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소년이 꾸는 꿈

! 스카라무슈 날조 !

! 수메르 마신임무 약스포있음 !

꿈속에서 달빛 아래 노랫소리에 따라 춤을 추는 환영을 봤다.

마치 아주 오래 전 과거의 그 백지 같던 소년과도 같았고

또 마치 증오와 고난이 모두 흩어지고 나서야 드러난

부서지기 쉽고 단순한 자아 같았다.

소년은 스스로에게 꿈을 꿀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꿈이라 함은, 분명 무척이나 아름답고 환상적이지만. 동시에 쉽게 부서지고 깨지며,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연약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소년에게 꿈이라 함은 약함의 상징이자 증거였으며, 부정이었다.

소년은 아주 오래전부터 스스로가 인간과는 다름을 자각하고 있었다. 약하디 약한 그들은 각자의 생활 속에서 생명유지에 필요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식사나 수면 따위의 것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각자의 마음과 온기를 나눴다. 소년은 자신에게 그런 것들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추던 검무, 한 아름 딴 제비꽃 열매. 단편적인 파편들의 본질은 그런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꿈을 꾸었다. 그들은 금세라도 부서질 듯 여린 몸으로 꿈을 꾸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꿈속에서는 편안함과 안락함 속에 헤엄쳤고, 꿈밖에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소년은 그것을 의미 없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소년이 그 행위가 마음을 나누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때, 소년은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 스스로의 몸체는 인간의 형태를 띠었다. 부드러운 피부가 있었고, 체온이 있었으며, 상처가 나고 뭉개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년의 몸은 인간과 달랐다. 오른손을 들어 왼 가슴 아래에 가져다 대면 느껴지는 박동. 모든 인간은 그 미약하고 여린 박동을 품고 있었다. 소년은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마음은 약하고, 희미하며, 쉽게 부서졌지만.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좌절하고, 무너지고, 고통스러워하더라도 그 박동이 멈추지 않는 한 그들은 살아갔다. 그 약한 몸으로 닿는 곳까지 문제를 향해 걸음 했고, 결국은 그 문제를 손에 쥐었다. 소년은 인간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런 것을 약함이라 칭한다면, 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년은 의구심을 품었고, 결국 인정했다. 인간은 강한 존재였다. 그들이 물리적으로 무척이나 여리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쉽게 멈추지 않는 마음이 있었고, 그것만으로 강한 존재임 역시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한때, 소년은 그들의 약함과 강함 전부를 부러워했다.

소년은 스스로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마음을 가지길 포기한 소년은 힘을 원했다. 강인한 힘, 그가 버려진 원인. 동시에 그에게 항상 결핍되어 있던, 그런 종류의 자신만의 것. 스스로의 가슴에 창조자의 심장을 박아 넣기로 결심했을 때. 제 몸에 연결된 것들을 따라 지식이 몰려들었을 때. 금세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었을 때. 동시에 고통은 한순간이라며 스스로를 세뇌했을 때. 소년은 허상과도 같은 과거와, 괴로움의 연속인 현재가 뒤섞여 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과거의 자신이 품은 생각이었나, 미래의 내가 내뱉은 말이었나.

- 도토레... 제기랄, 크윽.

끔찍한 고통이 몰려들었다. 소년은 더 이상 사고를 이어나갈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통증에 겨우 꿈에서 깨어났다. 시야가 붉게 물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개한 붉은 꽃들은 바다가 되어 다시 소년을 덮쳤다.

지식은 끊임없이 소년에게로 밀려들어왔다. 소년은 이미 그것이 인간의 것도, 신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현자들이 탐내는 그것이 실은 재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개조하고 재조립한 그가 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알고 있었다. 그들의 계획에서 자신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각했지만, 소년은 그것에 동참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째서인지는 소년 역시 정의할 수 없었다. 과거에 대한 반항일지도, 스스로의 약함에 대한 부정일지도 몰랐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이 역시 의미라고는 가지지 못한다는 것. 현자들의 행동, 도토레의 실험, 자신의 발악. 소년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그것 전부가 아무것도 되지 못한 다는 사실이었다.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 지식들은 소년이 본래 지닌 기억마저 침범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흐드러지는 혈화 속에서 낮은 비명을 삼켰다. 핏빛 시야 너머에 무언가 움직였다. 더이상 색을 구별할 수 없었지만, 소년은 그것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소년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끌어올려서는, 자신이 보일 수 있는 힘껏 비웃었다.

그 비웃음은 무엇을 향하는 것일까. 너무도 약한 꿈, 인간과 그들의 마음, 자신을 버린 창조자, 운명에 관여할 수 없었던 신. 아카데미아의 현자들, 도토레와 우인단, 썩어버린 세계수의 뿌리, 힘을 잃은 나약한 신, 붕괴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나라, 수메르의 모든 것. 그리고, 그것을 있는 힘껏 지키려 드는 눈 앞의 여행자.

너는, 이번에도 네가 지키려는 것을 지킬 수 있을까?

돌이켜본 과거에서, 소년은 단 한 번도 진정 원했던 바를 가졌던 적이 없었다. 창조주의 인정, 인간의 마음, 자신을 이해해 주던 동류, 별것도 아닐지 모르는 약하고 사소한 것 전부. 그토록 원했지만, 단 하나도 가질 수 없었던. 그렇기에 불살라 묻어버렸던 모든 것.

소년은 이 모든 것이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터였다. 그 웃음 역시 속내를 가리는 베일에 불과하다는 사실 역시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여행자는 눈앞의 거대한 로봇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그건 분명 수메르를 지키기 위한 의지였다. 동시에 저 안에 타고 있을 스카라무슈를 향한 의지이기도 했다. 그것은 끊어내기 위함인가, 수복하기 위함인가. 소년은, 방랑자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