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수메르 스토리 진짜 좋다...(스포)
3막 5장 스포일러
수메르 진입한 뒤로 항상 하는 말이지만
메인스토리에서 캐릭터들이 살아있다는걸 이 게임 하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것 같다.
제대로 지성이 있고, 자신의 지위와 성격에서 도출되는 합리적인 판단을 할줄 알며,
이야기 속에서 제대로 활약하고, 그저 개성만을 표출하는 가챠 광고 팜플렛이 아니라고 자기주장을 한다.
3막 5장의 개막과 함께 테이블 위에서 정리된 '작은 쿠사나리 화신 구출계획'.
알하이탐, 사이노, 데히야 각자의 활약을 순차적으로 조명해줌과 동시에
그 계획이 어떤 판단 하에 짜여졌는지 과거 회상 식으로 설명해준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여기에 속도감만 더해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점인데,
솔직히 그간 '필드 로딩 문제' 때문에 스토리 진행 도중에 배경지역이 이동하는걸 극도로 꺼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반면
이렇게 과거 회상이라는 명목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지역과 전혀 상반되는 곳의 모습을 비춰주려고 한다는 것 자체에 점수를 주고싶다.
전체적으로 수메르의 스토리를 보다보면
미호요가 이나즈마에서의 실책을 만회하려고 보이는 듯 하기도 하고,
이나즈마때 보여준 모습에 대한 변론을 하는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가의 수뇌부가 극비리에 감금한 신 구출
vs
천년간 무력 하나로 국가를 휘어잡은 신, 그리고 국가와의 맞다이
어느쪽이 더 치밀한 계획과 더 큰 힘이 필요한지는 물보듯 뻔한데,
이나즈마에선 왜 그 꼬라지였는지,
생각이 없어서 안한게 아니라
뭔가 외부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에 그리 할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난 개인적으로 '이나즈마 스토리 공안 검열설' 을 어느정도 믿고있는 편이라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진 알수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직접 마주한 적들중 가장 세계의 진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게 분명한 도토레.
그런 배경을 지닌 그이기에 지난 스토리에서의 집행관들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법을 보여주며
등장하는 족족 묘한 긴장감을 몰고온다.
이 시점에서 여행자 일행이 염두해둬야 하는 적은 한명이 아니다.
복수의 커다란 적을 상대해야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전혀 난잡하지 않고,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도록 몰고가는 힘이 있다.
반면 스카라무슈의 캐릭터성에 대해선 조금 이야기가 나올거라고 생각한다.
가끔 얼굴을 비췄다곤 하나 너무 복잡한 캐릭터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이야기에 대해선 관련 로어를 찾아읽지 않으면 제대로 알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메르에서 스카라무슈에게 너무 힘을 줬다간 오히려 다른 부분이 루즈해졌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것보다 분량을 줄이면 이나즈마의 시뇨라 꼴이 났을지도 모른다.
이건 그간의 스토리에서 확실히 스카라무슈에 대해 짚고가지 않은 미호요의 실책일수도 있고,
어찌보면 노림수일수도 있다.
플레이어블로 세탁할것이기 때문에...
스카라무슈의 캐릭터성은, 상당히 복잡미묘하다.
그는 라이덴 에이가 라이덴 쇼군을 만들기 전 제작했던 프로토타입이다.
하지만 인형이라기엔 너무 인간답고, 인간이라기엔 너무 인형같던 그였기에
한창 영원에만 집착하던 라이덴 에이는 자신의 창조물을 돌보는것을 포기하고 그를 버렸다.
동결에서 풀려나 이나즈마를 떠도는 부랑자가 되어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가족같던 사람마저 잃곤
흘러흘러 우인단의 집행관이 된다.
이나즈마에서 시작된 그의 불행한 서사는 수메르까지 이어진다.
신의 심장의 그릇으로 제작되었기에 그것을 갈망하지만,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과거에 의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고
친구에게 배신당했던 과거 때문일까, 자신을 건드릴 수 없도록 타인을 향해 가시를 들이댄다.
신격을 갖춘 자신의 정신에 처음으로 연결되었던 하이파시아를
'최초의 신도' 라 부르며 비호하기도 하며
진심을 다한다면 얼마든지 치워버릴 수 있을 위협요소(여행자)를
굳이 자신의 관찰자로 삼아 살려두기도 한다.
그런 그가 보여주는 최후는 씁쓸하기도 하며,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상하게 미워하기는 힘든 캐릭터다.
얘보단 차라리 타르탈리아가 더 미워하기가 쉽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다.
스토리 중간중간 삽입된 컷신들의 퀄리티도 훌룡하다.
허공을 통해 발표될 신의 지식을 바꿔치기한 알하이탐의 활약과 더불어
스스로 미끼가 된 닐루, 경비병들을 한곳에 몰아 처리하는 데히야,
양동에 속아 정선궁에 들어온 대현자를 맞이하는 사이노까지
뿌렸던 떡밥들을 하나씩 회수해나가며 그것을 스토리의 기폭제로 사용한다.
인물들의 계획이 맞아떨어지며 하나 하나 단추가 꿰어지는 과정은
그야말로 잘 짜여졌다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vs 스카라무슈 컷신은 진짜...
와 니네 붕괴에만 실력발휘하는게 아니었구나! 싶을 정도로
정말 완성도가 높은 컷신이었다.
침착함과 의연함과는 거리가 있는 스카라무슈와 대비되는 나히다의 모습이
그간 등장했던 어떤 신들보다 더 신 다운 모습으로 비춰진다.
사람들의 힘을 빌려 거대한 적과 맞서는 모습은 몬드때부터 이어져온 전통이지만,
이나즈마의 처참한 그것과는 다르게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이 느껴진다.
이대로 가면 끝도없이 길어질것같아 대충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진작 이만큼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스토리로 원신을 고평가하게 되는 날이 올줄은
제발 앞으로 힘빼지 말고 더 발전하는 모습 보여줬으면