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 아리스 단편 -강철의 심장, 사람의 마음.-

블루 아카이브 아리스 단편 -강철의 심장, 사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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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신호는 나의 심장박동.

렌즈는 나의 눈.

인공 단백질은 나의 피부.

세정 기능은 나의 눈물.

이것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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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는 게임개발부 입니다. 게임을 만들기도 하고 플레이하기도 합니다. 오늘 아리스의 역할은 명 속성 광역 딜러. 친구인 모모이, 미도리와 함께 오늘도 모험을 떠납니다.

그렇게 크다고 하기 힘든 부실. 어질러진 게임팩 케이지. 카펫 위에 앉아 나란히 앉아서 콘솔을 잡습니다. 이것이 언제나의 일상. 변하지 않는 저희들의 일상 입니다.

사이바 자매의 언니, 사이바 모모이. 항상 기운차며 게임개발부의 활력을 책임져 주는 금색 단발과 붉은 눈을 가진 아이.

사이바 자매의 동생, 사이바 미도리. 언니와 달리 조용한 편이지만 활기찬 모모이를 제어하는 브레이크의 역할을 가지고 있는 금색 단발과 녹색 눈을 가진 아이.

그리고 지금은 캐비넷 속에 있지만 언제나 저희를 지켜봐주는 부장, 하나오카 유즈. 낯을 가리는 붉은 장발과 옅은 파란 눈을 가진 이마가 인상적인 아이.

모두가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랑스러운 친구 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보내는 일상 역시 아리스에게는 보물이나 다름 없습니다.

"아리스! 그쪽 그쪽!"

"알고 있습니다!"

"너무 치고 나가는 것도 위험하지 않을까?"

미도리의 생각대로, 너무 치고나간 탓에 오히려 역공을 맞아버립니다. 아리스의 캐릭터는 넉백 및 스턴. 이대로 더욱 공격을 받으면 이후 체력관리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아리스의 행동을 지적했던 미도리가 그 사이를 끼어들며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마도 계속 지켜봐주고 있던 것이겠죠.

"덕분에 살았습니다."

"일단 동료는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하니까 말이지."

감사의 말에 미도리가 싱긋 웃으며 답해줍니다. 역시 동료라는건 좋습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힘이 되어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악당들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악당들은 항상 동료를 업신여깁니다. 함부로 대하고 때로는 죽이기도 합니다. 스스로가 혼자서 완벽하다고 여기는 모습은 정말이지 한 마디 해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아! 스토리 씬이다!"

게임을 진행하고 나오는 스토리 영상. 그것은 게임의 몰입도를 더욱 높혀주고 안구형 렌즈를 즐겁게 해줍니다. 저희 셋은 컨트롤러를 놓고 그대로 영상을 감상합니다.

["이해받지 못한다.... 이해받지 못했다!"]

보스가 처절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보스는 놀랍게도 인간. 인간이면서 마왕군의 보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이기에 마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배척당해 왔었던 모양입니다.

과연.... 부하를 업신여긴 이유가 있는거군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용서를 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는 마왕. 적입니다. 적은 쓰러뜨릴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슬슬 끝나가는 것 같아서 컨트롤러를 잡습니다. 아마도 2페이즈에 돌입하는 거겠죠. 하지만 경험상 패턴이 크게 바뀌진 않을테니 어느정도 여유로울 겁니다.

"어라?!"

그 순간 모모이가 당혹감에 찬 목소리를 흘립니다. 하지만 당황한건 모모이 뿐만이 아니라 저와 미도리 역시 놀라서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최종보스인줄 알았던 마왕은 사실 조종당했던 평범한 인간이었고 진정한 보스가 나타난 겁니다! 페이크 보스였다니 반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놀랄 때가 아닙니다. 곧바로 화면이 바뀌며 전투로 돌입합니다. 사이바 자매도 정신을 차리고 컨트롤러를 빠르게 움직여 갑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패턴. 저희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해온 기록은 전부 온전합니다. 그것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빠르게 공략법을 만들어냅니다.

긴 격전 끝에 쓰러진 마왕. 그리고 나오는 에필로그와 스텝롤에 저희는 드디어 긴장을 풀고 컨트롤러를 놓습니다.

"흐아.... 겨우 깼다...."

그 기운차던 모모이조차 지쳐서 늘러지는 소리를 흘리며 뒤로 드러눕습니다. 미도리는 낮은 한숨을 흘리며 몸을 풀어갑니다. 그리고 아리스는 기록된 게임 내용들을 리플레이 하며 내용을 정리합니다.

게임이 끝나고 난 다음 스토리만을 다시금 음미하는 것. 이것이 게임을 즐기는 또다른 방법입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이라면 역시, 페이크 최종보스의 존재일까요? 종족이 다른 탓에 다른 종족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사실은 진짜 보스에게 조종당했다는 내용은 정말로 큰 반전이었습니다.

