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포츠를 위협하는 초강력 네이키드, 두카티 스트리트파이터 V4 S
모터사이클의 장르는 크게 슈퍼스포츠, 네이키드, 크루저, 어드벤처(듀얼퍼퍼스), 스쿠터 등으로 구분하지만, 각각의 장르들 역시 더 세부적으로 나눌 수 있다. 네이키드의 경우 로드스터 등으로 불리는, 라이더가 아닌 사람들도 모터사이클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전형적인 네이키드의 형태도 있지만, 그 외에도 머슬 바이크나 스포츠 네이키드 등 다양한 모델들이 있다.
이러한 네이키드 중에서도 스트리트파이터라고 부르는 독특한 장르가 있다. 여타 네이키드와 비교할 때 상당한 수준의 고성능을 자랑하는, 거의 슈퍼스포츠와 맞먹는 정도의 성능을 가진 모델들을 일컫는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에 대해 ‘슈퍼스포츠에서 페어링과 윈드스크린을 제거한 모델’이라고 설명하는데, 앞서 말한 부분과 같은 맥락인 것이, 슈퍼스포츠 모델에서 성능적인 요소들은 그대로 두고 페어링과 윈드스크린을 제거해 네이키드 특유의 개방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대신 네이키드인 만큼 세퍼레이트 방식의 낮은 핸들바 대신 파이프 방식의 좀 더 높은 핸들바를 적용해 일상에서도 타기 편하도록 구성한다.
이 스트리트파이터는 각 브랜드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현하고 있는데, 두카티는 화끈하게 장르명을 그대로 제품명으로 가져다 쓰는 제품이 있다. 바로 두카티 스트리트파이터로, 2009년 처음 만들기 시작해 지금까지 다양한 배기량의 모델이 이어지고 있다. 이 중 가장 최신인 스트리트파이터 V4를 업그레이드한 스트리트파이터 V4 S가 발매되어 직접 시승해보기 위해 멀리 스페인 알메리아로 향했다.
24시간이나 걸리는 장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스페인 알메리아 서킷, 전 세계 50여개국의 모터사이클 전문 미디어가 모인 이 곳에서 오늘의 주인공을 만났다. 물론 여기서 한정판인 스트리트파이터 V4 SP2 모델도 함께 소개됐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아닌지라 잠시 뒤로 미뤄두고 스트리트파이터 V4 S에 집중하기로 했다.
스트리트파이터 V4는 2020년 처음 출시된 제품으로, 208마력의 강력한 파워에 178kg의 가벼운 무게로 이름에 걸맞은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슈퍼스포츠에서 페어링과 윈드스크린을 제거한’ 장르의 특징을 그대로 담아내 베이스가 되는 슈퍼스포츠 모델인 파니갈레 V4의 전자장비나 윙렛 등은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페어링을 제거하고 높은 핸들바를 장착해 고성능, 초경량의 파니갈레 V4를 좀 더 쉽고 편하게 다룰 수 있게 한 모델이다.
여기에 특유의 전면부 디자인은 스트리트파이터 V4를 쉽게 구분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듀얼 헤드라이트와 상단의 V자형 주간주행등(DRL)이 조화를 이루는데, 이 디자인을 두고 두카티에서는 ‘조커 페이스’라고 칭하고 있는 것. 만화에서도 강력한 악당으로 등장하는 조커의 특징을 디자인에 담아 스트리트파이터의 강력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윙렛이 2개인 점도 파니갈레와는 다른데, 이는 전면부 페어링의 부재로 인해 약화되는 다운포스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전면부와 측면에 그대로 드러난 엔진을 빼면 나머지는 파니갈레 V4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언더슬렁 방식의 머플러나 날카롭게 마무리된 후미부 등은 영락없는 파니갈레 V4다. 외관에서 달라진 것 중 하나로 연료탱크도 있는데, 스트리트파이터 V4 대비 형상을 다듬어 제동이나 코너링에서 라이더가 지지하기 쉽도록 했으며, 이 과정에서 용량이 1L 늘어난 17L가 되며 항속거리가 더 늘어났다고.
전자장비 역시 파니갈레 V4에서 이어받은 만큼 매우 다양한 기능들이 탑재됐다. 트랙션 컨트롤 에보 2, 윌리 컨트롤 에보, 슬라이드 컨트롤, ABS 코너링 에보, 엔진 브레이크 컨트롤 에보 2, 전자 서스펜션 에보 등 파니갈레 V4와 똑같은 장비들이 탑재됐다. 여기에 강력한 208마력의 파워도 상황에 맞춰 조절 가능하도록 출력 모드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기능들을 일일이 조절하려면 상당히 복잡한 만큼 스트리트파이터 V4에도 라이딩 모드가 탑재되는데, 기존에 3단계로 조절 가능하던 기능에 이번에 새로 ‘웨트(WET)’가 추가됐다. 이름 그대로 젖은 노면, 빗길 등에서 좀 더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게 한 것으로, 로드나 스포츠 모드와 마찬가지로 스로틀 반응을 훨씬 부드럽게 조절하고, 여기에 최고출력을 제한해 안전을 도모한다. 다만 기본 엔진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레인 모드에서 제한된 출력도 165마력이나 된다.
