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X] 작심1일 개나 줘버려. 해냈다.
?글쓰기 미션: (총 1 가지)
1.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기 자신의 성장 과정을 스토리 텔링 형식으로 정리해 보자.
? TIP: '인생에서 겪은 크고 작은 이슈들, 그 이슈를 통해 배우거나 느낀 점들, 꿈과 목표의 변화 과정 등'을 참고해보자.
나의 성장과정에 있어 '독서, 체력단련, 도전' 3가지를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소심하고, 걱정과 겁이 많던 회피형 울보였다.
얼만큼 소심하고, 타인에게 이야기를 못했는지 알 수 있는지는 아래에 일들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7살 유치원에서 실외 체험활동을 갔을 때, 화장실 이용시간이 있었다.
'내가 화장실 갔다 왔을 때, 다 가버리면 어떻게 하지?" 이 생각이 뇌리에 스치는 순간
화장실에 가지 않고, 소변을 꾹 참았다. 화장실 다음 이동장소는 정말 크고, 다양한 놀이기구가 많은 실외놀이터
소변을 참으면서 놀이기구를 이용하다가 결국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면서 바지에 실수를 하고 만다.
그날 단체 체육복을 입고 갔었는데 그 날의 일을 증명해주듯
마지막 단체사진에선 나 혼자 청바지를 입고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8~9살 때쯤, 하원시간에 화장실가서 소변보고 오겠다 기사님께 말을 못해서
차 주변을 배회하다가 바지에 실수를 한 적이 있다.
11살, 다른 동네로 이사오고, 몇 달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오작동으로 여러번 울렸던 화재경보벨 소리에
집안에서 혼자 안절부절 못하며 너무 겁이 난 나머지 울다가
일 나가있는 부모님에게 여러번 전화를 걸기도 하였다.
초등학생 때,
태권도가 끝나면 항상 딱지통을 들고, 동네를 누비며 여러 친구들과 딱지대결을 하던 남동생과는 달리,
놀이터에서 노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소통이 단절된 채
집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화만 주구장창 보던 아이였다.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딱히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학생의 본분인 공부는 열심히 해야할 것 같은 의무감에
인터넷 인강, 학원, 방과후 수업 등 이것저것 신청은 했다.
그런데 의지와 목표없는 행보는 뛰기도 전에 퇴보됐다.
비용을 지불하고 듣던 중학교 1학년의 첫 방과후 수업(주요과목 통합수업)은
수학선생님이 나랑 안맞다고 10번 중 2~3번 나가고 나가지 않았다.
6년동안 꾸준히 지불했던 인강은 몇 강 듣지 않고, 방치됐으며 쌩돈이 날라갔다.
주변 친구들도 다 다니니까,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이니까
고등학생 가기 전에 선행학습은 필수니까
무작위로 들은 여러 가지 학원 수업과 특강들
내가 뭘 모르고 아는지, 어떤 걸 보충해야하는지, 문제의 원리를 알고 푸는 건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 채 3초 기억 금붕어처럼 제자리만 헤맸며 등급은 점점 떨어졌다.
메타인지가 낮았고, 머릿 속은 브레인 포그처럼 무기력과 우울로 감싸져 있던 상황이었다.
공부환경이 세팅되어있지 않았다면 강제성을 부여할 수 있고 내 수준에 맞는 학원을 찾았어야 했는데
학원비용 결제날이 오면 아무생각없이 신용카드만 긁던 하루하루를 보냈다.
1. 독서
의사소통과 사회관계도 잘 맺지 못하고,
자신감과 자존감 바닥인 회피성 인간에게
그나마 얕게 꾸준히 이어오던 것은 '독서, 체력단련, 도전' 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i-bookland라는 1주일에 4권씩 집 앞 문고리에 책을 걸어주는 업체가 있었는데
같은 반 친구엄마가 운영하던 체인점이어서 엄마가 신청을 했다. 이는 지속적으로 책을 접하며 책에 대한
호기심을 이어나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 처음엔 열심히 4권을 읽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책의 난이도도 조금씩
높아지고, 그림 대신 글이 늘어가면서 의지박약형 인간인 나는 1~2권 읽고 다시 넣기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읽어야 하는 책리스트 50권(?)정도 있었는데 인생에 있어
그 미니 퀘스트 덕분에 4시간동안 한 자리에 앉아 책을 다 읽을 줄 알게 된 초등학생이 되기도 하였다.
다른 동네로 이사온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에선 말주변없고, 조용했던 나에게 유일한 도피처처럼
다른 친구들보다는 더 학교 도서관에 들락날락하며 읽기 영역에 대한 폭을 넓혔던 것 같다.
이 때는 소설이나 에세이, 직업관련 책을 주로 읽었으며 '마케터, 교사, 작가'와 관련된 책이나 '유진과 유진', '연탄길', '괭이부리말 아이들'등의 책을 인상깊게 읽었는데 '이렇게 나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세상에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이 직업은 내가 스스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이건 내 공부머리로는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이렇다 보니 고3때까지 주변 친구들은 자기 인생목표나 되고 싶은 직업,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하지만 나는 꿈도 없고, 되고 싶은 직업도 없는 식충이었다. 먹고, 자고 하면서 게으름, 나태함을 개선할 의지가 없었다.
