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릭컬 리바이브] 드레스 차림 엘레나와 꽁?냥대는 볼문학 단편
각 종족이 화려하게 치장을 한 것이 눈에 보인다. 화려하게 장식된 샹들리에가 이 장소를 비췄고, 잔잔한 클래식 연주가 긴장된 이 기분을 조금은 안정시킨다.
저 멀리서 케이크를 게걸스레 먹고 있는 에르핀 정도를 빼면, 정숙하고도 우아한 분위기.
이 모든 게 엘프들의 도시, 모나티엄의 시청 내부라 하면 믿겠는가?
"뭘 그렇게 멍청하게 있어, 인간? 파티 처음해 봐?"
이 익숙치 않은 분위기에 쭈뼛쭈뼛 서있는 내 뒤쪽에서 킥킥 웃는 여성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딱 들으면 아는 저 얄미운 목소리. 모나티엄의 시장인 엘레나다.
"이런 분위기는 익숙치가 않..."
답하면서 고개를 돌린 직후, 목에 뭐가 걸리는듯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딱히 사레가 들린 건 아니었지만, 진짜로 말문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평소 까치집을 짓던 머리카락이 한쪽 방향으로 갈색빛 물결이 흐르듯이 곱게 세팅되었다. 그 아래로 보이는 푸른 눈동자는 샹들리에의 불빛 때문인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항상 꺼무칙칙하게 자리잡고 있던 다크서클 역시 어딘가로 자취를 감췄다.
그 아래로 보이는 건, 실내에만 있는 탓에 깔끔하게 표백된 것만 같은 백옥같은 피부. 그 위로 반짝이는 은빛 목걸이로부터 이어지는 짙은 살결의 음영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그녀가 입고 온 옷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옷은 몸에 착 달라붙어, 평소엔 알지 못했던 이 엘프 시장의 몸매를 1도 감추지 않고 드러내었다.
후줄근한 박스티와 가운이 아닌,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흑빛 드레스와 베일. 그 위로 수많은 별빛이 수놓이고 흰색 나비가 춤추고 있는듯이 반짝였다.
마치, 오늘의 주인공은 자신이라고 강렬히 어필하듯이.
"뭘 멍하니 있어, 아마추어 같이."
목소리만 아니었으면 하마타면 다른 사람, 정정. 다른 엘프로 착각할 뻔했다.
"뭐야? 설마 드레스 차림 보고 반하기라도 했어? 알기 쉽구만."
비웃는듯한 어조로 날 보며, 엘레나는 바닥에 쓸리는 스커트 밑단을 살며시 집어올렸다. 깊게 파인 스커트의 슬릿이 더욱더 올라가, 허벅지 안쪽이 고스란히 보일 것만 같았다.
[킥킥. 역시 인간이라 이런 거에 반응하는구만. 메모해둬야겠어.]
혹시나 해서 속마음을 읽어보니, 또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저런 옷차림을 입고 온 게 분명했다. 내가 그런 거에 속아넘어갈까 보냐. 벌로 저 괘씸한 시장 녀석의 볼따구를 잡아당기기로 했다.
"으윽...! 주인공한테 무슨 짓이야?"
"왜인지 얄미웠어."
화장하는 김에 피부 미용까지 받은 건가. 이전보다 더한 쫄깃한 감각이 손가락 끝에서 느껴졌다. 이 맛에 볼따구를 당기는 걸 멈출 수 없단 말이지. 힐데가 말했듯이 중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 그래서, 뭐 말할 거 없어?"
"응?"
뭔 소리를 하나 싶어서 속마음을 다시 들여보았다.
[보기 힘든 내 모습을 찬양하라고!]
뭔가 했더니 자기가 꾸민 거 자랑하려나 보다. 다른 얘라면 평범하게 해주겠지만, 저 얄밉게 실실 웃는 꼬라지를 보니 할 생각이 쏙 사라진다.
기왕 이리된 거, 한 번 모른 척 장난을 쳐볼까?
"...말할 거라니? 뭐가?"
"뭐? ...쯧. 됐다."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엘레나는 슬쩍 손을 집어들어 나에게 뻗었다. 뭔 상황인지 몰라 손을 멀뚱히 보니, 그것에 성질이 났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해! 에스코트하지 않고!"
"뭐? 내가 왜?!"
"이 파티 개최한 게 누군지 잊었어? 개최자들끼리 동행해야한다는 걸 몰라?"
종족간 화합과 교류를 목적으로 세계수 교단에서 제안한 파티. 그리고 그것을 모나티엄 측에서 자리를 빌려준 모양새. 즉 엄밀히 말하면, 교단의 교주인 나와 모나티엄의 시장인 엘레나의 합작인 셈이다.
"으이구. 사교 모임도 안 해봤나 보네. 이 선배가 알려줄테니, 빨리 손이나 잡아."
"누구 맘대로 선배야... 에휴, 됐다."
