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게임이 사이비 종교만큼 악랄한 점
철저한 우상화
우상화 대상 = 40만 데미지
40만 데미지에 대한 강렬한 환상을 심어주고, 그에 열광하는 수십, 수만, 수천, 수억의 신봉자들을 지원하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조직의 건설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40만 데미지를 맹신하는 광신도(유튜버, 댓글 알바)들을 양성하고, 조직을 더욱더 거대하게 부풀리고 있습니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숫자(데미지)에 다이야몬드와 같은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게임 노동(일퀘)을 하나의 시급처럼 환산하여 40만 데미지에 대한 환상을 더욱더 갈망하게끔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원신은 게임이 아니고, 최종 아이템을 얻기 위해 수고를 들여야 하는, 구슬 꿰기와 같은 하나의 부업입니다. 일을 해야 하는 당위성은 곧 40만 데미지에 대한 환상과 일치하고, 갈망이 클수록 빠져나오기가 힘든 구조입니다.
그렇기에 유튜브, 게임 커뮤니티에서 조장하는 유행이 게임의 판도를 뒤집을 만큼 중대하고, 이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수 많은 댓글 알바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공략을 설명한답시고 조곤조곤 말을 길게 놓지만, 실상은 40만 데미지에 대한 강렬한 환상을 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이즈 마케팅보다 더 악랄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가짜 공신력을 무대로 해서 게임 노동에 의문을 품지 못하도록 꾸미는 점입니다. 우울증이나 번아웃으로 고통받는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이 이런 기만에 가장 취약합니다. 무기력한 사람들은 얼토당토한 게임 규칙에조차 의문을 품기 힘듭니다. 그들은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가끔 티비를 쳐다보는 소일 거리로 지루함을 달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약상자가 든 쟁반을 들고 온 간호사가 작은 활동이라도 재활에 유익하다면서 보드 게임을 내놓습니다. 정신을 환기시키고, 갈망이 생명 활동에 아주 없어서는 안된다면서 권장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부정적인 맥락에 시달려온 사람들은 너무나 손쉽게 타인의 말을 맹신합니다. 멀쩡한 사람들도 조직이 크면 클수록 아무런 의심 없이 맹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일퀘를 하고, 퇴근하고 돌아와 폐지런을 돌고, 그렇게 반 년의 세월 동안 수고를 들였지만, 정말이지 너무나 창피해서 죽고 싶을 만큼의 수치심이 내 안에서 요동쳤습니다. 네가 이것이 얼마나 무익하고 멍청한 짓인지 모르냐? 하는 의문이 내 안에서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탈퇴할 수도 없는 것은 그간 현질한 금액은 물론, 그간 축적한 육성치가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한 번은 술기운 또는 충동적인 아이템들을 모두 삭제한 후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한 달이 넘도록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페인이 될 것만 같은 임계선이 눈 앞에서 어른거렸습니다.
정말 정신이 나갈 정도로 힘이 들었습니다.
거대한 조직으로 작은 개미 같은 유저들을 무참히 짓밟는 게임사에 대해 인지하는 것조차 아리송하니까 말입니다. 자세히 설명하는 것도 이젠 너무 지칩니다. 그냥 내가 멍청하고 충동적이여서 미친 짓을 했다고 둘러대고 싶고, 하루종일 넷플릭스 애니나 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싶습니다. 원신이라는 게임을 하기 전에, 나는 휴일에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었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나는 누군가 내게 욕을 하는 것을 가만히 보아넘기던 사람이었던가? 나는 명백한 진실이 눈 앞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머릿수와 텃새로 거짓을 주장하는 이들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가 있었나?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던 같은 반 친구가 빵 심부름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걸레봉으로 등짝을 후려갈기는 학폭 현장을 간과할 수 있었나? 그땐 못했지만. 나는 비리비리한 오타쿠로 보인다는 치졸한 이유 하나로 주택가 구석에서 묻지마 니킥으로 코뼈 부러져도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나? 그땐 못했지만. 나는 5년간 동거한 길고양이가 싸가지 없이 이불에다 토한다고 해서 쌍욕을 퍼부으면서 발로 차 내쫓을 수가 있나? 이제는 못하겠지만. 나는 정말로 나를 공격하는 명백한 기만 행위를 보고도 참을 수가 있었나? 40만 데미지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바로 플스를 켜고 반 년간 반복한 일퀘를 계속 할 수가 있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버러지 같은 놈이었을까? 어쩌면 내가 정말 힘든 이유는, 바로 이런 나에 대한 감각을 치매 어르신처럼 조금씩 소실해갔기 때문이지 않을까? 일의 쉽고, 어렵고 대한 일상적인 감각조차 소실되어 간다. 모든 게 죽을 것 같이 너무나 힘들다. 이건 바로 기존의 나에 대한 감각을 조금씩 상실해가는 치매 증상일 수도 있다. 나에 대한 감각을 상실해가므로 무기력해지는 것이고, 또한 일상적인 감각으로까지 번진다. 무기력한 현상이라고만 생각하지만, 내가 숟가락을 드는 일을 시멘트 푸대를 드는 일처럼 너무나 버겁게 느끼기 시작했다면,, 그건 실제로 일상적인 인지 감각들의 상실을 나타내는 증상일 수도 있다. 갑자기 모든 것들이 너무나 힘들도, 죽을 것 같이 어렵다. 그건 현상은 어쩌면, 기존의 존재하던 인지 감각이 불이 꺼진 방처럼 깜깜해지니까 일시에 당황하고 허둥대는 모습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실제로 현재로써는 숟가락을 드는 일이 죽을 것 같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나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숟가락을 드는 일이 세상 그보다 쉬운 일이 없다는 아주 기초적인 감각조차 상실했기 때문에, 그 광경이 불이 꺼진 방처럼 순간 새까맣게 아무것도 안 보이기 때문에 당황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느닷없이 불이 꺼진 방처럼. 그러나 방에 불을 켜고도 미련한 짓을 멈추지 못한다면, 진짜 치매인 것이다. 내가 예전에 일상을 살아가던 감각들을 회상하고, 내가 예전에 즐겼던 여가 활동들을 재현하고, 그 감각들을 되찾으려 노력했음에도 병폐가 멈추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이지 치매인 것이다. 나는 정말로 많이도 아니고, 숫자로 표시되는 데미지 숫자를 일주일만 차단해도 40만 데미지에 대한 환상, 갈망이 바로 당장처럼 주체할 수 없는 수준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희망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잃었던 감각들을 자세히 상상하면서 전에는 감히 시도하지 못하던 탈퇴한 힘을 얻었다. 탈퇴할 결심이 아니라, 더욱더 자세히 상상함으로써 원동력을 얻어 시간이 멈춰버린 듯 탈퇴하는 마지막 순간에까지 이르렀고, 버튼은 눌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