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고와 게임이라는 세계

| 포켓몬고와 게임이라는 세계

1. 게임을 하는 이유

2. 엄마가 아이보다 잘하는 게임

1. 게임을 하는 이유

임을 좋아하거나 빠지는데는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거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두 달 이상 지속한 게임이 없었다. 계속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잠시잠깐 시간보내기나 아무생각 없이 멍하고 싶어서 가끔 게임을 하는 정도였다.

포켓몬고 게임을 하게된 건 순전히 아이 때문이었다. 집돌이인 아이를 외출시키고 산책시키기 위해서 (날짜도 잊지못할) 5월 5일에 게임을 시작했다. 벌써 1년6개월이 지났다.

가족구성원 세명이 시작한 게임인데, 지금은 나의 레벨이 가장 높다. 나는 왜 이 게임을 이렇게까지 계속 하고 있는가? 시간을 들여가며 지속하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는 바로 아이의 소원 '포켓스탑을 집 근처에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아이는 배틀을 해서 이기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았다. 아닌말로 게임 속에서는 어른이고 형이고 없이 맞짱을 뜰 수 있으니, 아이로서는 당연히 쾌감이 있을거라고 본다.

나는 동물을 보살피는 마음을 게임에 투영하고 있는 것 같다. 길에 돌아다니는 포켓몬이 있으면 일단 데리고 들어오는 거다. 그리고 얘네들을 충실히 진화시켜준다. 성장하는 걸 보고싶은 마음이다.

‘빈티나’라는 이름의 포켓몬을 파트너로 데리고 다녔다. 이 빈티나를 보면서 내가 이 게임을 왜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빈티나는 ‘태어날 때 부터 지느러미가 너덜너덜 보기 흉해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름도 그렇고 캐릭터 설정이 너무나 가혹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진화라는 걸 하게되면 ‘밀로틱’이 된다.

밀로틱은 ‘가장 아름다운 포켓몬으로 불리고 있고, 분노나 증오의 마음을 치유하여 분쟁을 진정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마치 어릴적 읽은 동화속 이야기 같았다.

그리고 나는 빈티나가 가장 아름다운 포켓몬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하니, 어떻게든 진화를 시켜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임을 좋아하거나 빠지는데는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빈티나를 보면서, 빈티나를 보는 나를 보면서 알게된 것이 있다.

‘지금’ 나에게 게임은 ‘내일은 괜찮을 거라는 위로’이다.

2. 엄마가 아이보다 잘하는 게임

이는 그 사이 여덟살이 되었고, 학교친구들 중에는 포켓몬고 게임을 하는 아이가 여러명 있었다. 아이들은 우연히 내가 포켓몬고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반응은 꽤 뜨거웠다.

"너희 엄마가 게임을 한다고?"

"너희 엄마가 너랑 같이 게임을 같이 한다고?"

"너희 엄마가 레벨이 이라고?"

엄마가 게임을 하고, 기분좋게 시켜주고, 같이 하고, 그 와중에 레벨이 높다는 사실은 녀석들을 흥분하게 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떠들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은 상황이 애매해졌다. 그래서 나는 (부모들에게 뭐라도 도움을 드려야겠기에)사실을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게임을 무조건 시켜주지 않아. 나와 함께 있을 때만 할 수 있어. 그리고 이 정도 레벨 올리려면 많이 걸어야 해. 우리는 밖에 나가면 무조건 1만4천보는 걷거든."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자기도 할 수 있다'며 방방 뛰고, 아닌 아이들은 '우리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으면 어느 정도야?'라며 기운이 빠져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의 아이는 옆에서 어깨가 으쓱하고 표정에는 자신감의 미소가 번졌다. 우리 둘은 마주보며 눈을 찡끗 해보였다.

웃는 아이의 미소 뒤로 몇 달 전 읽은 박서련 작가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아이가 게임을 못한다는 이유로 친구 관계에 문제가 생기자 게임과외를 붙이고, 엄마가 직접 게임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당신은 분명히 ‘엄마’라고 쳤는데 화면에는 자꾸 그 단어가 지워져서 올라간다.

이거 왜 이러지?

당신의 말에 아이는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대꾸한다.

채팅창에 욕 치면 블라인드 처리되잖아.

그건 엄마도 아는데, 엄마가 욕이니?

욕으로 쓰이니까 블라인드 되지.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p43

너무 충격받은 문장이라 잊을 수가 없다. 이 글을 싱글일 때 읽었다면 달랐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미 엄마이고 소설 속 상황과 소설 속 엄마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는 것이다.

나와 아이 사이에 존재하고 관계하는 '그것'이, 아이와 친구 사이에 들어가면 내가 알고있는 '그것'의 형태가 아닐 수 있다는 것.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는데, 주변의 공기와 풍경이 낯설어진다면 어떨까. 나는 변함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여기에 있는데, 아이와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눈이 달라진다면. 그때가 되면 나와 아이에게 게임이란 것이 지금과는 다른 의미일 것 같아 미리 서운하고 두렵다.

오늘의 나는 그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좋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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