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월드에 수집형 RPG가 맞물리는 올바른 예시 / 원신(Genshin Impact)

공식 홈페이지 : https://genshin.hoyoverse.com/ko

간략한 게임 소개

중국의 게임 개발사 호요버스(HoYoverse)의 3인칭 / 액션 / 수집형 RPG / 오픈월드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특이하게도 오픈월드면서 Free to Play 게임이고, 수집형 RPG의 가챠 BM을 섞어 놓았습니다. 과거 이 게임이 막 출시되었을 때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오래 플레이해보니 그런 오해가 눈녹듯 사라지는 훌륭한 게임이었습니다. 사실 모바일 게임을 해보려고 하다가 플레이하게 되었는데, 원신을 모바일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지... 좀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바일 게임인가 PC게임인가

원신의 월드 중 「몬드」 지역 위주의 지도. 이외에 「리월」, 「이나즈마」, 「수메르」 일부까지 출시되었다.

원신은 오픈월드 RPG 게임입니다. 전통적으로 오픈월드는 당연히 높은 사양과 용량의 압박을 견딜 수 있는 PC나 콘솔 플랫폼에서 출시되었고, 먼저 돈을 내야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BM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원신은 PC와 콘솔에 더불어 모바일까지 크로스 플랫폼을 지원하고, 부분유료화 BM을 채용했습니다. 특히 모바일 수집형 RPG의 가챠 BM을 가져왔다는 것 때문에 모바일 게임의 느낌이 더 물씬 풍겼죠. 그래서 원신의 첫 출시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꽤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모바일과 PC의 사이에 끼어있는 이 게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거든요.

물론 두 플랫폼 사이에서 꼭 하나를 정하라는 법은 없지만, 일단 원신은 PC와 콘솔이 주력 플랫폼입니다. 오픈월드의 무거운 요구사양을 제대로 받아내는 모바일 기기가 적어 원활한 게임 진행이 어렵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주로 PC와 콘솔로 플레이하게 됩니다. 또, 4개의 캐릭터를 교체해가며 스킬 사이클을 빠르게 돌려야하는 전투 특성상 모바일의 불편한 조작감은 딜로스를 발생시킵니다.

그래도 PC게임을 모바일에서 구동시킬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매우 큰 강점입니다. 꼭 게임 컨텐츠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더라도 정보를 확인한다거나 캐릭터 뽑기를 한다거나 미리 얻어놓은 재화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등의 가벼운 처리는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모바일 환경에서의 구동을 위해서는 게임의 많은 부분을 타협할 수밖에 없고, PC나 콘솔 같은 플랫폼에서도 최대한의 퀄리티를 보여주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물론 원신은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훌륭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걸 만끽하기 위해서는 PC와 콘솔 플레이가 권장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원신은 모바일 게임보다는 PC와 콘솔 게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원신>과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오픈월드 탐험

다들 기억하시듯 원신이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많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당시에는 '짭숨', '짱숨' 등의 멸칭으로 불리며 조롱받곤 했죠. 가장 큰 비판점은 표절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이하 젤다 야숨)의 독특한 오픈월드 요소들을 대놓고 가져온 모습은 유저들의 분노를 사기 쉬웠습니다.

물론 출시한지 2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오명을 상당 부분 씻어내었습니다. 원신 그 자체의 특색이 분명하여 젤다 야숨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의 경험을 할 수 있고, 원신 제작사(당시에는 미호요) 역시 원신이 젤다 야숨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으며, 젤다 야숨의 제작사인 닌텐도에서도 딱히 문제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굳이 이 둘을 비교하며 원신을 질책하기보단 젤다 야숨과는 어떤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풀어보겠습니다.

저는 여러 오픈월드 게임을 하면서 늘 답답했던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목적지와 캐릭터 사이를 갈라놓는 벽의 존재입니다. 다들 오픈월드 게임을 하면서 분명 목표의 위치는 가깝게 찍히는데 애매하게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실제로는 아주 멀리 빙 돌아가야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더 롱 다크>처럼 점프가 불가능한 게임이라면 더더욱 미쳐버리죠.

