 43mm 포크, 리어 쇽은 작스제가 들어가지만 S버전은 모두 올린즈 NIX-30 포크와 TTX36 쇽업져버에 전자식 스마트 EC 컨트롤러를 추가해 주행환경에 맞게 댐핑값을 조절한다. S는 3스포크 마르케지니 알루미늄 단조 휠이 들어가고 피렐리 디아블로 슈포코르사 SP타이어가 순정 장착된다. 브레이크는 브렘보 스티레마 모노블럭 캘리퍼가 들어간다. 이는 M50 캘리퍼와 동일한 강성을 가졌지만 70g 더 가벼워졌으며 냉각 효율이 높아졌고 향상된 터치감을 가진 최상급 캘리퍼이다.

덕트

뼈대

사일렌서아크라

엔진

윙렛

프레임

라이딩 컨트롤

6측 관성 측정 장치와 라이드 바이 와이어 시스템으로 모든 상황을 전자장비가 제어한다. ABS 코너링 EVO, 두카티 트랙션 컨트롤(DTC) EVO 2, 두카티 슬라이드 컨트롤(DSC) EVO, 두카티 윌리 컨트롤(DWC), 두카티 파워 런치(DPL), 두카티 퀵 쉬프트 업/다운(DQS) EVO 2, 엔진 브레이크 컨트롤(EBC) EVO, 두커티 전자식 서스펜션(DES) EVO 등 이 들어간다. 브레이킹부터 타이어 트랙션, 미끄러지는 상황이나 프론트가 들리는 상황, 급 출발 시 차체 안정, 속도와 차체 기울어짐에 따른 엔진 브레이크의 개입 여부와 로스 타임 없는 퀵 쉬프터까지 그야말로 주행에 관한 모든 동작을 보조해 준다. 그것도 가장 최신의 기술로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은 고화질 TFT 5인치 계기반에서 풀 컬러로 조작이 가능하다. 기본적인 라이딩 모드 설정에 따른 전자장비 개입 외에도 추가 설정이 가능하다. 전자식 스티어링 댐퍼와 LED 라이트 같은 것들은 특징이라기보다는 너무 당연한 기본 설정이다.

레인 모드는 없었다

비가 조금 그치는 것 같아서 시승을 시작했다. 이미 노면은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깊은 코너마다 물길이 생겼다. 두카티 코르세의 미케닉들이 디아블로 슈퍼코르사 SP가 꽂힌 휠을 제거하고 레인 타이어가 들어간 휠로 교체했다. 타이어 온도가 오르자 한 명씩 트랙으로 들어갔다. 시트고는 835mm로 아주 조금 높아졌다. 어차피 발착지성이 의미있는 바이크가 아니라 문제될 건 없다. 다만 레이싱 부츠를 신고서는 사이드 스탠드를 접고 펴기 좋지 않다. 작은 돌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서들처럼 미케닉이 잡아주었기 때문에 불편 없이 코스로 들어갔다. 클러치는 가볍고 정확했다. V4엔진이 만들어내는 묘한 엔진음을 들으며 가속을 시작했다. 발끝을 스탭에 올리고 무릎을 세워 탱크를 쥐고 머리를 스크린 뒤에 파묻었다. 꽤 편한 자세가 나온다. 핸들도 그렇게 낮은 느낌도 아니고 니그립만 잘해준다면 아주 편안한 자세가 나온다.

V4의 라이딩 모드는 레이스, 스포츠, 스트리트 세 가지 뿐. 레인 모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이딩 모드는 처음부터 스포츠로 달렸다. 전자장비의 개입도가 중간쯤이다. 이어지는 코너에서 이리저리 체중 이동을 시도했지만 영 낯선 동작에 스스로가 민망해진다. 잠잠했던 빗줄기가 이어지자 부담감은 더 올라갔다. 충분히 예열된 레인 타이어지만 조심스럽게 스로틀을 돌리고 천천히 차체를 기울였다. 이질감이 전혀 없다. 낯선 환경, 낯선 바이크였지만 편안했다. 속도를 올릴 때마다 빗방울이 헬멧에 부딪혔지만 자세만 제대로 하고 있으면 어깨에 조금 맞는 것을 제외하고는 페어링이 잘 막아줬다.