이러한 강력함은 1,103cc 90° V4 데스모세디치 스트라달레 엔진에서 나온다. 최고출력은 208마력/13,000rpm에 최대토크 123Nm(12.5kg‧m)/9,500rpm으로, 4,000rpm부터 이미 최대토크의 70% 이상이 뿜어져 전 영역에서 뛰어난 가속력을 경험할 수 있게 구성했다. 여기에는 두카티 모터사이클이 강력한 성능을 내도록 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인 데스모드로믹 시스템도 당연히 적용되는데, 쉽게 설명하면 강제 개폐식 밸브 시스템이라 보면 된다. 일반적인 스프링 방식의 밸브 시스템은 고회전에서 작동의 정확성이 점차 떨어지는데, 데스모드로믹 방식은 고회전에서도 밸브 개폐가 정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스프링 방식 대비 훨씬 높은 회전수를 유지할 수 있어 훨씬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다. 덕분에 다른 리터급 이상의 모터사이클보다 높은 회전수까지 엔진을 작동시킬 수 있는, 회전 한계가 높아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
여기에 역회전 크랭크샤프트도 두카티 V4 엔진의 특징이다. 휠과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크랭크샤프트를 배치하면 전반적인 자이로스코픽 효과를 감소시키는데, 덕분에 차량이 훨씬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 모토GP에서도 이를 위해 역회전 크랭크샤프트를 장착한 모터사이클을 출전시키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즉 모토GP 정도에서나 적용되던 기술을 양산 제품에 적용한 것이다. 여기에 가속시나 감속 시에 앞바퀴 혹은 뒷바퀴가 들리는, 즉 윌리나 잭나이프 현상을 줄여주는 것은 덤이다.
이런 스트리트파이터 V4가 업그레이드된 V4 S는 파니갈레 시리즈 못지 않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요소들이 더해진 것이 특징이다. 우선 이런 고성능 모터사이클에 빠지면 섭섭한 올린즈 서스펜션이 앞은 NIX30 조절식 포크가, 뒤는 TTX36 조절식 쇼크 업소버가 탑재되는데, 앞선 기능 소개에서도 눈치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모두 전자식으로 감쇠력(damping)이 제어되는, 올린즈의 스마트 EC 2.0 시스템이 적용된 제품이 장착됐다.
민첩한 움직임을 위해선 무게가 가벼워야 하는데, 우선 차량 전반의 무게 감소 효과를 위한 리튬 이온 배터리가 탑재된다.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반 납산 방식의 배터리보다 훨씬 무게가 가벼운데, 이번 리튬 이온 배터리 탑재로만 1.7kg이나 감량했다고 하니, 모터사이클 다이어트에 특효약인 셈. 여기에 실제 주행에서 변화가 크게 다가오는 부분인 스프링 하중량(Unsprung Weight)을 줄이기 위해 마르케지니의 알루미늄 단조 휠을 적용했다. 슈퍼스포츠에서도 고사양이나 한정판 모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장비들이 대거 투입된 스트리트파이터 V4 S, 점점 시승이 기다려진다.
계기판에서도 변화가 이뤄졌다. 우선 기어 변속 타이밍을 알려주는 초록색 LED가 상단 좌측에 추가됐다. 이는 일상용보단 트랙 주행에 적합한 기능인데, 이에 맞춰 레이스 모드의 계기판 구성도 바꿔 트랙 주행에서 중요한 부분들, 엔진 회전수와 기어 위치, 랩타임과 각종 주행 보조 기능들 위주로 표시해 시인성을 향상시켰다. 또한 트랙 주행에 적합한 출력 모드도 추가됐는데, 스타트, 즉 1단에서는 안전을 위해 출력이나 토크에 제한되는 부분이 있었던 하이(High)나 미디움(Medium) 모드에 새롭게 완전하게 제한이 풀린 ‘풀(Full)’ 모드가 추가되어 더욱 빠른 출발이 가능하다. 물론 안전을 위해 트랙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좋겠고, 이 때문에 레이스가 아닌 다른 라이딩 모드에선 선택이 불가능하다.
