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불멸: 남송의 서삼은 원래 저승 옥졸

정견망에서 전재한 육도윤회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남송시대 어떤 사람은 지옥의 옥졸에서

사람으로 전생했다는 역사기록이 있네요.

흥미로운 글이니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옥의 판관과 옥졸(인터넷 이미지)

원신불멸: 남송의 서삼은 원래 저승 옥졸

【정견망 전재】

남송 시기 호주(湖州) 오정현(烏程縣 지금의 호주시 오흥구) 심계촌(潯溪村 지금의 남심고진南潯古鎮)에 서삼(徐三)이라는 마을 사람이 있었다. 남송 고종 소흥 15년(서기 1145년) 7월 중 어느 날 서삼이 갑자기 급사했다. 나흘 뒤 다시 살아났다. 서삼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원신(元神)이 몸을 떠나 저승에서 겪었던 일을 전했다. 다음은 그의 자술이다.

그는 처음에 음간(陰間 저승)의 아역(衙役 관아에 속해 일하는 실무자)들에게 붙잡혀 원신이 잡혀갔다. 음간의 명부(冥府 저승 관청) 어딘가에 도착했을 때, 그는 어떤 책임자가 책상 뒤에 단정히 앉아 있고 각종 아전들이 오가며 공무로 바쁜 모습을 보았다. 이윽고 그는 끌려가 평생 착한 일 나쁜 일에 대해 심문당했다. 그리고 누군가 그에게 철추(鐵棰 쇠망치)를 주고 저승에 남아 옥졸이 되라고 했다.

그의 직책은 명부 대전 아래서 철추를 들고 서서 악인(惡人)이 대전으로 끌려와 저승의 재판이 시작되어 악인의 이름이 호명되면 다른 옥졸들과 함께 올라가서 형틀을 준비하고, 악인의 악행이 하나씩 열거되면 철추로 악인을 때리는 것이다.

악인은 참혹하게 얻어맞는데 철추를 한번 내리치면 악인은 피를 흘린다. 악인이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어 사람의 모습 같지 않을 때, 저승 관리가 물을 뿌리면 악인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계속해서 형을 받는다. 관리가 멈추라고 외칠 때까지 계속된다. 서삼은 저승에서 옥졸 생활을 하면서 여러 차례 악인에게 형벌을 가한 경험이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이라고만 했다.

언젠가 서삼이 저승에서 한가한 틈을 타 저승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판관원(判官院)’이라고 쓰인 방을 보았다. 그 속에는 휴식용 장막과 탁자, 찻상 등 가구들이 있어 판관들이 쉬는 곳인 것 같았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가 과거에 인간 세상에서 주인으로 모셨던 왕온(王蘊)이었다. 알고 보니 왕온은 생전에 감세관(監稅官 세금 관리관)이었다가 사후 이곳에서 판관이 된 것이다.

왕온이 그의 상황을 묻자 서삼(徐三)은 사실대로 말했고, 인간 세상이 그리우며 이승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왕온이 도와주겠노라고 대답하고 그를 데리고 관청에 가더니 서삼에게 문 밖에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이윽고 왕온이 나타나더니 서삼에게 말했다.

“너는 원래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 다시 인간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삼에게 이승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가하는 문첩(文牒 공문서)을 써서 건네주며, 문첩을 가지고 빨리 돌아가라고 했다.

이 일들을 처리한 후 왕온이 그에게 말했다.

​“나는 여기서 판관으로 있고 대우가 나쁘지 않다. 다만 (저승에서 쓰는) 화폐와 종이, 붓이 부족하다. 네가 돌아가거든 우리 가족에게 빨리 지전 백만, 종이 200장, 붓 20개를 태워 나에게 보내게 해라. 양간(陽間 이승) 사람들은 지전을 태울 때 신중하지 않다. 태운 것은 대부분 부서지고 흐트러져 있어 저승에서 사용하기 번거로우니 손수건으로 싸서 태우는 것이 좋다. 절대 잊지 말고 명심하거라.”

