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X] 마냥 행복했지만 무언가 불안정했던 학창시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서전이라는 꿈이 있는데,

chapter 1 나의 성장과정을 쓰려는데 이렇게 글이 써지지 않는다니 당황스럽습니다..

역행자를 감명깊게 읽고 정리까지 해봤는데, 이렇게 실천이 안되는건 아마 자청이 말하는 문해력이 없는 약간(자기보호) 지능이 낮은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글은 블로그에 비공개로 작성했었는데, 하긴 누가 본다한들 저만 본다한들

크게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션10일을 모두 완주한다면 스스로 매우 칭찬해 주는걸로 해야겠습니다. 이틀도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드는데 10일 이라니요. 내자신 칭찬하기:)

마냥 행복했지만 무언가 불안정했던 학창시절

초등학생의 나

뚜렷한 기억은 아니지만 리더쉽이라고 해야할지, 항상 친구들 앞에서서 진두지휘를 즐겼다.

유치원 시절 사진을 보면 항상 아이들을 한줄로 앉혀놓고 난 앞에서 연설을 한다.

귀여운 히틀러라고 해야할까, 뭔가를 소리높여 가스라이팅하고 있다.

엄마는 선생님 자질인가 오해했었지만, 3학년때 반장이 되서 숙제 안해온 아이들을

운동장 뜀박질을 시켰다. 그 중 햇빛알러지 있는 친구의 어머니가 집으로 전화 왔었는데,

엄마는 날 혼내지 않고 남한테 고통을 주는건 안된다는 식의 훈계만 주셨다.

맙소사 지금 생각해도 정말 엽기다. 근데 또 글짓기는 잘해서 전국에서 상도 탔었다네?

근데 갑작스런 두 번의 전학으로 불안정하고 자존감이 많이 하락했었다.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어른스럽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던거 같다.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아닌척 하기 시작했던거 같다.

친구가 싱가폴로 전학을 가면 나때문인가 생각했고,

내가 전학을 가면 아 내가 있을곳이 아닌데 스스로를 불청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k장녀이자 부모님의 이혼와 재결합때문이었다.

갑자기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공효진이 생각나는데 나도 그런 어렴풋한 꿈같은

트라우마 같은 장면도 있었다. 근데 사람이 그런거 하나쯤은 모두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자기합리화 굿

하지만 시간 흘러흘러 헤어지고 만나고 적응하고 하다보니 졸업.

중학생의 나

입학직전에 전학을 또 오면서

원래 있던 도시에서 배치고사(지방 비평준화)를 열심히 준비했는데

수포로 돌아가면서 낙심했다. 하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잘 어울리고 학원다니면서

공부도 곧 잘했다. 항상 20%안에는 들었다. 하지만 그리 학교의 질이 좋은 곳은 아니었고,

친구들간에 남자친구 문제로 싸움이 나기도하고 살짝 가깝고도 먼 친구가

술을 먹고 의문사하면서 중학생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쓰고보니 더글로리 같네?)

이래서 학교가 정말 중요한 거같다. 물론 동문중에 과학고 간 친구들도 있지만?

물론 한없이 따뜻한 친구들도 있었고, 묵묵히 검도를 했던 친구도 있고,

과학시간에 닭해부를 하면 꼭 점심에 닭칼국수가 나왔던 기억이 있다.

아 고모의 아들과 동갑인데 같은 학교였다. 여러모로 재미있었다.

일진이 약간 지능이 부족한 친구들을 계단에서 괴롭히고 있었는데,

물론 요즘 뉴스에 나오는 그런 자극적 폭력적 괴롭힘은 아니었다.

내가 갑자기 일진한테 " 넌 그렇게 사는게 재미있니?"라고 정색을 했다.

나도 뭔가 기분이 안좋은 날이었나보다. 다행인지 같은 학교친척이 있어서 인지 일진은

별말안했던거 같다.

2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참 따뜻했었는데.

아 그리고 3학년 우리반에 공부잘하는 과학고 간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부반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담임이 그 아이 공부를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친구는 외부에 방해받는 캐릭터가 전혀 아니였는데도.

와 정말 20년전 한마디가 이렇게도 사람 기억에 오래 남는구나.

나도 앞으로 말 조심하고 다녀야겠다. 구업이 가장 큰 죄라고 했다.

고등학생의 나

지방이라 비평준화였고, 인문계진학했다.

큰 사건없이 방송반을 하면서 적당히 놀고, 자잘하게 공부하면서 지냈다.