이제 차량을 알아봤으니 본격적으로 시승해볼 차례. 따끈따끈한 스트리트파이터 V4 S가 줄지어 피트에 도열해 타이어 워머를 입은 채로 달릴 준비를 마친 상태다. 두카티의 근본 색깔은 이탈리안 레드라고 생각해왔지만, 오늘의 시승차는 그레이 네로 리버리 컬러로 곳곳에서 슬쩍슬쩍 보이는 레드 컬러가 강력함을 은근하게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해 이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오늘은 이 곳 알메리아 서킷을 무려 6세션이나 달릴 예정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도 없고, 아무리 타이어 워머로 바짝 예열을 해놨다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몸을 푼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달리기로 생각하고 스포츠 모드로 세팅을 변경했다. 신호에 맞춰 차례로 코스에 진입해 조금씩 속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레이스 모드보다는 비교적 부드러운 스로틀 반응이라는 스포츠 모드임에도 매 가속때마다 느껴지는 강력함이 인상적이다. 208마력의 강력한 파워가 200kg도 되지 않는 가벼운 차체와 어우러져 서킷을 폭발적으로 질주한다. 문제는 이 곳 서킷이 은근한 고저차가 있어 조금만 방심하다가는 브레이킹 포인트를 놓쳐 코스 이탈하기 딱 좋은 구성이기 때문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여유를 두기로 했다.
코너에서의 움직임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민첩하다. 역회전 크랭크샤프트의 채용이 약 40% 정도의 자이로스코프 효과 감소를 가져온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동안 타왔던 일반적인 모터사이클보다 차체가 기울어지는 것이 훨씬 빠르다. 물론 과거의 두카티 모터사이클, 일명 L트윈 시대의 모터사이클도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명성이 높았지만, 그때의 모터사이클이 마치 ‘면도날을 타는 것 같다’고 평할 만큼 아슬아슬함이 더해진 민첩함이었다면, 지금은 ‘안정감이 뒷받침하는 민첩함’이어서 불안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민첩한 움직임은 역회전 크랭크의 장점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직진에서의 안정성이 감소하는 부분이 있다. 두카티에서는 이 점을 해소하기 위해 스윙암 피봇의 높이를 4mm 높였는데, 고작 4mm의 차이지만 이 덕분에 가속 시의 안정성을 향상시켰다고. 그래서인지 가속이나 감속 모두에서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세션까지 무사히 마쳤다.
어느정도 몸도 풀렸고 모터사이클도 길이 들었을테니 제대로 달려볼 차례다. 왼쪽 핸들바의 버튼을 길게 눌러 모드 설정으로 들어가 레이스 모드로 바꿔준다. 출력까지 파워 모드로 바꿔서 테스트를 해볼까도 싶었지만, 내가 레이스에 참가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부분은 그대로 유지하고 코스에 진입했다. 본격적으로 스로틀을 감아주자 아까와는 확 달라진 엔진의 반응이 마치 다른 모터사이클을 탄 듯하다. ‘즉각적’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게 될 줄이야. 마치 큰 거인이 뒤에서 차체를 뻥뻥 차 내지르듯 아낌없이 뿜어지는 파워가 가벼운 차체를 강하게 밀어붙인다. 이런 즉각적인 가속력은 직선 구간에서 더욱 강력하게 다가오는데, 코너를 탈출해 메인 스트레이트 구간에서 다음 코너에 진입하기까지 수초 정도의 시간동안 짜릿한 가속력에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친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공포감이다. 그나마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약간의 실수를 만회해줄 수 있는 다양한 전자장비들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포감을 이겨내고 한 세션, 또 한 세션을 달리기 시작하자 어느새 공포감이 짜릿한 쾌감으로 바뀐다. 그러면서도 피로함을 덜 느낄 수 있었던 건 파니갈레 V4와 다르게 높게 장착된 핸들바 덕에 허리에 부담이 덜 느껴졌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일상에서 부담없이, 주말에는 트랙에서 다른 슈퍼스포츠들과 함께 달리기에도 부족함 없는, 그것이 바로 스트리트파이터 V4 S인 것이다.
두카티에서 레이스 DNA를 빼놓고 얘기하는 건 말이 안된다. 그런 만큼 레이스에 기반을 둔 제품이 나오는 것 역시 놀랄 일은 아니다. 그것이 슈퍼스포츠가 아닌 네이키드여도 말이다.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는 그동안 두카티 라인업에서 트랙에서의 스포티함과 일반도로에서의 편리함을 두루 만족시켜줄 수 있는 제품으로 널리 사랑받아왔는데, 이번 V4 S를 통해 편리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트랙에서의 실력을 더욱 가다듬어 더욱 강력한 모델로 변신시켰다. 어쩌면 스트리트파이터 V4 S의 경쟁자는 파니갈레 시리즈가 아니었을까? 그만큼 강력하고, 민첩하다. 평소엔 출퇴근용으로, 주말엔 투어나 트랙데이용으로 모두 만족할만한 모델을 원한다면 두카티 스트리트파이터 V4, 그 중에서도 고성능 서스펜션과 단조휠로 스포츠성을 업그레이드한 S 버전이라면 어디서도 부족함없는 라이딩을 즐기기에 충분할 것이다.
| 송지산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