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티 파니갈레V4S 프레스 테스트 2020 Panigale V4 International Press Test
Panigale V4 International Press Test
속도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두카티의 새로운 파니갈레 V4의 프레스 테스트에 초청받았다. 슈퍼바이크의 테스트에는 실로 오랜만의 참가이다. 테스트 장소는 중동에 있는 바레인의 바레인 F1 서킷. 길이 5.4km의 풀 사이즈 서킷에서 파니갈레 V4의 방향성과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글/사진 최홍준 ●취재협조 두카티코리아 www.ducati-korea.com
신 모델의 프레스 테스트는 대부분 12월에서 2월에 이루어진다. 겨울이기 때문에 비교적 따뜻한 지역에서 테스트가 치러진다. 때문에 스페인 같은 연중 따뜻한 기후인 곳에서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동지역이다. 이곳도 영상 5도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곳이지만 조금 의외였다. 그러나 곧 그 의문은 풀렸다. 바레인 서킷은 고속을 낼 수 있는 직선 주로가 많은 서킷으로 F1 그랑프리가 열리는 곳이다. F1 머신 기준으로 오버 300km를 낼 수 있는 구간이 세 곳이나 있다. 새로운 파니갈레 V4에는 윙렛을 달아서 시속 270km이상에서 30kg이상의 다운포스를 낼 수 있다고 한다. 그 다운포스를 느끼기에는 바레인 서킷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차가웠던 중동의 겨울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 두바이를 경유해 바레인에 도착했다. 꽤나 더울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온은 영상 11도 남짓, 재킷을 입지 않으면 꽤 쌀쌀한 날씨였다. 바레인은 조그만 섬나라로 도시국가 수준이다. 우리의 제주도보다 작은 크기였다. 사우디아라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카타르와도 인접해 있다. 그런데 오른편 바다를 건너면 바로 이란이다. 한창 미국과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터라 비행기는 이란영공을 지나지 않고 살짝 우회했다. 물가는 두바이와 비슷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새로운 파니갈레 V4 S를 구경했다. 더 넓어진 프론트 페어링과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던 윙렛. 전체적인 크기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기술의 발전은 체감할 수 있었다. 불과 10년 전의 슈퍼바이크들은 이런 크기가 아니었다. 그때의 미들급보다도 작은 크기. 3세대 전 두카티의 슈퍼바이크인 1098이나 1198과 비교해보면 길이도 확실히 짧아지고 훨씬 컴팩트해졌다. 엔진 크기는 더 커졌음에도 말이다.
곧 낯설지 않은 모습이 될 것이다
이탈리안 디자인
두카티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일까. 레이싱 DNA, 확실히 기술력, 아이덴티티 등 다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두카티 바이크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최대 출력이나 무게당 마력비 등등 모두를 따져보아도 두카티의 슈퍼바이크가 우위를 가진 점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 처음 들어오는 것은 그런 세세한 기술이나 스펙이 아니다. 두카티의 디자인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매력이 있다. 두카티만이 가진 뛰어난 감성은 엔진뿐만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나온다, 이 모든 매력의 원천은 바로 디자인이다. 슈퍼바이크는 서킷에서 그 본질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타고 싶게 만드는 것, 가지고 싶게 만드는 것은 모두 디자인이다.
우리가 처음 바이크라는 것에 빠지게 된 때를 생각해 보자, 제로백이 3초대 인 것을 찾다보니 바이크를 좋아하게 되었나? 200마력이 넘는 바이크가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나? 지나가는 혹은 어딘가에 서 있는, 누군가가 타고 있는 바이크를 보았을 때, 그 모습이 좋아보여서 바이크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 일 것이다. 나는 생활형 바이크를 먼저 접했고 그 실용성이 좋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눈에 들어오는 바이크는 내 눈에 멋진, 내 눈에 예쁜 바이크들이었다.
테스트 기간 내내 비가 왔다
내가 슈퍼바이크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던 때엔 누구나 가장 멋진 바이크로 꼽는 바이크가 있었다. 바로 두카티 916이었다. 당시 그 어떤 브랜드의 바이크와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멋진 디자인이었다.
그때의 감흥이 되살아났다. 기존 V4에서 느끼지 못했던 완성도를 새로운 V4에서 느꼈다. 두카티가 강조하는 첨단 전자장비나 마력, 다운포스 같은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트랙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고 그것은 100% 디자인의 힘이었다. 이 멋진 바이크를 마음껏 탈 수 있는 곳은 오직 트랙이었기 때문이다.