우리집은 책을 많이 읽고 공부압박이 없는 분위기였는데, 내가 좀더 공부에 집중했다면

엄마가 좀더 푸시를 살짝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후회는 사치, 아마 돌아가도 똑같을 것 같은 귀여운 내 자신!

고딩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축제에서 단체로 에어로빅을 하던 날, 단체로 모두가 춤에 미쳤던

공부로는 자정을 못넘기는데 새벽까지 운동장에서 에어로빅 연습했던 날....!

비오는 날... 나만 못본다면서 불평했던 바바리맨을 혼자 마주치고 덜덜 떨었던 날...!

방송반 아나운서 면접보던날, 주어진 대본을 부스에 들어가서 읽어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무서워한다고 합니다." 했더니

부스밖에 있던 방송반 선배들이 단체로 이열~ 했던 날....!

여름방학 독서실 간다고 하고 친구와 아웃백에서 반나절 있다가 독서실로 돌아왔는데

내 자리에 엄마가 앉아서 책읽고 계셔서 뒷걸음질 쳤던 날....!!

친구들 넷이서 친구의 자취방에서 감자탕을 시켜먹었는데, 배달아저씨가 음식주고

나가지 않고 같이 먹자고 해서 소리지르면서 나가라고 덜덜 떨었던 날....!!

대학생의 나

엄마와 고3담임의 합작으로 자연스럽게 간호학과 입학했다.

사서가 꿈이었는데 뭔가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k장녀인가.

어쩌면 가장 힘든 생활이었다. 알바는 하지 않았지만 뭔가 불안정하고

내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안 좋은 추억들도 있고?

힘든 시절이라 책을 많이 읽었던것 같다.

방학때 자격증도 열심히 따고 연세대 학생인냥 방학마다 강의들으러 다녔다.

정체성 형성이었나?

직장인의 나

여지없이 졸업장 나오기도 전에, 국가고시 결과 나오기도 전에 취직했다.

어찌나 기특한지. 23살은 되도 않는 의국 기숙사 8인실에 짐을 풀었다.

어머 샤워실에 칸막이도 없더랬다. 조용히하라고 아동협회 직원들한테 혼나기도 했었다.

퇴근하면 친구들이 자고있고, 출근하려고 일어나면 아무도 없더랬다.

하지만 다같이 치킨을 시켜먹고, 밤근무 끝나고 조조영화를 보고, 병원 이야기를

목청껏 할때면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져버렸다.

어느날 내옆에서 자던 친구가 배가 너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화장실을 가라고 했는데 너무 울어서 업고 영화처럼 다급하고 신속하게 응급실에 갔는데

응급실 수선생님이 "넌 기숙사로 가"하시니 바로 "넵"하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13년간 쉼없이 일하며 간호사로서 열심히 살았다.

혼자도 살아보고 같이 살아보고 오프날엔 낯선 도시에서 혼자 길을 잃기도 했다.

일본, 필리핀, 뉴질랜드, 뉴욕, 파리, 홍콩 등등 코로나 전에는 쉼없이 여행을 다녔다.

한국도 좋지만 외국여행이 주는 그 느낌이 그렇게 좋더랬다.

20대에는 정말 여행을 많이 가야한다. 30대에 아무리 가도 예전 느낌이 아니다.

요즘의 나

다행이도 요즘에 저는 지금까지의 인생중에 가장 행복합니다.

계약만료로 요즘 쉬고 있습니다.

홀로 홍콩여행, 가족과 유럽여행도 다녀왔는데,

자유여행으로 가이드가 되어 다녀온 제 자신을 매우 칭찬하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스트레칭하고 멍때리다가 밥먹고 도서관으로 갑니다.

읽고싶은 책도 읽고, 강의도 듣고, 그러다 남자친구가 추천해준 역행자를 읽고,

아주 감명을 받아 저도 바로 구매하였고, 지금 스타벅스에서 이 미션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듣고 있는 playlist 때문인지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취직, 결혼, 신혼집 마련이라는 큰 과제가 있는데 이렇게 평안해도 될까 싶지만

박연진보다는 행복하다는 확신때문인지 오늘따라 아주 기분이 좋네요.

다른분들에 비하면 미미한 필력이지만 누군가를 위한게 아닌 내 자신을 위함이라 인가 봅니다.

특별할 것 없는 성장과정이라 생각하고 자소서 쓸때마다 남이 써놓은걸 제출했는데,

저 되게 재미있게 성장했구나 기특하다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아주 맛있는 맥주를 마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