그러나 젤다 야숨을 플레이하면서 그 답답함이 뻥 뚫리게 되는데 바로 「암벽등반과 글라이딩」의 등장 덕분이었습니다. 수평 이동의 한계를 수직이동으로 명쾌하게 해결해버려서 게임의 모든 경험이 경탄스러웠습니다. 원신 역시 이 시스템을 가져왔고, 저는 매우 좋은 결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단에 원소 공격을 가하는 방식의 퍼즐이 많다

하지만 암벽등반과 글라이딩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탐험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일 뿐, 탐험 자체의 질이 높지 못하다면 의미가 살짝 바랩니다. 젤다 야숨은 필드에 플레이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컨텐츠들을 수놓아 모험의 질을 대폭 높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컨텐츠들이 수준 높은 퍼즐로 얽혀 있어서 우리는 밀도 높은 경험을 하게 되죠. 필드에서 거의 항상 눈에 띄는 탑, 탑에 오르면 내려다보이는 사당, 길을 걸으면 묘하게 이가 빠져있어 대칭 강박을 불러 일으키는 코르그 퍼즐 등 눈에 띄는 구조물로 시선을 사로잡고, 보상으로 꾀어내며, 양질의 퍼즐로 그 과정의 재미와 성취감까지 느끼게 합니다.

원신의 필드는 젤다 야숨과 비슷한 밀도로 컨텐츠들이 배치되어 있지만 경험의 밀도는 높지 못합니다. 모든 필드가 그런 건 아니지만 간단한 퍼즐이나 몬스터 몇 마리 존재하는 게 대부분이며, 보상으로 주는 것도 낮은 등급의 아이템이 나오는 보물상자 정도입니다. 이 보물상자도 각 게임에서 가지는 의미가 다릅니다. 젤다 야숨은 무기 내구도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초반에는 무기가 매우 빠르게 소모되어 갈증이 심하죠. 이런 상황에서 무기가 나올지도 모르는 보물 상자는 놓치기 힘든 보상입니다. 반면, 원신은 퍼즐 자체에서 성취감을 느끼지도 못하고, 보물상자는 보상도 매력적이지 못한데다가 짧은 전투를 치러야 해서 귀찮음을 느끼고 지나칠 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결국, 원신의 필드 탐험은 퀘스트의 유도 하에 진행되거나 메인 퀘스트의 요구조건인 모험 등급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그 공백기를 채우는 목적 등 의무적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모험 등급을 올리는 것마저도 직접적인 탐험보다는 서브 퀘스트의 미션 보상으로 해소할 때가 많습니다. 필드의 퍼즐에 흥미를 느끼고 자율적인 탐험을 하는 일은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원신의 주요 컨텐츠 1 : 스토리 진행

결국 원신과 젤다 야숨의 오픈월드 탐험을 비슷한 구조로 보긴 어렵습니다만 그렇다고 원신이 못난 게임인 것은 아닙니다. 방향성이 다를 뿐이죠. 원신의 주요 컨텐츠는 탐험보다는 메인 퀘스트를 필두로 한 스토리 진행과 화려한 전투, 그리고 캐릭터 육성입니다.

원신은 여타 오픈월드처럼 메인 퀘스트를 통해 이야기와 탐험을 강하게 이끌어 나갑니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스토리의 개입이 강합니다. 오픈월드 컨텐츠 자체는 빈약하다지만 월드 자체는 매우 훌륭한 컨셉을 지니고 있으며, 메인 스토리 역시 충분히 몰입할 만합니다. 전율적인 스토리까진 아니어도 주인공의 여행이 어떤 목적인지를 명확히 알려주며 거기서 풀어내는 비밀 몇 가지는 다음 스토리를 충분히 기대하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심연 교단과 켄리아에 대한 비밀이 드러날 때는 몰입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게다가 메인 스토리는 풀 더빙까지 되어 있으니 만족도는 더욱 높아집니다.