바, 레인
문제가 하나 생겼다. 프레스 테스트 당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중동 지역은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곳이 아닌가? 이곳이 섬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지형이 메마르고 황폐한 사막 지형이었다. 그런데 비가? 아침 일찍 열린 컨퍼런스에서 새로운 파니갈레 V4에 대한 특장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공력 특성을 고려해 더 높은 퍼포먼스를 보이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에서 테스트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고속에서의 다운포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 좋았을 호텔 테라스 뷰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수도 있다
다운포스를 느끼기 충분한 직선 주로
두카티의 슈퍼바이크는 오랜 시간 L트윈 엔진을 고집해왔다. 데스모드로믹 밸브 개폐 시스템을 가진 L트윈 엔진과 트렐리스 프레임으로 출력이 아닌 운동성능으로 4기통 경쟁자들과 겨뤄왔다. 그 정체성을 지키면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이룬 해법은 V4엔진이었다.
V4엔진을 두카티가 처음 슈퍼바이크에 적용한 것은 아니다. 운동성능 향상이라는 목적과 강력한 토크가 필요한 가속력을 위해 선택된 이 엔진 형식을 두카티는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고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했다. 과거 V4 엔진들은 슈퍼바이크 레이스에서 그 강인함을 증명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바레인이기 때문에 레인(비)가 온다며 프로덕트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줄리오 파브리가 말했다. 주행 시간이 되자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고 이미 테스트 바이크들에는 레인 타이어가 장착되었다. 순정으로 장착되는 타이어는 피렐리 디아블로 슈퍼코르사 SP.
레인타이어는 정말 믿음직한 존재이기는 했지만 트랙 주행 자체가 조금 염려스러웠다. 워낙 오랜만의 트랙 주행이고 게다가 상대가 200마력이 넘는 괴물이다. 그러나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재밌게 타면 된다.
두카티의 슬로건치고는 안 감성적이라 의외였다
두카티 코르세의 미캐닉들이 워머를 사용해 타이어를 예열시키고 있다. 비는 소나기처럼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조금 잦아들 무렵 테스트를 시작했다. 웜업랩에서는 코스를 익히는 데 중점을 두었다. 고속 구간과 헤어핀과 최대 감속 지점 등을 익혔다.
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번의 랩을 거치는 동안 드넓은 5.4km의 코스를 대충은 알것 같았다. 각 코스별 속도와 엔진 회전수, 기어 단수를 생각해보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체계적인 주행을 했단 말인가, 대충 느낌대로 재밌게 달리면 그만인 것을. 내가 이곳에서 베스트랩을 찍으려는 것도 아니고, 파니갈레의 한계를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두카티의 타이어 파트너는 항상 피렐리
두카티의 라이더빌리티
두카티가 강조했던 것이 하나 있다. 일반 라이더와 두카티 오피셜 테스트 라이더의 랩타임 변화에 대한 것이다. 기존 V4에 비해 새로운 V4를 두카티의 오피셜 테스트 라이더이자 모토GP 와일드 카드 선수인 미켈 피로가 달렸을 때 0.4초가 단축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일반 라이더가 탔을 때 1.3초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고 했다. 바로 이점이다. 여러 가지 변화들이 한계치가 높은 라이더보다는 나처럼 트랙 경험이 적고 상대적으로 테크닉이 미완된 사람일 때 더 큰 변화를 준다는 것이다. 그 말에 대한 검증을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세션때 코스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빨리 달려보려고 생각을 했다. 이 바이크의 특성이나 그런 것은 차치하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내가 달릴 수 있는 만큼만 달려보자고 생각했다. 다소 무모할 수도 있지만 왠지 신형 V4는 잘 받아줄 것 같았다.
세세한 변화가 더 큰 차이점을 나타난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 준다
2013년쯤 하이퍼모타드 신형이 나왔을 때 스페인의 아스카리 서킷에서 탔던 이후 7년만의 서킷 시승이다. 테크니컬한 서킷에서 린 아웃으로만 돌며 운동성능 위주로 확인을 했었다. 서킷에서 두카티 슈퍼바이크를 탄 것은 1098이후 처음이다. 과거의 두카티 바이크를 생각한다면 이 프레스 테스트에 오질 말았어야 한다. 200마력이 넘는 두카티 슈퍼바이크를 비오는 서킷에서 시승을 한다는 것이 내 취향도 아닐 뿐더러 전혀 즐겁지 않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파니갈레라는 이름이 추가되면서 두카티의 슈퍼바이크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특히 899가 나오면서 그리고 얼마 전에 나온 V2의 성격을 확인해 봐도 두카티가 더 이상 괴팍한 세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족한 출력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했던 것이 바로 운동 성능이었다. 직선에서는 4기통들에게 상대가 안 되지만 2기통 특유의 좁은 차체 폭과 가벼운 무게로 코너에서 격차를 벌리는 방법을 택했다. 때문에 전통적인 4기통 바이크의 코너링 방법과는 다른, 더 늦은 브레이킹과 프론트 위주의 코너링 테크닉, 거기에 기울어진 상태에서의 풀 스로틀이라는 다소 과격한 방법으로 경쟁자들과 대적해왔다.
