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X] 나는 주말엄마다.

? 2일차 [2X] 미션 안내

(3월 11일 토요일 진행, 황금지식 '챌린지 미션 제출' 게시판)

?독서 미션: [역행자] 30p~64p(챕터 1)

?글쓰기 미션: (총 1 가지)

1.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기 자신의 성장 과정을 스토리 텔링 형식으로 정리해 보자.

? TIP: '인생에서 겪은 크고 작은 이슈들, 그 이슈를 통해 배우거나 느낀 점들, 꿈과 목표의 변화 과정 등'을 참고해 보자.

내 인생은 결혼 전과 결혼 후로 나누어진다.

: 그렇게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웃기시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집안의 귀한 막내딸로 자랐다.

20대 중반에 결혼해 30대 초반에 이혼을 했다.

결혼생활은 나에게 지옥이었다. TV 막장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다.

폭언, 폭행과 외도는 나를 병들게 했다. 어느 순간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초롱초롱하던 어린 딸아이를 두고 빈 몸으로 도망치듯 나오게 되었다.

일도 못하게 하고 사람도 못 만나게 했던 터라 만나서 하소연할 사람도 위로받을 사람도 없었다.

그보다 더 힘든 건 이혼하고 온 딸을 한심하게 보시는 부모님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는 무언가를 결정할 힘도 미래를 기대할 여유조차 없었다.

죽을 것 같은 나날들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알콜올 중독자가 되다.

무일푼으로 몸 하나뿐이었던 나는 무조건 할 일을 찾아야 했다.

내가 선택한 건 아이들 책을 판매하고 플랜을 짜주는 북큐레이터였다.

생전 처음 해보는 영업과 길거리에서 엄마들을 상대로 상담을 해주는 내가 너무 비참했고 신기했다.

집에만 있던 경력단절여성이라고 치부받던 나는 살아야했다.

그당시 이혼 전 집밖으로 나와 가장 쉽게 할 수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내 아이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책을 가까이한다는 자긍심으로 내 쪽팔림 따위는 상관없었다. 길거리에서 보면 가장 싫어했던 일을 내가 하고 있었다.(직업을 비하하는 건 아니다)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전국 북큐레이터 중 1등을 차지했다.

당시 그 사건은 북 큐레이터 사이에서도 대단한 일이었고, 회사 사옥투어를 시작으로 각종 세미나와 상을 받으러 다니며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1등이라는 자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결혼하기 전의 내가 다시 튀어나온 것 같았다. 평범한 집안의 귀한 막내딸.. 그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다.

내 아이 또래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 때문에 매일이 지옥이었다.

아이가 생각나고 보고 싶었고 매일 술을 마셨다.

그냥 무시하고 일을 하자 다짐했지만 더 독해지지 못하는 나 자신을 탓하고 또 탓했다.

당연히 일이 하기 싫어졌고 수입을 줄어들었다.

반 강제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주말엄마는 정신이 아프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심하게 왔다.

이혼하고 참 편하게 사네.. 대학도 다니고

감사하게도 결혼하기 전 직장 대표님께서 나의 상황을 들으시곤 스카우트를 제안하셨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사람 마음을 잘 움직여서 출동하기만 하면 계약하는 모습을 보고 기 센 강사들을 잘 관리할 거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위탁교육회사에 입사한 나는 관리자로 일하며 점점 성장했다.

난다 긴다 잘난 강사들 사이에서 고졸인 나는 매일 주늑들어 있었다.

입사와 동시에 4년제 대학에 입학해서 아무도 모르게 공부했다.

회사일로 아이를 가끔 못볼때면 전남편은 너가 무슨 대학이냐며 욕을 해댔다.

입사 초반에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고 한글만 조금 하던 실력이었다.

나의 학력이 들통날까 하루하루가 긴장이었고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참 못났던 시절이었다.

회사일에 공부에 몸까지 아파 내 정신은 피폐해지고 있었다. 평일에는 일과 공부를 주말엔 아이와 지냈다.

벅찼지만 나를 괴롭히며 채찍질했다. 이제는 내손을 거치지 않으면 완벽한 제안서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처음 나를 보고 대놓고 무시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사라지거나 존중해 주고 걱정해 주는 사이가 되었다.

회사도 급 성장했다.

사람들은 병원을 싫어하지만..

나는 가끔 병원에 입원하고 싶어..

쉬고 싶거든..

회사가 성장하고 업무능력은 나날이 성장했다. 어느 날부터 마음과 몸이 계속 아팠다.

나 한 몸 살자고 아이를 놓고 왔다는 자책감과 이혼의 후유증, 쉼 없는 일상이 버거웠다.

결국 내 발로 정신건강의학과에 갔고, 대인기피, 우울증,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몇 번의 자살시도와 두 번의 정신병동입원을 거치며 예전의 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아프고 아프고... 또 아팠다.