거대한 분량의 메인 퀘스트를 끝내도 2~4일마다 해금 가능한 캐릭터 스토리 퀘스트가 준비되어 있다

원신에는 메인 퀘스트 외에도 필드에 준비되어 있는 서브 퀘스트들이 암시하는 지역적 설화라든가 각 캐릭터 고유의 스토리를 들어볼 수도 있는 등 굉장히 많은 분량의 스토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미션을 따라가다보면 점점 더 많은 지역을 순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스토리의 분량이 많다고 해서 모든 이야기가 재밌는 것은 아닙니다. 굵직한 마신 임무, 전설 임무 등은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자잘한 월드 임무 등은 지루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고유 캐릭터의 등장은 주로 메인 퀘스트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스토리 전달 역시 텍스트 위주라서 이야기에 흥미를 붙이지 못한다면 무표정하게 대사를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퀘스트 진행 시 억지로 탐험을 이끌어내기 위해 조잡하고 반복적인 임무들만 부여해 게임의 피로도가 높습니다. 예를 들면, "저기로 가라, 이거 구해와라, 쟤들 해치워라" 같은 방식 말입니다. 스토리 또한 선택권 없이 일방적으로 주입당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처지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합니다. 보통 오픈월드 게임들은 이동의 자유와 더불어 이야기의 흐름 역시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흐르도록 만들기 마련인데, 원신은 그런 점이 아예 없습니다. 다른 오픈월드에서는 플레이어가 특정한 역할을 맡아서 진행하기에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원신에서는 그저 '여행자'라는 개별적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입니다.

원신의 주요 컨텐츠 2 : 원소를 이용한 기믹

불 / 바람 / 불 / 물

원신의 플레이 테마는 7가지 원소 시스템입니다. 「불, 물, 바람, 번개, 풀, 얼음, 바위」로 나뉘어 있으며 서로 다른 원소를 만나면 반응하여 추가적인 효과를 얻게 됩니다. 원신 전투의 핵심은 이 원소반응을 일으키는 것에 있습니다. 원소 상성과 반응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적에게 효과적인 피해를 주지 못해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곤 합니다.

원신은 하나의 파티에 총 4개의 캐릭터를 배치할 수 있고, 이 캐릭터들을 실시간으로 교체하면서 싸우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양한 원소 반응 때문에 전투 역시 상당히 복잡한 기믹으로 구성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원신의 전투는 파티만 제대로 짜놓는다면 이후에는 각 캐릭터의 스킬을 사이클대로 난사하는 형식입니다. 그래도 각 캐릭터마다 2개의 스킬이 있으므로 총 8가지의 화려한 스킬을 쓸 수 있다는 뛰어난 장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했습니다.

<케이아>는 수면을 얼려서 바다를 건널 수 있다

단순히 전투 뿐만 아니라 탐험에서도 원소 반응을 이용한 다양한 기믹들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케이아」라는 캐릭터는 얼음 원소 스킬로 수면을 얼려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원신의 캐릭터는 필드 탐험에 유용한 캐릭터와 전투에 강한 캐릭터가 나뉩니다.

예를 들면,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원소 제단 퍼즐에서는 원거리 원소공격이 가능한 활 캐릭터가 유용하고, 바위 쉴드나 광석을 캘 때는 대검 캐릭터가 유용합니다. 「벤티」와 「카에데하라 카즈하」는 아예 윈드 필드를 타고 높게 날아오르는 스킬이 있어서 사기적인 성능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믹이 필요할 때마다 게임을 멈추고 파티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 매우 귀찮았지만, 여러 캐릭터를 활용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은 좋았습니다.

원신의 주요 컨텐츠 3 : 캐릭터 육성과 가챠

고작 15일 만에 5성 성유물 세팅이 가능하다니!

저는 원신의 스토리도 재미있었고 전투 역시 훌륭했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캐릭터 육성 시스템이었습니다. 이전에 <백야극광>에서도 느꼈듯 수집형 RPG의 가장 마음에 드는 특징은 「박리다매」입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캐릭터의 성장 최대치를 낮게 설정하는 대신 여러 캐릭터를 키우도록 유도한다는 뜻입니다.