마지못해 뻗은 엘레나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직후 흠칫하면서 놀라는 듯한 반응과 더불어, 열기가 섞인 촉촉함이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뭐야. 너도 긴장했냐?"
"읏. 시끄러. 나도 이런 모임이 그리 좋진 않다고."
[손가락 운동 이상을 하면 다음날에 근육통 온단 말이야!]
역시 외양을 꾸며도 속마음은 어쩔 수 없이 극도의 집순이 엘프 엘레나 그대로인가 보다.
"가자고. 파티의 주역이 계속 늦장부릴 순 없잖아."
"예이 예이. 알겠다고요."
손을 잡은 채 우리 둘은, 그렇게 파티장의 중앙으로 향했다.
□
"아, 지친다..."
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각 종족 수장들과 짧은 담소를 나누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자리를 빌려준 게 그간 각종 사고를 친 엘프였다 보니, 경계의 태세를 갖추는 종족들이 몇 명 보였다.
[교주랑 너무 가까운 거 같군. 설마...?]
[날 놔두고 엘프 시장과 저리 가까이 있다니!]
[교주가 저 엘프랑 있는 거 왜인지 모르겠는데 짜증나...!]
[교주님을 홀리려는 수작이야!]
속마음을 읽어보니 정확히는, 엘레나가 계속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것 자체에 불만을 가지는 거 같지만.
처음엔 손만 잡았더니 갑자기 팔짱을 끼고선 몸을 무진장 밀착하질 않나. 그러면서 닿는 볼따구와는 다른 방향성의 말랑함이 팔에 느껴져서 여러모로 곤란했다. 그 와중에 드레스의 슬릿 너머로 보면 안 되는 것이 슬쩍슬쩍 보여서 여러모로 힘든 건 덤이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모른척하고 넘겨서 어느새 파티는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별 일 없었으니, 이대로 폐막식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지.
"어이, 엘레나. 곧 폐막식 준비해야되지 않아?"
아까까지 그리 내 옆에 들러붙어 있던 시장 녀석은 나랑 살짝 떨어진 채 발코니 저 너머를 보고 있었다.
"어~이. 안 들리냐? 어..."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거 같아, 의자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향했다. 볼따구를 잡아당길 장난을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야. 너... 왜 우냐?"
엘프 특제 화장품이라 그런지 녹아내리지 않은 화장 위로, 엘레나는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투명한 액체는 그녀의 뺨을 타고 내려가, 수정이 되어 공기중에 흩뿌려졌다.
"...모르는 거냐고."
"뭐?"
여전히 눈물을 머금은 채, 엘레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나를 향해 버럭 소리질렀다.
"야! 내가 왜 이런 복장을 입고 널 초대했는지 모르겠어?"
[네가 뭘 좋아할지 몇 날 몇 일을 고민했는데...!]
그리고 그 외침과 함께 그녀의 속마음이 공명하듯이 나를 관통했다. 그것에 난, 기름이 빠진 양철 나무꾼처럼 멍하니 눈앞에 있는 엘프 여성을 볼 수밖에 없었다.
작은 장난을 치려고 했는데, 그게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이야.
"...하... 됐어. 내가 미쳤지."
이윽고 체념한듯, 엘레나는 눈물을 스윽 닦고 자리를 떠나려했다. 그런 그녀의 손목을, 난 황급히 낚아챘다.
"엘레나. 잠깐."
"놔."
"내 말 좀 들어봐."
"놓으라고!"
[뭘 사과할지도 모르면서!]
모를 리가. 아니, 애초에 내 독심술을 모르니 이런 반응인 건 당연한건가? 어찌되었든 장난이 좀 과했던 거 같으니, 이건 오해를 푸는 게 좋겠지.
"딱 봐도 알지. 모처럼 꾸미고 왔는데 아무 말 안 해줘서 삐진 거잖아."
"뭣...! 그럼 알면서 일부러 안 한 거라고?!"
[엘프 마음을 가지고 놀다니 최악이야!]
그 직후, 뭔가를 깨달은듯, 엘레나는 얼굴을 푹 숙였다. 이윽고 다 끝났다는듯이 허탈한 웃음소리가 그녀에게서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래. 그런 거야? 말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안 어울린다 이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알고 있다고. 귀염성이라고 1도 없고, 언제나 성가시게 구는 엘프가 뭐가 예뻐보이겠냐고. 저기 너에게 항상 딸랑거리는 용족이나 요정 같은 얘들이 훨씬 눈이 가겠...!"
"하아... 진짜... 야."
쾅!
그대로 다시 엘레나를 발코니로 끌고 가 양팔로 난간을 붙잡았다. 자연스레 그녀는 내 팔에 둘러쌓인 채 퇴로를 차단당하는 모양새였다.
"야, 뭐하는...!"
"너야말로 내가 왜 일부러 아무 반응을 안 한 것처럼 보였는지 모르겠냐?"
내가 하는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 엘레나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화장이 지워지지 않았어도, 붉게 물든 눈물 자국이 그녀의 눈가에 달빛에 선명히 비추고 있었다.