때문에 두카티의 바이크가 타기 어렵다는 것이 말이 생겼고 2기통 특유의 토크감에서 오는 진동과 토크밴드는 가벼운 차체와 만나 라이더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런 특성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안다면 짜릿한 라이딩 필링과 면도칼 같은 코너링이 가능해진다. 반대로 그것들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견적과 지출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두카티의 슈퍼바이크에 파니갈레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성격이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의 그 과격함은 다양한 전자장비들로 감쌀 수 있었고 아주 단순한 조작으로도 두카티의 강력한 엔진과 날뛰는 차체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V4 엔진을 달았을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친숙한 바이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두카티는 새로운 V4의 메인 카피로 더 사이언스 오브 스피드를 잡았다.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계산되고 의도된, 결과를 예측하고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하게 되던 온로드 장비
2020년의 슈퍼바이크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발전하고 있는 전자장비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설렁 그것이 비가 내려 물길이 생겨난 서킷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파니갈레 V4를 컨트롤 했다기보다는 V4가 알아서 달려준 것 같은 느낌이다. 두카티가 이렇게 타기 쉬운 바이크였나? 서킷이 이렇게 재밌는 곳이었나? 트랙션 유지에 대한 부담 없이 스포츠 주행을 했던 것이다. 그것도 비가 내리는 곳에서 말이다.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비가 왔으니까 그나마 100%를 다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V4는 충분히 빨랐고 편안했다. 서킷 주행은 한 타임만 달려도 온 몸의 근육을 다 사용하고 땀으로 범벅이 되곤 했는데 이번에는 체커기를 받고 패독으로 들어온 다음에도 여유가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고 들어왔음에도 말이다.
데뷔 후 2년을 보낸 두카티 파니갈레 V4. 1103cc의 V4 엔진은 기존 두카티의 L트윈 엔진을 대체해 플래그십 모델로 자리했다. 기통이 늘어난 만큼 각 피스톤당 부담은 줄어들어 더 고회전이 가능해졌고 4개의 기통에서 나오는 토크는 더 다루기 쉬워졌다. 파니갈레 V4는 노멀과 S버전 레이스사양이라고 할 수 있는 스페치알레, 그리고 슈퍼바이크 호멀러게이션에 맞춰 배기량을 낮춘 V4 R로 출시되었다. 특히 V4 R에는 모토GP 머신인 데스모세디치에 사용되어 주목을 받았던 날개가 달려있다. 고속에서 다운포스를 활용해 차체를 안정시키고 그립력을 높여주는 이 파츠는 출력 경쟁, 그 이상의 기술력이 들어가 있다.
2020년 새로운 V4가 출시를 예정했고, 노멀 사양에도 이 날개가 추가될 것으로 알려졌다. 2년 만에 이 날개의 성능을 확실히 느꼈고 개선에 들어간 것이다. 더불어 프레임과 디멘젼, 페어링 등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이 개선의 방향은 명확했다. 다루기 쉬움이라는 것이다.
시승이 끝나자 밤이 되었고 비가 완전히 그쳤다
파니갈레는 어디를 봐도 아름답다
잠재된 본능을 깨우다
모든 테스트 세션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혀갔다. 바레인은 일 년에 4~2번 정도 비가 내리는 곳이라고 했다. 그 중 한번이 우리가 새로운 바이크를 테스트하는 바레인 서킷에 내렸다. 배수로가 없어서 사방에 물이 고이고 여러 물길이 생겼다. 만약 비가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더 재밌게 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위험한 순간을 여러 번 맞이했겠지.
두카티가 말했던 것들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왜 비기너들이 더 랩타임이 줄어들 수 있었는지 말이다. 어쩌면 두카티의 비밀 리턴라이더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를 이곳에 부른 것 또한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앞뒤 17인치 바이크를 어색해하고 세퍼레이트 핸들이 달린 바이크를 배척하는, 허리를 숙여야 하는 바이크를 타지 않으려하는 이 오래되고 고집 쎈 사람조차도 스포츠 주행의 맛을 알게 해주는 바이크. 나에게도 어떻게 하면 코너를 더 빨리 안정적으로 돌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절과, 어금니 꽉 깨물고 다리가 아플 정도로 니그립을 하며 최고속도를 유지하려고 애쓰던 때가 있었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것은 본능 같은 것이다. 다른 분야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에 완전히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핏줄에 남아있던 본능. 다시 스포츠 바이크가 타고 싶어졌다. 제대로 말이다.
2020 더 모토 F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