'...어라?'

그 순간, 아리스의 AI에 짧은 노이즈가 스쳐지나갑니다. 회로가 불안정해지고 노이즈의 빈도가 늘어갑니다. 이 감정은 분명 불안. 아리스는 불안해 하고 있는건가요? 대체 어떤 것에?

"? 아리스? 왜 그래?"

"아, 잠시 아리스의 회로에 노이즈가 있었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래? 난 기계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너도 힘들겠네."

"그렇.... 네요."

모모이의 말에 잠시 열람하지 않았던 기록을 열람합니다. 모모이도, 미도리도, 유즈도 인간. 저와는 종족이 다릅니다. 그들과 같이 지낸다고 아리스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아리스는 로봇. 친구들은 인간. 설령 아무리 가깝게 지낸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걸 다시금 상기하니 어딘가 쓸쓸한 기분이 듭니다.

아리스는 여기에 있어도 되는걸까요?

"그러고보니 이 페이크 보스, 결국 조종당하는 녀석이었지만 주인공도 사실은 우리가 조종하는 캐릭터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네."

"확실히 그래."

의문을 품으며 아리스가 침묵하고 있으려니 모모이가 게임의 여운에 잠겨 말을 꺼냅니다. 미도리도 모모이의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두 사람의 말에 아리스는 컨트롤러를 내려다봅니다. 전기신호로 이루어진 캐릭터들을 조종하는 기계. 그들은 분명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고 느끼겠죠. 실상은 저희들이 조종하는 것인데도 말이죠.

기계. 회로와 전기로 이루어진 이들은 분명 본질적으로 아리스와 같은 이들입니다. 원래 같으면 아리스도 이들처럼 사용되어지는게 옳은 것이겠죠.

사용.

그 단어가 회로에 노이즈를 일으킵니다. 더이상의 사고를 하지 말라고 CPU에서 에러를 외칩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습니다. 에러를 무시하고 사고가 계속됩니다.

사실 아리스도 이 보스처럼, 그리고 주인공처럼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이 조종당하는 것도 모른 채, 모든 것이 아리스의 의지라고 착각하며 기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언젠가, 엔딩을 본 게임처럼 더이상 사용되는 일 없이 폐기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자, 주변의 모든 것이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부활동과 친구들의 모습에 회로가 순간적으로 정지합니다.

아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아리스의 움직임에 사이바 자매의 시선이 아리스에게로 모입니다.

"게임을 했더니 모험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런 그녀들에게 평소처럼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벗어납니다. 계속 그곳에 있었다가는 회로가 오버히트 될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네요.

그 사실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는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존재인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존재인가, 그에대한 해답은 털어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요.

"...."

거리를 나와 주변을 둘러봅니다. 자주 보던 거리임에도 어딘가 달라보였습니다. 마치 게임팩을 샤워실에 가져다놓은 듯한 불안감이 느껴집니다.

이 일상이 언젠가 사라질 것 같다고 생각하니 카메라가 이상기동을 합니다. 시야가 흔들리고 연산처리가 늦어집니다.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과연 아리스라는 자아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사실 아리스는 여전히 AL-1S인 채로 존재할 뿐, 아리스라고 생각하는 AL-1S인 걸까요?

아니면 AL-1S를 아리스라고 믿도록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리스는 아리스? 그게 아니면 AL-1S?

아리스는....

AL-1S는....

모르겠습니다. 답을 알 수 없습니다. 검색을 해 보아도 '자신'이라는 것의 정의는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한정된 것.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같은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AL-1S는 대체 무엇일까요? 언제부터 AL-1S는 자신을 '아리스'라는 개체로 인식하게 된 걸까요?

눈을 떴을 때, 저는 분명 AL-1S 였습니다. 주어진 의문에 대답하고 하라는대로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게임개발부에서 이름을 받고 게임을 하면서 지금의 아리스가 생겨났습니다.

...아니, 생겨났다는 말은 이상하군요. AL-1S는 어디까지나 '아리스'라는 개체로 불릴 뿐으로, AL-1S의 '아리스'로서의 생활은, 모두 게임을 보고 따라한 말투와 행동이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AL-1S는 깨달았습니다. AL-1S는 누구도 아닙니다. 여전히 로봇으로서 주어진 명령에만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이름도, 게임도, 모두 게임개발부가 준 것. 지금의 이 말투와 행동 역시, 개임을 보고 배우라는 '명령'에 의거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AL-1S는 계속 게임처럼 행동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받았으니까요.

AL-1S는 로봇입니다. 명령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누구의? 게임개발부? 그게 아니면....

"아리스? 여기서 뭐해?"