"몰라! 알게 뭐야! 그냥 내버려 두...!"
"...예뻤으니까."
나지막이 말한 내 한 마디에, 방금 전까지 인상 쓰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한 대 크게 엊어맞은 얼굴로 엘레나는 날 바라보았다. 이 이상한 방향으로 서투른 엘프에게, 솔직한 내 감상을 전달하기로 했다.
"네가 무진장 예뻐보이는 거 인정하기 싫어서 그랬다! 됐냐!"
"무...슨..."
"뭐냐고, 그 깊게 파인 드레스는! 보이는 살 면적이 너무 넓어서 눈 둘 곳이 없었다는 거 모르냐!"
"자, 잠깐..."
"그리고 손잡다가 갑자기 팔짱 낄 때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 줄 알아? 가ㅅ... 아니, 암튼 간에 네 맨살 감촉이 그대로 느껴지는 거 애써 모른 척하느라 힘들었다고!"
"그... 그만..."
"유혹이냐? 유혹하려 한 거냐?! 야. 나도 남자라고! 엘리아스에 떨어지고 나서 온갖 욕망을 참고 있는데 네가 갑자기 그런 옷을 입고 밀착해오면 기분이 이상해진다는 거 모르냐? 성희롱이라고 빌미잡히기 싫어서 내색 안 한 거라고!"
씩씩 거친 숨을 내비쳤다. 참고 있던 말들을 전부 뱉으니, 속이 후련해짐과 동시에 저질러 버렸다는 약간의 후회감이 밀려왔다.
"...만족했냐, 이 정도면?"
눈앞에 있는 이 엘프 시장을 봐라. 평소의 얄미운 미소를 짓는 모습은 증발해버린 채,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어 있는 게, 꽤나 장관이다. 이렇게 크게 한 방을 먹여본 게 얼마만이던가.
<ㅡ녹음이 종료되었습니다.>
"...어?"
승리의 기쁨을 느낀 찰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엘레나의 품속에서 들려왔다. 녹음? 종료? 무슨 소리지?
"...하하. 하하하!"
그리고 마치 얼굴을 갈아끼우기라도 한듯이, 조금 전까지 얼굴을 붉히고 있던 엘레나는 다시 평소의, 아니, 평소보다 얄밉고 짜증나는 웃음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드레스 안쪽 슬릿이 어떻게 된 구조인 건지, 그녀는 녹음기로 보이는 소형 기계를 꺼내 이리저리 흔들었다.
"프로포즈 한 번 찐득하다, 교주?"
"뭐... 엘레나, 너 설마!!"
"킥킥. 슬슬 적응할 때 되지 않았어? 엘프는 배신할 때를 위해 언제나 철두철미하다구."
다시 드레스 속으로 녹음기를 집어넣으며, 엘레나는 낄낄거리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뿔사. 방심했다. 쓸데없이 머릿속을 난잡하게 만드는 직전까지의 모습에, 그녀가 그 음험한 엘프의 우두머리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자~ 이걸 어떻게 할까? 인트라넷에 박제라도 해볼까? 아니면 다른 곳에..."
"야! 당장 그거 지워! 안 그러면...!"
"왜? 내 스커트 안을 뒤지게? 말리진 않겠는데 공석에서 그러면 너만 손해일걸?"
"윽..."
짖궂게 도발하듯이 드레스를 양손으로 들어 펄럭이며, 엘레나는 장난끼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분홍머리 유령녀석에게서 배우기라도 한 건가.
"뭐~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협력만 잘 해주면 흩뿌리지 않을테니까."
[물론 영구소장은 할거지만. 히히.]
"큭... 엘레나 이 자식...!"
그런 나의 맹렬한 시선을 무시한 채, 엘레나는 나의 한쪽팔을 잡아 다시금 팔짱을 끼기 시작했다.
"자, 마지막까지 에스코트, 잘 부탁한다고? 교주."
그렇게 말하며 엘레나는 나를 잡아당기며 파티장으로 향했다. 후련하다는 듯이, 혹은 하이힐에 적응한 듯이, 그녀의 발걸음은 조금 전보다 다소 가벼워보였다.
바보. 멍청이. 에르핀. 머릿속으로 어리석은 나를 매도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모른 척할 걸. 역시 이 모든 건 다 엘레나 이 녀석의 옷차림 때문이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 했던가. 평소와는 달리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에 내가 잠시 홀린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게 엘레나가 내 약점을 잡기 위해 만든 고단수의 함정이었던 거고.
"...고마워."
다시는 이런 함정에 걸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그때, 엘레나의 옅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안 했거든? 빨리 오기나 해."
[쓸데없이 귀만 밝기는.]
어째서일까?
달빛이 비추는 엘레나의 귀가, 오늘따라 유독 새빨개진 것만 같았다.
여러모로, 오늘은 잊지 못할 밤이 될 거 같다.
시장님 드레스 개이뻐서 써본 볼따구 단편입니다. 시리즈가 될지는 몰?루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