프론트 페어링이 15mm, 사이드 페어링은 38mm 더 커지고 34mm 높아진 윈드 스크린이 주행풍뿐만 아니라 내리는 빗줄기도 잘 막아준 것이다. 덕분에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영상 10도 미만의 날씨여서 그런지 엔진 열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슈퍼바이크, 특히 두카티의 슈퍼바이크들은 상당한 엔진열을 낸다. 엔진은 작아지고 출력은 높아진데다가 환경규제는 엄격해져서 더 많은 열을 낼 수밖에 없다. 그 점을 두카티도 의식했는지 사이드 페어링에 상어 아가미 같은 덕트를 넣어 열기를 라이더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했다. 냉각수 냉각 효율은 6%, 엔진 오일 냉각 효율은 16%가 늘어났다고 했다. 주행 중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정차시에는 덕트쪽으로 열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정지 상태에서는 후면 실린더들이 점화되지 않는 것도 열기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래도 무더운 여름 시내 주행은 권하고 싶지 않다.

라이더를 컨트롤하는 바이크

3랩 정도 돌고 나니까 코스도 익숙해지고 V4도 몸에 붙기 시작한다. 정석적인(?) 체중이동을 통해 코너링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정확한 타이밍만 놓칠 뿐 영 만족스럽게 코너를 돌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린 위드로 공도에서 타듯이 스로틀과 시선처리만으로 남은 코스를 돌았다. 그러자 더 페이스가 올라간 느낌이 왔다. 내가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미리 상황에 맞게 준비를 해놓고 있는 것이다. 스로틀을 되돌리고 무게 중심이 변하는 동작만으로 관성센서가 모든 걸 판단해 각 부분에 지시를 내리는 것. 물론 그 동작은 인간이 알아차리기 불가능할 정도로 빠른 시간에 일어나며 그 결과도 위화감을 전혀 주지 않는 형태로 드러난다.

스로틀과 브레이크 조작만으로도 다음 동작을 정확히 읽어내고 보조해준다. V4에 그대로 몸을 맡기자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원하는 라인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프레임의 세팅이 큰 역할을 한다. 레이스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낸 프론트 프레임의 비틀림 강성을 30% 줄이고 제동 강성도 15%나 줄여버린 것. 프레임은 강성이 매우 중요하다. 출력이 강한 엔진일수록 그걸 가장 먼저 지탱하고 있는 것이 프레임이기 때문.

디자인의 두카티

강성과 연성사이

그러나 무작정 단단하게만 잡고 버티고 있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바이크는 기울어져서 코너를 도는 탈 것이다. 단단하기만 하면 그 동작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그리고 미세한 충격들을 모두 각 부분으로 그대로 전달해 버린다. 오히려 연성이 좋은 프레임이 코너링이 더 좋고 안정성이 높다. 두카티가 트렐리스 프레임을 고집했던 것도 그것이다. 무게도 가벼워지고 연성이 좋아서 민첩한 방향전환이 가능하기 때문. 지금은 프론트 프레임과 엔진 자체를 프레임처럼 사용하기에 강성이 더 높아진다. 조종성 향상을 위해 메인 프레임의 강성을 줄여버린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코너링과 브레이킹 할 때 타이어를 비롯한 라이더의 스트레스를 줄여주었다.

프론트 포크의 마운트 위치가 4mm 올라가고 엔진이 5mm 위로 올라가 마운트 되어 무게 중심이 올라갔다. 시트고가 830mm에서 835mm로 늘어난 것은 이 때문. 리어 쇽의 길이는 2mm 길어졌으며 리어 서스 링크는 5mm 짧아졌다. 리어 쇽이 더 일어서 있는 형상이 되었으며 스프링 레이트는 낮아져 더 무르게 되었지만 프리로드는 더 강하게 걸려있다. 이 세팅은 차체를 더욱 지면으로 눌러주게 만든다.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지면으로부터 오는 충격도 줄어들고 린 반응이 빨라진다. 차체가 받는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라이더는 덕분에 더 나은 그립감을 느낄 수 있고 부드러운 승차감을 느낄 수 있다. 최대 린 앵글에서 그립력도 높아지고 기울어진 상태를 유지하는 일도 쉬워졌다고 했다. 솔직히 그 모든 것을 다 느끼진 못했다. 하나 확실한 것은 꽤 빠른 속도로 급격한 코너를, 그것도 비가 오고 있고 물길이 생긴 곳에서 전혀 무섭지 않았다는 것이다.

엔진 맵핑도 과격함을 없애고 자연스러운 차체 반응을 일으키도록 했다고 한다. 동력 손실을 최대한 줄이면서 부드러운 주행감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상황에서 풀 스로틀을 하더라도 온전히 힘을 써먹을 수 있었으며 그 과정이 일관적이고 안정되어 있어서 라이더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

많은 전자장비속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DTC 에보 2. 두카티의 GP마신 데스모세디치 GP18에서 만들어지고 V4 R에 들어갔던 이 트랙션 컨트롤은 미끄러지는 것을 감지하는 것이 아닌 미끄러질 것 같으면 미리 작동을 했다가 풀어버린다. 순간적인 미끄러짐과 그 강도를 계산해 빠르고 매끄럽게 개입을 하는 것. 특히 개입감을 줄여 차체 안정성과 가속력을 해치지 않는다. 에보와 에보2의 차이는 25% 줄어든 개입 진폭이다. 한마디로 동작하는지도 모르게 계속 개입하고 있었던 것.

