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폰타인 마신 임무 5막을 성경과 비교해 보기
폰타인 마신 임무를 다 보고 나서 마지막 5막이 기독교를 모티브로 했으며 주로 포칼로스와 푸리나가 보여준 것들이 예수님의 행적을 따왔다는 의견이 많다고 합니다. 둘의 대화를 보면 기독교인 입장에서 봤을 때 꽤 그럴듯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성경을 기준으로 한 관점에서는 다른 것들도 많습니다. 물론 원신은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이며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해도 판타지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으며 기독교만이 아니라 신화를 모티브로 한 것도 들어가 있기에 원신 내 이야기를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는 것은 상당히 어렵지만 폰타인에서는 기독교적인 것이 티바트에 있는 다른 나라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기에 한번 비교해 보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폰타인 마신 임무 5막가 세계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예수님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들도 있어 미미하지만 전도의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래 글을 읽기 전에 폰타인 마신 임무를 필수로 보시기 바랍니다.
원죄에 대하여
창세기: 인류의 시초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죄를 지었으며 이것이 원죄다(창 2:17, 3:6). 그러함으로 아담과 하와의 죄가 그 자손들에게 유전되어 모든 사람은 죄가 있다.
죽음은 저절로 온 게 아니라 죄의 결과로 죽음이 왔으므로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폰타인: 폰타인 사람들은 본래 물의 정령이나 전대 물의 신 에게리아가 그들을 인간으로 의태시켰는데 이는 [천리]를 거스르는 것이기에 천리 입장에서는 [원죄]다. 그러므로 [천리]는 폰타인에 [예언]이라는 저주를 내리는데 그것은 폰타인 사람들이 용해되고 이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기독교: 성자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자 100% 인간. - 451년 칼케돈 회의
물의 신: 마신 포칼로스가 자신의 신격을 분리해 자신과는 별도인 인격의 존재로 창조한 것이 푸리나
우선 포칼로스의 목적은 바로 자신이 처형당함으로서 폰타인 사람을 구하는 것과 느비예트에게 모든 권한을 돌려준다는 것으로 이것은 물의 신의 자리를 [지운다]는 것입니다. 즉 폰타인 집정관이 없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포칼로스는 본래 에게리아의 물의 정령의 일원이었고 인간이 되고 싶은 그녀는
푸리나라는 자신과는 별도의 존재이자 그녀의 인격을 만들어내 죠. 일단 에게리아의 행동은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내용과 다릅니다(창 1:27). 또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하시며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는 반면 포칼로스는 푸리나에게 무려 500년 동안 [연극]을 시킵니다. 게다가 푸리나가 인간이 누리는 행복을 얻지 못한 채 [연극]을 해야 하니 그녀의 500년 인생은 말 그대로 불행입니다. 저주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포칼로스가 푸리나를 완벽한 [인간]이라 말한 걸 보면 푸리나가 불로불사를 얻은 것은 [저주]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신 분으로 여러 이적을 행하시고 물 위를 걸으시는(마 14:25) 등 자신의 신성을 보이셨고 눈물을 흘리시고 고통당하시는 모습에서 자신의 인성을 드러내셨습니다. 포칼로스와 푸리나라는 두 인격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과 달리 예수님은 [한 분]으로 오셨고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육체까지 승천하셨지만
물의 신은 포칼로스와 푸리나라는 두 인격이 별개로 존재하여 포칼로스는 처형됐고 푸리나는 [저주]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갑니다.
푸리나가 분명 폰타인 백성을 구하기 위해 [연극]을 한다는 사명을 하고 있지만 내면은 이 일을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신다는 것(마 4:14, 8:17, 21:4, 26:56; 막 요 12:38과 비슷하며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모습(요 1:29)과 조금이지만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푸리나가 [연극]을 하는 동안 포칼로스는 자신의 처형을 준비하기 위해 판결 에너지를 모았었고 때가 됐을 때 진실을 밝혔는데 이는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강림하신 목적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밝히신 것(마 20:28; 막 8:31, 10:45)과 차이를 보입니다. 또 처형 장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무리가 본 것과 달리 폰타인의 핵심 인물과 주요 인물만 봤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포칼로스가 말한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인물들의 푸리나를 보는 관점이 180도 달라지게 되었는데 이는 백부장의 고백(마 27:54; 막 15:39; 눅 23:47)과도 같습니다.
마신 임무 4장에서 [아를레키노]와 첫 대면했을 때의 푸리나의 모습은 영락없는 연약한 인간으로 보이고 5장에서 그녀의 진짜 모습이 공개됐죠. 이 역시 예수님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도 산상수훈 또는 산상 설교(마 5-7)로 그리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인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마 22:15~22; 막 12:13~17; 눅 20:20~26; 요 8:3~9)을 말씀만으로도 이기셨음으로 자신의 신적 권위를 드러내셨습니다.
푸리나의 행동은 예수님의 행동과 조금 유사한 부분이 있다.