원신에서 캐릭터의 스펙업 수단은 「캐릭터 레벨, 무기, 성유물, 특성, 운명의 자리」 뿐입니다. 여기서 성유물을 제외한 나머지 시스템은 랜덤 옵션이 없어 강화를 통해 확정적인 스펙 향상이 가능합니다. 랜덤 옵션이 있는 성유물 파밍은 여러 캐릭터에게 모두 갖춰주려면 꽤 시간이 걸리는 컨텐츠이지만, 그마저도 옵션 타협을 조금 하면 제대로 맞추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이러한 방식은 늘어지는 성장 공백기를 줄이고, 상당히 짧은 시간 내에 캐릭터 하나를 어느정도 「완성」시켰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파츠와 옵션을 세세하게 쪼개 파는 기존 MMORPG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죠. 물론 MMORPG가 경쟁심리를 이용하는 온라인 게임인 것에 반해, 원신은 싱글 플레이 게임이라 비교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저는 수집형 RPG의 이런 방식이 매우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집형 RPG도 단점이 있습니다. 캐릭터 자체를 확률형 가챠를 통해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챠 BM이 얼마나 독하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수집형 RPG의 평가는 천차만별로 갈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원신은 상당히 합리적인 시스템을 가졌습니다. 일단 가챠 시스템을 압축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5성 무기 가챠는 예외로 하겠습니다)

5성 캐릭터가 뽑힐 확률은 0.6%이고, 천장은 90회

4성 무기/캐릭터가 뽑힐 확률은 5.1%이고, 천장은 10회

5성 캐릭터의 확률만 보면 BM이 상당히 독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원신의 오픈월드 컨텐츠는 4성 캐릭터로도 수월하게 플레이할 수 있으며, 심지어 5성보다 각광받는 4성 캐릭터도 많습니다. 게다가 4성 천장이 10회이기 때문에 픽업만 잘 노린다면 원하는 4성 캐릭터를 쉽게 뽑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소과금 유저도 필드 탐험에서 막히는 것 없이 수월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박리다매 전략이기 때문에 원신은 다양한 캐릭터를 사용하도록 요구합니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파티에 4명의 캐릭터가 필요하고, 적의 원소속성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원소 파티가 필요합니다. 또, 필드 기믹을 위한 파티와 전투 전용 파티가 나눠지며, 원신의 엔드 컨텐츠라고 할 수 있는 (탑 형식의 챌린지) 나선비경에서는 5층부터 아예 2개의 파티를 요구하게 됩니다.

창세의 결정 160개 = 원석 160개 = 가챠 1회권

하지만 제가 박리다매라고 했던 것과 달리 5성 캐릭터와 무기를 본격적으로 뽑으려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원신에서 가챠 한 번을 돌리기 위해서는 현금 3천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90회 천장까지 계산한다면 5성 캐릭터 하나에 최대 27만원까지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50% 확률로 픽업 캐릭터를 빗겨나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여느 수집형 RPG처럼 원신에도 캐릭터를 중복으로 뽑아야 가능한 별자리 돌파가 존재하기 때문에 5성 캐릭터 하나를 제대로 육성하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보통 중소과금 유저들은 5성 캐릭터는 명함으로 만족하고, 주로 4성을 뽑는 것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알면서도 자꾸 캐릭터를 뽑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미호요가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구성한 것도 있고, 각 원소반응 시너지를 맞추고 싶다는 욕구도 한 몫 합니다. 또, 사람들은 쓰다가 버릴 캐릭터를 키우기보단 처음부터 좋은 캐릭터에 시간을 쏟고 싶어하기 때문에 가챠를 돌리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플레이어는 해당 캐릭터에게 애착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체험도 해볼 수 있어 더욱 강한 소유욕을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그 캐릭터가 성능이 뛰어나지 않다고 해도 앞서 말했듯 오픈월드 컨텐츠의 캐릭터 요구 성능도 낮아서 애착 캐릭터 역시 버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장점까지 있죠. 단순히 성능만 보고 파티에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스킬 이펙트나 조작감, 외형 등 자신의 만족도가 높은 파티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여러모로 합리적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 정도로 플레이어의 심리적 부담을 부드럽게 낮춰놨습니다.