열 순환을 위한 덕트

이상적인 테스트 환경

여러 세션을 거치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오히려 이것은 잘 된 일이었다. 조금 천천히 달리면서 면면히 느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인 안정감과 다루기 쉬움을 말이다.

라이딩 모드는 여전히 스포츠로 놓은 상태에서 트랙션 컨트롤만 개입도를 높였다. 그리고 나서는 그냥 달렸다. 깊은 뱅크에서나 고속 주로에서도 내가 했던 일은 고작 차체에 매달려 스로틀을 돌렸던 것뿐이다. 전자장비의 혜택을 못 누린 부분도 있다. 퀵 쉬프터 같은 것들은 익숙치않아서 습관처럼 클러치를 잡았고 스로틀을 많이 되돌리면서 이른바 힐앤토를 시연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변속되었지만 과학도 오래된 습관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새 기술을 오래된 몸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일수도 있다. 이 퀵 쉬프터는 10000rpm 이상에서도 정확하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했다. 옛날 방식의 라이딩을 했던 나에게는 여전히 스로틀을 되돌리고 클러치를 잡는 구닥다리 방식이 익숙했지만 스로틀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도 클러치 없이 어떤 회전수에서라도 정확하게 들어갔다. 이것은 주행 중이 아닌 피트인 하는 중에 해본 결과이다.

첨단 기술을 다 누리지 못했어도 그 능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마지막 코너를 탈출하면서 3단 풀스로틀, 4단 풀스로틀, 레드존이 한참 남았음에도 그냥 5단으로 넣고 스로틀을 끝까지 감으면 속도계는 250km를 아주 쉽게 넘겨버린다. 메인 직선 구간의 중앙 아치가 크게 보일 때면 시속 270km를 넘어간다. 이쯤 되면 무른 레인 타이어가 속도 때문에 물렁해지고 프론트가 흔들거리다가도 차체가 고정되는 느낌이 나기 시작한다. 윙렛이 다운포스를 만들어내서 차체를 가라앉혔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 상태를 오래 느끼진 못했다.

코너 탈출 속도가 느려 시속 300km 이상에서 나오는 다운포스는 느껴보지는 못했고 297km를 본 것이 최고였다. 그걸 보고 나서 바로 스로틀을 풀고 내장이 쏠릴 것 같은 풀 브레이킹을 하면서 기어를 2단까지 내려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1번 코너에서 살아서 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윙렛 덕분이었다. 시속 200km에서도 16kg의 다운 포스를 만들어내고 270km에서는 30kg의 다운 포스가 나온다 300km에서는 37kg까지 나온다고 했다. 확실히 고속 구간에서 200km을 달리고 있으면 프론트가 조금씩 흔들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레인 타이어가 무르기 때문인 것도 있고 가속으로 인해 프론트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속도를 더 올리면 자연스럽게 그 현상이 사라진다. 바로 다운포스가 생겨서 프론트를 내리 누르기 때문이고 그 다운포스는 윙렛이 만들어냈다.

주행을 거듭할수록 그 느낌은 명확해졌다. 연이어 나오는 코너에 대한 부담으로 그 순간을 즐길 수만은 없었지만 직선 주행은 물론 바로 이어지는 코너 진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브레이킹을 할 때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속도만 줄어든다. 물론 무릎이 아플 정도로 니그립을 하며 버텨야 했지만 정확한 지점에서 원하는 만큼의 감속을 할 수 있었다. 차체의 움직임 역시 완벽했다. 뱅킹각이 상당히 높아서 충분히 기울이고 트랙션을 주어도 여유가 많았다. 기울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어진 것 또한 놀라웠다.

더 쉽고 빠른

두카티는 테스트 라이더인 미켈레 피로의 발레룽가 서킷의 랩 타임을 공개했다. 2019 V4는 1분 39초 81. 2020년 V4는 1분 39초 44로 0.4초가 줄어들었다고 했다. 훨씬 타기 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랩 타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트랙 주행을 즐기는 아마추어 라이더가 자신의 2019 V4로 1분 46초 60를 기록했던 것을 새로운 V4를 타서는 1분 45초 31를 기록해 1.3초를 단숨에 줄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두카티가 진짜 원했던 기록이다. 프로페셔널 라이더보다 아마추어들이 더 타기 좋은 바이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킷에서 재밌게 탈 수 있는 공도용 바이크였기 때문이다.