중학교 2학년, 집에 가는 버스에서 친한 친구에게
나는 내 소심한 성격이 마음에 안들어 이제 내 성격을 싹 바꿀 거야. 호기롭게 이야기했지만
인간이 어디 쉽게 달라지던가? 그 후 10년동안 잠재적이고, 고질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독서 덕분에
글을 아주 잘 썼던 것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글쓰기에 대한 칭찬을 받기도 하고,
중학교 2학년 때, 하교하면 항상 폴더폰 dmb로 tvn에서 방영되던 김미경 강사쇼를 보며
잠깐의 자신감과 위로를 얻은 게 위로와 더불어 '나도 김미경 강사님처럼 무대에 서서
강연하는 강연가가 되고 싶다.'라는 꿈의 씨앗을 심는 계기가 됐다.
그 씨앗은 차가운 비와 세찬 바람, 안개만 자욱했던 땅과 같은 척박한 마음의 땅에 뿌리잡지 못했다.
정신 못차리던 나를 대신해 새싹이 피어날 수 있는 봄을 기다릴 수 있도록
무의식은 작은 덮개로 씨앗을 온전히 덮어주었다.
부끄럽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내 인식 속에 박혀있던 인생목표는 취업이었기 때문에
취업을 목표로한 대학 졸업 후, 2023년 2월까지
나를 증명하기 위한 4년간의 직장생활에 대한 마침표를 찍은 후에야
심어놨던 꿈의 씨앗이 새싹을 내비추기 시작했다.
다행히 성인이 되고서는 작가가 되고 싶고, 강사가 되고 싶다는 작은 욕심 아래
20대 초중반 자기계발서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그리고 20대 후반에는
SNS 발달과 함께 고등학생 때 꿈꿨던 개인 마케터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퍼스널 브랜딩으로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과 독서모임, 다양한 SNS를 통해
일의 연장선상을 벗어나 스스로 생산하고, 가치를 창출하고 싶어
브랜딩에 대한 식견을 넓히며 나에게 적용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2. 체력단련
유년기 시절부터 우리가족은 운동에 열정맨이었던 아빠로 인해 주말에는 무조건 등산, 걷기, 달리기를 해야했다.
그 때는 뭐가 뭔지도 몰랐는데 호랑이같은 아빠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힘들어도 무조건 네 발로라도 산을 올라가야 했고, 소심한 겁쟁이인 나도
정산 한 가운데 서서 동서남북으로 아빠와 함께 "야호!"를 외쳐야 했다.
기본 5km, 10km 기본운동과 함께 그 때는 몰랐는데 그게 임장활동이었다니..
새로운 땅과 아파트를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 하지만 급류를 잘못타서 부동산에서는 득보다 실을 많이 봤다ㅠ)
달리기같은 경우, 동네 시민운동장 10바퀴를 시작으로 주변 생태공원, 옆옆 동네까지 이어졌고,
대학생부터 사회초년생이 될 때까지 3번의 마라톤대회 참여와 자발적으로 기부런(run for the moon)에 2회 참여하게 된다. 2022년 세번째 참여하는 마라톤 대회에서 뛰는 맛을 알았으며 할까말까 망설였던 두 번의 기부런은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도전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다.
매일매일하는 그런 꾸준함은 아니었지만
무의식 속에 새겨진 체력단련법이 이제는 체력의 중요성을 스스로 깨닫고, 단련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올해 2023년에는 인생 첫 헬스 이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유명한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명대사도 한 몫을 했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부터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없이는 구호밖에 안돼.
드라마 미생 중 명대사
3. 도전
소심한 겁쟁이인 나에게도 장점 중 한가지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도전정신을 장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망설임과 무기력함을 이겨낼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상황인지 매번 점검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대학생 때, 혼자 도전한 과대표, 멘토활동, 특성화 프로그램 리더, 해외인턴십, 4박 5일 제주도 연수는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회피성 겁쟁이에게 신청하고도 출발전까지 하루에 수백만번 '취소할까', '안한다고 할까' 고민의 고민을 연속으로 하게 되는 마음 먹은 용기였기 때문에 도전을 완료하고 난 후, 몰려오는 작은 성취감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 활동을 통해 얻은 대인관계가 훗날 나를 일으켜 세우는 큰 자산으로 남게 되었다.
취업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취업을 수단이 아닌 목표로 잡은 사람의 마지막은 공허하고, 허망했다.
사회초년생 1년차 때는 아직 잘 모르고,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나도 선배님들처럼 1인분의 역할을 온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직장 상사에게 좋은 인상을 보이지 않으면 나를 믿고, 도와준 사람들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이 되니 잘해야 된다.' 라는 압박감이 너무나도 컸다. 또래도 없는 막내였기 때문에 항상 눈치가 보이고, 속에 있는 말을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잘 안 꺼내는 성격이다보니 점점 속이 곪아갔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취업 후, 3년간 동료들에게 나는 어리숙하고, 느리며 업무의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찍혀있었다. 뒷담화를 듣기도 하였고, 면전 앞에서도 지적을 받기도 했다.