캐릭터 육성은 BM 외에도 탐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캐릭터 자체나 무기, 특성 등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중간마다 「돌파」가 필요합니다. 이 돌파를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일정 이상의 「모험 등급」이 요구됩니다. 앞서 메인 퀘스트의 진행에서도 모험등급을 넘겨야한다고 했으므로 스토리 공백기가 생기게 되는데, 이때 우리는 모험등급을 올리기 위해 탐험을 하며 여러 지역의 지도를 채워나가게 됩니다. 물론 스토리의 흐름이 끊긴다는 점에서는 단점이지만 역으로 탐험을 어떻게든 유도했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죠.

돌파는 다른 방식으로도 탐험을 유도하는데, 그것이 바로 재료 파밍입니다. 기본적으로 원신에 존재하는 모든 잡템들은 다 각자의 쓸모가 있습니다. (저는 이 점도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잡템들은 각종 퀘스트나 요리, 돌파 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부족할 경우 직접 필드 파밍에 나서야 합니다. 또, 성유물이나 무기 강화에도 하급의 아이템을 경험치로 사용하기 때문에 보물상자 파밍 역시 필요합니다. 위에서 젤다 아숨과 비교하며 보물상자의 중요도가 낮다고 했지만, 모든 퀘스트와 스토리를 다 끝내고 나면 그거라도 남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물론 이런 방식들은 다소 지루한 노가다가 필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미약한 필드 컨텐츠를 가졌음에도 큰 거부감 없이 탐험을 이끌어 낸다는 점이 만족스러웠고, 아무래도 오픈월드 게임이라서 탐험을 하다 전에는 미처 몰랐던 동굴을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가치의 하락과 보존

진화생물학에서 사용하는 「붉은 여왕 가설」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나라 앨리스>의 내용에서 유래한 것으로, 붉은 여왕이 사는 나라는 어떤 사물이 움직이면 다른 사물도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제자리에 서 있으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쉽게 말해, 모두가 달리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고, 똑같이 달려봐야 제자리를 유지하며,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합니다. 과거 <쉐도우 오브 더 툼 레이더> 리뷰에서 "발전하지 않는 것은 정체인가 도태인가?"라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와 일맥상통하는 단어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유저들이 평가하는 원신의 장점 중에 "캐릭터의 가치가 보존된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캐릭터를 육성해놓은 이후, 오랫동안 게임을 접었다가 다시 접속했을 때 그 캐릭터가 여전히 전과 같은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캐릭터나 아이템의 가치 하락은 복귀 유저가 복귀를 하지 못하게 막는 대표적인 진입장벽 중 하나이죠. 여기서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기게 되는데, 하나는 "가치는 어떤 상황에서 하락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원신은 정말로 가치가 보존되는가?"입니다.

초창기 메이플 스토리의 최종보스 자쿰

가치 하락의 대표 장르인 MMORPG로 가상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초창기 <메이플스토리>의 보스 몬스터 「자쿰」은 그 위상이 대단한 최종보스였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자쿰을 잡는데 필요한 적정 무기가 희귀한「메이플 소드」라고 하겠습니다. 자, 10년이 지나면서 자쿰보다 훨씬 강력한 보스들이 출시되었고, 메이플 소드보다 훨씬 강력한 엔드 스펙 무기들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쿰은 메이플 소드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이플 소드의 가치는 과거와 똑같이 보존되고 있는 걸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상위 개념의 보스와 아이템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해당 시점에서 엔드 스펙인 무기를 추구합니다. 그러니 거쳐가는 단계의 무기가 가지는 가치는 낮아지고, 결국에는 아예 잡템이 되어버립니다. 게다가 온라인 게임은 아이템 거래가 가능해서 물량의 확보로 아이템 가치가 계속 낮아집니다.

결국, 게임에서 아이템 가치 하락은 대부분 「파워 인플레」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또, 파워 인플레가 심화되면 게임사는 신규 유저와 코어 유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초중반 육성 난이도를 대폭 줄이는 개편을 감행하는데, 이것은 하위 아이템들의 가치를 더욱 떨어뜨리게 됩니다. (물론 이미 가치가 없는 상황에서 감행하는 게 보통입니다.)