정보를 종합하던 중, 기록에 있는 음성이 들립니다. '아리스'. 분명 AL-1S를 지칭하는 단어였기에 AL-1S를 부른 것이겠죠.

안구형 카메라와 함께 고개를 돌립니다. 카메라가 포착한 인원은 가장 첫 기록에 있던 인원,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 페허에서 유일하게 출입이 허락된 존재. 모모이와 미도리의 페허 출입을 허락할 수 있게 해준 어른입니다.

만약 선생님이 없었다면 모모이와 미도리는 어찌되었을지 알 수 없었겠죠.

실제로 AL-1S 역시, 처음에는 선생님의 존재만 우호적인 존재로 인식할 뿐, 모모이와 미도리는 선생님의 학생으로만 인식했으니까요.

그렇다면 AL-1S의 주인은 선생님인 걸까요? AL-1S는 선생님의 의지로 게임개발부에서 기동하고 있는 걸까요?

"아리스?"

AL-1S의 침묵에 선생님이 의아한 듯이 다시 말을 겁니다. 만약 모든 것이 선생님의 의지대로라면 AL-1S는 선생님의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리스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정리를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의문이라니?"

선생님이 본 기체를 아리스라고 부르는 만큼, AL-1S는 자신을 아리스라고 지칭합니다. 선생님은 AL-1S의 대답에 다시금 의문을 제시합니다.

"아리스라는, 정확하게는 AL-1S라는 단독적인 개체가 존재하는가 입니다."

"너라는 개체...?"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습니다. 게임을 한 것. 그에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 모모이와 미도리에게 거짓말을 한 것. 그리고 아리스가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했던 사고기록까지 모두 말했습니다.

"아리스는 로봇입니다. 명령에 의거해 행동하는 로봇입니다. 저의 모든 것은 주변의 사람들이 주입한 지식에 따라 행동한 것 뿐, 아리스라는 개체가 가진 행동은 무엇하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마지막 말까지 들은 후,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고싶은 말이 잔뜩 있는 듯,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윽고 정리를 끝낸 듯,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습니다.

"사실 사람도 아리스랑 똑같단다."

"인간도...?"

선생님의 한 마디에 아리스의 회로가 순간적으로 오류를 일으켰습니다. 인간은 단독적으로 존재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생물. 프로그램과 명령어로 움직이는 로봇하고 같을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태어나자마자 완벽하게 '자신'이라는걸 가질 수가 없어.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르니까, 처음 만났을 때의 아리스처럼."

"...."

아리스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얌전히 선생님의 말을 듣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보는거야. 가족을 포함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그걸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라는걸 만들어나가. 나도 그렇고, 미도리나 모모이, 유즈도 그래. 우리는 주변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을 만들어온거야. 아리스는 단순히 그게 우리랑 만났을 때 시작된 것 뿐이지."

"하지만...."

선생님에 말은 이해가 되었지만 어째서인지 납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반박하려는 태도만 보일 뿐, 어떠한 반박의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건 어때? 아리스는 내가 최고 명령자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내 명령에 무조건 따를 수 밖에 없는거지? '게임개발부의 아이들은 모두 나쁜 아이다.' 어때? 내 말에 따를 수 있어?"

확실히 선생님은 페허에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분명 저의 최고 명령자인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말에는 따를 수 없습니다. 따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래. 넌 스스로 내 말을 따르지 않겠다고 판단했어. 그럼 넌 네 의지를 가지고 있는거야. 애초에 네가 진짜 자아가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같은 생각은 하지 않겠지. 그저 명령에 따르면 되는거니까."

선생님의 말에, 회로에 있던 오류들이 하나씩 지워져 나갑니다.

"아무도 너에게 즐거워하라고 명령한 적도 없지. 게임을 하면서, 모두와 지내면서 느낀 감정은 순전히 너의 것이야."

모두와 지낸 기록들이 다시금 피드백 되어갑니다. 처음 느낀 분노, 이해불가의 내용, 그 끝에 있던 즐거움까지, 아리스는 친구들이 명령하지 않았던 것들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어때? 아직도 네가 누군가의 명령을 듣는 로봇같아?"

선생님은 환한 미소로 그리 묻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질문에 아리스 역시 미소를 지으며 답합니다.

"아리스는 아리스 입니다!"

"그래, 그거면 된거야. 그럼 기왕 만났으니 같이 게임개발부로 갈까?"

"그 퀘스트, 수락하겠습니다!"

선생님과 나란히 게임개발부로 돌아갑니다. 아까의 불안정했던 주변의 풍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본래의 형태를 찾아가 있었습니다.

역시, 키보토스에는 마법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리스를 행복하게 해주니까요. 아리스의 의문을 깔끔하게 해결해 주니까요.

아아, 하지만 저도 언젠가....

선생님을 행복하게 해주는 마법을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