이 말을 마치고 왕온은 서삼의 왼팔에 ‘수략(首掠)’을 매어주고 말했다.

“이 ‘수략’은 내 부장품이니 우리 가족들이 네 말을 믿도록 증거로 삼아라.”

여기서 ‘수략’이란 고대 남자의 머리 장식 같은 것이다.

헤어질 때 서삼은 울면서 왕온에게 고마움을 표한 뒤 문첩을 들고 즐겁게 이승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도중에 여러 차례 귀신이 막아섰는데, 서삼이 문첩을 꺼내자 귀신들이 모두 바로 놓아주었다.

나중에 서삼이 어느 산에 기어 올라가서 산에서 떨어지자, 원신은 육신으로 돌아갔고, 인체의 육신도 다시 살아났다. 서삼의 가족들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서삼이 막 부활했을 때 몸이 좀 허약하고 일도 많아 하루 이틀 쉬었다가 시간이 나자 다시 왕온의 집에 가서 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처 왕온의 집에 가지 못하고 또 죽었다. 이튿날 왕온의 집에서 온 사람이 말했다.

“어젯밤 우리 가족이 꿈에서 왕온을 보았는데 꿈에서 서삼이 이승에 돌아가서도 집에 와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꾸짖으며 부득불 가족들에게 꿈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서삼은 또 죽은 지 사흘 만에 되살아났다가 깨어나자 말했다.

“저쪽 모(某) 신(神)에게 붙잡혀 뱃놀이에 참가 했습니다.”

이때 다들 서삼의 왼팔에 확실히 그 수략이 매여 있고, 끈 매듭의 봉인이 모두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7년 후 서삼은 수주(秀州) 위당(魏塘 지금의 절강성 가흥시 가선현 위당진)에 가서 그곳 방(方)씨 집의 고용인이 되어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렸다. 또 칠 년이 지나 빌린 곡식을 갚지 못해 빚을 피해 고향으로 달려가려고 배를 타고 태호를 건널 때 사고가 나서 온 가족이 익사했다. 서삼의 경력은 《이견지》의 저자 홍매(洪邁)의 동생 홍경배(洪景裴)가 말한 것이다. 그는 방 씨 집안의 사위다.

서삼의 경력은 독특할 뿐 아니라 신빙성이 아주 높은데 이 일을 기록한 홍매의 동생이 직접 들려준 것이다. 서삼은 뜻밖에도 명부에 옥졸이라는 직업을 배정받았다. 그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이 죽으면 확실히 저승의 심판을 거치게 되고, 악한 사람은 반드시 악한 보답을 받는다. 악인은 이승의 제재를 피하더라도 저승의 심판과 형벌은 피할 수 없으며, 인과응보는 실재한다.

아울러 공간이 다르면 시간도 다른데 서삼은 명부에서 오랫동안 옥졸로 일하다가 부활했는데 나흘밖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저승의 생명들은 형벌을 받는 악당들뿐만 아니라 뱃놀이 시합도 있다. 이로써 공간마다 생명의 존재 상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삼이 이승으로 돌아온 뒤 빚을 피해 온 가족이 도망가다 난을 당한 것도 설명이 된다. 빚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해결해야지, 피하기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아마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자료출처: 《이견지 을지(乙志) 권20 서삼위명졸(徐三爲冥卒)》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359

원신불멸: 남송의 서삼은 원래 저승 옥졸 2024년 1월 4일 생명탐구(生命探究) 글자 크기 변경하기 SNS 공유하기 덕혜(德惠) 【정견망】 남송 시기 호주(湖州) 오정현(烏程縣 지금의 호주시 오흥구) 심계촌(潯溪村 지금의 남심고진南潯古鎮)에 서삼(徐三)이라는 마을 사람이 있었다. 남송 고종 소흥 15년(서기 1145년) 7월 중 어느 날 서삼이 갑자기 급사했다. 나흘 뒤 다시 살아났다. 서삼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원신(元神)이 몸을 떠나 저승에서 겪었던 일을 전했다. 다음은 그의 자술이다. 그는 처음에 음간(陰間 저승)의 아역(衙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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