이것은 마신 임무 5장에 한해서입니다. 푸리나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폰타인의 예언에 대해서 조사한 것을 밝히지 않는다는 항의를 받자 대답도 없이 흥이 깨졌다면서 푸아송 마을에 갔고 그곳에서 괴로움을 느낍니다. 이는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믿고] 그를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모습을 보시며 여전히 실망을 감추지 못하시고 감람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신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권능이 있으시지만 행하지 않으신 반면 푸리나는 [신]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었으며 예수님은 자신의 [때]를 아셨지만(마 26:18,45; 막 14:35, 14:41, 15:25; 눅 22:14, 23:44; 요 7:8,30, 8:20, 12:23, 13:1, 16:32, 17:1, 18:18 등) 푸리나는 자신이 하는 [연극]이 언제 끝날지 몰랐습니다.
여행자는 푸리나가 푸아송 마을에 갔음을 알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 숨겨진 공간으로 안내한 뒤 푸리나에게서 그녀가 한 일을 듣고는 혼자 짐을 질 필요는 없다고 말하자 푸리나는 "만약 [너]라면"이라면서 뭔가를 말하려는데 갑자기 진동이 울리면서 둘은 오페라 하우스에 있게 되는데 실은 여행자는 푸리나를 법정에 세우고자 그녀를 유인한 것이었으며 그가 맡은 역은 '고발자'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기도하신 후 가룟 유다가 무리를 데리고 예수님을 체포하라고 말한 것에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마 26:46-50; 막 14:42-46; 눅 22:47-48; 요 18:3). 그리고 여행자만 아니라 폰타인의 핵심 인물과 주요 인물들도 그녀를 법정에 세우려 했고 백성들도 이 자리에 참여했는데 예수님이 체포되신 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무리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한마음으로 소리치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마 27:1-25; 막 15:1-15; 눅 23: 1-25; 요 18:13, 28-40).
또한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유사해 보이고 고발 내용도 '자칭 왕 그리스도'와 '신이 아니다'라는 것에서 보면 역시 그렇죠. 다른 점 하나를 쓰면 예수님은 권능을 행하지 않으셨지만 푸리나는 신이 아니기에 신적인 능력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포칼로스는 예수님처럼 인간을 사랑하고 아낀 것으로 보인다.
포칼로스가 물의 정령이었지만 인간으로 의태했고 물의 정령들도 원시 모태 바다의 힘으로 폰타인 사람으로 의태시킨 다음 자신은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한 걸 보면 위의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듯이. 하지만 천리를 속이기 위해 천리가 내린 [예언]을 막기 위한 것과는 다르죠.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강림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고 스스로 죄에서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고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강림하셨고 생애 동안 하나님의 뜻에 따르셨습니다.
느비예트의 선언
포칼로스에게 모든 힘을 받은(정확히는 힘을 돌려받은 것) 느비예트가 폰타인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장면에서도 예수님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많이 잘 알려졌기에 불신자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느비예트가 무죄를 선언함으로써 폰타인 사람들이 원시 모태 바다의 물에 닿으면 용해되는 저주는 없어진 것은 예수님을 참된 믿음으로 믿는 자에게는 죄와 사망이라는 저주에서 벗어나 영생(요 3:16)이라는 것을 얻는 것의 모티브라 봅니다. 느비예트 전설 임무에서 그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이 아니라 물의 용왕인 것을 보면 이 역시 예수님이 인간으로 태어나셨으나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마 1:18-20)을 모티브로 한 걸로 보입니다.
사실 느비예트는 포칼로스의 말에 따라 폰타인에서 최고 심판관이 되었기에 이를 보면 느비예트 역시 푸리나와 함께 포칼로스의 계획 하에 움직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스스로 오신 게 아니라 성부 하나님이 보내신 것(요 8:42)에서 따온 것 같고요.
기독교: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으며 그분의 뜻하심에 의해 이루어진다.
폰타인: 신의 [예언]은 피할 수 없어도 신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예언의 일부를 피해 갔다.
그러나 [예언]이 이루어졌어도 [예언]에 포함된 일부는 피했다는 걸 보면 [예언]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즉 하나님의 예언은 한 치의 틀림이 없는 것과 다릅니다(수 21:45).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시며 뜻을 바꾸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삼상 15:29).
마녀 N이 [예언]이란 신의 눈으로 본 미래를 뜻하다면서 신의 사각지대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지전능하신 절대신(신 10:17)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또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창 18:14; 눅 1:37)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아시고요.
여담이지만 [천리]에 대해서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는 신이 아닌 강림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천리]는 티바트를 다스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게 확실해 보입니다. 그래서 포칼로스가 느비예트에게 힘을 돌려주는 것은 티바트의 체제를 원래대로 하는 것, 즉 [질서 회복]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폰타인의 주제가 '반전'인 걸 보면 포칼로스가 [반전]을 시작하고 떠났다는 걸로도 풀이할 수 있겠네요. 모나가 이 [예언]이 폰타인뿐만 아니라 티바트 전체에 관한 거라고 말한 걸 보면 포칼로스도 이 일을 분명 알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