과거 최고의 메인 딜러였던 내가 지금은 뒷방 늙은이??

원신은 이 특성에서 벗어나 있을까요? 일단 싱글플레이 게임이라는 점에서 유저간 거래가 불가능해 아이템의 물량이 풀려 가치가 낮아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파워 인플레는 피해갈 수 없습니다. 게임의 초창기에는 캐릭터들이 쉬운 조작과 단순한 스킬 구성을 보입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기믹이 추가되고 능력치 또한 더욱 강하게 출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이루크」와 「클레」는 초창기에 조작이 쉬우면서도 강한 불 원소 딜러로 각광받았지만, 이후 출시되는 캐릭터와 몬스터의 파워 인플레 및 나선 비경 등의 엔드 컨텐츠 메타 변화로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풀 원소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이전에는 쓸모없다고 평가받던 번개 원소의 위상이 상승한다든가 캐릭터 자체의 스펙이 조정되는 등 업데이트를 통해 캐릭터의 가치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신의 캐릭터 가치가 보존된다는 말이 꼭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게임들에 비하면 파워 인플레가 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수집형 RPG의 특징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모험등급이 오르면 월드 레벨이 오르고, 몬스터의 레벨도 그에 맞게 보정된다.

MMORPG는 캐릭터의 계속되는 성장에 초점을 둡니다. 그래서 엔드 컨텐츠에 도달하는 유저들이 많아지면 새로운 업데이트를 통해 꾸준히 고점을 돌파합니다. 앞서 말한 자쿰의 예시처럼 상위 개념의 몬스터와 아이템을 계속해서 출시하는 것입니다.

반면, 수집형 RPG는 처음부터 캐릭터에게 명확한 성장 한계을 정해두기에 하나의 캐릭터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다른 캐릭터를 키우게 됩니다. 이런 성장 특성에 맞게 신규출시 몬스터 역시 새로운 기믹을 선보이는 대신 기존의 몬스터와 비슷한 스펙을 가집니다. 수직적 구조의 엔드 컨텐츠는 나선 비경이 거의 유일하고, 필드에 존재하는 보스들은 모두 캐릭터 레벨에 맞게 레벨 보정을 받습니다.

말하자면, MMORPG의 수직적 성장구조와 다르게 수집형 RPG는 수평적 성장구조를 띄고 있어서 원신 역시 어느정도 파워 인플레를 버텨내는 것 입니다. 물론 새로운 기믹의 추가로도 파워 인플레는 충분히 일어납니다. 대표적으로 <유희왕>과 <하스스톤> 같은 TCG 게임은 업데이트가 될수록 효과 텍스트가 복잡해져서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하지만 원신은 스토리 중심의 오픈월드 게임이라는 점, 원소를 테마로 한 신규 지역의 업데이트가 느리다는 점, 피로도 시스템을 적용하여 성장속도를 제한하는 점 등 여러 장치를 통해 문제들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메인 퀘스트가 끝나면 즐길 만한 일일 컨텐츠의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다음 스토리 업데이트까지 큰 공백이 생기고, 이 때 잠시 게임을 쉬는 유저들이 많아서 캐릭터의 가치를 보존해주는 것은 개발사에겐 선택이 아닌 필수이긴 합니다. 결국 캐릭터의 가치 보존도 이런 목적을 위한 수단입니다.

마치며

사실 원신이 출시되었을 때 플레이를 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젤다 야숨을 아직 플레이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습니다. 두 게임을 해보니 확실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걸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원신이 비록 탄성을 자아내는 탐험을 선보이진 못했지만 오래 붙잡고 있도록 유도하는 RPG의 익숙한 재미가 많았다는 점에서 저는 원신도 아주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참고로 원신을 플레이한 이후에 젤다 야숨을 플레이해도 저는 무방하다고 봅니다. 젤다 야숨의 오픈월드는 여전히 색다르고 전율적인 오픈월드 경험일 겁니다.

그나저나 이제 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