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고…결혼17주년

요즘 포켓몬고에 제대로 빠져 있는 나는 짬나는 대로 밖으로 나가 걸어다닌다. 겨울날 방콕만 하는 인간이 제 의지로 나가는 것만으로 포켓몬고는 내게 의미가 된다. 울집 세 남자와 시간을 보내보려고 한 건데, 셋 다 이젠 시큰둥… 하여, 내 레벨이 소년들을 넘어선지 꽤 되었고 조만간 남편보다도 높아질 거 같다. 소년들에 맞는 수준이 되어보자 했는데… 내 정신연령이 제일 낮은 느낌… 매일 같이 소년들에게 포켓몬 타입이나 효과적인 공격 스킬을 배우는 중이다.

며칠 전 남편이 1호를 카뎃에 데려다 준다고 나간 후 2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밖에 나가자니 싫다고 해서 홀로 나섰다. 내가 원하던 포켓몬이 레이드를 하고 있었는데, 전투를 해서 이겨야 내 포켓몬이 되기에 혼자서 바둥바둥거리다 져버렸다. 최소 한 명이 더 필요한데, 얼른 집에 와서 2호에게 얘기하니 귀찮다고 싫단다. 그리하여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1호를 드랍하고 세차랑 다를 여러 볼 일을 보는 중이라기에 알았어 하는데, 왜 전화했냐고 묻는다. 내가 원하는 포켓몬 레이드 얘기를 하며 15분밖에 시간이 없어 했더니, 지금 갈게 하고는 쏜살같이 달려왔다.

전투에 참여해 내가 원하던 포켓몬을 갖게 해주고 다시 볼일 보러간 남편… 포켓몬고 속에 난 사랑받는 인간임을 확인했다?

퇴근하다 혼자서 잠깐 공원에 들르기도 하고, 포켓몬고 덕분에 산책을 많이 한다! 어디서나 통하는 진상질량 보존의 법칙으로 2월초부터 한동안 맘고생을 했는데, 이렇게라도 바깥공기를 쐬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했다. 역시 쉽게 일하고 돈을 벌기란… 이번 생엔 접어야 하는건가.

주말엔 넷이서 나가 포켓몬고를 하는데 그냥 산책하자면 시큰둥하던 소년들도 패밀리 포켓몬고 타임 하니 따라나서니, 어쨌든 하길 잘했다.

남편이랑 포켓몬고 앱 안에서 팀이 되어 글렌모어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포켓몬도 잡고… ㅎㅎㅎ 이렇게 우리는 더욱 베프가 된다!

그리고 우리의 17주년, 우리가 만난 지 21년 결혼한 지 17년 아주 무섭게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서툴고 다혈질인 우리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베프가 되어 이번생을 잘 버텨나가는 중이다!

일요일이 기념일임에도 밥하기 귀찮은 목요일 밤 당겨서 내가 좋아하는-줄이 길어서 스탬피드에서 먹지 못했던- 통양파튀김을 먹으로 나섰다…

소년들, 엄마아빠 기념일에 우리가 왜 나가요?

아 우리가 초대했으니 너네도 와야해.

알았어요.

기름으로 잘 튀겨진 양파… 맛있지만 한 1-2년에 한번만 먹어야할 거 같다. 양파 튀김 때문에 왔는데, 역시 내 취향이 아니었던 음식들… 프라이드 어니언이랑 치킨윙 빼곤 맛이 그냥그랬다ㅠ

그렇게 밥하기 싫던 목욜 저녁을 떼우고… 기념일이었던 오늘 남편과 브런치를 먹고 왔다! 소년들이 알아서 챙겨먹는 나이가 되다니… 우리는 조금씩 자유인으로 돌아가겠고, 둘이서 잘 놀 방법들을 찾아내고 만들어가야 한다!

오후에는 넷이서 다시 몰에 가서 소년들이 원하던 레전더리 포켓몬을 잡았다. 넷이서 하기에 버거운 레이드 전투를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몰에 가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한 스무 명이 함께하여 원하던 포켓몬을 손에 넣었다. 단순하게 하루가 지났지만, 이렇게 편안하게 소소한 즐거움을 울집 세 남자와 함께 나눌 수 있어 귀했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