두카티는 이 기록으로 다루기 쉬움과 편안함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은 비오는 바레인 서킷에서 증명되었다. 스포츠 주행에 익숙하지 않은 철저한 공도와 오프로드 전문 라이더인 나 조차도 짧은 시간내에 바이크와 서킷에 적응하게 해주었다. 젖어있는 노면, 어쩌면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꽤 괜찮은 랩타임과 주행 라인을 그려내게 한 것도 라이더의 실력이 아니라 바이크의 성능임이 분명했다. 라이더의 잠재력을 끌어내 주는 바이크인 것이다. 그 과정이 라이더를 재촉하거나 자극하는 것이 아닌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전혀 ‘두카티 답지 않았던’ 특성이었다.

1299 파니갈레에 비해서도 2019 V4가 월등히 타기 편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V4는 더 편해졌다. 얼마나 편해졌냐면 이 날 같이 달린 24명의 다양한 실력을 가진 테스트 라이더들 중 누구 하나 넘어지거나 하는 사고가 있지 않았다. 모두 새로운 V4의 안정성을 높게 평가했으며 극한의 성능 테스트는 맑은 날로 미루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환경에서도 부담 갖지 않고 편하게 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션에는 아크라포비치 티탄 풀 배기 시스템과 두카티 퍼포먼스 파츠로 무장한 V4 S를 타게 되었다. 이건 노멀과 S의 차이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가속력이 월등했으며 직선 주로에서 내던 속도 자체가 달라졌다. 그리고 차체 움직임도 완전히 달랐다. 이것이 바로 돈으로 살 수 있는 라이딩 테크닉이었다. 아크라포비치 배기 시스템을 장착하는 것만으로 무게는 6kg이 줄어들고 최고 출력은 12마력 올라간 226마력이 된다.

새로운 가치

슈퍼바이크는 두카티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브랜드의 근간이자 자신들의 성장 배경인 레이스에서의 성과는 무엇보다 중요했으며 오로지 이기기 위한 투쟁을 이어왔다. 그 결과로 나온 것들이 V4 같은 슈퍼바이크다. 두카티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약점이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키는 장점이 있었다. 그 장점은 특징이 되었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대가 변하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겨났고 그중 몇 가지는 효율을 위해 사라지기도 했다. 건식 클러치나, 트렐리스 프레임, 그리고 L트윈이다. 물론 두카티는 여전히 순정 옵션으로 건식 클러치를 만들어내고 있고 트렐리스 프레임을 사용하는 라인이 있으며 L트윈 엔진을 여전히 자신들의 대표 엔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레이스에 이기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두카티의 장점 중 하나였던 L트윈 엔진과 트렐레스 프레임에서 오는 뛰어난 운동성능은 유지하면서 1000cc 미만의 배기량으로 더 높은 출력을 얻어야만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V4 엔진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데스모세디치 GP시리즈는 모토GP에서 활약했고 그것을 이제는 슈퍼바이크 레이스와 공도로 가져온 것이다.

공도로 가져온 이 바이크는 괴물이지만 괴물이 아니었다. 출력과 운동성능은 비일상적인 영역에 있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괴물이다. 지금까지 성공시키지 못했던 누구나 다룰 수 있는 슈퍼바이크, 두카티가 만들어낸 새로운 바이크의 종류이다.

두카티 파니갈레 V4 S 제원표

엔진 형식 데스모세디치 스트라달레 90° V4, 수냉

배기량 1,103 cc

보어 X 스트로크 81 x 53.5(mm)

압축비 14.0:1

최고출력 214hp @ 13,000rpm

최대토크 124Nm @ 10,000rpm

연료공급 트윈 인젝터, 풀 라이드 바이 와이어

프레임 알루미늄 프론트 프레임, 마그네슘 서브 프레임

휠베이스 1.469mm

서스펜션 (F) 올린즈 NIX30 43mm, 올린즈 스마트 EC 2.0

(R) 올린즈 TTX36, 올린즈 스마트 EC 2.0

타이어 (F) 피렐리 디아블로 슈퍼코르사 SP 120/70 ZR17

(R) 피렐리 디아블로 슈퍼코르사 200/60 ZR17

브레이크 (F) 330mm 세미 플로팅 디스크, 브렘보 모노블럭 스틸레마 (R) 245mm 디스크, 2피스톤 브렘보 캘리퍼

ABS 코너링 ABS 에보

시트고 835mm

연료탱크용량 16L

건조중량 175kg

더 모토 2020 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