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팬픽 (2)

2013년 3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었다. 새로운 교복을 입고 새로운 학교 건물을 보니 고등학생이라는게 실감이 났다. 아무 생각없이 수많은 교복 무리에 뒤섞여 강당으로 걸어가고 있을때였다.

"저기....거기!"

뒤에서 들려오는 쭈뼛거리는 말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남학생 한 명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명찰을 보니 고은결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때가 바로 은결과 처음 마주했을 때다.

"누구....세....요...?"

얼굴만 봐선 나랑 같은 신입생인지 나이 많은 선밴지 모르겠으니 일단은 존댓말을 썼다.

"혹시 강당이 어딘지 알아? 입학식 가야하는데."

입학식? 아, 신입생이구나. 난 편하게 반말로 대답했다.

"나도 몰라. 나도 오늘 입학식 가는거라..."

"어? 너도 1학년이야? 잘됐네, 그럼 같이 가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

"같이 가자고. 너도 입학식 해야 한다며?"

"아, 뭐 그렇긴 한데....그래."

얼떨결에 나는 생전 처음 본 남자애와 나란히 강당에 가는 신세가 됐다. 은결은 걷기만 하는게 심심한지 쉴새없이 떠들어댔다.

"근데 너 이름이....심....마우? 이름 진짜 특이하다."

"그런 소리 많이 들어."

"넌 어느 중학교 나왔어?"

"그건 왜?"

그 말에 고은결은 꽤 당황한 얼굴이었다.

"응? 아,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이야기 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

"알았어."

네가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한거다. 난 진짜로 입을 닫아버리자 은결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철벽을 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중학교에 다니는 3년동안 몇 가지 사건을 겪고나서 남자애들하고는 묘하게 거리를 두게 됐다. 눈앞에 있는 고은결도 우연히 강당에 같이 들어서게 된 사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깨진건 나와 고은결 둘다 1학년 10반 줄에 서면서였다.

"뭐야? 너 왜 여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은결은 너도 10반이었냐고 반가워했다. 같은반이면....아까만큼은 철벽치진 말자.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서 기본 예절은 지켜야지. 그냥 가볍게 인사 정도만 하는 거야. 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입학하고 나서 처음 보름정도는 진짜 같은반 남자애들하고는 인사만 하고 다녔다. 고은결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나의 확고한 인간관계가 바뀐건 3월이 다 지날 무렵의 어느날, 체육시간 때 일이다.

남자애들이 농구한답시고 강당 전체를 차지해버리는 바람에 운동이 딱 질색이었던 여자애들은 강당 앞 무대를 관중석 삼아 걸터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때였다.

"아야!!"

고개를 들어보니 남자애 한 명이 다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무릎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여자애들은 말할것도 없고 같이 농구를 하던 남자애들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체육 선생님이 뛰어 오더니 아무나 부축을 해서 양호실에 데려가라고 했다. 하지만 다친 애는 혼자 갈수 있다며 도움을 마다하고 혼자 강당을 나섰다. 남아있던 남자애들은 농구를 그만할지 아니면 그냥 모자라는 대로 할지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은결이 날 불렀다.

"저기, 심마우! 너 혹시 우리 농구 도와줄 생각 없어?"

"나? 나 농구할줄 몰라."

"그냥 도와주기만 하면 돼."

은결의 말에 남자애들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야, 농구를 할줄 아는 사람한테 부탁을 해야할 거 아니야."

"뭐 어때? 우리도 처음에는 농구 아예 할줄 몰랐잖아."

난 내가 직접 나섰다.

"저기, 난 저 농구대까지 공 높이 못 던지고 점프도 잘 못해."

"넌 그냥 우리한테 공만 던져주면 돼."

라고 말하는 은결 때문에 결국 난 남은 체육시간동안 남자애들의 농구공 셔틀을 해야했다. 쉴새없이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는 공을 보느라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 한번의 농구시합 대타가 시작이었다. 체육시간에 남자애들이 축구나 피구를 하는 날이면 농구시합 했던 날처럼 도와달라고 하거나 다른 수업 시간에도 급하게 사용하게 됐다며 내 물건을 몇개 빌려가기도 했다. 얘는 다른 애들 다 놔두고 왜 나한테만 오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한번은 남자애들이 은결에게 나와 똑같은 질문을 하는걸 봤다.

"야, 고은결. 넌 체육할때도 그렇고 뭐 급하게 쓸일 있을때도 그렇고 다른 애들 다 놔두고 심마우한테만 부탁하더라."

하지만 은결은 얼굴빛 하나 안 변하고 이렇게 말했다.

"심마우한테 부탁하면 당장 일을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일단 일을 해결을 했다는것에 의의를 둬야하지 않을까?"

여자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친구들은 아예 대놓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마우야, 너 고은결이랑 따로 연락하고 그러는 사이야?"

"아니. 나 쟤 전화번호도 몰라."

"근데 왜 맨날 너한테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는거야?"

"나도 몰라."

사실 이유는 둘째치고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건 은결이 부탁을 할때마다 한번도 거절하지 않고 전부 들어주는 나였다.

이게 쌓이고 쌓였고 어느 순간, 반 애들은 우리를 썸으로 엮고 말았다.

<작가의 말>

원래 한 편 안으로 끝내려고 해지만 서사가 너무 길어져서 한 편 더 쓰기로 했습니다

사실 주인공들 서사 말고도 원신 세계에서의 서사도 여러편 쓰려고 생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