어디 털어놓을 곳도 없고, 속으로 삭히다 보니 위축이 돼서 해보려고 했던 행동도 하지 못하면서 또 혼나고, 거의 매일 혼났던 것 같다. 혼자 많이 울기도 하고,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현실을 회피하려 하루종일 잠만 잤다.
3년차 때는 직장 내에서 번아웃이 온 상태에서 인간관계문제까지 더해지니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25년동안 많은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있어도 버텼던 정신과 마음이 무너져 정신과에 방문하여 상담과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1년만 더 다녀보기로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고 싶었다.
작년의 나와 다르게 먼저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 퇴근시간이 지나도 내일 업무를 미리 준비한 후, 상사에게 부족한 부분이나 고민이 된 부분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주변 동료들에게
"정말 열심히 한다. 클라이언트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 인상깊다.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이다."
작년과 정반대되는 평을 들으며 상사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2021년 정말 죽고 싶었던 해를 지나
2022년 '살아가고 싶은 해'가 되길 이라고 적은 문구는
나를 포기하지 않은 스스로에 대한 감사와
'나도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용기가 되었으며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한달, 두달, 반년, 1년이 채워졌지만 중간에 한 번 큰 위기상황이 발생했다.
위기상황일 때, 모두 멘탈이 나간 상황이었다.
나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불안과 걱정이 내 몸을 다 후려파고,
펑펑 울고 나서야 이성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이성적인 생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회복탄력성을 다져왔구나.'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 즐겨보던 긍정문구들 중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것 3가지와 통제할 수 있는 것 3가지를 나누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라는
말이 그 순간 떠올랐다. 상사도 동료들도 힘들었던 상황. 같이 울던 상황에서 겁쟁이가 용기내 이야기했다.
"다 잘 될 거예요. 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결과가 어찌됐든 문제가 해결됐을 때, 오늘을 돌아보면서
'그래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같이 찾아봐요."
상황을 수습하고, 제일 걱정이 됐던 클라이언트와의 신뢰와 관계에 대해 부딪혀야하는 순간이 왔다.
겁이 나고, 무서웠다. 그동안에 쌓아온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클라이언트들도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실망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당연한 수순이며 그 반응과 상황을 온전히 받아내고, 많이 울었다.
클라이언트의 반응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동안 우리의 진실된 모습과 태도를 보고,
불신에서 우리에 대한 믿음, 신뢰와 지지, 그동안의 이용했던 서비스에 대한 만족감과 감사함을 전환됐다. 그 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선뜻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클라이언트들이 생기기도 하였다.
'전래동화에서만 보던 까치가 입은 은혜가 이런 느낌이구나.
정말 평생갚아야 할 큰 은혜를 입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처음 겪는 상황에 정말 모든게 정지된 것 같았고,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었지만
계약된 기간동안만큼은 '평소 일상처럼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마무리하자'가 지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목표 중 가장 명확한 목표였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쉴틈없이 달렸다.
무탈히 마무리된 마지막 1년이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인생 1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4. 그래서 2023년은?
퇴사를 선택했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5년 전, 대학생 때 원했던 정기적으로 열리는 독서모임에도 처음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독서모임이라 그런지 인풋(동기부여 및 인사이트)이 다양하고,
책 발제문에 대해 토론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퍼스널 브랜딩을 구축하기 위해 독서, 글쓰기, 휴식, 새로운 경험을 병행하려 노력 중이다.
어제는 읽어야 할 책이 많고, 써야할 글이 많은데도 솜사탕을 맛보듯 행복하고, 즐거웠다.
10년 전에 간직했던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났고,
5년 전에 실행하고 싶었던 것들을 실행하지 않은 상황인데
먼저 행동으로 옮겼더라면 하는 후회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고, 오히려 좋은 기회의 장이 열렸으며 롤모델이 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상상한 것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란 생각과 확신이 들었다.
나는 꾸준히 올라갈려고 한다.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가?
글을 쓰면서 감정을 느끼고, 변화를 꾀하고 있는가?
+) 글쓰기 전 썼던 여담
< 바뀌고 싶어서 나약한 의지를 질질 끌고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
무언가 시작도 안했는데 참고자료라는 명목하에 피드만 아무생각없이 내리고 있고,
스스로는 침체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어제는 오후 일정을 마친 후, 2일차 미션을 끝내지 못했고,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써야하는데 생각만 하고 있다가
'OO아 '더 글로리'는 글쓰고, 읽고, 방정리 좀 한 다음에 봐야해. 쉽게 너한테 보상을 먼저 주지마.'
다짐한 지 30분이 채 흘렀을까?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이불 안에서 이미 9화를 재생하고 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운영자님이 참여독려 카톡을 보내주셨고,
일말의 죄책감은 있었으나 본능을 따라갔다.
역시나 10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타이핑을 하고 있는 꼴이라니 우습다.
이제 미션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 전에 한 문장만 외치고 시작해보겠다.
"잘하든 못하든! 일단 발행하자!", "짧고, 간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