(참 할 말이 많지만 나중에 책을 내게 되면 병동에서의 일을 적어보고 싶다)

정신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을 놓지 않았다. 몰아치듯 일을 해냈다.

자존심은 쎄서 남에게 피해주기 싫고 잘해 보이고 싶었다.

나를 벌주기라도 하듯 무섭도록 나를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예전의 나를 찾는다는 것이 애초에 잘못된 생각이었다.

000 대학교 PT를 끝나고 나오는 길, 내 모든 장기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먹는데 배출하지 못하게 되었다. 응급실 입원을 밥 먹듯 하다 배가 터지기 직전 입원해서 대장절제술을 받았다. 퇴원하고 일주일도 안되어 복대를 차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 피를 흘리며 배에 거즈를 붙이고 행사진행을 했다. 나를 거두어 준 회사에 대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소변통 달지 않은 게 어디냐며 사람들은 나를 위로했다. 쉬지 않고 나를 아프게 하니 또다시 출혈과 쓰러지길 반복, 두 번째 복부절개를 해서 자궁절제수술을 했다.

아직 30대였던 나이에 나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했지만 우울증은 심해져만 갔다. 세상 불행이 나에게만 오는 것 같았다.

몸이 아프니 마음은 더 지쳐갔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들이 사라졌다.

우울증 약은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욕구와 의지가 없었다. 매일 커튼을 치고 어두운 방에서 죽기만을 기다렸다.

정신병동은 무서운 곳이 아니야!

문득 커가는 아이에게 엄마의 모습을 더 이상 이렇게 기억하게 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정신병동은 면회가 제안되어 있고 주말에 가끔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어린 딸은 엄마가 그냥 아픈 줄만 알았고 왜 엄마랑 핸드폰으로 전화할 수 없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를 만나는 날은 병원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탁구를 쳐볼 수 있고 엄마 병실 침대에서 누워 엄마품에 안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딸은 주말을 기다렸다.

정신병동을 전전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결국 내가 집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건 돈이 첫 번째, 그다음이 딸아이와 키우던 고양이들.. 베이킹이었다. 얄팍한 자존심에 딸아이에게 돈 없는 불쌍한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고 기다려주는 회사에는 회색눈에 퀭하고 약 부작용으로 20킬로 이상 찐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유달리 꼼꼼하고 손재주가 있었다. 아이와 곧잘 빵과 과자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는 갈 용기가 생겼다. 당장 국비지원 제과제빵 학원을 찾아갔고 우수하게 수료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내 의지로 약을 점점 줄여갔고 나의 의식이 점점 돌아오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전국 방방곡곡 유명한 수업들을 들으러 다녔다.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작은 쿠키집을 오픈했다. 그리고 딱 1년, 정말 새로운 경험들은 했고 배웠고 발전했다.

브랜딩마케팅, 세무, 홍보, 판매, 제작까지.. 해본 적 없던 모든 일들은 경험이 적었던 나에게 세상이 너무 크고 어렵게 다가왔다.

나는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그 당시 나는 돈보다 내 정신건강과 나를 실험하기 위해 모험했다고 자위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은 돈을 벌고 싶었던 것이다. 이후, 달걀을 뚫고 나온 병아리처럼 세상을 다시 사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내 옆에 있어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두려웠던 내가 SNS에서 사람들과 느슨한 유대관계를 많이 만들어 가고 여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를 표현하기 시작하게 해 준 창업의 경험은 내 인생에 값진 경험이었다.

주말엄마여도 괜찮아!

지금은 나를 기다려준 회사에 부장이라는 명함으로 일하고 있다. 아직도 약을 끊지 못했지만 여전히 노력 중이다. 나의 뇌를 믿지 않아야 하는데 참 어렵다. 이혼을 하고 8년의 시간 동안 나는 일을 하면서 매주 딸과의 시간을 보냈고 대학을 졸업했다.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고 창업을 했으며 많이 아팠다. 사실 나의 30대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고 어떤 부분은 사라지기도 했다. 세상에서 내가 젤 아팠고 내가 젤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너무 길었다. 라푼젤처럼 나를 구박하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게 행복이라고 믿고 버텼던 시간들을 이제는 지울 것이다. 나는 성장하고 있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딱 8년 걸렸다. 현재 매주 주말 아이와 있는 시간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못난 엄마지만 최고라고 이야기해 주는 멋진 딸이 있어 꼭 해낼 거다. 유치원생이었던 아이가 이제는 나보다 커졌다. 그 시간만큼 나도 아이도 성장했다.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읽기는 좋아하지만 글쓰기는 이제 시작하네요. 글 참 못쓰죠? 하하하

많은 분들과 함께 미션 수행감사합니다.하면서 저도 많이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